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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약용은 천재라 불리지 않는가? -『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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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것으로 유명했다. 집중력이나 경쟁심 또한 남달라서 한 번 책을 읽으면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정조의 사랑도 독차지해서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일일이 정조는 정약용의 안부를 묻곤 했다. 정약용은 다방면에 관심을 두어 시문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법률과 농업, 기술 분야에도 성과를 거두었다. 정약용의 이런 모든 공부와 관심의 근저에는 왕조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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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것으로 유명했다. 집중력이나 경쟁심 또한 남달라서 한 번 책을 읽으면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정조의 사랑도 독차지해서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일일이 정조는 정약용의 안부를 묻곤 했다. 정약용은 다방면에 관심을 두어 시문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법률과 농업, 기술 분야에도 성과를 거두었다. 정약용의 이런 모든 공부와 관심의 근저에는 왕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는데 주자의 견해에서 벗어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정약용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견하지는 못했는데 강진에서 유배당했던 시절에도 관리들의 비리와 잘못됨을 잘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문제의 근본원인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단지 조선이 상식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했고 공자와 주자가 원했듯이 주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의 유학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 점이었다. 조선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신분제를 기본으로 한 봉건적 지배체제였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분출되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갔어야 했지만 결국 그런 사회로 변화하는 일이 실패함으로써 결국 조선은 망하게 된 것이다.

 

천재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며 시대정신과 비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정약용은 그런 점에서는 박지원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박지원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문체로 글을 쓰며 당시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면 정약용은 유교적 태평성대를 이룩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원리를 죽을 때까지 몸에서 놓지 않았다. 『목민심서』는 진보적인 인물이거나 혹은 그 반대의 인물들, 심지어 군사독재의 원흉까지도 칭찬한 책이다. 그런 군인정치가들이 이 책을 읽었는지의 사실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부정과 비리를 근절하고 백성을 위해 검약한 생활을 강조한 책을 비리 백화점과도 같은 인물들이 숭배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는 한다. 이 책이 쓰였던 시기는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는데 지방 아전들의 농간에 부화뇌동하며 목민관들은 재물을 축적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기였다. 당연히 정약용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반대의 행동을 지방 수령들이 했는데 정약용은 이런 횡포를 몸소 겪고 보면서 울분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국가 정치의 근본 문제를 논한 책도 아니고 체제상의 문제에 물음을 던진 책도 아니다. 그냥 지방관이 부임해서 세금을 걷고 백성을 다스리며 군율을 세우고 죄인들을 징치하는 방법을 논한 책이다. 백성들이 보기에 자신과 직접 맞닿아 있는 아전들에 대한 이야기니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이고 지배층이 보기에는 중간 관리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니 정말 쓸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호질」이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아주 위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양반들의 이중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양반제도의 허구성까지도 밝혀낼 수 있다. 즉 당시의 양반 제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결국 호랑이의 입을 통해 밝힌 이야기에는 당시 조선이 신분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주 커다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열하일기』는 정조 때 나왔고 『목민심서』는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순조 때 나왔기 때문에 정약용의 약점은 더 심하게 드러난다. 박지원이 비교적 나라가 안정됐던 시기에서도 당시 신분제의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었음에 반하여 정약용은 나라가 세도정치로 어지러운 와중에도 근본적인 문제보다 표면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안정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정약용의 한계일 수도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목민심서』는 호치민도 즐겨 보았던 책이었다. 아마 호치민은 베트남 통일 전쟁 이후에 나라를 이끌어갈 비전을 보기 위해 이 책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은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을까?

 

지금의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의 대부분은 『목민심서』에 나오는 모범적인 지방관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땅을 사랑하고 아파트를 사랑하고 호의(?)로 계약서를 다운하여 반값아파트를 실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국민들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던져 주고 있는데 아마 그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스스로의 탐욕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예전에 조선의 백성들은 목민관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약용은 목민관의 태도에 관해 이렇게 많은 분량의 글을 썼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중 상당 부분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히 썼을 것이다. 호치민도 베트남에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민심서』를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또한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커다란 토목공사 한 번 하면 뽑아주는 대통령, 잘 생긴 외모만 보고 선출하는 시장, 명문대를 나와서 성공가도를 달렸기 때문에 뽑아주는 국회의원 이 모든 것들이 상식을 통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목민심서』는 혁명적인 책은 아니다. 단지 상식을 회복하길 바라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목민심서』를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몰상식한 사회에 다시 상식을 되찾기 위함일 것이다.




m*****a 2011.09.16. 신고 공감 8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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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를 통하여 애민사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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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으니, 하나는 사도를 두어서 만백성을 가르치고 수신하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학에서 국자를 가르치고 각기 수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의 학문이란 반은 수신하는 것이고 반은 목민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하면 많은 저서와 천주교를 떠올릴 테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약용은 역사상으로 천주교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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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으니, 하나는 사도를 두어서 만백성을 가르치고 수신하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학에서 국자를 가르치고 각기 수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의 학문이란 반은 수신하는 것이고 반은 목민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하면 많은 저서와 천주교를 떠올릴 테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약용은 역사상으로 천주교로 인하여 온 가족이 몰살당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그 이유때문인지 애잔한 마음으로 목민심서를 읽기 시작했다. 목민심서에 실려 있는 글을 읽다 보면 정약용이 추구했던 사상과 꿈꾸었던 나라,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동경과 함께 유배지에서 오로지 글을 쓰는 데에 전념하며 현실을 부정하기 보다는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목민심서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지방행정을 개선하도록 말이다. 이것이 진정한 애민사상인 것이다.

 

책은 모두 12편으로 나누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엮었다. 먼저 제1편의 부임, 제2편의 율기, 제3편의 봉공, 제4편의 애민은 지방관의 기본자세에 대해 논했는데, 지방관은 백성과 가장 가까운 직책이기 때문에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덕행,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며,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부()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하며, 백성에 대한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령을 두루 알리고, 민의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애휼정치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제5편의 이전, 제6편의 호전, 제7편의 , 제8편의 병전, 제9편의 형전, 제10편의 공전은 경국대전의 6전을 기준으로 지방관이 실천해야 할 정책을 논했다. 즉 이전의 경우, 아전, 군교, 문졸의 단속을 엄중히 하고 지방관의 보좌역인 좌수와 별감의 임용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 호전은 전정, 세정, 부역을 공평하게 운영하고, 권농, 흥산에 힘쓰며, 예전에서는 예법과 교화, 흥학을 강조하였다. 병전에서는 당시 민폐가 심하였던 첨정, 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을 다시 정리하며 평소에 군졸을 훈련시킬 것을 논하였다. 형전은 형옥의 신중을, 공전은 산림, 천택, 영전의 합리적 운영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진황과 해관2편은 빈민구제의 진황정책과 지방관이 임기가 끝나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국가가 존립하고 정치가 행해지는 목적은 어지까지나 국민들을 잘살게 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니만큼 만일 국민이 못살게 된다면 국가나 정치는 곧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를 아는 것은 곧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희 현실을 비판하며 미래를 추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제도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대원칙만은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일반인들도 교훈으로 삼을 만한 저서이다.

 

봉공 6조 편에서는 당시 표류되어 온 외국선박에 대한 글로 실학파였던 다산 정약용이 외국 선진 문명의 수입을 주창한 대목을 통하여 다산의 선견지명을 볼 수 있었다.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저서를 편찬한 이유에 대하여도 다산이 말하기를 그의 저서의 목적이 "진실로 나의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어찌 꼭 목민에만 뜻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심서(心書)라 한 것도 목민할 마음만이 있을 뿐 몸소 실행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이름한 것이다. 라고 밝힌다. 목민심서는 그렇게 마음의 글로서 목민관 뿐만이 아닌 오로지 애민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다산 정약용의 마음속에는 온통 백성을 위한 나라. 백성들이 모두 잘사는 나라를 꿈꾸는 마음뿐이었으니 이것이 진정한 애민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1.09.06.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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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목민(牧民)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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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목민(牧民)을 알까? 서울특별시장이 사퇴했다. 예부터 서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이자 국가행정의 축소판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중요한 도시다. 조선시대 한양이 그러했다. 하여,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관직으로 중앙요직과 더불어 그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현장 목민관으로 대표되는 자리이기에 그만큼 그의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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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목민(牧民)을 알까?

서울특별시장이 사퇴했다. 예부터 서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이자 국가행정의 축소판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중요한 도시다. 조선시대 한양이 그러했다. 하여,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관직으로 중앙요직과 더불어 그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현장 목민관으로 대표되는 자리이기에 그만큼 그의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늘날도 그 지위는 여전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기필코 차지하고 싶어 하는 자리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장은 불명예스럽게 자신 사퇴한 것이다. 이 사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박수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사퇴하게 만들었을까? 한 지방의 행정책임자로써 자신의 한계를 느꼈기에 그랬다고 본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지방행정의 책임자에 대한 조선후기 한 학자의 저서 ‘목민심서’는 우리시대 다시금 지방행정 책임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경계하는 바를 살펴봐야할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신유사옥으로 유배를 가 20여년 가까이 살았던 전남 강진에서 해배되기 바로 전에 집필한 저작이다. 방대한 정약용의 저작들 중에서도 주목받는 저작으로 꼽히는 목민심서는 지방행정책임자인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조선후기 관리들이 자행하고 있었던 각종 불법과 파행적인 모습을 심도 있게 비판하며 철저히 백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목민심서는 12편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목민관으로 임명되고부터 부임하고 업무를 펼치며 이임할 때까지 각각에 해당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포함되는 것으로 12편은 부임, 율기, 봉공, 애민에 이어 육전에 해당하는 이, 호, 예, 병, 형, 공 그리고 진황과 해관이다. 이 12편을 다시 6조로 세분화하여 총 72편이 된 것이다. 정약용은 자서에서 집필 동기를 밝히며 목민에만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덕을 쌓기 위한 것이며 유배자인 자신의 처지를 반영해 목민할 마음을 담아 심서라 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라도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후기는 급작스런 정조왕의 죽음으로 인해 개혁이 좌절된 시기라고도 한다. 하여 이후 조선은 겉잡을 수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맞았으며 정조왕의 개혁적인 정책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바로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당시 무엇이 올바른지 넘어야할 산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지방 목민관의 현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렇기에 위로는 조선의 법전이었던 경국대전이나 속대전 등의 법률로의 집행에서부터 아래로는 각 지방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관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밝히고 있다.

 

그 밝힘의 정도가 목민관이 지방행정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며 아주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서의 성격이다. 특히, 조선 후기 부패의 극에 달한 지방의 정치의 실제와 민생 문제 및 수령의 본 업무와 결부시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이 모든 정책의 중심에 백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목민심서가 저술된 시점과 현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많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올바로 보고 이를 개혁하고자 했던 마음만은 올바로 이어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72조 각 항목에 역해자의 해설이 실려 있어 원문을 접하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아주 유용하게 읽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문을 해석하며 주요한 단어들은 따로 설명해 둔 점이 원문을 읽어가며 한자에 대한 이해가 약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있을 때는 혁혁한 명예가 없고 떠나간 뒤에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직 공을 자랑하지 않고 남몰래 착한 일을 한 자일 것이다.”(목민심서 12 해관 6조 유애의 일부)

 

2011년 하반기를 포함하여 계속되는 선거는 바로 행정책임자들을 뽑는 절차다. 마지막 여름의 더위를 더하게 만들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 물마 예상자들의 행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에게 자진사퇴를 결정한 전임 서울시장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행정책임자로써 의무와 역할보다는 그 자리가 주는 위상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조선 후기 유배자의 신분으로 목민심서를 저술한 정약용의 마음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일까?



m*****8 2011.09.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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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가치를 실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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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인 아버지 슬하에 자란 다산 정약용으로서는 직접 체험한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 <목민심서>를 지은 것은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 다산에게는 괴로웠을 18년 동안의 유배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이 씁쓸하다. 어째서 바른 것은 사장되어 왔는가. 어쨌거나 당시 목민관들의 생활상에 대한 모든 것을 일렀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들의 행실에 대한 실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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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민관인 아버지 슬하에 자란 다산 정약용으로서는 직접 체험한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 <목민심서>를 지은 것은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 다산에게는 괴로웠을 18년 동안의 유배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이 씁쓸하다. 어째서 바른 것은 사장되어 왔는가. 어쨌거나 당시 목민관들의 생활상에 대한 모든 것을 일렀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들의 행실에 대한 실질적인 제시를 하고 있어 흥미롭다.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에 당시 정치제도나 사회상 전반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약용의 애민심, 충정심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당시 목민관들은 물론 백성들의 태도나 사고 또한 잘 알려주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의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부러 원문이 실려 있는 것으로 고르다 보니, 홍신문화사의 것으로 읽게 되었는데 해의가 알차 읽기 편했다. 주석이나 주해는 말할 것 없고, 원문에 없는 내용들까지 같이 알려주는 해의가 있었던 것이다. 또 마지막에는 현대 사회와 연결시켜, 이러한 점은 요즘에 맞지 않으나 또 어떤 점은 현대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이라며 역자의 의견을 덧붙여 인상적이다. 그래서 [동양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가 시리즈 명인가 보다. 다산이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정신을 지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무엇보다 그 시대에 이루지 못한 것이라 하여, 그것은 그저 이상적인 것일 뿐이라고 단념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목민심서>를 읽으며, 그동안 품고 있었던 오해가 한가지 풀렸다는 점이 나로서 특기할만 하다. 목민관의 행실이나 행정에 대한 내용만 있는 줄 알았으나 그뿐 아니라 아전의 태도나 애국충정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목민관의 옷차림 하나까지 매우 세심하게 다룬 것이 흥미롭다. 무지로 인한 어이없는 오해였으나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듯 하다.

 

 어쨌거나 다산은 목민관에 대한 윤리뿐 아니라 실무적인 부분까지 일관된 자세로 방향을 제시하고, 당시 목민관의 그른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다산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관리의 특권에 따른 방만한 태도는 존재하고 있지만, 다산과 같은 옳고 바른 정신으로 직무를 행하는 이들이 있기에 살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른 것에 굴복하지 않는 올곧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하는 것,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가치를 실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霖

m*******y 2007.11.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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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 쯤은 읽어야 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누구나 한번 쯤은 읽어야 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내용보기
명심보감 동몽훈에 따르면 무릇 관리된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오직 세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청렴과 근신, 그리고 근면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중국 법가의 철학가이자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던 한비자는 말하기를, 벼슬아치들이 논쟁만을 즐기며 권력쟁취를 위해 탐욕을 벌이게 될 때, 나라가 망하게 되는 지름길임을 무릇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시대를 잠시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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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동몽훈에 따르면 무릇 관리된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오직 세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청렴과 근신, 그리고 근면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중국 법가의 철학가이자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던 한비자는 말하기를, 벼슬아치들이 논쟁만을 즐기며 권력쟁취를 위해 탐욕을 벌이게 될 때, 나라가 망하게 되는 지름길임을 무릇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시대를 잠시 거슬러 올라가 고려가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된 이유를 살펴보면, 몽고의 침입이 결정적이긴 했어도, 결국 국력이 약해진 그 바탕에는 귀족들의 부패가 크게 한 몫을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우리의 이런 역사의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과거 인류 역사이래로 어느 시대가 되었든, 관료 사회의 부패가 심했던 나라들 대부분이, 결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그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부정부패는 나라와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극복해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여겨진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의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이 정조가 승하하자 천주교도라는 죄명으로 유배되기에 이르렀는데, 그런 이유로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되던 해인 1818년(순조 18년)에 완성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자(子)·집(集) 등에서 치민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수록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목민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고을을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 국가 권력과 관리의 횡포에 도저히 배겨내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쓴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정약용 선생님은, 아마도 당시의 사회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양난 이후로 더욱 고착화 되어간, 지배계층의 무능력과 신분체재의 불만과 모순이 이대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무엇보다 우선하여 기득권층에서부터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다.

목민심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목민관이 부임을 하기 시작해서 해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취해야 할 내용을 모두 12강으로 크게 나누었으며, 이것을 다시 각각 6조로 세분하여 전체로 보면 12강 72조로 된, 당시 목민관으로서 지켜야 하는 모든 생활을 총망라했음을 볼 수 있다. 제1편인 부임6조에서 제4편 애민6조까지는 목민관의 기본적인 자세와 연관하여, 고을의 수령은 언제나 청렴·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물을 탐내지 말고, 뇌물을 멀리 할 것 등의 생활신조와 백성위주의 봉사정신 내용을 담고 있다. 제5편 이전6조에서는 아전들의 단속을 철저히 하며 오늘날 별정직과 같은 인재등용에 있어 신중할 것과, 제6편 호전6조에서 농업 진흥과 민생안정을 위해 호적정비와 전정·세법 등 부세제도를 정확하게 시행함으로서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없도록 할 것을, 그리고 제7편 예전6조는 제사와 손님접대의 예와, 또한 교육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쓸 것을, 제8편 병전6조는 당시 가장 민폐가 심했던 군정 개혁안과 국방·군비·전략 등의 제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제9편 형전6조는 봉건적 형벌제도의 남용을 견제함과 동시에 가급적 형벌보다는 교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끝으로 제10편 공전6조는 각 산업 분야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선진기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산업개발 문제와 그 대책을 다루고 있고, 제11편 진황6조는 빈민구제의 방법을 제12편 해관6조는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것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목민관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행실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 외에도, 책의 해설과정을 통해서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부정과부패가 만연한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는 그리 희망적일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이는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되고, 분열과 다툼을 야기 시켜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를 자멸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이를 결코 쉽게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국제적·국가적 부패 극복을 목표로 하며, 각국의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를 조장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부패지수를 조사하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 조사 대상국 178개국 중에서 39위로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사회가 아직까지도 투명하지 못하고, 국민의 의식 수준이 경제 수준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 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바뀌고 제도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 원칙적인 내용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훈 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은 물론이고 일반사람 누구라도,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솔선수범하는 실천적인 자세를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p*******3 201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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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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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목민심서』 백성을 다스리는 이가 마음에 담아두는 글, 이게 목민심서의 사자어금니要諦가 되는 줄거리이다. 백성을 보기를 아래로 보아서는 안 되고 어진 마음과 자애로움으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民可近 不可下 『서경』「감서甘誓」에 나오는 대목이다. 모름지기 수령이 될 이는 어질고 청렴결백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다산의 생각이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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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목민심서』

백성을 다스리는 이가 마음에 담아두는 글, 이게 목민심서의 사자어금니要諦가 되는 줄거리이다. 백성을 보기를 아래로 보아서는 안 되고 어진 마음과 자애로움으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民可近 不可下 『서경』「감서甘誓」에 나오는 대목이다.

모름지기 수령이 될 이는 어질고 청렴결백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다산의 생각이다. 세상을 경영함에 있어서 봄에는 따뜻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무하며 가을에는 모름지기 잘잘못을 가려 벌을 주는 게 수령된 이의 책무인 것이다. 經世春秋, 『장자』의 「제물론」에 보이는 대목이다. 벼슬자리는 곧 모두가 지닐 수 있는 公器공기이다. 이는 벼슬자리를 삿된 욕심으로 사사로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수령의 자리를 얻으려는 것을 乞郡걸군이라 했을까! 벼슬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이들이 민심을 얻는 게 아니라 구걸하는 것이라고 하니 구걸한 것은 아껴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백성의 때 묻고 땀이 서린 앵이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령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克己復禮
극기복례를 해야 할 것이다. 『논어집주』에서 己자를 풀이하기를 ‘삿된 게염욕심’이라고 하였다. 私慾也라고 하였으니 다산 선생께서도 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함을 말씀하신다. 나를 이기는 것, 곧 삿된 욕심이 곧 고을을 다스림에 앞서 지녀야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克己를 하지 못하면 결국 한 고을을 해치고 나라를 좀먹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령의 자리에 오르려면 먼저 몸닦달수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修身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령이 된 후에 이미 한 고을의 곳간을 넘보는 것은 백성을 수령의 아래 사람으로 보는 것이니,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製錦
제금이라는 말이 있다. 어진 이가 수령의 자리에 오른다, 라는 말이다. 수령은 어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결단력과 추진력 그리고 행정사무에도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질게 보이고 행정실무에 밝지 못하면 아전들이 수령을 업신여기고 수령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까불리기도 한다고 다산을 말한다.


『목민심서』에는 재해에 대한 대비, 공업의 육성, 기근에 대한 대비, 도로의 정비, 산림의 육성, 군사훈련, 병역의 의무, 과거제도의 정비, 백성에 대한 교육, 농사의 적극적 권장, 토지개혁 등에 관한 것들이 있다. 위와 같은 일들을 잘 시행하여 처리하면 곧 능력있고 어진 수령이 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자신을 이겨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이를 어질고 능력있는 수령이라 한다. “벼슬이라는 것은 천하의 모든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공기이다. 그러나 덕망을 지니는 것이 첫째이다.”라고 하였다. 官爵者 天下之公器 德望為先(관작자 천하지공기 덕망위선 . 『구당서
舊唐書』 卷九十九 「장구령열전張九齡列傳」에 보이는 대목이다. 공기를 잘못 알고 제멋대로 쓰면 백성들의 거꾸로 난 비늘에 찔릴 수 있다. 물이 흐리면 물고기가 숨이 차서 입을 벌름거리고, 구실세금이 무거우면 민초는 난을 일으킨다, 라고 합니다. 水濁則魚喁 令苛則民亂(수탁즉어우 영가즉민란). 『한시외전韓詩外傳』 권1에 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은 다산 선생의 뼈저린 체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또한 이 도서를 풀이한 노태준 선생의 각 구절마다 알맞은 풀이도 딱히 잘 들어맞는다. 일독을 하게 되어 고맙다. 머리맡에 두고 늘 읽어야 할 우리의 고전이자 경세치용의 글이다. 대단히 고맙게 읽었다.

단기 4344년 9월 14일

不二堂 강상규 적바림하다.

c********1 201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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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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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보게   된 정약용. 시골 백성의 발가벗은 현실, 굶주림에 버려진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수령과 아전의 횡포에 당하며 사는 백성들의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조세나 환곡제도 또한 이미 무너졌으며 나라는 이런 백성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을 본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라가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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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보게   된 정약용. 시골 백성의 발가벗은 현실, 굶주림에 버려진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수령과 아전의 횡포에 당하며 사는 백성들의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조세나 환곡제도 또한 이미 무너졌으며 나라는 이런 백성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을 본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라가 백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유배의 아픔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지식인의 길을 걸어간 사람. 그는 ‘구우’라는 한시를 통해서는 세금독촉에 시달리는 혹독한 농민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아픔을 보면서도 아무런 개혁의 힘을 쓸 수 없는 자신의 현실 처지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 정치 제도의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피나는 결과물이 『목민심서』가 아닌가 싶다.


  19세기 세도정치 속에서 백성들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는 고을 아전들을 단속하고 지방관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 지방에 배치된 아전을 통제하는 법, 노인과 아이들의 복지문제, 농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정약용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조와 함께 규장각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그 때, 이때 세계문화유산인 수원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를 고안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면 신유사옥 후 정약용의 강진 유배 생활은 정약용을 더 다듬고 깊이 있는 삶을 살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민관의 부임부터 몸가짐, 인재관리법, 세금제도 운영법, 형벌, 가난 구제법, 물러날 때까지 옛 지방 관리들의 잘못된 모습들을 예로 들며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 도리를 설명한 책이 바로 『목민심서』이다. 백성을 향한 한없는 정약용의 사랑이 담겨있다.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고 해석하였고, 특히 풀이는 자세하고 알기 쉽게, 누구나 읽기 쉽게 되어 있어 길잡이가 되었다. 요즈음 각종 비리가 난무하는 공무원들이 꼭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가 아닌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a****q 2011.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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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목민심서] : 오늘날에도 이 책이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후지다는 것??
"정약용 [목민심서] : 오늘날에도 이 책이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후지다는 것??" 내용보기
<목민심서>는 다산 선생이 18년간 유배 생활 말기에, 목민관으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새삼 말하지 않아도 고명한 책이라 서평을 쓰는 게 왠지 면구스럽기까지 하다. 목민관이란 '백성을 다스리치 벼슬아치'로, 한 고장의 행정 최일선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장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행정과 사법, 군의 업무 등이 명징하게 분리
"정약용 [목민심서] : 오늘날에도 이 책이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후지다는 것??" 내용보기

<목민심서>는 다산 선생이 18년간 유배 생활 말기에, 목민관으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새삼 말하지 않아도 고명한 책이라 서평을 쓰는 게 왠지 면구스럽기까지 하다. 목민관이란 '백성을 다스리치 벼슬아치'로, 한 고장의 행정 최일선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장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행정과 사법, 군의 업무 등이 명징하게 분리되어 있는 현대와 달리 그 모든 것이 목민관 한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다. 권력의 독식에 따른 폐단도 컸으리라 짐작된다. <목민심서>는 부임에서부터 해관에 이르기까지 총 12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항은 다시 6조로 나뉘어져 있다.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이렇다.

 

- 부임 : 임명을 받고 취임하는 날까지의 취할 자세

- 율기 : 자기 자신을 다스려 정사를 엄정하고 청렴한 자세로 임할 것

- 봉공 : 벼슬에 종사하면서 임금과 조정의 뜻을 널리 알릴 것

- 애민 : 백성을 사랑할 것

- 이전 : 육전의 하나. 말하자면 현대의 관리총무직이랄까.

- 호전 : 육전의 하나. 조세와 호구와 관한 업무

- 예전 : 육전의 하나. 학교, 과거, 제사 등의 업무   

- 병전 : 육전의 하나. 군에 관한 업무 

- 형전 : 육전의 하나. 법률과 형벌에 관한 업무

- 공전 : 육전의 하나. 공전(工典)에 관계된 업무

- 진황 :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원하는 일

- 해관 : 벼슬에서 물러날 때 취할 자세 

 

이 열두가지 항목에 따른 여섯가지 세부사항이 덧달려 있는데, 절정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보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수령과 사회지도층이 여럿 등장한다. 그런 인물들이 많을수록 반체제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전복을 시도하며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시대가 안녕하려면 행정 최일선에 있는 인사들의 선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산의 부친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그 자신 또한 행정 일선에서 일하면서 공직인사들의 비리와 행정 폐해 등 부조리함을 목도하였을 테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이 유효하다는 것은, 아직도 공직 인사들의 부조리가 만연해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최근 새로 임명된 공직 인사들의 청문회가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은,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흠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럴만한 경제적 상황은 아닌 듯 싶은데 얼마 되지 않은 세금이 체납되어 있고, 부동산 투기가 아닌 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고, 본인이든 자녀든 병역 사항이 불투명하고... 뭐 이 정도는 청문회에 나오는 인사가 갖추어야할 기본 조건(?)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국민들도 왠만한 '흠'에는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정말 강철 심장을 가진 국민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누가 쥐어준 것인지도 모를 면죄부를 쥐고는 공직에 오른다. 다산은 '군자의 학문이란 반은 수신하는 것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들이 목민은 차치하고라도 수신이나 했을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h*****a 2011.09.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