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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의 즐거움 P.G. 해머튼/김욱 리수/2015.12.21.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각국은 교육에 힘써 문맹률이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인터넷이 발달하고 널리 보급되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적생활에 대한 욕구도 크게 향상되었다.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플라톤보다 훨씬 편하게 교양을 습득할 수 있다. 다만 플라톤은 교양의 습득에만 얽매이지 않고 사물의 본질에 관하여 스스로 고뇌 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세계에 살면서 지적 생활을 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하게 되었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저자의 작품 가운데서도 대표자이라 할 수 있는 <지적 생활>과 <자서전>, 에세이, 일기, 편지 등에서 작가의 지적 성찰이 잘 드러난 명문들을 한데 추려 모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쓴 책입니다. 지적 생활이 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 없이는 지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연마해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7)”라고 지적했다. 지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연마해야 가능한 것이지 노력 없이 지적 생활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예술가, 예술평론가, 작가이며 귀족 출신으로 평생 사상표현의 자유를 추구해왔다. ‘지적 생활’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이며 저서로 <지적 생활>, <예술에 대하여>, <프랑스인과 영국인>, <행복의 탐구>, <자서전>등 다수가 있다.
‘지적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저자는 정의 한다. 지적인 결여 속에서 눈부신 지성이 태어난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야 하며, 오늘 하루의 지적인 노력을 통해 꿈꿔왔던 완성된 삶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된다. 지적인 탐구의 매력은 이렇게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데 있다.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보다 지적인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점점 더 가속화되는 편리한 기계문명은 우리를 기계에 의존이라는 편리성에 길들여지게 했다.
지적생황의 핵심은 자기계발이다. 어린 시절 반항아였든 모범생이었든 훗날의 결과는 자발적인 훈련이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적생활은 시간을 양식 삼아 자라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연예인들의 학창시절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학교 교육은 부차적 수단에 불과하다.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 자기 나름의 성숙과정과 발전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지적활동 중에서, 특히 글을 쓴다는 건 준비된 자료나 나의 생각을 하나로 융합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해내는 과정이다.(p.87)”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고귀한 영혼이다. 영혼은 이성적 판단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 것이나 쓴다하여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천박한 속성을 자랑하며 관능적인 욕정을 채워주는 손길로 예술을 오판해서는 곤란하다.
지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은 필수다. 그런데 학교생활에서 실패를 맛본 사람들은 자기의 기억력에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기억력이란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선택 기억이든, 합리적 기억이든 본질은 ‘연계’입니다. 관련이 있는 것들 사이에서 개인의 연상력이 작용하고, 머릿속에 하나의 질서가 새롭게 생성되는 창의성이 핵심입니다. 지성의 올바른 작용과 조화는 기억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억력은 연마할수록 확장됩니다.(p.140)” 그러니까 우선 도전해 보는 것이다. 시도를 두려워하는 자에겐 결과도 없다. 모든 결과엔 과정이 필요한데, 과정이 고통스러울수록 결과는 달콤하다. 나무는 아픔을 통해 거목으로 성장한다. 겨울의 매서운 북풍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봄을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적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서두른다고 빨리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노력하여 얻는 것을 하나씩 체화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지적생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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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해머튼은 '지적 생활'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빅토리아 시대 작가라고 한다. 영화나 티비 등 시각 전달 매체와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 그 시대는 문자와 인쇄매체의 힘이 막강했다. 수요도 많았고 공급 물량을 대는 작가들도 많았던 시대. 전무후무한 정보 대량 생산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기 관리를 못하고 스스로를 혹사하던 집필가들이 많던 시대. ( 이 시대에 요절한 작가들이 많은 것은 아마 이런 지적 노동 생활에 대한 선례나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 저자는 문인들의 폭음이나 기행, 무절제한 생활이 당연한듯 여겨지던 이 시기에 평생 쓰고 읽는 자로서의 지적 생활을 위한 조언을 담은 글을 쓴다. 이 책이다. 내용도 맘에 들고, 요즘 나오는 에세이 서적들처럼 별 이쁘지도 않은 잡다한 일러스트 같은 것 없이 글에만 집중한 세련된 편집도 맘에 든다.
책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결론은 건강관리 시간관리 잘 하라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절제에 힘쓰라는 것. 정말 맞는 말이다! 키보드 노동자들이 믹스 커피 열 봉 주전자에 타 놓고 코피 흘리며 밤새 글쓰는 것은, 밤새 술독에 빠져 천재인 나를 몰라주는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이다. 생물학적 수명과 작가로서의 수명 둘 다. 멀쩡했던 저자가 알콜로 뇌가 망가져서 50대 넘어 이상한 소리 sns에 날리며 어럽게 쌓았던 캐리어를 다 깎아먹는 것을 한두번 보았는가. 자신의 재능을 혹사하다가 피로에 지쳐 제대로 퇴고하지 않은 책을 시장에 내놓거나 자기복제 아류작만 쓰다가 악평을 받고 망가지는 것도 한 두번 보았는가.
그러면 안 된다. 어차피 평생 읽고 쓰는 것. 문제는 건강관리 시간관리 자기절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저자는 부드럽게 조근조근 말해주고 또 말해준다. 독자가 세뇌될 때까지! 하하. 워즈워스, 칸트, 니체, 괴테, 조르주 상드, 바이런 등 다양한 문인과 학자들의 사생활을 엿듣는 재미도 있다.
과거의 나는 기회의 중요성을 믿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져야 노력이 가능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보니 정말로 간절한 것은 시간과 건강입니다.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회는 쉬지 않고 찾아옵니다. 우리를 찾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찾아낼 수 있습니다. - 본문 194쪽에서 인용
빅토리아 시대라면 이중적이고 엄격한 도덕률로 유명하다. 그러기에, 책 소개 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문장들을 접하고 '이건 질러야 돼!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니까!'를 외치며 책을 구입했지만 조금 찜찜했다. 은근 구석구석 빅토리안 개저씨같은 표현이 숨어 있을까봐. 막상 배송받아 펼쳐보니 책은 그런 면이 없었다. 알고보니 이 책은 편역본이었다. 원작은 꽤 고리타분하다고 하는데, 역자의 역량 덕분에 책이 살아난 것 같다.
그래서 역자분 이름을 다시 보니 오 마이 갓! <폭주 노년>과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를 쓰신 김욱 선생님이시다. 70세에 번역을 시작하여 85세인 오늘까지 현역 번역가로 일하고 계신. 이런 분의 평생의 삶에서 터득한 안목으로 편집, 번역된 글이니 더욱 믿음이 간다. 한 책을 읽으며 두 선생님의 삶의 지혜를 느끼는, 묘한 독서를 경험했다.
여튼, 책을 덮으며, 자기 관리 잘 하여 건강한 심신으로 오래 살다보면, 평생 읽고 쓰며 발전하는 것은 나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희망이 솟았다. 자, 오늘 하루 또 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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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저자의 작품 가운데서도 대표자이라 할 수 있는 <지적 생활>과 <자서전>, 에세이, 일기, 편지 등에서 작가의 지적 성찰이 잘 드러난 명문들을 한데 추려 모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쓴 책입니다. 지적 생활이 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 없이는 지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연마해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7)”라고 지적했다. 지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연마해야 가능한 것이지 노력 없이 지적 생활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예술가, 예술평론가, 작가이며 귀족 출신으로 평생 사상표현의 자유를 추구해왔다. ‘지적 생활’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이며 저서로 <지적 생활>, <예술에 대하여>, <프랑스인과 영국인>, <행복의 탐구>, <자서전>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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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작품 가운데서도 대표자이라 할 수 있는 <지적 생활>과 <자서전>, 에세이, 일기, 편지 등에서 작가의 지적 성찰이 잘 드러난 명문들을 한데 추려 모았다. 지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보다 지적인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점점 더 가속화되는 편리한 기계문명은 우리의 지적 욕구마저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강요한다. 우리는 의존이라는 편리성에 길들여져 버렸다. 지적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이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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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전을 이제야 읽다니! 더 일찍 읽지 못해 통탄할 뿐이다. 한 문장 한 문장 통감하고 실천하고픈 내용들이 잔뜩이다. 심지어 표지도 예쁘다. 한참 읽는 도중에 갖고 다니다가 도둑놈 심보 지인에게 빼앗겨 다시 주문하게 되었다. 남의 앞접시에 담긴 음식을 덜어가는 꼴이다. 그만큼 이 책은 그 책표지조차 인간의 탐심을 자극하는가보다. 본전 생각하느니 새로 주문하고 내 시간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바로 재주문한다. 이 책과 함께 새로워질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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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점수 따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배움 예찬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방법론을 논하는 책 (이하 "자기계발서")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주제의식을 가졌다고도 느껴진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 (점수, 자격증 등)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논하다보니 학습내용 마저도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이 과목은 과락을 면하는 정도만 공부하자, 이 부분은 시험에 거의 나오지 않으니 넘어가자,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니 이렇게 일단 외워두자 - 뭐, 주로 이런 문장들이었다. 한때 이런 단호한 말들에 혹해서 경주마 처럼 앞만 보고 달렸는데 지금 보면 나와 영 맞지 않는 조언이었다. 반면 '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독자에게 잠시 멈춰서서 생각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스스로의 궁금증을 존중해주고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본인이 직접 찾아가도록 용기를 주는 책이다. (더 긴 글은 여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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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책의 제목에 쓰여진 '지적 생활'이라는 단어는 지은이인 필립 길버트 해머튼이 최초로 사용한 단어라고 한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 평론가이자 작가였으며 평생 지적인 생활을 위해 애쓴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서문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지적인 생활이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적 생활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적 생활이라는 우아한 단어의 느낌이 비해 누구나 이해하기 쉬울 만큼 쉽게 읽힌다. 게다가 지은이가 살았던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결코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지적인 생활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시대라도 적용 가능한 조언들이 담겨 있으며 꼭 지적 생활이라는 단어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침이 될만한 가치를 설명해 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각 장의 글이 지은이가 정한 주제에 따라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가장 첫 장은 '지나치게 일하는 젊은 작가에게'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지은이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그 대상을 일반화하되 구체적으로 한정지어서 글을 전개하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제공하는 조언은 구체적이며 좀 더 이해가 쉽도록 하기 위해 실존 인물을 예로 들기도 한다. 지은이는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얘기했는데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선다'는 문장 자체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목적을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지적 생활이란 삶의 원초적인 목적을 잊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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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자가 해당 주제에 맞는 다양한 분야의 상대방에게 진심어린 조언의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쓰여 있다. 편지를 읽는것 같은 친숙한 글로 가독성이 뛰어나며 매 편지마다 공감과 깊은 가르침을 주고있다. 그중 첫번째로 가장 강조하는것이 바로 건강이다. 많은 천재들이 건강을 해치는 과도한 집중으로 생을 일찍 마감하는데 저자는 이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건강을 유지하며 오랜세월동안 지적생활을 건강히 유지한 많은 인사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지적 생활을 영위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욱더 참되고 깊이있을 수 있는지 본인과 본인의 지인들인 다방면의 지적 유명인사들의 방식들을 소개하며 조언한다. 이책의 진짜 반전은 바로 저자가 1800년대의 사람이며 출간된지 백년도 훨씬 넘은 책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세련되고 현대적이어서 엊그제 출간됬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할수 없을것인 이 책은 지적 생활의 즐거움을 올바르고 참신하게 만끽하게 돕고싶은 저자의 시대를 뛰어넘는 진심어린 조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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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때로는 쉼없는 독서, 쉼없는 노력에 대한 회한이 들때가 있다. 책을 읽는 것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그렇다. 인간은 지적인 탐구를 타고 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에 대한 배고픔은 단순한 허영이 아닌, 본능인 것이다.
앞으로 좀더 편안하고 행복한 독서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