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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적 모험과 내면의 모험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외면적 모험과 내면의 모험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내용보기
동화에서 사람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의인화된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뉴스에서 보면 악당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 있다. 나 자신을 보면 나는 착한 사람이고 가능하면 나쁜 면은 없었으면 좋겠다. 위의 사항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여러가지 일들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은 한마디로
"외면적 모험과 내면의 모험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내용보기
동화에서 사람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의인화된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뉴스에서 보면 악당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 있다. 나 자신을 보면 나는 착한 사람이고 가능하면 나쁜 면은 없었으면 좋겠다. 위의 사항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여러가지 일들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은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거울의 양면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나쁜 사람이나 나쁜 상황에도 뒷면이 항상 존재한다는 그런것 말이다. 마치 새옹지마처럼 이 세상사에 극단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일이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론이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수 있지 않을까 하고. ============================================================================= 그저 화려한 환타지, 혹은 기교적인 스토리텔링의 액션무비같은, 혹은 애니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었는데 위의 철학적 내용이 작가의 입을 통해서 이 소설에서 걸출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의 핵심은 이런 것일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고단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용기만이 나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나의 눈과 생각으로 만든 나의 세상이니까." 3권에서 농밀한 밀도로 주인공의 번민을 다면적으로 보여주었던 이 소설은 4권에서 그동안의 복선과 궁금증을 모두 해결하면서 번민의 끝을 훌륭하게 소개하고 있다. 독자를 위해 그 과정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책에서 손을 놓기가 힘들었다. 단지.. 현세로 돌아온 주인공의 행보는 납득이 갈만 하지만 지나치게 예측 가능한 결말이었다.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조금 힘이 딸리는 느낌. 그래도.. 외면적 모험과 내면의 모험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정말 잘 쓴 환타지 소설이라는 느낌. 만일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비교하며 읽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넌 미쓰루가 친구라고 말했어. 하지만 와타루. 친구 역시, 부모님 역시, 연인도 마찬가지로 올바르지 않은 것은 올바르지 않은 거야. 네 마음이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너에게는 그 마음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어." 문제는 하나의 진실을 어느 편에 서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것. 그리고 나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바꿔야 할 것은 내 운명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아버지를 미워 하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그런 기분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아무래도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짓이 ''미움''으로 가득한 분신을 만들어 냈고, 혼자 헤메게 했던 것이다. "잘못을 반복해도, 다시 제자리에 서서 다시 생각하고, 살아가며, 열심이 살아가며, 다시 자신들의 길을 개척해 가는것,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 비전에, 그런 기회를 부디 주십시오. 그것을 소원합니다."
s*****x 2007.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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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루의 모험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스포일러주의)
"미쓰루의 모험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스포일러주의) " 내용보기
인간은 아이고 어른이고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고 불행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다. 주변에 많이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어려울 것 없었던 아이라면 그것은 더욱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아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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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이고 어른이고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고 불행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다. 주변에 많이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어려울 것 없었던 아이라면 그것은 더욱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아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쓴 SF 소설이나 환타지 소설이라고 하기는 좀 뭐한 현실과 가상세계인 게임 비전을 오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미여사의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런 외도는 싫어하는 지라 망설였는데 한 아이의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

 

세상은 사악하다. 어른들은 더 사악하다. 한 아이가 고통 속에 아직까지 몸부림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아이만의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고통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일을 우리는 좋아한다. 부모를 잃고 여동생을 잃고 불행한 사건과 함께 남게 된 소년은 친척집을 전전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그 아이를 따라다니는 그 사건을 사람들은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나쁜 아이, 그 아이 자체만으로도 나쁜 아이가 버젓이 있는데 그런 아이는 나쁜 아이로 남을 괴롭히건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건 못 본 척 외면하고 아무도 막아줄 방패 없는 아이만을 공격한다. 이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언제나 사회를 직시하고 있기에 어느 곳에나 드러나는 병폐다. 우리에게도 이런 점은 있다. 그 문제를 우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쓰루의 그런 고통과는 달리 와타루의 고통은 와타루가 아이가 아니고 좀 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면 주변에 자신이 지금 겪는 고통을 이미 겪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쓰루가 한 말도 알아듣지 못한 전형적인 철부지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와타루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키우고 성장한다.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다. 그의 친구 중에 재혼한 부모와 이복동생과 사는 친구도 있다. 또 부모가 술집을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인 친구도 있다. 자신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그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와타루가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그것이다. 비전에서의 일을 겪으면서 말이다.

 

사실 그곳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야 할 아이는 미쓰루였다. 하지만 작품은 미쓰루의 바람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려준다. 원망하고 탓하지 말라고. 복수심을 버리고 미움도 버리라고. 너무 어려운 과제를 준다. 자기 안의 그런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보라니 어쩌면 그래서 와타루보다 미쓰루가 더 좋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미쓰루의 모험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왜 그 아이에게는 비전을 남기지 않은 건지. 아마도 그 아이에게 세상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라 생각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주인공은 미쓰루였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미련이 남는다. 에고, 비전에서 나는 역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구나...

 

누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누구도 온전히 행복하고 기쁘고 좋기만 할 수 없다. 또한 누구도 온전히 불행하고 슬프고 나쁠 수만도 없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만약 자신이 불행하고 슬프고 절박하게 나쁜 일만 생긴다면 그것을 행복으로 기쁨으로 좋은 일로 바꿀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다. 타인의 행복은 내 행복이 아니지만 타인의 불행은 내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행복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게 놔두고 불행한 자의 불행을 서로 나눠지고 무찌르는 용사가 되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 내가 불행하게 될 때 내 불행을 나눠지려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와타루의 현실이 새롭지 않게 떠났던 그대로에서부터 다시 펼쳐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와타루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비전은 그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동전처럼 뒤집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뒤집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d*****g 2007.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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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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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16페이지, 20줄, 25자.   미쓰루와의 대결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와타루는 가사라 마을로 돌아갑니다. 가사라 마을의 가쓰 대장은 북왕국에 침입하여 황제 아그리아스 7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슈텡겔 기사단을 보내 가쓰와 다른 하이랜더 대장들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가쓰는 와타루 등과 함께 파이어드래곤 죠조를 타고 달아납니다. 드래곤 섬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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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16페이지, 20줄, 25자.

 

미쓰루와의 대결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와타루는 가사라 마을로 돌아갑니다. 가사라 마을의 가쓰 대장은 북왕국에 침입하여 황제 아그리아스 7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슈텡겔 기사단을 보내 가쓰와 다른 하이랜더 대장들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가쓰는 와타루 등과 함께 파이어드래곤 죠조를 타고 달아납니다. 드래곤 섬에 도착한 이들은 용왕으로부터 어둠의 거울의 봉인이 깨어지려고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드래곤의 일곱 기둥과 함께 북왕국으로 향하는 와타루.

 

'와타루의 비전'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비록 미쓰루가 들어와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공명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든 최후 승자는 와타루가 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와타루가 성장하는 게 진정한 목적이니까요. 그렇기에 와타루에게 친숙한 얼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지요. 미쓰루에게는 고작 하나둘 정도. 용사의 검이 왜 퇴마의 검인지도 마지막에 나옵니다.

 

121202-121202/121202

k****8 2013.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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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루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와타루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내용보기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와타루가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요어문을 지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왔을때의 약간의 낯섬은 이런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와타루의 엄마가 꾸었던 꿈처럼 와타루의 여행을 분명 같이 목격했음에도 순식간에 현실로 튀어나온 이 느낌. 몽롱하다. 그리고 이 낯섬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그래서 퇴마의 검의 힘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처럼 잠시 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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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와타루가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요어문을 지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왔을때의 약간의 낯섬은 이런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와타루의 엄마가 꾸었던 꿈처럼 와타루의 여행을 분명 같이 목격했음에도 순식간에 현실로 튀어나온 이 느낌. 몽롱하다. 그리고 이 낯섬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그래서 퇴마의 검의 힘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처럼 잠시 와타루의 여행으로 다시 돌아가보려 한다. 미쓰루는 결국 북쪽 제국으로 넘어가 다섯번째 보석을 손에 넣었다. 그의 목적은 보석을 채워 운명의 탑으로 올라가 여신을 만난 후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는 다섯번째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그 전에도 그랬지만..)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다. 결계로 봉인된 어둠의 거울을 부수고 자신은 보석을 얻었다. 그러나 어둠의 거울에서 나온 마족들로 북쪽도 남쪽도 전쟁터를 만들어 버리고 봉인을 푸는 과정에서 황제가 살고 있는 황도 소레브리아를 폐허로 만들지만 미쓰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비전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의 최적의 결과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미쓰루가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 비전의 사람들은 미쓰루가 보석을 얻는 과정에서 비전의 사람들은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인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미쓰루의 증오는 깊은 것이다. 현세에서 받은 상처가 벌어져 결국 자신을 망쳐 버리고 만다. 사람기둥의 가능성, 운명의 변화의 여부를 제쳐두고 운명의 탑을 눈앞에 두고 증오로 가득찬 자신의 또다른 모습과 싸우다 미쓰루는 패하고 만다. 그것은 죽음이다. 와타루 또한 증오로 가득찬 자신을 만나지만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증오였던 반면 미쓰루는 너무나 컸다. 와타루의 마지막 보석도 미쓰루와 동일한 것이기에 와타루는 운명의 탑으로 그리고 여신 앞으로 간다. 자신을 이용하고자 했던 목소리의 정체를 안 후 와타루는 운명의 탑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물음을 자연히 알게 될거라는 충고의 의미를 자연히 깨달아간다. 자신의 운명은 곧 자신의 비전인 지금의 비전이라는 것. 그 비전이 무사하지 못한다면 현세를 바꾼 듯 무슨 소용일까. 현세를 바꾼 듯 비전의 파괴와 앞으로 끊임없이 받고 살아야 할 상처와 분노, 질투 같은 감정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와타루는 비전의 평화를 소원한다. 그리고 그는 무사히 여행을 마쳤으므로 현세로 돌아온다. 사람기둥이 선발되는 하르네라도 끝났고 비전의 사람기둥으로 간택된 사람은 만나지만 여행자중의 한명인 사람기둥이 미쓰루일거라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채 그는 비전을 나온다. 그리고 비전을 여행하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비전은 잊어야 한다. 현세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자신의 상처받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 억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듯 자연스레 혹은 조금은 차분하면서도 당연하게 진행되어지는 결말에 한바탕 꿈을 꾼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와타루의 여행 목적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였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 목적을 상실했다라기 보다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될 성숙미와 깨달음을 위한 여행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운명이기도 햇고 그 운명의 변화로 부모님의 운명도 바꾸고자 했던 것이였지만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였다. 비전을 여행하면서 순리를 뛰어넘기 보다는 순리에 따르는 법을 배운 와타루였다. 그 순리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거스렸을때에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 미쓰루를 통해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역시 비전의 평화를 자신의 평화와 연결 시키며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결으로 현세로 돌아오는 와타루의 결심은 당연함직에도 허무감 또한 없지 않았다. 원래도 되돌려 놓는 것. 무형의 것으로 자신을 채우는 커다란 깨달음이지만 조금은 그 돌아봄이 너무 뻔한, 그러나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에 아쉬움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쉬운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행 또한 인정하지 않음이다. 그것은 단계를 거치지 않은 뛰어 넘음으로 얻음보다 역효과가 많이 날 것이므로. 그러나 가끔은 억지로라도 그것을 뒤집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현실의 대리만족을 책을 통해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통쾌하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것.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싶은 도전 의식. 그것이 와타루와 여행하면서 너무 깊숙히 박혀 있었나보다. 그러나 현실은 말한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만 너의 진실됨을 끌어 내라고 말이다. 그래, 나는 와타루를 통해 그 진실의 파편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이제 내가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단지 자신이 좀 없을 뿐. 얼렁 뚱땅 해치우고 싶을 뿐. 대충은 없다. 또한 역시 쉬움도 없는 것이다. 자꾸 길 밖으로 걷고 있는 나를 이제 진실로 끌어 오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와타루를 통해서 말이다.
s****m 2007.0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