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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웃어야 하고, 퇴근 중에도 예기치 않은 약속이 생기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그게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시작하면 연애가 내 생활의 중심 인양 그 사람을 만나곤 했다.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혼자라는 시간이 주는 잠시의 짬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늘 주변이 시끌벅적하고 요란해야했던 시간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뭐든 치열하게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딱 하나... 나를 위해서 마음의 여유는 간직하고 싶다. 혼자인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은 첫 번째 봄. 주인공 지즈는 엄마의 중국 전근을 계기로 도쿄로 상경한다. 스무 살 지즈가 살게 된 곳은 일흔한 살의 먼 친척 긴코 할머니 댁. 오십년 이라는 나이만큼 두 사람의 성격은 다르다. 그럼에도 고양이 두 마리, 수십 마리의 고양이 초상화로 가득한 이 집에서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정돈되지 않아 잡초 무성한 마당, 밋밋한 할머니의 반찬, 차갑게 변해가는 남자 친구, 대학을 강요하는 엄마 등. 스무 살 지즈의 생활을 결코 녹록치 않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불안하고 허무한 지즈의 삶을 그런대로 살게 해 준 건 바로 긴코 할머니의 일상이다. 지즈는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조금씩 변화 된 삶을 살지만 다시 사랑은 어그러지자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생각하는데...
20대의 청춘들에게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저 그런 일상이 짜증나고 불안할지 모르겠다. 뭔가 큰 한방이 있거나, 재미있는 일을 찾아 부나방처럼 떠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청춘들에게는. 나도... 그랬으니까. 모처럼 쉬는 주말이 되면 열심히 전화를 했다. 약속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약속이 없는 날에는 묘한 허무와 불안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다른 청춘들은 어디서든 뭔가를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집구석에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불만을 가득 안은 얼굴로. 젊기에 가능한 생각들이겠지?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인생이 화가 나고 짜증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또 청춘 아니겠는가? 20대의 남녀가 혼자의 즐거움을 알고, 삶에 대해 관대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보살 같은 웃음을 짓는 것도 이상하니까.
20대 초반의 지즈가 보기에 긴코 할머니의 삶은 무채색에 가깝다.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흐르는 강물과도 같으니까. 하지만 나도 이젠 안다. 긴코 할머니의 삶이 결코 의미 없거나 재미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늘 재미있고 다이나믹한 인생은 없다. 그런 롤러코스터를 매일 탄다고 하면 그 또한 고통이지 않을까? 20대의 청춘은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어떻게 매일 누군가와 함께 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청춘에게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혼자의 시간이 외롭다와 동급이 아니라, 나를 안정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휴식의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점점 내 부모님과 어른들의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 나이가 되어 나는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부모님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시간에 의해 조금씩 늙어간다. 몸이 늙어가지만 마음까지 주름지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깨어 있는 나이 먹음. 늘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꼰대가 되는 건 아닌지,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면서 나를 생각하고 싶다. 혼자 있기 좋은 날... 시원한 차 한 잔과 책이 함께 있거나 취미 생활이 있다면 괜찮은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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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낄 때에 소설 속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보통의 소설에서는 기승전결의 구조, 특별한 사건, 매력적인 주인공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삶과는 다른 느낌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 책 『혼자 있기 좋은 날』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이 너무 평범하고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냈는데, 그것이 눈길을 끈다. 섬세하게 담아낸 일상에서 주인공 지즈의 세밀한 심리를 잘 표현하며 독자를 이끌고 간다.
이 책은 아오야마 나나에의 장편소설이다.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1983년 사이타마 출생인 저자는 여러 차례의 수상 경력이 있는데, 2007년 수상 당시 만 23세였다. 첫장을 열면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을 볼 수 있는데, 일단 소설을 먼저 읽고 평을 나중에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심사평이 아오야마 나나에가 쓴 이 소설을 잘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생명경시, 빈곤, 거대 사상의 소멸 등의 풍조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유대를 빼앗고, 개개인을 미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대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허무감에 깃든 고독을 결코 심각하지 않게, 어디까지나 가볍게 그리고 있다. _이시하라 신타로(소설가,정치가) -일상 속에서 양질의 감각장치를 펼쳐야만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자연스레 다뤄 실력을 증명한다. 사계절을 따라 변화를 그리는 수법 등이 설명적이지 않고, 주인공의 외로움을 충분히 전달한다. _다카기 노부코(소설가)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스무 살 지즈가 도쿄에 사는 먼 친척 할머니 긴코의 집에 들어와 일년을 보내는 일상의 이야기다. 차례에도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의 문턱으로 계절의 순환이 일어난다. 시간은 흘러 가지만 일상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 단기간의 삶에서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에 바쁘지만, 일 년,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보면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니 조미료와 향신료 가득 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평범한 집밥에 감동하는 느낌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혹은 주변 사람의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느껴진다. 외롭긴 하지만 딱히 절대고독으로 몸부림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이 정말 좋다고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있기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지즈는 잡지도 매달리지도 않는다. 외롭다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는 의욕조차 없는 상태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아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나는 혼자인 게 싫은 걸까. 혼자라서 싫은 건 어른스럽지 못한 감정이라며 부끄럽게 여겼었는데. (129쪽)
이 소설은 어느 한 부분만 읽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지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훑어보며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순간, 이 소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 세기의 시차를 두고 살아가는 지즈와 긴코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어느 순간 화두처럼 내 마음을 휘어감는 의미를 발견한다.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나 같은 건 금세 뒤처지고 말겠죠?" "세상에 안이고 밖이고 하는 건 없어. 이 세상은 하나뿐이야." 긴코 씨가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긴코 씨를 나는 처음 보았다. 그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자,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169쪽)
이 책을 읽으며 별 다를 것 없다고 생각되는 일상에서 인식하게 되는 사소한 의미같은 것을 발견해본다.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단조로운 일상에 의미를 지어준다. 양갱을 잘라 먹으며,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멀어지며, 그냥 스쳐지나가버린 일상이 모두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고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과도로 양갱을 잘랐다. 반달 모양 어묵처럼 얄팍하고 가지런하게. 문득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슨 일이든 이렇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여운 따윈 없이 매듭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5쪽)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어. 세상이 다 싫어져서 평생 동안의 미움을 그때 다 써 버린 기분이었지. (56쪽_긴코 할머니의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 이야기) 후지타는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냉담했고, 나는 그의 세계에서 차츰 제외되어 가는 듯했다. (125쪽)
<혼자 있기 좋은 날>은 빨려들어가며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젖어들며 동일시되는 느낌이다. 이 책에는 <혼자 있기 좋은 날>과 <출발>이라는 두 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데, <혼자 있기 좋은 날>을 다 읽은 후에는 시차를 두고 좀 쉬었다가 <출발>을 읽기를 권한다. 한 박자 쉬었다가 읽어야 머릿속에 그려지는 환경이 선명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이 건네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고 담백하게 읽으며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일본의 젊은이와 우리 나라의 젊은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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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려 만들어졌다. 1935년에 시작되었고, 1년에 두 번, 순문학을 하는 신인이나 무명 작가들에게 주어진다. 같은 해에 시작된 나오키상은 대중문학을 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주어진다. <혼자 있기 좋은 날>(2015,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예문사 펴냄)은 2007년에 제136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가 1983년생이니, 겨우 24살에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이다. 2012년부터는 군조신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니, 젊은 나이에 문학성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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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예문사의 도서 지원으로 읽은 책입니다. > 홀로 독립을 해야 하거나, 기존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불안과 고독일 것이다. 홀로서기에 성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갖게 되면서 그러한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에 느끼는 고독은 어쩌면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짧게는 하루의 일과를 떠올려 본다면 매 순간 불안함과 고독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수십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다가오는 이러한 감정들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갓 스무 살 지즈와 일흔한 살의 긴코 할머니의 존재는 바로 이러한 고독과 불안에 대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든 느낄 수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먼저 눈길이 쏠린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라 할 수 있지만,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에서 보여주는 이 두 사람의 동거 이야기는 요즈음 부쩍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점점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이에서부터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지즈와 긴코의 만남은 긴코 할머니가 거주하는 집으로 상징화되는 느낌이다. 분명 역에서 긴코 할머니의 집까지는 직선거리 상으로는 지척이지만, 실제 그 집에 가기 위해서는 꽤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기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눈앞에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긴코 할머니의 집은 지즈와 긴코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지즈가 긴코 할머니에게 울타리를 트면 곧바로 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고 말을 하지만, 그 통로로 고양이가 다니다가 열차 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지즈와 긴코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그 둘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다소 평범한 그 둘의 동거 생활이 범상치 않게 느껴지게 된다. 관조적인 입장에서 오히려 매 표현마다 깊게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회에 진출을 하고자 하지만, 같이 살던 어머니와 떨어져서 동거를 하게 된 지즈의 입장은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고, 심지어 외롭기까지 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사회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지즈에게 왠지 모르게 동정이 느껴지게 된다. 더구나 사귀던 남자들에게 모두 일방적으로 차이기까지 하는 그녀는 기댈 곳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지즈와 동거를 하는 긴코 할머니는 독자가 평상시에 생각하는 할머니라는 존재와는 달라 보인다. 손녀를 위해서 헌신적이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존재로 생각하던 할머니의 일반적인 모습이 긴코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즈의 입맛에는 다소 싱거운 음식을 만들고, 지즈의 삶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긴코 할머니는 왠지 모르게 시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집이라는 같은 공간만을 공유하는 그 둘의 초반부의 모습은 왠지 현대인들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 내지는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1년이라는 둘의 짧은 동거기간에 대한 이야기는 무심하면서도 점차 서로를 갈구하는 양상으로 변모한다. 분명 이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의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통하여 같이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로 변모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긴코 할머니가 그동안 할머니의 손에서 길러지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고양이들의 초상화로 간직한 방에 대한 이야기와 긴코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소한 물건을 훔쳐서 자신만의 수집품으로 삼는 것은 평행선처럼 보이던 둘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의가 되는 듯하다. 긴코 할머니가 그동안 돌봐준 고양이처럼 지즈 역시 긴코 할머니와의 동거를 통하여 사회 생활에 홀로서기를 하기 직전에 나름의 준비를 하면서 할머니로부터 심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것은 아닐까? 또한 당찬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지즈의 버릇은 결국 자신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지즈는 어느덧 긴코 할머니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단순한 동거는 서로 떨어져서야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된다. 1년의 동거를 마치고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 지즈. 그녀는 이것을 계기로 자신이 사회 생활에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 위하여 좀더 자신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긴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긴코 할머니 역시 동거 이후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지즈에게 자신이 살던 집을 물려줄 의사를 비치는 장면에서 그녀 또한 무심한듯 했지만, 지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어찌 보면 단순한 두 여자의 평범한 동거 생활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진다. 실제로 극적인 사건이 전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즈와 긴코 할머니가 처한 상황과 동거를 통한 둘의 심리가 점차 변화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면 우리 역시 고독과 불안함에 대하여 점차 떨쳐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둘의 동거 생활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다가도 그 자잘한 이야기들이 전하는 내용들은 우리 역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소소해 보이지만,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처럼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즈가 느끼는 불안함과 외로움을 긴코 할머니의 느릿하면서도 여유있는 자세로 극복할 수 있음을, 그리고, 무심한 듯한 긴코 할머니가 지즈와의 삶을 통하여 다양한 변화와 고독을 이겨내는 과정들은 아마도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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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는 1990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이틀 후가 추석날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여느 때 같았다면 으레 밤늦도록 마셔야 했지만 그날은 예외적으로 일찍 술자리를 끝내고 귀가하였다. 집은 비어 있었고 병원 영안실로 오라는 쪽지만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나는 서둘러 쌍문동의 한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두어 달이 흐른 다음이었다.
아오야마 나나에 / 이영미 역 / 혼자 있기 좋은 날 (ひとり日和) / 예문사 / 223쪽 / 20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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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상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바다는 끝없이 외롭게 펼쳐지고 그 앞에서 막 자기 삶의 키를 잡은 이들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한다. ‘제대로 사는’ 것이 대체 뭘까? 끊임없이 찾아오는 이 외로움과 공허함을 어떻게 하면 떨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명확한 해결책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같은 고민을 안고 방황하는 지즈가 ‘괜찮아지기’까지의 한 해를 함께 살아보자고 권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스무 살 지즈는 먼 친척인 긴코 할머니 댁에 신세 지면서 도쿄 생활을 시작한다. 한 해 동안 지즈는 연애를 하고 실연을 겪는다. 시간은 여상스레 흘러가는데 시도 때도 없이 외로워지는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다.
과도로 양갱을 잘랐다. 반달 모양 어묵처럼 얄팍하고 가지런하게. 문득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슨 일이든 이렇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여운 따윈 없이 매듭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하지 못한 자신이 싫다. 미련스레 여운을 남기는 봄도 짜증스럽다. 외로움 따위로 무너지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고픈 마음이 있지만…. 역시 혼자는 외롭다. 지즈는 제대로 사는 일이 너무 어렵다. 동거의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까, 함께 살다 보면 서로 조금씩 닮는다. 이를테면 사소한 입버릇이나 말투나 깔끔함 같은 것들을 한 해를 같이 산 동거인에게서 나에게로 조금씩 옮겨왔듯이. 긴코 할머니에게서 지즈에게로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옮겨간다. 초조한 마음조차 긴코 할머니의 여유 앞에서 서서히 잦아드는 듯하다. 색으로 치면 파스텔 블루. 우울한 블루에 따뜻한 우유를 풀어놓은 듯이 평온한 색이다. 두 사람분 공기가 섞여 온화한 일상의 색이 만들어진다.
이런 밤이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 거라고 느끼게 해 주는 이별이었다. 손을 흔들고 있으니 발바닥 밑에서 따뜻한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긴코 할머니 댁은 역 플랫폼 끝과 이어져서, 마당에 나오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이를 마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마당에서 오래 손을 흔들며 연인들을 떠나보낸다. 있는 힘껏 상대를 배웅하는 긴코 할머니는 지금까지 겪어온 이별도 이렇게 손을 오래 흔들며 보냈으리라. 할머니의 방식에 따라 같이 손을 흔들며 슬프지 않은 이별을 연습해본다. 때로는 뚜렷한 계기가 없어도, 아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할머니와의 동거가 물론 큰 영향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는 데 담담해졌을 터이다. 그러니 지즈의 성장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이 소설의 구성처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어느 순간이 자연스레 이별과 만남에 담담한 어른이 된다. ‘혼자 있고 싶은’ 기분에 따라 용기를 낸 지즈는 할머니 집에서 나와 회사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사람인 이상 이별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다. 다만 만남도 이별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공허함이나 두려움 없이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는 봄도 짜증스럽지 않다. 오히려 ‘무책임해지더라도’ 괜찮은 계절이라며 긍정한다. 약속 장소로 떠나는 열차 창문 너머 내다본 긴코 할머니의 집은 슬픔이나 외로움이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생에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긴코 할머니는 ‘너는 잘 할 거야.’라고 무책임하게 응원하지 않는다. 인생 경험에서 얻어 확신할 수 있는 진실만을 단호하게 말할 뿐이다. 대개 지즈가 하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간혹 딱 잘라 말할 때 그 한 마디가 마음 깊이 울린다. 과장된 위로나 멋진 교훈을 말해주는 것보다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며 ‘너도 괜찮아질 거야’, 라고 위로할 때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이 독자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 일상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바로 이 이야기가 아닐까?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즈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 내가 있었다. 지즈가 그랬듯 당신도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은근하게 응원한다. 긴코 할머니와 함께 보낸 일상이 지즈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책을 읽으면서 지즈와 함께 한 시간이 불안에 지친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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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같이 살아가는 긴코할머니의 멸치육수가 연상되는 심심하게 옅지만, 은근 기억에 남는 맛을 풍기는 글이었다. 첫번째 중편은, 이제 스물이 되는 미타 지즈란 여주의 시선으로, 두번째는 이십대 중반을 넘긴 진나이란 청년의 단편이야기이다.
지즈는 중국연수를 가게 된, 학교선생님인 엄마로부터 독립해 외할아버지 남동생의 아내였던 긴코할머니의 집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그닥 오지않는, 지상의 지하철 플랫폼 뒷편에 인접해있지만 삥 돌아서 대문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집. 간혹 칫솔을 물고 바깥을 내다보면 정차한 지하철안의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만, 지즈는 매섭게 쨰려본다. 음, 이제까지 봐온 일드나 소설의 여주라면 수줍게 피해버리겠지만. 지즈가 실상 보통의 여자애랄까. 지즈는 손버릇도 좋지않아 신발상자안에 여기저기서 집어온 자잘한 물건을 집어놓는다. 다른 여자애랑 바람이 난 전남친의 머리카락도 몰래 싹둑, 긴코 할머니의 인형도 살짝, 이제 마구 불붙었지만 티안내려고 달리붙지않으려고 노력하는 현재남친의 담배도. 연애를 하는 긴코할머니 앞에서 일부러 더 젊은 티를 내고, 세대 간격을 일부러 내는 얄미운 짓도 하는 여자애. 아직 뭔가 하고싶은지 모르고, 자신의 감정도 잘 모르는 서툴고 퉁명스러운 처자.
...나는 아직 뭔가를 진정으로 슬퍼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그래서 슬픔이나 미움이 어떤 추억으로 남는지도 잘 모른다. 막연하긴 하지만 그런 것과 마주하는 시기는 좀 더 훗날이라고 여겼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젊게 세상의 거친 풍파에 삼켜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뜻대로 풀릴 리는 없겠지....최대한 피부를 두텁게 만들어서 무슨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p.57
그런 그녀와 함께 사는 긴코할머니는 좀 더 인생을 살았다며 섯부른 충고를 하려는, 일말의 제스츄어도 없다. 그저 같이 살고 밥먹고 화장품 좀 갖다 쓰는, 평행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사실 그게 맞는 것일지 모른다. 조금 더 살았다고 뭔가 충고의 말을 하고싶은 나는 찔끔했다. 그렇게 그닥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싶지도 않았던, 담담한 지즈가 신발상자안의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나씩 추억하고, 액자 뒤에 넣는 풍경은 묘하게 씁쓸하면서 애잔하고 예쁘다. 상처받기 두렵지만 기억되고 싶은.. 그런 그녀가 독립한뒤 반찬을 랩이 아닌 접시로 눌러놓고, 멸치육수를 진하게 내기 어렵다는 것을 담담히 말하는 모습에서 어딘가 모르게 긴코할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 사진을 갖지않아도 어떻게든 서로의 존재에 무언가 남기는..
두번째 단편, 영업이 아닌 사무실일을 택했던 진나이. 어느날 일잘하던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려는 고백을 하자, 순간 자신이 그 말을 하고 있는듯 착각을 느낀다.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 탈출하려는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있던 이 자리가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나만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그만둔다고,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 시점만 바꿔도 될 듯. 지금 일상이 지겨운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뭔가 대단하게 머리를 띵하게 치는 건 아니지만, 잠깐 액션을 유보하고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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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의 장편소설 <혼자 있기 좋은 날>이 보라나비 저작.번역상을 수상한 이영미 번역가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당시 만 23세에 불과했던 작가의 나이와 이시카와 신타로와 무라카미 류를 위시한 심사위원들에게 "진정한 조숙함"을 느끼게 한다는 심사평의 대조로,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은 첫 번째 봄, 주인공 지즈는 엄마의 중국 전근을 기회로 도시 생활에 막연한 동경을 품은 채 도쿄로 상경한다. 스무 살 지즈가 얹혀살게 된 것은 일흔한 살의 먼 친척 긴코 할머니의 집이다. 오십 년의 나이 차이만큼 두 사람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고양이 두 마리와 수십 마리의 고양이 초상화로 가득한 전철역 근처 작은 단독주택에서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전철역을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뱅글뱅글 돌아 다녀야 하는 집, 정돈이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마당, 밋밋하고 싱거운 할머니의 반찬, 장거리 연애가 되자 점점 태도가 차가워져 가는 남자 친구, 대학 진학을 강요하는 엄마 등 도쿄에서 새 생활은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코 할머니와 보내는 소박하고 안정된 생활은 지즈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불안과 허무를 이겨 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긴코 할머니와의 일상이었다. 지즈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저축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며, 자신만의 삶을 꾸려 나간다.
일상 속의 미묘한 변화와 성장의 순간을 산뜻한 수채화처럼 절제된 문체로 투명하게 포착해 냄으로써 제136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아오야마 나나에의 장편소설 《혼자 있기 좋은 날》이 보라나비 저작?번역상을 수상한 이영미 번역가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수상 당시 만 23세에 불과했던 작가의 나이와 이시카와 신타로와 무라카미 류를 위시한 심사위원들에게 “진정한 조숙함”을 느끼게 한다는 심사평의 대조로,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정교한 구성과 깊이가 느껴지는 문제의식으로 일본 현대 문학계를 대표하는 여류 작가의 탄생을 알린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이번 재출간을 계기로 미발표 단편 《출발》도 함께 수록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뜻 깊은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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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청소년기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전의 통과의례와 같은 시기를 시작하는 나이다. 끓어오르는 젊음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청춘으로 흔히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스무 살의 청춘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갖고 있다.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방황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기도 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회인이 되어간다. 부모로부터의 독립하여 진짜 한 개인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해야 될까. 모든 이들이 거치는 스물이라는 그 시간은 그래서 어쩌면 특별하다. 2007년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혼자 있기 좋은 날>은 그런 스무 살 청춘의 방황기를 물 흐르듯 조용하지만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방황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때로는 무턱대고 무언가에 열중하기보단 세월의 흐름에 몸과 정신을 자연스레 맡기는 것도 그 시간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작가의 의도가 이런 시간적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걸까. 이 소설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의 문턱까지 시간이 흘러 계절이 변하듯 청춘들의 방황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 속에서 청춘들이 보여주는 방황을 끝내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들을 소소한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스무 살 치즈. 그녀의 엄마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도쿄의 먼 친척인 긴코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그렇게 시작된 20대 청춘과 70대 할머니의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동거가 시작된다. 공부가 싫어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치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 돈을 벌기 위해 두세 군데 아르바이트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그녀와 달리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긴코 할머니는 그녀와 달리 평온한 일상이다. 온갖 세상 풍파를 견디어온 삶의 무게가 느껴진달까. 어떤 일에도 그녀만의 차분함을 잃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그녀에게 치즈는 묘한 질투감과 동시에 경외감을 느낀다. 한편으론, 자신도 나중에 긴코 할머니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오랜만에 중국에서 돌아온 엄마와 재회하는 치즈. 그러나 모녀의 사이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남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도 아닌 오묘한 관계가 그들 모녀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인 듯하다. 그래도 부모란 자식을 걱정하는 법이던가. 특별히 공부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치즈가 이내 못마땅한지 진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만 그런 엄마가 치즈는 못마땅할 뿐이다. 엄마와 함께 3박 4일을 보내고 헤어진 치즈는 긴코 할머니가 있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치즈와 전철역 매점에서 일하며 만난 그녀의 남자친구 후지타, 긴코 할머니와 할머니가 요즘 만나시는 호스케 할아버지. 이렇게 네 명이서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여름도 끝나버렸다. 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웠던 젊은 날의 방황도 이제 전환을 맞이하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봄에서 시작해 여름을 거치고 가을을 지나 겨울 그리도 다시 봄의 문턱에 이르는 계절의 변화를 따라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 계절의 변화에 맞게 주인공 스무 살 치즈의 방황도 흐르고 흘러 끝이 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누구나 한 번은 겪었던 스무 살의 청춘시절의 모습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해준다. '그 시절 난 어땠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추억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게 해준다. 시간은 흘러 스무 살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우리는 내일을 향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오랜만에 잔잔한 느낌의 소설을 만난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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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은 혼자 있고 싶은, 그러나 혼자가 되기는 두려운, 그리고 혼자가 조금은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다. 책에서는 갓 소녀에서 성인으로 발돋움하려는 스무 살 청춘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조용하게 토닥여주는 듯한 섬세한 문체로 인해 마음 가득 따스한 온기로 채워질 것이다. 언젠가는 찾아 올 혼자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그만 격려는 받은 기분이다. 그래, 인간은 결국 누구나 혼자니까.
사이타마에 살던 스무 살의 치즈는 엄마가 중국으로 떠나게 되자 함께 가길 거부하고 도쿄에 입성한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처음 분가하는 딸을 먼 친척 할머니네 집에 맡기고, 스무 살 ‘치즈’와 일흔한 살 ‘깅코’ 할머니의 어색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치즈는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하다. 신세를 지게 된 할머니에게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연애를 잘 하는 방법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잘 모르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이지만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어본다. 50살이나 차이가 나는 할머니는 오히려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한창 청춘을 살고 있는 치즈는 괴롭고 재미없는 나날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그러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 또한 청춘의 맛이 아닐까. 미리 인생의 지혜를 모두 얻으려할 필요는 없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즐거움도, 시련도, 정열도, 체념도, 저절로 찾아오는 법이니.
봄에 시작된 동거는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아 홀로서기를 위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 또한 있게 마련인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별은 언제나 쓸쓸하고 아쉬운 슬픔을 동반한다. 시작하기 좋은 계절 ‘봄’은 곧 다가올 테지만, 내 마음 속 봄의 싹은 여전히 자라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어렸을 땐 왜 그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지금은 오히려 ‘깅코’ 할머니에게 심술도 부리고 어리광도 피우는 ‘치즈’이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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