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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으면 연기, 흙 혹은 먹이가 된다. 그리고 폭력은 유전되어 자신을 파먹게 된다.
나쁘지않다. 이 책이 추리가 아닌 미스테리를 표방하고 있기에, 주인공인 시로가 이 사건을 파헤치는게 오로지 두뇌와 영감으로 해결한다는 걸 참고 넘어갈 수 있다. 화자이자 이 사건의 해설자인 나츠카와 시로는 어머니의 사고소식을 듣고 수술복 위에 아르마니 코트만을 걸친채 샌디에고에서 일본까지 날아온다. 비바. 작가의 패션센스에 찬사를 보낸다. 아르마니라니. 거기다 "독일인 고조부"덕분에 키도 크시다. (185cm) 이 것만으로도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 120% UP! 그렇다. 남자는 다른거 없다. 뽀대에 간지다. 그거면 되는거다. 그러나. 추리물을 기대하고 본 탓에 작품에 깊게 빠져들 수 없었다. (나중에야 파우스트상 수상작임을 알게되었다) 추리의 깊이없음에 실망했지만, 이건 내 착오로 인한 것이니 감수해야한다. 혹시 추리소설로 알고 이 책을 집으신다면 그만두는게 좋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아무튼 책 자체는 나쁘지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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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일본 소설에 빠져 있을 때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미스터리나 하드코어나 B급 소설이었던 것 같다. 탐정이 나오고 경찰이 나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이 잡히던 단순한 구조가 식상해지면서 더 강하고 잔인한 소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살인도 잔인할 정도로,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소설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일이었을 뿐, 이젠 흥미가 떨어져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메피스토상'이라는 문학상을 알게 되었는데, 일본의 고단샤 출판사의 소설 잡지인 메피스토에서 주는 문학상으로 신인을 등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문학상마다 특징이 있고 색깔이 있듯, 메피스토상에는 SF적이거나 잔인한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들이 많이 수상했다. 이 문학상을 받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도 많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들이 많다. 그 중에 이 책 <연기 흙 혹은 먹이>는 특이하면서 제목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와 잔인한 사건의 묘사 등이 볼거리다.
나츠카와 시로는 미국 샌디에이고의 호지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일본에 있는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의식 불명상태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급하게 일본으로 간 시로는 어머니의 사건에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명' 연쇄 주부구타사건'으로 불리며 중년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범행 후 집 마당에 생매장을 해 둔다는 것이다. 너무나 잔인하고 극악한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며 시로는 나츠카와 집안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시로에게는 위로 이치로, 지로, 사부로라는 형이 있었고 시로는 막내였다. 이치로는 정치가가 되었고 사부로는 소설을 쓰며 생활하고 있다. 둘째 지로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나츠카와 한스가 지은 정삼각형의 창고에서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시로는 자신의 집안에 내려진 저주와 같은 일들의 뿌리를 독일인이었던 증조할아버지 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한스는 증조할머니와 결혼하고 할아버지 다이마루를 낳았지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할아버지 다이마루는 그 삼각형 창고에서 자살을 했고, 지로는 창고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면 연쇄 주부구타사건의 범인은 5번의 사건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경찰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와 같은 문제를 시로가 풀게 되는데 피의자의 이름과 땅에 뭍은 상태를 통해 범인은 '마마, 구해줘'라는 메시지를 점자 형태로 만들어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바탕으로 시로는 범인을 찾으려고 한다. <연기 흙 혹은 먹이>라는 제목은 아마 무슨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유추를 책을 읽기 전에 했다. 그래서 이 각각의 단어들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범인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 꼼꼼하게 사건을 따라가게 되는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사건과 시로의 가족, 과거 등을 오가며 흡입력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재미가 있어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스토리를 따라 가게 된다. 그리고 큰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 제목 <연기 흙 혹은 먹이>는 큰 뜻이 없었다. 인간은 죽으면 화장되어 연기가 되거나 매장되어 흙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참하게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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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의 한 병원 ER의 솜씨 좋은 외과 구급의인 나츠카와 시로. 아버지가 싫고 집이 싫어 17살에 무작정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왔던 그이지만, 어머니가 머리를 다쳐서 의식불명 상태라는 말에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요즘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주부구타 생매장 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듣고,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는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 나츠카와 가문 특유의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해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메시지를 판독하고 범인을 쫓기 시작한다. 그 사건의 내막에서는 3대에 걸친 가족간의 학대와 폭력에 대한 진실이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제만 일으키다 창고에 갖힌 이후로 실종된 둘째 형 지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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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이라는 것이 대물림된다는 것이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게 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폭력을 겪으며 자란 아이는 두 종류의 인간이 된다. 그 폭력을 그대로 답습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그것을 그대로 되풀이하거나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서 자기 내부의 폭력성을 과도하게 억압하게 되는...
이런 두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똑같은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가정폭력이 어떤 형태로든 위험한 상처를 남기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를 학대하는 아버지거나 어머니, 그것을 말리지 못하고 방관하는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당하기만 하는 형제나 반항하는 형제, 이들 모두에게 가정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따듯하고 사랑이 가득한 세상 밖에서 나를 지켜줄 단 하나의 위대하고 튼튼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세상 어디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한 가정의 폭력이 불러온 비극적인 환경과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구타 사건을 보여주며 결국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인간은 죽어서 화장된 뒤 연기로 사라지거나, 매장된 뒤 흙으로 돌아가거나, 아주 운이 나쁘면 짐승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것으로 인간의 한 생은 끝나는 것일까. 그 뒤에 아무 것도 남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태어나고 왜 서로를 증오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휘둘러 상처를 주면서까지 사는 것일까. 왜 인간은 그런 고통을 겪은 뒤에도 다시 아이를 낳아 그것을 되풀이 하는 것일까. 미련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잊어버리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래도 인간에게 살아간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자식을 남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어서일 것이다. 장황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죽은 뒤 누군가의 추억 속에서 계속 회상되기도 한다고 하니까.
이 작가는 꼭 이렇다. 뭔가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고 잘 만든 것도 같고 별거 아닌 것도 같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도대체 이 작가 정체가 뭐야??? 그게 더 궁금하다. 연거푸 단테를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아, 단테는 작가들을 위한 작가란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