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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늘 누군가에게 속고 있다.(220p)
피시방을 전전하면서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진. 그날도 다름없이 일을 하고 돌아왔다. 피시방에서 웅크리고 하루밤을 지낼 요량으로 들어갔다. 몸이 떨렸다. 추웠다. 감기려나. 그런 그에게 자상한 손길이 다가온다. 감기약과 물이 함께 드밀어진다. 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던 진은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그의 말에 아무 생각없이 자신이 이때까지 모은 전재산을 내민다. 물론 당연히 그 돈은 고스란히 사기꾼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진. 이십대다. 아무리 뭘 모른다고는 하나 십대도 아니고 미리부터 알던 사람도 아니고 오가다 만난 사람을 무얼 믿고 그 많은 돈을 덥석 준 것일까. 같이 가서 집을 계약한 것도 아니고 서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그 사람을 확 믿어버릴 생각을 했을까. 이 세상에는 나를 속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동생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정신상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잔소리를 할 것 같긴 하나 그런 나조차도 이십대에 아는 선배한테서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적이 있기는 하다. 명목상으로는 빌려준 것이지만 변명이라고 얘기한 교통사고 조차도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이 확실하고 학교 다닐때 어느정도 친했던 관계는 그후로 끊어졌다. 남탓 할 때가 아니다. 나 또한.
하지만 그 이후로 어느 누구와도 돈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달라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도 아웃. 다행히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서로간에 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와는 달리 이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린 진은 어쩔수 없이, 정말 할수 없이, 죽을수는 없으니 다시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침을 뱉어버린 우물물은 마실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는 끈떨어진 연 신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머니를 뒤져봐도 나오는 것은 동전 뿐이요 갈곳은 없고 부모님댁은 새아빠의 자식이 결혼까지 해서 같이 살고있는 형편이다.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보여줄수도 없거니와 간다하더라도 자신이 있을 위치조차 없다. 이런 진이 선택하는 단 하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BL'은 배드 럭, 즉 운이 나쁜 녀석으로, 잘 걸려들었던 사람이야. 아니면 잘 걸려들 것 같은 사람이지.'HL'은 하드 럭, 더 운이 나쁜 녀석으로, 목을 매 더이상 쓸모가 없는 사람이란 뜻이야.(422p)
누군가에게 늘 속고 있는 진. 정말 운이 없는 BL인 진. 그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서 이 자리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잘 짜여진 이야기. 역시 야쿠마루 가쿠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이 책은 어쩌면 조금은 답답하긴 했다. 밑바닥 인생이 다 똑같을지 몰라서 [기다렸던 복수의 밤] 또한 그랬듯이 이 책 또한 읽어가는 내내 삶은 달걀이 막힌 것처럼, 삶은 고구마다 명치에 얹혀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금할수가 없다. 사이다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