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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니 정식으로 공부했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죠. 특히 그림이나 음악은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자면 먼 옛날 사람이 언어체계도 정교하지 않아 많은 단어가 만들어 지지 않아 몇개의 표시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문자도 없어서 그림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는 쓰지 않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어휘체계는 정교해지고 문자는 정확하고 확실한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계속 연주되고 있고 그림은 계속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림과 음악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 빅뱅은 시작되었고 그 빅뱅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에너지는 우주를 계속 유지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고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변화의 한 부분이지만 사람은 시간이란 개념으로 끊어서 밖에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와 초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있고 무지개 사이사이에는 엄청난 색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몇가지 색 밖에 보지 못합니다. 우주는 4차원이지만 인간의 3차원의 생물이어서 우주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악과 그림에는 4차원의 모습 진짜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과 음사이에는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이 있고 그림에는 수많은 색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끊어져있는 세계가 아니라 이어지 세계를 보게 해주는 것 감정의 변화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어디서 오는 지도 모르죠. 이것또한 인간의 우주와 이어져 있는 존재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음과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고 이어져 있는 것을 끊어서 표현하는 언어로 다시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하면 그 연주자 혹은 가수의 생과 약력을 쓰고 나면 쓸게 없어지는 거죠.
이 책은 그리 두껍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림과 글이 반반씩 섞여 있습니다. 마치 양념반 후라이드 반처럼 말이죠. 한 뮤지션당 글 두세페이지 그림 한두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루키는 이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연주자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 자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한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 이책을 재즈 입문서라던지 재즈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원해서 보시려고 한다면 다른 책을 찾아보시는 게 좋지 않냐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 하시거나 공감하고 싶은 분에게는 추천해 드립니다. 26명의 뮤지션의 그림과 그림 하루키가 좋다고 생각한 앨범이 소개되어 있지만 이것을 다듣고 느끼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됩니다. 저역시도 여기에 나온 앨범들과 뮤지션의 음악을 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들어보고 읽어보고 생각이 다르다고 기분나빠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나 말하지만 취향에는 순위가 없는 법이니까요. '뭐 그런가? '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프로 평론가도 아니고 음악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님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한 시처럼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시어에는 같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표시해야 통과하는 시험을 치뤄야 하는 것도 아님니다. 서로 각자 느끼고 다른 것을 느꼈다면 ' 네 생각도 맞는데 난 이렇게도 느꼈어' 정도로 말해주면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위의 말은 민주주의사회란 곳에서 토론을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남을 포용해주는 것 처음과 끝을 알 수 없고 딱딱 나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부담없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 많은 음악을 듣고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조금 부럽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제가 하루키의 나이가 되었을때 비슷한 글을 쓸 수 있고 저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반발감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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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명의 재즈 뮤지션과 이들을 특징적으로 잡아낸 그림들. '재즈(jazz)'라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음악 장르에 접근하기 쉽도록 구성된 하루키의 재즈의 초상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난 책장에 꽂혀있던 오래된 재즈 입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솔직히 제목은 하루키의 책보다 더 쉬우면 쉬웠지 어려운 책은 아니었으나 난 그 책을 채 읽지도 못하고 책엔 온통 잠결에 버스에서 흘린 커피 자국만 남긴 채 그냥 내던져 두고 말았었다. 하루키와 비교하면 꽤나 재즈에 있어선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쓴 책이었지만 제목만 보고 다가갔다가 큰 코가 다친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에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를 보면서 아주 조금 내던져둔 그 책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만큼 하루키의 책이 가독성이 있음은 물론이고 재즈에 대해 보다 편안하게 접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루키 필력 못지 않게 이 책에 빠져들 수 있도록 도와준 이는 바로 재즈 뮤지션들을 특징적으로 그려낸 와다 마코토이다. 그가 그려낸 26명의 재즈 뮤지션들은 '아, 맞아. 바로 그 모습이야.'라고 맞장구를 칠 수 있을 정도로 한 컷의 그림에서 음악의 뒤안길로 자리를 옮긴 뮤지션들을 하나 하나 살려내고 있다. 그들은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나와 내 노래를 한 번 들어보라고, 내 연주에 맞춰 자네도 즉흥적으로 이 곡을 한 번 즐겨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색을 그리 많이 쓴 그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은 오히려 쭈뼛거리며 다가서지 못하는 우리들을 재즈라는 장르속으로 쉽게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고 있는 것이다.
대중가요를 맘놓고 흥얼거리다 어느 순간 클래식이란 장르에 빠졌고, 그 와중에 샛길로 빠지듯 재즈로 접어들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른 하늘의 빗줄기처럼 재즈란 장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주말마다, 또 하나는 자정을 기해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는 솔직히 뭐가 뭔지도 모르고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이는 아니지만 니나 시먼(Nina Simon)이란 재즈 보컬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생판 모르던 그녀의 프로필이며 노래를 찾아 듣던 기억, 빅밴드가 무엇이며, 재즈 레이블 중 블루노트란 레이블이 있고 등등 생소하면서도 낯선 용어 및 뮤지션들을 하나 하나 머리속에 넣어가던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록했다.
무엇보다 당시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은 귀가 조금씩 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령 세션이 구성되어 연주를 하게 될 경우 메인으로 나서는 악기보다 뒤에서 음을 하나 하나 떠받쳐주는 베이스의 음색에 더 끌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내가 재즈를 들으면서 얻은 매력 중 하나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
하루키의 1Q84를 읽으면서 하루키의 음악적 저변이 어느 정도일까 늘 생각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음악은 팝은 물론이고 클래식 아울러 재즈까지 어느 한 장르를 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친구를 통해서 그가 재즈 마니아란 이야기를 듣고, 그보다는 오래된 책이지만 이 재즈의 초상을 통해 그의 재즈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다. 6천여장의 재즈 음반(아마 지금은 그보다는 훨씬 많은 음반을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때는 '피터 캣'이라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그의 관록은 와다 마코토의 그림들을 만나 정말 공감대를 형성하는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 책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은 어서 함께 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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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빈약하다면서 Jazz it up이 낫다는 글이 있어 한마디 적고 갑니다. 저는 이 책의 다른 번역이자 먼저 나온 (지금은 절판된) 재즈에세이와 재즈잇업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에세이 입니다. 재즈의 역사와 개념을 안내하는 목적인 재즈잇업과 목적도 다르고 내용 자체가 다른겁니다.
이 책은 오히려 하루키의 재즈관과 하루키의 글을 즐기는 기분으로 봐야지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은 내용을 보고 싶으면 김현준의 재즈파일 같은 책을 보시면 되고요.
책의 목적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리뷰를 써도 써야 하는데 영 생뚱맞은 위의 리뷰가 글을 적게 만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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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내 리뷰를 볼 수 없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작가의 의도와는 아주 거리가 먼 독서를 하였으므로.
재즈라는 소재보다는 재즈에 대해 작가가 뭐라고 말하고 있나 그게 궁금해서 읽었다. 그리고 내내 질투를 하였다. 도대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얼마나 집중할 수 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하면서.
나는 재즈를 모른다. 재즈라는 음악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어쩌다 들리는 경우에도 내가 끌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또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재즈에 새삼스럽게 주의를 돌릴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재즈에 관해 써 놓은 이 책의 글들에는 빠지게 된다. 그것도 묘한 방식으로. 순전히 표현 방식에 이끌려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에게도 음악이라는 위로의 시공간이 있기는 하다. 하루키가 표현하고 있는 대목들에 일일이 대응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먹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묘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어찌 이리도 서운한지, 내 능력 없음이 이다지도 서글픈지.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정녕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비하면 하찮은 정도가 아닐까 싶은 비교 심리에 이르기까지. 그 또한 아무도 나무랄 사람 없는 혼자만의 영역임에도.
그래, 내가 궁극적으로 질투했던 대상은 작가가 가진 고유한 열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만큼 깊이, 이만큼 단단하게, 이만큼 강렬하게 빠져들 수 있는 대상을 가졌다는 점. 나는 참으로 심심한 일상을 지켜왔구나.
그래도 하나는 남는다.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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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빌리 홀리데이의, 어떤 의미로는 무너진 가창력 속에서 내가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용서'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에 들어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살아오면서, 혹은 내가 글을 써오면서, 이제까지 상처를 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그녀가 그대로 조용히 받아들이곤 그것들을 모조리 감싸 안고 용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제 됐으니까 잊어버려요, 하고. 그것은 '치유'가 아니다. 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단지 용서될 수 있을 뿐이다. - 빌리 홀리데이 중에서
* 익히 알려져 있듯 하루키의 재즈와 음악에 대한에 깊이와 이해는 유명하다. 특히 재즈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한데 이 에세이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듬뿍 담겨있다. 그러나 나는 음악에는 참으로 문외한이다. 내가 자랄 때 적어도 내게 음악은 아주 대단한 사치였다. 내가 조금 커서 음악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집안 형편상 오디오도 없었고, 늘 식구들과 언니들과 함께 방을 쓰는 처지라 라디오 마저도 채널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방 구석에 놓인 조그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별이 빛나는 밤에 밤'에나 '밤과 음악 사이' 같은 것들을 언니들 어깨 너머로 들으며 언니들과 남자친구가 열심히 녹음해서 선물해준 영화 음악이나 팝송들을 들으며 나는 자랐다. 그래서인지 자랄 때는 집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듣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치 피아노나 기타가 있는 커다란 오디오룸에서 클래식을 듣는 한 장면이 떠올라 음악은 멀고 어색하게만 느껴졌었다. 음질이나 음악의 종류 따위는 그다지 가리지 않는 저렴한 나의 귀로는 음악의 훌륭함을 가려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이 주는 위로와 위안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 한편이 우리를 아니 나를 얼마나 순식간에 그 노래를 듣던 과거로 옮겨놓는지, 그리고 좋아했던 노래 몇편이 힘겨웠던 한 시간을 살게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저렴한 음악들 안에서도 하루키가 말하듯 그런 위안과 위로를 느낀다. 그러니 음악은 상처받은 현재를 넘어서 아직 상처를 알기 이전의 시간들, 혹은 상처가 아물고 난 이후의 그 무엇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재즈에세이는 그래도 많이 어렵지 않고 그래도 알만한 이름들과 노래들도 좀 있어 읽을 만하다. 그리고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 노래들을 찾아 들어보게 되는 일도 재미있다. 이야기들 중에서 여러 장면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상처와 아픔의 시대에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다웠던 빌리 홀리데이. 그리고 스스로의 상처마저도 모두 감싸 안는 그 목소리였음에 공감하면서. 'When you are smiling, the world smiles with you.' - 다락방서 허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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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난 이 책에 대해서 그렇게 높은 점수를 못 주겠다 내용이 너무나 빈약하다고할까?
재즈를 깊이 알고 싶어서 구입했는데 서점에서 서서 한번 쭉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모두 파악될 정도로 책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음반들 모두 들어봤는데 그다지 별 소득이 없었다,
차라리 jzz it up 을 구입하세요
추천좀 꼭 눌러주세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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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jazz). 지금은 음악의 한 장르가 되었지만 여전히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평소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의 초상'은 재즈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를 광활한 재즈의 세계로 초대하였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상실의 시대 등 유명 소설을 써왔던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저자에서 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에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음악과 초상, 아니 음악의 초상이라니? 이 물음은 책 표지를 넘겨 목차를 보자마자 바로 해소가 되었다. 책의 목차에는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그림과 그들의 이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와다 마코토가 그린 재즈 뮤지션들의 모습을 보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들 음악의 느낌을 써 내려간 책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주 유명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부분 낯 선 이름들이 실려 있었다. 이러한 낯섬과 함께 동시에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와다 마코토의 개성있고 조금은 익살스런 그림들 때문인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다 마코토가 그린 재즈 뮤지션들의 초상들을 따라가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그들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은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가 표현한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초상의 주인공이 연주하고 노래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하루키는 이들 음악을 들으며 글로 표현한 것들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나는 이 책에 소개된 뮤지션들의 이름을 유투브 검색창에 입력하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개한 순서대로 뮤지션들의 음악들이 검색 목록에 나왔다. 이들 뮤지션들의 오랜 역사들 만큼이나 그네들의 흔적은 참으로 다양하고 넓었다. 와다 마코토의 그림을 보고, 무라카기 하루키의 글을 읽으며, 유투브에 올려진 다양한 영상과 음악을 들었다. 말 그대로 재즈를 보고, 읽고, 들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책을 접한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책을 읽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책의 소재 자체가 음악에 관한 것이었고, 이 책이 쓰여진 동기도 재즈 뮤지션들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이와 같이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고 들어보는 노력을 하면서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유투브에 검색된 음악들을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들었던 장면을 상상해 보고, 유투브에 올려진 뮤지션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서 와다 마코토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보게 되고, 한 번 봤던 영상과 음악을 다시 돌려보고 듣게 되는 재미. 이 얇고 작은 책을 통해 오래간만에 책을 통해 다양한 즐거움을 얻게 되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이 재즈의 초상은 이처럼 아주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재즈라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게 때론 정말 흥겹고, 때론 인생의 무게와 슬픔이 짙게 묻어나고, 때론 너무나 서정적이어서 눈물이 핑 돌게 되는 그런 넓고 깊은 음악의 세계를 선물해주었다. 재즈라는 음악을 좋아하는 화가와 작가가 만나서 기묘한 매력이 넘치는 책이 되었다. 이 두 화가와 작가는 서로의 재즈 사랑을 공감하며 즐거워했으리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해 주는 또 다른 예술이 있다니 재미있다. 나는 살아가면서 각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 누군가와 함께 깊이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재즈의 초상을 읽으며 와다 마코토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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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재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와다 마코토라고,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그림으로 보아선 제법 마음에 드는 그런 센세이시군요. 저는 하루키 센세가 아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는 오로지 안자이 미즈마루 센세뿐인줄 알았더만 한 명 정도는 더 알고 계셨던가 보네요. 뭐, 나름대로 다행이십니다.
이 책은 일단, 와다 센세가 먼저 그림을 그린 겁니다. 휙휙, 재즈 아티스트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재즈하면 나도 한 재즈 하지, 라고 생각하시는 하루키 센세가 이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고는 그만, 어머, 그렇게 되신 겁니다. 그래서 뭐랄까, 그 삘을 그대로 이어서 각 초상화에 해당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대한 견해를 자유롭게 쓰신 게지요. 으흠, 확실히 음악에 관한 글이어서 그런지 하루키 센세가 에세이에서 보여주었던 장난기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재즈를 들으면 밤에 쓴 글처럼 감상적인 부분이 훨씬 많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괜찮았습니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아티스트의 음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아주 기가 막힌 묘사도 등장하여 적이 만족스러웠다니까요.
소개되는 재즈 아티스트는 모두 26명. 그러므로 그림도 26점, 글도 26편입니다. 베스킨 라빈스가 아니기 때문에 31까지 채울 필요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퉷. 그냥 의미없이 쓸데없는 얘기가 자꾸만 실실 튀어나와 그냥 침 한 번 뱉어봤습니다. 예전에는 뭐랄까, 좀 사실적인 그림이 좋았는데 최근에는 묘하게 좀 그리다 만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진 그림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와다 센세의 그림이 저는 쫌 마음에 들었어요.
이 책은 재즈 매니아이자, 하루키 센세의 팬이라면 당근 별 다섯을 주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읽으면서 맞아, 맞아, 그 음악을 어쩜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라니까, 하면서 호들갑도 좀 떨어주고 말이지요. 그러나 하루키 센세의 팬이기는 하지만 재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키 센세의 팬도 아니고 재즈도 모르면서 이 책을 사신 분들께는 대체 왜 그런 거야? 하고 물어봐 드리기는 할게요. 저의 경우는 하루키 센세의 팬이면서 재즈는 수박 겉핥기 정도로 알고 있는 수준이어서 재미있었다가, 아니었다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별 셋. 그러나 저는 이 책을 틈틈히 읽으면서 말이죠, 요즘 블로그의 세계란 놀라우니까 자근자근 한 곡 씩 찾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라? 이건 좀 마음에 든다, 라는 곡 몇 개를 찾아서 즐겨찾기를 해놓기도 했죠. 이럴 때는 인터넷이 참 편해.
저로 말씀드리자면 소싯적부터 록 매니아였다가 메탈로 배를 갈아타서 목에 디스크 올 즈음에 이르러 클래식으로 옮겨 탄 것이니 좋아하는 음악의 방향이 하루키 센세와 사뭇 다르기는 합니다만 일단, 음악이란 게 쫌, 저의 경우는 다 좋아하는 편이라서 딱히, 그거, 하고 집어내기란 게 좀 그러네요. 각 음악의 장르가 그것대로의 매력을 가진 터라 뭐가 뭐보다 낫다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어떤 것은 그게 최고지만 어떤 것은 저게 최고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이게 최고고. 그것도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고 기분에 따라 다르며, 함께 듣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므로 과연 음악이란, 님 쫌 짱인듯.
하여간 뭐랄까,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구 설명해주고 싶은 그런 심정, 저도 잘 이해합니다. 암요. 명작이란 자고로 모두가 함께 공유할 때 그 쾌감이 두 배로 증폭되는 법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즐기는 음악을 따를 자는 기껏해야 슈퍼 비토맨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마는 거니까 신경질 내지 마시고 과일 빙수나 한사발 들이키세요. 그럼 안녕.
http://blog.naver.com/vito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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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시간이 남아 뭐 읽고 올 책이 없나 하여 고른 가벼운 재즈에세이이다. 읽고 돌아와서 이 책에서도 잠깐식 언급되고 있는 <kind of blue>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재즈 연주가(보컬) 26명에 대한 하루키가 뽑은(자기가 주관적으로 좋아하는) 대표 음반 1장과 그 음악가와 자기 추억에 대한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졌다.
재즈 연주가에 대한 선곡은 와타 마코토가 했으며, 그가 92년에 재즈 연주가에 대한 초상 20명이 기본일 것이다. 이후 97년에 (책의 그림을 보면 92년 작품인지, 97년작품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작품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몇명을 추가하고 해서 26명 선정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재즈 연주가에 대한 선정은 주관적이다. 선정의 이유도 나와있지 않고, 보는 사람에 따라 객관적이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반 이상의 재미는 재즈 연주가의 초상화를 보는 것이다. 와다 마코토가 보는 재즈 연주가의 특성을 보는 것이 이 책의 주안 점일 것이다. 그래서 그림 보는 재미가 있다. 재즈 연주가의 특징을 잘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재즈 연주가들을 보면 장수하신 분도 있지만, 마약이나 술에 빠져서 단명하신 분들이 많다. 가령 첫번째 인물인 <쳇 베이커> 같은 분은 청춘을 넘어 사셨다. 하지만 하루키에 의하면 그것이 불행이라고 한다. 인생에 있어 30을 넘는 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산다는 것 같다. 불꽃처럼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는 30이전의 청춘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30전에 죽을 이유는 없겠지만 한번 열정을 뿜어 낼 수 있는 청춘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가 청춘을 지나면서 음악에 대한 선호가 많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가 나이가 좀 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선정한 음반도 인생의 후반부에 나온 곡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가진다. 청춘 이후에는 또 이후의 완숙함의 맛이 있으니까.
짧은 책이다. 26*3페이지 정도의 내용이지만 나름 읽는 맛이 있다. 다음권인 또 하나의 재즈 이야기도 읽어봐야 겠다. 그리고 이건 그림책으로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