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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성숙하건 그렇지 못하건 출판이란 분명 돈벌이 이상의 그 어떤 의의가 있어, 세상에 나와 단 몇에 읽히든 낼 것은 내어야 한다는 신조로 출판되고야 마는 책이 분명 있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우리 시절에는 그 앞 교육과정의 잔여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수능에 고전문 파트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출제되었는데, 지금 수능은 고전문 문법사항을 묻는 문항은 출제에서 완전 제외되는 게 정책으로 굳었다. 언어영역 점수가 단순 감만으로 그날 운수에 좌우되지 않게 하는 장치가 바로 고전문 문법 성취 측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통해 모국어 구사능력이 그저 자의적 느낌에 의존하는 건지 머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구축된 기제에 의해 발화, 이해되는 건지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이란 건 사회적 생존에서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성적 논리적 사고 능력의 배양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실용에 부차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학교교육의 존재 이유가 그것이므로 절대 소홀히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문 교육이 실종되다시피한 현재는 대체 이런 상품이 어느 시장의 어떤 구석에서 누구에게 수요될까를 생각해 보면 다소 기가 차기까지 하다. 예전같으면 고3수험생 중 고득점을 노리는 이들에게 팔리기라도 하지 않았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 용비어천가 제 1장의 종구이다. 이 때 '고성이' 에서 '이' 는, '나는 너보다 키가 작다'에서 '보다'와 같은 비교격조사라는 해석이, 하이라이트나 한샘 등 모든 참고서에서 공통으로 하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유독 EBS에서만은, '고성이 (우리 육조와) 동부하시니'로 새겨서, 이걸 주격조사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문제를 내고 있었던 것. 이는 당시 수험생인 나에게 큰 충격이어서, 사설 유력참고서 절대 다수와, 교육부 직할 공공기관의 입장이 대립할 때,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큰 갈등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모호한 건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절대 진리로 믿고 있는 명제도 경우에 따라 더 치밀한 논리에 의해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게 더 충격이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어학 문법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이걸 제대로 시키면, 경우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순우리말만 쓰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다 통하는 줄 아는 인간반편 무능저능의 언어 테러리스트가 나올 일도 없고, 언어와 그 발화해석이 내재하는 일정 법칙에 콘트롤되어야 한다는 기본 중에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막무가내가 영화 리뷰를 쓴답시고 내용을 마구 스포일링하는 폭력이 최소한의 사회화도 거치지 않은 채 등장할 우려도 적게 되는 것이다. 무지몽매가 희한하게도 되레 제 깜냥이 최고인양 설쳐 대는 건 다 고등학교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