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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일,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을 비롯해서 이제는 스스로 답을 구하고 진화하는 딥러닝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하고 인간이 하던 많은 부분을 AI가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로봇과 인간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 창작은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이 역시도 가능해져 인간 스스로가 설 자리를 로봇에게 내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판단과 관련한 영역에서만큼은 윤리적인 고려사항들을 감안해 인간이 아직까지도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발전은 피할수 없기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우한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https://m.blog.naver.com/nolzanae/223160123481?referrerCode=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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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 삶 속으로 살갑게 들어왔다 많은 부작용과 역기능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로봇 시대, 아니 인간과 로봇의 공존 사회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쪽에 방점을 찍는다. 로봇은 분명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조력자 겸 동반자가 되어 우리 삶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릴 것이다. 유사 이래 인류는 무수한 난제를 해결하며 생존하고 번영을 누려왔다. 그 과정에서 터득한 전략 코드가 유전자에 세팅돼 있다. 특유의 적응력과 순발력을 발휘한다면 해결 못할 것도 없다. 미래는 그렇게 암울하지 않다. 우선 로봇과 인공지능이 빚어내고 있는 현재진행형 미래엔 그간 상상조차 못했던 편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경주 지진이 발생했을 때 재난상황 정보가 즉각 제공되지 않아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Quakebot이 발발과 동시에 재난문자를 보내온다면 심리적 안정과 더불어 합리적 대처도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불의의 재난 현장엔 카이스트가 개발한 휴보를 투입하여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면 된다. 가스밸브를 잠그고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인간의 위험부담을 덜어줄 것이다. 로봇은 이렇게 삶의 구석구석에서 인간의 유용한 조력자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인간적 요소가 소통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대를 의식하여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이 쓰여 망설이며 달막달막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봇과의 관계에선 이런 경계를 자연스레 허물 수 있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보여도 전혀 지장이 없다. 묵묵히 들어주고 적절히 반응하며 비밀을 지켜줄 거란 믿음이 있기에 오히려 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감성인식 로봇은 따뜻하게 공감하며 우리를 지켜주고 위로한다. 어느새 그가 우리 삶 속으로 살갑게 들어온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모조리 앗아가 버리면 우린 뭘 하고 살까? 하지만 걱정은 접어둬도 될 듯하다. 앞서 품었던 고민이 공연한 기우였던 것 같다. 산업구조의 격변기마다 인류는 유사한 고민에 빠졌다. 19세기 초 러다이트운동이 얼마나 격렬했던가. 하지만 바뀐 체제는 더 많은 일자리를 낳는 법이다. 로봇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로 인력을 배치하고 재교육을 활성화하는 정책도 뒤따를 것이다. 137쪽에 소개된 퓨리서치센터의 자료가 이를 시사한다. 전문가 48퍼센트가 비관적으로 본 반면 52퍼센트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로봇 시대엔 내 삶을 오롯이 내 것으로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BC 5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에서는 민주정이 싹트고 학문과 예술, 지식과 기술이 백화제방을 이루었다. 그런데 조그만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노예제라는 시스템도 한몫했다. 힘겨운 육체노동을 노예들에게 맡기고 시민들은 여가를 즐기며 창의적인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상상력은 자유롭고 여유로울 때 꽃핀다. 성가신 일은 로봇 에게 맡기고 마음껏 놀며, 생각하고, 발견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존재다. 독립적인 판단을 하며 스스로를 통제한다.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딜레마의 특징은 매뉴얼과 답이 없다는 점이다. 연산기능에 의존하는 로봇이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다.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며 망각을 밥 먹듯 하기에 오히려 길 없는 지경에서도 길을 찾아내곤 한다. 지적 호기심을 불태우며 딜레마의 미궁에서 기어이 빠져나오려고 모색에 모색을 거듭한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결국은 집단지성이다 로봇 시대에 있을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로봇의 인간 지배 사태이다. 특이점을 넘어 인간보다 우월해진 로봇이 3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상황 말이다. 로봇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해를 끼치려는 자도 나타날 것이다. 미래를 잿빛으로 그리려는 이들이 즐겨 읊는 레퍼토리다.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최상위 포식자가 되거나 독재자가 킬러로봇을 이용하여 제노사이드를 자행할 가능성도 검토해볼 대목이긴 하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유의 도전을 미연에 방지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온 경험이 있다. 전문가들이 의사결정 트리를 면밀히 검토하여 내놓을 해법이 기대된다. 그런데 요즘 기댈 언덕이 하나 더 생겼다. 인류의 집단지성이 바로 그것이다. 협업과 분업을 통한 만인의 총화로 도출된 결론은 이미 전문가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판이다. 여럿이 함께, 따로 또 같이 감시하고 견제하며 제3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지성은 인류가 원래 지니고 있던 특성이자 전략이었는데 그간 여러 모로 제약이 많았다. 이제는 웹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지성의 총량을 늘리고 질적으로 높이는 일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구비된 것이다. 전문가들과 집단지성이 결합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뿜을 수 있을 테다.
로봇 시대는 분명 거대한 도전이다.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범위와 강도로 우리를 덮치고 있다. 그 쓰나미에 자칫 휩쓸려갈 수도 있겠지만 자유롭고 발랄한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으로 솟아날 구멍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더구나 디지털을 통해 묻혀있던 힘의 원천도 발굴해냈다. 초유의 사태를 의연하게 극복하는 것은 물론 이를 향유할 수 있게끔 탈바꿈할 에너지 말이다. 의식화된 인간의 집단 지성이 그런 마스터키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