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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마음/김우창/생각의 나무 저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저작 활동은 가히 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릴 만하다. 그의 글은 어렵다. 읽다보면, 글을 어렵게 쓰는 별난 재주를 가진 분이라는 막말 같은 한탄이 절로 나온다. 사유를 풀어내는 그만의 방식이겠지만 만만찮은 벽을 실감하게 된다. 그가 즐겨 인용하는 푸코나 라캉,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하지만 그의 글을 찬찬히 더듬다 보면 사유의 깊이와 명쾌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양화’로 통칭되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산수화와 서양화의 차이를 논하고 우리 산수화를 풍수지리설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있다. 심포지움 등에서 강연한 내용을 편집하여 한 권으로 엮었다. 서양화와는 달리 동양화는 실내를 그리는 것이 드물다. 실내를 그리는 데 필요한 원근법이 동양화에서는 기피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양화에서 관심이 되는 것은 전경과 원경이며 그 중간의 풍경은 생략된다. 반대로 서양화는 원근법의 도입으로 모든 것은 중경에 통합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동양화를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요순시대를 이상국가로 삼았던 조선의 관념은 산수화에서 초월적 풍경으로 나타난다. 꿈과 지리적 현실을 조화시킴으로써 지상의 환경을 유토피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풍수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풍수사상의 핵심은, 명당을 찾는 일이다. 명당이란, 중첩되어 있는 동심원적인 산 또는 산맥들의 체계 안에 들어앉은 일정한 넓이의 평지라 할 수 있으며 아늑하게 보호된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말하는 명당의 대체적인 조건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보호된 생존의 상태로 숨어들어가려는 충동은 산수화에서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고 땅의 미적 체험을 재현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갈 수 없는 이상적인 공간을 그림으로 그려서 감상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던 현실적인 안타까움과 한계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흔히들 동양은 정신과 자연과의 조화, 서양은 물질과 자연의 정복이라고 진단하지만 저자는 동서양 나름대로의 조화와 갈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신앙이나 이성으로 대표되는 정신생활이 서양사에도 큰 맥을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여러 철학자과 다양한 이론을 동양화의 특징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사유를 가진 독자의 무지몽매를 한탄하는 말이다. 설명하는 동서양의 그림들을 함께 실어 놓아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오른편 상단에서 왼편 하단으로 전개되고 감상하는 우리 산수화의 통례에 반해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왼편 하단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감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