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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구매도서
<저자는>
<책 읽고 느낀 바> 오래 전 뮤진트리라는 출판사에서 '이탈리아 구두' 신간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표지부터가 눈길을 끌었고 속지는 무게감 있었으며 오탈자 한 개가 없던 책. 출판사에 대한 느낌이 좋게 각인되었던 건 책이 좋아서기도 했다. 공허한 쓸쓸함 가운데 아름다운 서정이 있던 책이었다. 작년에 신간 '스웨덴 장화'를 서슴없이 구매했던 건 그 여운때문이었다. 이 책도 어느날 구매했던 책으로 세 번째 만남이 되었다.
한때는 유명했던 호텔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땔감을 위해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보니 송아지가죽 장정의 노트 한 권이 발견되는데 1905 한나 룬드마르크 이름이 적혀 있다. 한나 라는 스웨덴 여인이 1905년 모잠비크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살면서 그녀가 바라 본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이며 생활을 끄적였던 기록들이다. 《불안한 낙원》은 헤닝 만켈이 1900년대 초 포르투갈 령 동아프리카(현재 모잠비크) 라 불렸던 나라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스웨덴의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아버지마저 여읜 한나. 18살인 딸은 입 하나 덜 양으로 어머니에 의해 썰매에 태워진다. 어머니는 남겨진 동생들을 건사하는 것으로 한나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친척에게 인계하면 된다는 부탁을 받고 데려왔으나 찾을 길 없자 하녀로 임시 채용하면서 같은 하녀와 난생 처음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우정이 깊어지면서 사진도 찍고 글자도 깨우치게 된다. 이 주인의 주선으로 호주행 선상 요리사가 되어 뜻하지 않은 먼 여행길에 오른다.
요리사 직분에 충실하던 중 동료 선원과 결혼을 하나 두 달만에 열병에 걸려 수장된다. 난생 처음 정을 준 남자이자 남편의 장례식 후 우연히 정박한 항구에서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모두가 찾아 헤매는 걸 숨어서 지켜본 한나는 호텔에 투숙하고 거기서 유산을 한다. 호텔인 줄 알았던 곳은 유명한 매음굴이었고 그녀를 돌봐 주었던 모든 여자는 흑인 매춘부였다. 포루투갈인 주인은 그녀를 극진히 예우했던 바 청혼을 했고 그녀의 아내가 된다. 두 번째 결혼이다.
짧은 신혼였어도 운우의 정은 아는 그녀에게 첫날밤부터 남편은 발기부전이었다. 젊은 한나는 뜨거운 몸은 아니었으나 이왕 남편이 생겼으니 일을 치루려 노력하건만 번번히 실패한다. 나중에는 흑인 매춘부의 도움을 받아 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깨어나보니 남편은 죽어있었다. 하루 아침에 미망인이 된 한나에게 매음굴과 흑인 매춘부들은 책임으로 남았다. 대화도 통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백인과 흑인이 동화되지 못하는 삶을 마주한다.
백인이었던 남편에게 들었던 흑인은 거짓말쟁이고...한나 자신이 마주한 흑인들은 모두가 말이 없었다. 복종하는 태도지만 그들끼리만 통하는 게 있는지, 늘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마구 대했고 흑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죽은 남편 덕으로 좋은 집에 살고 있지만 말을 나눌 상대 하나 없는 삶에서 그녀는 마음 상태를 노트에 적곤 했다.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던 침팬지를 그녀도 정성껏 돌보고 때론 의지하기도 하는데 반려동물을 대하는 느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탔었던 배의 선장, 그리고 선원들이 매음굴을 찾기도 했다. 고향이 그립고, 하녀 친구가 생각나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고 편지를 인편에 보내지만 그녀는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쉬 잠들지 못한다. 그러던 중 사업상 방문한 백인 집에서 사건을 목격한다. 백인이면서 흑인 아내를 버젓이 거느리고 남매를 둔 성공한 사업가를 이상히 여겼는데 백인 아내와 자식들이 들이닥친 것. 한나가 보는 앞에서 흑인 아내는 남편을 죽인다.
백인에게 대든, 그것도 흑인 여자를 관대히 대할 수는 없는 법. 한나는 그녀가 너무도 딱했고 그녀가 저지른 범죄는 나쁘지만 한편으로 드는 동정심을 어쩌지 못해 그녀를 매일 면회한다. 변호사를 찾고, 간수를 매수하고 답은 탈출밖에 없음을 안다. 돈을 세탁바구니에 담아 뇌물흥정을 하는데 새로 부임한 간수장이 자신의 몸을 요구하는 댓가로 그녀를 탈출시킬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한 상태서 자신이 임시 고용했던 경호원에게 죽임을 당하는 죄인.
한나는 흑인인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큰 상태서 그녀의 오빠를 만나게 된다. 건장한 체격이라서가 아닌 그가 가진 바른 생각과 백인에게 굴하지 않는 태도 등에서 그녀는 단박에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의견을 전하지만 흑인 남자는 한나보다 흑백갈등을 더 잘 알기에 무심한 척 한다. 흑인 죄수가 죽임을 당하고 한나는 매음굴을 처분하면서 매춘부들을 고용승계할 것을 못박고 떠난다.
자신의 나라도 아닌 곳에서 갑자기 갑부가 되었고 흑백이라는 신분차이가 얼마나 극명한 지를 알면서도 흑인 여자를 구하겠다는 무모하다시피한 그녀의 열정을 백인사회는 왕따로 답했다. 흑인 사회는 조용한 공감은 불렀는지 모르나 그녀가 왜 그런짓을 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노예근성이 너무나 뿌리깊에 자리한 탓인지도 모른다. 다만, 죽은 여자의 오빠만이 그녀의 선한 의도이자 인간적 배려를 알아들었다.
떠나는 그녀가 탄 배로 짐을 가지고 왔고 문을 닫아달라는 요구로 단 둘이 되자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급한 사랑을 나눈다. 단 한 번의 사랑였지만 그 순간 자신의 몸에 생명이 잉태되는 느낌을 받는 한나. 흑인이 백인 선실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며 끌려나가는 그를 위해 몸부림치며 변호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남는다. 그녀는 떠났고 그를 그리워하는데...
저자는 책 말미에 그런 말을 남긴다. 한나 라는 여주인공은 실제 존재했다고. 기록에서 보고 그 시대에 여자가 배에 탈 수 있었다면 요리사였겠다고.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작품은 전체적으론 밋밋하다. 그녀가 행복하다 느꼈던 적은 아주 잠깐. 그 외의 시간들은 늘 공허하고 고독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기후도 맞지 않는 곳에서의 생활은 그녀를 한층 우울하게 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밤이 있고,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하는 가운데도 시간은 간다는게 놀랍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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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이란 참 알 수 없다. 어디로 흐를지, 어떤식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사람의 삶이 이러니 어떻게 살아가야겠다고 해본들 운명 앞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는 많은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편인데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책 속에서 나는 자주 느낀다. 물론 주변에서도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100년의 아프리카는 어땠을까.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헤닝 만켈의 책에서 아프리카의 아픔과 역사에 대해 조금쯤은 알게 되었다. 작가인 헤닝 만켈이 아프리카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려 작품을 썼다고 했는데 이렇듯 내가 아프리카의 고통을 알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한 걸까.
2002년 베이라의 아프리카 호텔.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마룻바닥의 판자를 떼어냈고 그 속에 잘 모르는 글씨로 되어 있는 노트 한 권이 발견된다. 한나 룬드마르크라는 이름으로 1905년이라는 년도가 쓰여있고 한나의 일기가 쓰여져 있었다. 과거의 아프리카 속으로, 과거의 한나의 삶 속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추위가 심했던 스웨덴의 북부. 며칠뒤면 열여덟 살이 되는 한나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 외삼촌을 찾았지만 이미 외삼촌 가족은 떠나고 없어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다. 한나를 발렌가로 이끌었던 포르스만의 집에서 베르타와 함께 집안일을 거들다가 선주인 포르스만의 요구로 선상 요리사가 되어 호주로 가는 배를 탔다. 그곳에서 3등 항해사인 룬드마르크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지만 뭍에 잠깐 내렸던 남편은 열병으로 죽고 만다. 배에서 룬드마르크가 계속 머무는 듯한 느낌에 한나는 아무도 모르게 배를 떠나고 지금의 아프리카 모잠비크인 로우렌소 마르케스의 한 호텔에 묵는다. 호텔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흑인 매음굴이었던 그곳의 주인 세뇨르 바즈와 결혼하고 얼마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후 한나는 갑자기 부자 미망인이 되어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대체 돌아갈 대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삶은 꿈도 꾸지 못했던 방향으로 변해 버렸지않은가? (243페이지)
흑인들만 가득한 그곳에서의 삶이 한나는 두려웠다. 그곳을 떠나려하지만, 목양견을 파는 피멘타의 흑인 아내 이사벨의 살인을 목격하고 그 상황을 이해했던 한나는 이사벨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사벨을 석방하고자 노력을 한다. 그런 한나를 백인들은 싫어했고, 흑인들은 그런 그녀를 그저 침묵으로만 대할 뿐이었다. 한나가 견딜수 없었던게 그들의 침묵이었다. 침묵 속의 소리없는 아우성. 그들의 소리가 침묵의 소리로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들의 침묵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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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오직 백인들만이 웃는, 그것도 때로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보통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를 위장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한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암흑에 대한, 암흑 속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260페이지)
흑인들의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백인들 또한 흑인들을 두려워했다. 비교적 적은 숫자의 백인들에게 흑인들이 해를 가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흑인들은 암흑 속에서 침묵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달랬다.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통받았고 백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흑인들은 백인들을 증오했다. 백인 남편을 죽인 이사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재판도 받지 않고 지하의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454페이지)
한나는 아시벨의 구명 운동을 하면서 백인들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 잔인함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런 그녀를 흑인들은 자신들의 주 고객인 백인들이 두려워 한나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한나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침묵의 소리로 응원하지 않았을까. 한나가 흑인을 사람으로 대하며 백인들이 하지 않던 행동으로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곳을 떠나고자 매음굴을 매도할때는 그 남은 돈들이 다 흑인들에게 돌아가고자 나눠주었다. 여타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데 반해 한나는 그들을 위하며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어찌 한나도 두렵지 않았을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그토록 두려웠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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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어느 시골 뼛속까지 스미는 강추위 속에서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한나 렌스트룀은 낯선 남자 포르스만의 썰매에 몸을 싣고 도시로 나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생들과 하루하루를 버텨오던 엄마가 한 입이라도 줄여볼까 큰 딸을 대기근이 닥쳐오기 전에 타지 친척집으로 보낸 것이다. 친척을 찾지 못한 한나는 포르스만의 보호아래 그 집의 하녀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 포르스만의 도움으로 요리사가 되어 배에 오른다. 겨우 열여덟살때부터 스무살 남짓까지 그 혹독한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부터 시작해서 포르스만의 하녀, 거친 뱃사람이 되기까지 결코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이것은 그 이후에 찾아올 불행에 비교해 본다면 서막에 불과하다. 그녀에게 하녀 시절 동료 하녀와 한 방을 쓰며 쌓은 우정, 그리고 항해사와의 짧은 사랑은 그녀의 전 인생을 통털어도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게 될만큼 순탄치 않은 운명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 달의 짧은 선상 결혼생활은 허무하게 끝나고 한나가 죽은 남편의 유령으로부터 도망친 곳은 당시 포루투칼령이었던 모잠비크의 어느 도시. 그리고 호텔인 줄 알고 투숙한 곳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매음굴이었고,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겼던 아기가 지워지는 사고를 경험한다. 하녀 시절 독학으로 글자를 깨우쳤고 포르스만이 버린 포르투칼어 사전을 통해 겨우 서툴게 포르투칼어를 사용할 줄 알게 된 그 말도 잘 안통하는 곳에서 그녀는, 그곳에서 철저히 혼자다. 한나가 친절한 선장과 선원들 에게서 도망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컴컴한 암흑처럼 답답하다. 겨우 글을 깨우쳤다고는 하나, 정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세상에 대한 아무 지식도 없는 한나는 이 장님같은 상태로 홀로 남겨지는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가 버리고 떠난 것 비참하고 버림받은 과거다. 그리고 그녀가 향한 곳 역시 크게 나을 것 없어 보이는 미지의 세상이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때보다도 더 불확실한 상태로 돌아갔다 243 우리 모두는 리스본을 출발하는 배 위의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저마다의 과거를 단단히 묶고 돌멩이를 매달아 배 밖으로 던져 버린다고요 231 그녀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검은 피부의 복종자들과 위악과 위선으로 가득한 백인들이다. 한나는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녀가 그녀의 양심에 대항했더라면 쉽게 흑인들의 땅에 와서 흑인들을 채찍질하고 그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백인들의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나는 사실 이제까지의 삶이 흑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배우지 못했고, 남의 밑에서 일했으며, 절대적 빈곤 앞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으로 매음굴의 여자들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흑인들에게 그녀는 눈도 마주칠 수 없고, 옆에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는, 그들과는 다른 존재다. 눈을 내리깔고 언제나 복종의 몸짓으로 그녀와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 한나 역시 그들의 문화를 언어를 관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그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펠리시아와의 대화에서조차 둘 사이에 결코 이해될 수 없는 불통의 벽을 경험한다. 한나는 오직 백인들만이 웃는, 그것도 때로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보통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를 위장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한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암흑에 대한, 암흑 속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260 백인들이 흑인들을 짐승과 같이 취급해도 될 야만인들이라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흑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백인들을 동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매춘녀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있고, 여자들은 물론 남편들조차도 백인들에게 몸을 파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이유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성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들의 반란이나 폭행 같은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한나는 펠리시아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둘의 대화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으로 흐른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불통의 세상 속에서 그녀는 마치 시각장애자처럼 그 무엇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매음굴을 통해 모은 전재산과 가옥, 매음굴 등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고 떠난 두번째 나이 많은 남편에게는 배에서 만나서 설레임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던 첫번째 남편과 같은 애틋함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가 매음굴의 여자들을 나름대로 존중하는 방식이 한나를 그곳에 계속 머물게 한 것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을 팔아 치우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더라도 자신을 고용했던 포르스만보다도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 매음굴의 여주인으로서, 매음굴의 여자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런 종류의 희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는 그 이해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흑백의 세계를 가르는 폭력에 대항한다. 에스메랄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녀의 속은 또한 자신에게는 미지인 채로 남는 것이 옳았다.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야. 한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그들 자신보다는 우리에게 맞도록 바꿔 놓은 거야 282 카를로스를 왜 죽였어요? 한나는 펠리시아의 질문에 놀라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산 시간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흑인들은 백인들이라면 가장 불가해하고 잔인한 일들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428 배에서 내려 숨을 때부터, 그녀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 거친 운명이 안타까왔으나, 발기부전으로 결혼후 몇달이 지나도록 첫날밤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늙은 부자 남편이 죽자, 돈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여겨지면서도, 이 위선의 세계에서 누구에게 그 돈과 사업체를 모두 털릴 것 같아 조마조마했지만, 한나는 마지막까지 강했다. 외로움의 시간들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백인 남편을 죽인 흑인 이사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앵무새죽이기>를 상기시켰다. 그러나 <앵무새죽이기>에서 법정의 이슬로 사라져간 흑인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지만, 이사벨은 남편을 죽였다. 한나는 이사벨을 구명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사업체까지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미 중요한 것은 돈과 백인 내의 사회적 위치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사벨은 왜 남편을 죽였을까. 백과 흑의 위계질서가 마치 사람-동물과 같이 선그어진 사회에서 흑인을 아내로 삼고 아이까지 자신의 아이로 동등하게 대접한 경우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백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만, 흑인인 이사벨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 역시 같은 인간이 아닌 백인 남자의 정식 아내가 되어 백인의 문화속 일부가 된다는 것은 빗방울처럼 철저하게 흑인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고 자신의 전부를 한 남자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본부인이 아이들과 나타나자, 버림받는 치욕보다 죽이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랑했기에 죽일 수 밖에 없는 '고결한' 영혼이었을 지 모른다. 살 생각이 애초에 없없던 이사벨을 구명하기 위해 그녀의 침묵과 싸우고, 백인을 죽인 흑인을 구명하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가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과 맞서고, 그로 인해 난처하게 된 흑인 여성들의 알 수 없는 반응과도 싸우는 한나에게 마지막까지 의지하던 존재는 남편이 화대로 받아 키우던 침팬지다. 그녀는 이토록 모순투성이이며 이해하기 힘든 이 대륙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침팬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424 그녀가 쓰던 일기는 아프리카 호텔에 남겨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이 쓰인 것처럼 진행되는데, 저자 후기는 작은 세금 기록에 의지하여 쓴 허구라고 밝힌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어느 매음굴의 주인이 백인 여자였다는 사실로부터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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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수식하는 형용사 ‘불안한’이 처음부터 불편했습니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으로 정의하는 ‘낙원, 파라다이스’는 분명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평안과 안락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마땅했으니까요. 그러나 작가 ‘헤닝 만켈’이 의도한 바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또한 낙원은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를 때 사용되기도 하기에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불안한 낙원(2015.11.25. 뮤진트리)》은 한나 렌스트룀이었던 소녀가 한나 룬드마르크가 되었다가 다시 한나 바즈가 되고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 아나 브랑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불안한 낙원》의 주인공 한나 렌스트룀은 18살이 되었을 때 지독한 추위와 가난만이 남겨진 고향집을 떠나 도시로 나갑니다. 한나는 엄마가 그녀의 도시 행을 결정하였을 때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P.44)라는 생각의 전환이 두려움을 없애고 그 자리를 동경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 고향집을 떠나 요르단 포르스만을 따라서 순드스빌에 도착한 한나는 엄마가 얘기했던 친척들을 찾을 수 없었기에 얼마간 포르스만 집에서 일을 하며 지내다가 그의 추천으로 로비사라는 배에서 선상 요리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출항 후 한나는 로비사에서 만난 3등 항해사 룬드마르크와 결혼해서 한나 룬드마르크가 됩니다. 하지만 룬드마르크의 죽음으로 두 달 만에 미망인이 되어버리죠. 배가 로우렌소 마르케스라는 아프리카 도시에 정박했을 때 한나는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항구 근처의 싸구려 호텔로 들어간 한나는 알 수 없는 복통으로 며칠간 앓아눕습니다. 몸이 회복되었을 때 복통의 정체는 조기유산이었고 싸구려 호텔은 호텔로 위장한 매음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 말을 믿지 말아요. 하나도 안 믿는 게 좋아요. 여기 흑인들이 할 줄 아는 건 거짓말뿐이에요.(P.123) 매음굴 주인 아티밀리오 바즈는 한나에게 흑인은 거짓말만 하니 믿지 말라고 알려준 첫 번째 사람입니다. 몸이 약해진 한나를 돌보아 준 간호사 아나 돌로레스는 피부색 때문에 흑인은 열등한 존재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나는 이해할 수 없는 도시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떠나지 못하고 매음굴 주인 세뇨르 바즈와 결혼해서 한나 바즈가 되지만 곧 두 번째로 미망인이 됩니다. 세뇨라 바즈가 된 한나는 아티밀리오가 남긴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됩니다. 한나는 매음굴 운영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세뇨르 바즈가 매일 했던 일들을 대행합니다. 그리고 매음굴 여성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프리카를 떠나야한다는 생각만 깊어집니다. 추위와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준 아프리카가 한나에게는 부자유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나는 백인이 흑인 위에 군림해야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백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리게 된 권리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흑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세뇨르 바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츰 그 주장은 백인들에게도 인도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에 살고 있었다.(p.208)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p.208)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했던 한나 바즈가 스스로 이름을 버리고 ‘아나 브랑카’로 새롭게 태어나기로 결심한 건 사업가 페드로 피멘타의 거짓말을 직접 목격한 직후입니다. 피멘타의 거짓말로 그의 흑인 아내 이사벨이 피멘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나는 이사벨을 살리는 것이 자신을 살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솔직한 인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아나는 감옥에 갇혀 꼼짝없이 죽음에 이르게 될 운명에 처한 이사벨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합니다. 추위와 가난에서 탈출시켜 준 아프리카에서의 삶이 감옥살이와 같다니,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돈과 명예가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줍니다. 추위와 가난으로부터 도망친 한나 렌스트룀에게 ‘로우렌소 마르케스’는 낙원입니다. 하지만 ‘한나 룬드마르크’란 이름으로 아프리카에 도착했고, 아프리카에서 ‘한나 바즈’로 육체적 안정과 평안을 누리다가 스스로 이름을 버리고 ‘아나 브랑카’가 된 한나에게 로우렌소 마르케스는 불안한 낙원(p.407)일 뿐이었습니다. 아나는 불안한 낙원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유를 이사벨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로우렌소 마르케스’를 떠날 수 있는 의미를 준 사람은 바로 이사벨의 오빠 모세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인들을 구출하라는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모세와 같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불안한 낙원》은 2015년 10월 타계할 때까지 모잠비크에서 머물며 글로써 아프리카인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작가의 이력에 호기심을 느꼈고 ‘문명의 야만과 위선의 역사를 추적한 소설’이란 책소개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온갖 만행의 현장이 된 아프리카 대륙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문인이 존재했었던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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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37쪽 [헤닝 만켈, 뮤진트리, 2015]
한나가 성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생존을 위해 독립을 강요하는 엄마 앞에서 한나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모르는 것은 엄마도 모르는 것뿐. '전설과 가설의 시간'에 갇혀 살던 애벌레는 이제 '진짜 이야기의 시간'으로, 변태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참 좋겠지만 언제나 현실은 어렵습니다. 어려워서, 더 애틋합니다. 지금은 한나를 응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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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렌스트룀은 스웨덴 산간 마을 출신의 소녀다. 열여덟번째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는 독립을 요구하고, 어머니가 말한 도시의 친척을 찾지 못해 포르스만이라는 사내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한나는 이후 포르스만의 주선으로 선상 요리사가 되어 호주행 선박에 오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세 살 연상의 항해사를 만나 식을 올리나 두 달 후, 열병으로 남편을 잃는다. 어느 날 밤, 배에서 내려 한 호텔에 투숙하지만 그녀는 하혈을 시작하고... 현지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다 깨어보니 그 곳은 매음굴이었다.
포르투갈인 바즈가 운영하는 이 호텔은 포르투갈령 아프리카인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있다. 바즈는 백인 간호사를 데려오고, 한나는 그녀에게서 포르투갈어를 배운다. 그렇게 서서히 이 도시에 감도는 이질성을 감지한다. 그녀가 스웨덴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은 바즈의 청혼을 받아들인 후부터다. 이제 부족하진 않지만 무료한 생활이 시작된다. 남편은 흑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나는 그들을 쉽게 믿는다. 어쩌면 그의 죽음은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고향의 끝없는 겨울이 상징하는 가난에서 벗어난 한나는 열아홉. 그러나 벌써 두 남편을 떠나보냈다. 바즈의 유산을 상속받은 그녀는 스웨덴에서도 얼마든지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한나는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모국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남편이 죽고, 무료하던 생활은 보다 적막함으로 변한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침묵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백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현지인들과 이어지는 긴 침묵 그리고 융화될 수 없는 사회에서의 상하관계.
불안 속에 외로움을 지속하던 한나를 깨운 것은 사건이다. 흑인 남자를 죽이고 처벌받지 않은 백인들에 분노한 폭동이었다. 한나가 나선 거리에는 두려움의 냄새가 퍼져 있었다. 호텔의 안주인이 된 한나는 매음굴 여인들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히 피멘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현지처인 이사벨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사벨은 재판도 없이 사형당할 것이었다.
한나 바즈, 아니 아나 블랑카는 자신을 에워싼 허위의 세계를 깨닫는다. 흑과 백의 거짓말로 이룩한 세계, 현지인들의 맑은 눈빛을 앗아간 백인 사회의 위선,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사벨의 오빠 모세스는 아나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한다. 백인들이 이곳에 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 수 없노라고. 금과 다이아몬드는 언젠가 바닥날 것이라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채우는 곳에서 아나는 다짐한다.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이사벨에게 자유를 주겠노라고.
한나는 왜 로우렌소 마르케소의 주류 사회에 순응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불과 몇 해 전, 자신 역시 가난한 노동자였음을 잊지 않았다. 스웨덴의 겨울은 언제나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따뜻한 나라에 왔지만, 모국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피부색으로 차별한 날에는 괴로워한 한나. 그녀는 허위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베이라에서, 가난 속에서도 삶을 희구하는 흑인들을 발견한다. ‘지금까지의 시각은 왜곡된 것이었다.’
모세스가 주었던 마법의 가루는 과연 그녀에게 훨훨 날아갈 날개를 주었을까? 글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 한 번의 연주를 위해, 6년 동안 그 낡은 피아노를 조율한 조제처럼 이 모든 일을 목격해야 할 사람이 그녀여야만 했던 것이다. 목격자 아나 블랑카, 당사자 아나 네그라. 명명은 결심을 나타내는 행위일 뿐,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한나처럼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가능성을 희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우렌소 마르케스는 오늘날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이며, 모잠비크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였다.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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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의 백조의 노래, '불안한 낙원'을 읽었다. 내게 이 작품은 조국 스웨덴을 떠나 오래도록 아프리카에 정착했던 그 자신의 마음을 많이 투영한 것으로 보였다. 헤닝 만켈은 자신을 세계적 거장의 위치로 격상시켜준 장본인인 '발란더' 형사 시리즈로 유명하다. 스웨덴에선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심지어 영국에서마저 케네스 브래너 주연의 드라마로 방영될만큼 인기와 작품성이 검증된, 말하자면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 '얼굴 없는 살인자'는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한 부부의 살인사건을 출발점으로 하여 스웨덴에서의 극우의 부상과 더불어 점점 늘어나는 인종 차별을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시리즈를 시작했던 헤닝 만켈은 그 뒤로도 시리즈 내내 꾸준하게 인종 차별이란 주제를 이어갔는데 그런 이유로 헤닝 만켈이 아프리카에 정착했던 것도 어쩌면 인종 차별의 부상으로 드러나 버린 스웨덴의 민낯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무엇보다 이번에 '불안한 낙원'을 읽고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여성, 한나 뢴스트렘 또한 헤닝 만켈처럼 스웨덴에서 아프리카로 떠난다.1904년. 그 때는 스웨덴에 굶주림이 만연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기근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던 한나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한 명의 입이라도 덜려는 어머니에 의해 도시로 떠나라고 강요 받는다. 가족이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지만 한나는 선뜻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도 두렵기 때문이다. "내 앞날이 어떨지 전혀 모르겠어요."(p. 42) 이 말을 하기 전에 한나는 엄마 엘렌에게 바다에 대해 묻고 있었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바다를 본 아버지는 그저 크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라는 커다란 세계, 그리고 그것의 정체 불명은 그대로 가족이라는 폐쇄적이고 작은 세계를 떠나 더 크고 한껏 개방되어 있어 그만큼 정체가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도시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은연 중 반영한다. 여기서 더 주목할 지점은 가정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는 그렇지 않다. 거기는 이방인들이 가득한 도시이며 그런 면에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바다는 그것을 좀 더 강조한 공간이다. 바다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나의 진짜 두려움이 정작 거기에 있다는 게, 바로 다음의 말에서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살게 될까요?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자게 될까요?"(같은 곳) 그녀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공존이다. 이것은 그대로 인종 편견에 사로잡힌 스웨덴을 암시한다. 이런 한나에게 엄마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야무지게 나무란다.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분명한 것 하나는 여기 남으면 미래 자체가 없다는 거야."(p. 42) 엄마의 말이 소설의 주제를 이루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더하여 헤닝 만켈이 스웨덴을 떠났던 이유도 이와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점점 하나의 정체성만 고집하고 강요하려 드는 스웨덴에 미래 자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시에 있고, 바다에 있는 것이다.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곳,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고 그것을 타자를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실제 한나가 정착하게 되는 아프리카에서 그녀는 그렇게 된다. 헤닝 만켈은 무엇보다 세 차례나 변하는 그녀의 이름을 통해 이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긍정의 의미를 가진다. 마치 아프리카로 떠난 작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도 같이. 하지만 그게 다일까? 보다 좋은 곳을 찾아서 떠난다는 것만으로 족한 것일까? 헤닝 만켈은 이런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스웨덴을 떠나온 자신을 반추하면서 과연 이 길만이 있었던 것인지 성찰했던 것 같다. '불안한 낙원'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때문에 붙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앞에 붙은 '불안한'은 낙원 그 자체만으로 좋은 것인지 은근히 동요시키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누구나 낙원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낙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쓰기 훨씬 전의 고대 그리스에도 아르카디아란 낙원이 있었다. 서양만이 아니다. 동양에서도 고대에서부터 이상향은 있어왔다. 이런 면에서 유토피아의 희구는 인간의 본성상 욕구라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집단적 차원에서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어떨까? 그저 나 혼자 여기의 현실이 어둡고 미래가 없다고 해서 내버려두고 낙원을 찾아 떠나기만 하면 괜찮은 것일까? 여기에 윤리적 위험은 없을까? 헤닝 만켈은 있다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불안한 낙원'이 정말 말하고픈 핵심이다. 한나 뢴스트렘의 삶은 내가 있을 낙원은 저 너머가 아니라 바로-여기에 있다고 깊이 깨닫게 해주는 작품인 것이다. 만켈은 한나의 삶을 통해 나의 향유가 아닌 타인에 대한 나의 책임을 강조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그 현실을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말년의 만켈은 스웨덴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홀로 아프리카로 와버린 것을 조금은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바로 그 마음을 한나에게 의탁해 소설을 써내려갔던 것은 아닐런 지.무엇보다 소설 후반에 나오는 한나의 선택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 선택은 내게도 꽤나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나 역시 예전의 만켈처럼 헬조선인 이 나라를 그저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안 보면 그만이라고, 나만이라도 구하자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나는 정청래 의원의 필리버스터 연설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굳이 이런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지금의 내가 요즘 이렇게 필리버스터의 연설을 듣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운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안한 낙원'을 다 읽었을 때, 난 과연 이대로 여기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만 혼자 잘 살자고 떠나는게 옳은 일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필리버스터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나만큼이나 희망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 희망의 빛을 지연시키려 애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빛에서 위로 받고 그 빛을 좀 더 크고 밝게 만들기 위해 찾아올 이들을 위해. 한나의 아프리카 호텔처럼. 한나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고 있는 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들의 말을 두 귀로 직접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흘러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었을 때'와 같이 자주 울컥했고 은수미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그녀의 연설에 감동되어 새벽 기차를 타고 마산에서 온 여고생 이야기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배재정 의원이 인용한 한 중학생 덕후 소녀의 글도 그랬다. 그 어린 영혼들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많이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하지 못했던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배재정 의원은 우리 후세대까지 이런 아픔을 물려줘야 하냐고 말했다. 맞다. 이런 아픔은, 이런 불법은 우리 때에서 끝나야 한다. 그들의 낙원은 결코 불안해서는 안된다. 지금 나는 그것만 생각하려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뭘 해야 하는 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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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어디 일까. 말도 안 되는 미신을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고, 침팬지가 웨이터의 흰색 조끼를 입고 서빙을 하며, 흑인이 중심가에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면 경찰이 체포하는, 미신과 두려움, 기만과 아첨이 섞여 있는, 거짓말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 이 도시에서 살을 빼려면 우유에 촌충 한 마리를 넣어 마시기만 하면 된다. 촌충은 몸 안에서 최고 5미터까지 자라서 사람이 먹은 음식의 대부분을 갉아먹어 그를 날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특수한 달팽이의 껍질을 빻은 다음 19년에 한 번 개화하는 나무의 꽃잎을 말려 섞은 것을 먹으면 나비 같은 날개가 생겨난단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 훨훨 날아 감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1904년, 이곳은 바로 아프리카이다. 오직 백인들만이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 흑인들의 눈에는 적의와 슬픔, 백인들의 웃음에는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가 담겨 있는 이상한 나라.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흑인들과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백인들이 공존하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
"흑인들은 노예일 뿐이라고요. 이곳처럼 잔인한 사람들 천지인 곳도 드물어요. 그리고 그들은 죄다 백인이죠. 당신이나 나처럼." 그가 다시 고개를 젓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그의 말에서 혐오감을 읽었다. 며칠 전 흑인 인부들의 눈에서 분노와 증오를 읽었듯이.
스웨덴 북부 산간벽지의 열일곱 한나는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집안의 장녀였기에, 온종일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극심한 여름 가뭄은 그들 가족에게 극한의 곤궁을 가져왔고, 한나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집을 떠날 것을 권한다. 아이 셋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넷은 어렵다고. 넌 이제 다 자랐고 네 한 몸쯤은 챙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해안으로 나간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며, 자신을 내쫓으려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녀는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것.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었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먼 해안도시를 향해 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먼 친척들과는 연락을 할 수 없고, 그녀는 우연히 호주 왕복 항해선에서 선상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그 여정에서 2등 항해사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는 치명적인 열병에 감염되어 주고, 그녀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미망인이 되고 만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배가 아프리카 도시에 정박했을 때 아무도 몰래 배를 떠나기로 한다. 항해를 계속하는 한, 죽은 남편이 아직도 배에 남아 있었으므로 자신이 슬픔에 굴복하고 말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나 렌스트룀이었던 여성이 한나 룬드마르크가되어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는다. 그곳은 포르투갈 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그들 말을 믿지 말아요. 하나도 안 믿는 게 좋아요. 여기 흑인들이 할 줄 아는 건 거짓말뿐이에요." 한나는 아프리카에서의 첫 밤을 숨 막히는 더위와 끈질긴 복통으로 사경을 헤매며 보낸다. 무심코 투숙한 호텔의 매춘부가 그녀를 보살펴주었고, 한나는 조기 유산을 하고 겨우 기력을 회복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이름만 호텔일 뿐 실제로는 매음굴이었고,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그녀는 포르투갈인 매음굴 주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아 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또 몇 달 만에 그가 죽게 되어 미망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한나 룬드마르크는 한나 바즈가 되어 남편이 남긴 매음굴과 그곳에 소속된 여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게 되고, 더불어 엄청난 부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마치 폭풍우를 만나기라도 한 듯이 휘청대며 그녀를 변화시킨다.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왜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도시의 사람들과 닮아가기 시작한 것일까? 처음에는 한나도 흑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세뇨르 바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츰 그 주장은 백인들에게도 인도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에 살고 있었다.
헤닝 만켈은 다들 알다시피 작가로 성공한 뒤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워 운영했고, 죽기 전까지 평생 아프리카의 현실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했다. 백 년 전 당시 동아프리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20세기 후반까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흑인들은 단지 피부색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열등 인종이 되어 백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는 인종과 문화적 편견, 탐욕이 증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이 서로를 지배하는 세계를 한 여인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아프리카에 익숙해지면서, 한나는 백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낯설고 이상하게 느끼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순간 익숙해지기도 한다. 흑인들은 당연히 열등한 존재라고 믿는 백인들은 흑인들을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이 흑인들을 검게 만들었으니 그들에게는 색깔이 없다며 말이다. 그런 백인들의 행동이 곤혹스러웠던 한나는, 남편이 죽고 매음굴의 여자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이 흑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 거였지만, 사실 백인들도, 인도인들도, 아랍인들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지만 소동은 다시 잠잠해지고, 남편의 배신으로 그를 죽여 감옥에 갇힌 한 흑인 여인을 목격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렇게 그녀는 한나 바즈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아나 브랑카로 남편의 살해 혐의로 투옥된 흑인 여인을 사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조 같은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는 백인 사회의 공분을 사고, 거기다 흑인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언제나 백인들의 보이지 않는 보복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자신들을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애를 쓰는 그녀를 지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백인들이 스스로와 흑인들을 기만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는 흑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은 백인 없이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흑인들은 돌과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해. 반면에 흑인들은 어떻게 신의 아들을 모질게 학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리고 백인들이 심장이 곧 멎어버릴 만큼 늘 바쁘게 움직이며 부와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추구에 휘둘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해. 백인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아. 대신 시간을, 언제나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사랑해. 우리를 망치는 것은 바로 그 모든 거짓말들이야.
결국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매음굴 여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한다. 그곳에서는 백인인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흑인들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녀가 배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뭐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해야 하나. 분명 슬픈 장면도, 감동적인 장면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함께 살아낸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겁고 숙연해졌다. 그렇다. 이렇게 줄거리 요약만 길게 늘어놓고 말았지만, 이것은 그저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었다. 피부색만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그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했었으니 말이다.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하고, 온갖 부를 독점했던 백인들 조차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이상한 세계, 가진 자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세계, 영혼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택해야 했던 슬픈 세계, 침묵이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세계, 나는 그런 이상한 세계를 이곳에서 경험했다. 이곳은 바로 세계의 끝, 아프리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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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Treacherous Paradise>로, 사전적 의미는 '신뢰할 수 없는, 위험한, 배반/반역하는 낙원'이다. 여기서 '낙원'은 좁게는 주인공 '한나'의 활동무대가 되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장한 매음굴)을, 넓게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풍부한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현재의 모잠비크 인근)를 의미한다. 한 공간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지내지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백인과 흑인, 아프리카 점령지에서 본국보다 부유하게 살지만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몰라, 하인들에게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점령자의 불안한 상태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에 등 떠밀려 독립한 18세 스웨덴 여성 한나는 도시에서 하녀로 일하다 목재를 운반하는 호주행 증기선에 선상 요리사로 취직하게 된다. 3등 항해사와 결혼한지 두 달 만에 풍토병으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정박한 틈을 타 몰래 배를 떠난다. 호텔인줄 알고 투숙한 곳은 알고보니 도시 최대의 매음굴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유산하기에 이른다. 몸이 회복된 후 매음굴 포주 '바즈'의 청혼을 받고 파라다이스 호텔의 안주인이 되어 식민지 백인 여성의 지위(흑인들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를 누린다. 발기부전 특효약이라는 가루를 매음굴 여인에게 받아 남편의 음식에 섞은 다음날, 포주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얼떨결에 한나는 거액을 납세하는 매음굴을 운영하는 여성사업가이자 거부의 지위를 상속받는다. 모든 것을 매각하고 아프리카를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은 것은 남편의 백인 절친, '피멘타'가 살해된 사건이었다. 유색인을 쫓아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사냥개를 백인에게 판매하는 사업으로 떼돈을 번 피멘타는 '이사벨'이라는 흑인여성과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둘 낳았다. 어느날 포르투갈의 본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소동이 벌어지고, 이사벨은 한나가 보는 앞에서 피멘타를 칼로 찌른다. 재판도, 변호인도 허락되지 않고 평생 감옥에 투옥될 운명(본국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즉결 처형되었을지도)에 처한 이사벨을 돕는 일에 한나는 책임감을 느낀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한나의 시선에 따라 사건이 묘사되는 방식은 섬세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생생했다. 한나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 인종 차별의 형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흑인들은 우리들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그들에겐 색깔이 없어요. 우리가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은 그들을 검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 (135쪽) 첫째, 이 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차별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점령지의 백인들(남녀 할 것 없이)뿐 아니라 매음굴의 흑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백인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흑인들은 도리어 다른 유색인을 차별하기에 이른다. 한나가 이사벨의 석방 자문을 위해 멀리서 모셔온 인도계 변호사 판드레가 매음굴을 방문하자, 백인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여성조차도 '피부색이 갈색'이라는 이유로 그를 손님으로 받기를 거부한다. 두번째 부류는 인종차별을 하지만 자기 이익에 따라 다르게 대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매음굴 포주인 바즈는 흑인을 믿지 않고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문명화시켰다고 여기는 사람이었으나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흑인여성들에게는 나은 처우를 보장한다. 다른 포주들은 1:9의 비율로 이윤을 나눈다면, 그는 5:5로 공평한 편이었고, 폭력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은 제재하기도 했다. 한편 바즈의 절친이자 이사벨의 남편이던 피멘타는 유색인종 혐오를 교묘히 이용해 부자가 된 사람이었지만, 흑인 정부와 혼혈 자녀들을 거둬들임으로써 백인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종 편견이 없거나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한나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을 하대한 이후에는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이후로는 백인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 행동을 조심한다. 매음굴의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자립해서 시장에 채소가게라도 낼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남편을 살해한 수밖에 없던 이사벨의 상황을 딱하게 여겨 매일 먹을 물과 음식을 날라다 주기도 한다. 이사벨의 오빠인 모세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당당하게 백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화하고, 백인 옆쪽 벤치에 평등하게 앉기도 한다. 인종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한나를 대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를 통해 한나는 위로를 얻는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208쪽) 위의 세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한나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침팬지 카를로스이다. 매음굴에서 조끼를 입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포주가 죽은 후에는 한나와 한 침대에서 자려고 들고,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듣는듯 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동물이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물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정도로 '문명화된' 유인원의 모습으로, 전 주인 바즈와 현 주인 한나가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종 편견이 없는 세 번째 부류의 모습이 투영된 건 아닐까. 동물도 인간도 아닌 중간 존재, 흑인도 백인도 아닌 모호한 존재. 결국 침팬지 카를로스는 유색 인종이 눈에 띄면 공격하도록 훈련된 목양견에게 물려 죽는 비극을 맞는다. 이 소설의 장점은 20세기초 유럽이 지배하는 아프리카에서 흑/백인간 몰이해와 두려움으로 인해 간극이 더욱 벌어지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촌충(기생충)을 먹는 여자, 자신이 죽인 자와 그의 죽음으로 생명을 얻을 기회를 놓친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애도하며 감옥에서 침묵을 지키는 여자, 한나가 무언가를 질문하면 '백인들만 하는 질문'이라며 놀라는 여자, 남편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면서 자신은 백인들하고만 자기 때문에 남편에게 떳떳하다는 여자의 모습 등은 이들간 문화적 괴리가 얼마나 컸는지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모잠비크와 스웨덴 문화 양쪽 모두를 잘 아는 헤닝 만켈이기에 그려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는 아프리카를 제2의 고향이며,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산다고 자칭할 정도로 사랑했고, 결국 애정어린 시선으로 이 땅을 묘사한다. 이사벨의 고향인 흑인마을을 방문한 한나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아프리카의 풍성함과 백인의 정서적 빈곤함이었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454쪽) 이 모든 이야기는 모잠비크에서 발견된 식민시대 문서에 적힌, 가장 큰 매음굴을 운영하고 주요 납세자였던 한 스웨덴 여성에 대한 기록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작은 사실에 우리가 모르는 나머지를 더하여" 쓴 소설로 당시 시대상황을 간접 경험하게 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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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열강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던 시절을 지나 아프리카는 식민지화 되었다. '노예'라는 개념으로 흑인들을 마구 잡아가는 백인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날들 중 하나인 1904년부터 1905년까지의 이야기. 비정상이 정상인 양 자리잡고 있는 그 한 가운데에 여주인공 '한나'가 있다.
'우월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판별이 가능한 걸까? 서구열강이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 할 때 내밀었던 기준은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월하다는 기준은 한없이 상대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기준을 어느곳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뚱뚱한 사람과 삐쩍 마른 사람을 두고 '어느 사람이 더 우월한가?'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을 고를 것이다. 뚱뚱한 사람을 고른다고, 혹은 삐쩍 마른 사람을 고른다고 그게 잘못된 선택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100여년 전의 서구열강들은 그렇게 애매모호한 기준을 들이밀고는 그 곳에 사는 이들에게 총칼로 목숨을 위협하며 영토를 빼앗았다.
여주인공 한나는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집에서는 다 큰 자식의 입이라도 덜어야겠다며 내쫓듯 외삼촌네로 보내버렸고, 찾아간 외삼촌 집은 이사를 가 버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에 올라타 요리사로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서 남편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남편이 열사병으로 죽은 후, 한나는 계속 배에 타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장례를 치르려 잠시 들른 아프리카에 아무도 모르게 남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책의 중심은 '불안한 낙원'에 있던 한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낙원'이라는 단어는 철저히 백인의 입장에서 기록된 단어이다. 자신들이 도착해 지배하고 있는 이 땅의 원주민들, 즉 흑인들은 자신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인종이기 때문에 굉장히 낯설다. 그들이 어떤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신발도 신고 다니지 않는 '미개한' 인종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들은 많이 불안해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열사병에 걸리고, 독사에 물리면서까지 아프리카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나라로 싣고 돌아가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광물 자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돈이 되는 것들이 가득한 낙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에게는 불안한 곳이다.
한나는 그들, 흑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보려 노력을 했다. '불완전한 존재'라 칭해지는 흑인들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하나의 인격체였음을 자신을 치료해주던 여인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들은 한나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수록 다른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그녀를 멀리했으므로, 그녀는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결국은 포기함에 이르렀다. 원체 가난한 곳에서 살았던 주인공 한나는, 왜인지 모르게 흑인들에게서 자신을 보는 듯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난한 백인들이었다면 한나가 내민 손을 잡았을 테다. 하지만 상대는 흑인, 백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존재. 그들은 자신들의 입을 닫음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 한나가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벽이 있었던 것은 그 탓이었다.
이 책은 자신들을 위해 애를 쓰는 한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흑인들을 질책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 잔혹한 행동들에 대한 죄를 묻기 위한 책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공간에서 일어났던 혹은 일어났음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냈을 뿐이다. 사람위에 사람이 설 수 있던 것이 너무도 당연한 시기의 기록으로써 말이다. 작가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전할 뿐이다. 비록 책 속의 사실이란 것은 한 스푼 남짓한 작은 양일 지라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는 현재에도 인종차별은 일어난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러니 그때라면 오죽했을까. 사람 위에 사람이 설 수 있는 시기는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은 불안한 낙원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지금은 낙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는 절대로 아니니 그저 불안하기만 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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