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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에 나온 대로, "게임의 룰을 바꿔 놓았다"고 평가 받을 만한, 특정 장르를 넘어 문학사 전체에 우뚝 자리매김한 걸작이요 고전입니다.
<삼국연의>에도 적벽 대전을 앞두고, 황개는 주유와 호흡을 맞춰 소위 고육책으로 조조를 기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작품의 발단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영국 측의 첩보 활동을 번번히 무산시키며 일급 스파이들을 족족 적발, 생명을 앗거나 무력화시킨, 동독 측 고위 방첩 책임자 한스디터 문트를 응징하려는 계획에서 비롯합니다.
주인공은 앨릭 리머스(Alec Leamas), 동베를린에서 일어나는 영국측 첩보활동의 총책임자입니다. 임무를 마치고 장벽을 통과, 아군 측에 귀환하려는 찰나 인민경찰 측에 적발되어 사살당한 카를 리멕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보고 그는 말할 수 없는 자괴와 비탄에 빠집니다. 이대로는 안 되며 반드시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의 상급자인 "관리관"도 같은 생각입니다("관리관"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 내내 저 직함[?]만으로 등장하는데, 원서에는 대문자로 시작하는 Control로 통합니다). 도저히 문트를 이길 수 없으므로, 문트가 그런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배후에는 사실 이 자가 영국 측의 사주를 받은 이중간첩인 덕이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켜, 동독 당국의 손으로 제거하게 만들자는 게 이들의 의기투합한 바입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잘 등장하는 조지 스마일리가 이 작품에도 잠시 나와, 동독 당국("압타일룽")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실업자, 범죄자, 수형자 등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 쓴 채 망가진 앨릭을 격려, 위로하고 있습니다. 앨릭은 첩보 기관에서 짤린 후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온갖 구차한 직업을 다 전전하는데(물론 다 눈속임을 위한 설정입니다), 하필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기간 동안 리즈 골드라는 이름의 여성과 사랑에 빠집니다. 앨릭은 본디 냉혈한 타입이라 아내와 이혼한 후 어느 이성과도 이런 감정 상태에 처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점에서 둘의 만남은 정말 운명적이었습니다. 윗선 그 누구도 이 점은 고려에 넣지 않았고 말이죠.
고지식한 동독 첩보 기관 책임자이자 문트의 부관인 피들러는, 앨릭과 "관리관"이 짠 술수에 보기 좋게 넘어가, 드디어 문트를 당국에 이중 간첩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당성이 투철한 엘리트들이 맡곤 하는 게 이 직책이라, "청문회"에서 문트를 고발하는 피들러의 논변과 수사는 실로 화려하고 치밀합니다. 앨릭은 증인으로 출석해서, 자신은 문트가 이중간첩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며 짐짓 의뭉을 떨고 있는데, 이는 "니가 결론을 내거나 유도하지 말고, 자발적 추측을 그들이 하게 하라"'는 Control의 지시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참 볼만한 전개인데, 이후에 두 차례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구체적인 건 여기에 적을 수 없고.... 다만 이런 결말을 은근 암시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 눈치 빠른 독자가 그로부터 진상을 재구성하는 것도 사실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데.. 다만 어떤 이는 스마일리가 사실상 OO의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몄다며 그를 맹비난하더군요. 그리고 그런 결말은, 이 작품 처음에 나온 카를의 비극적 최후와 오버랩시키면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고도 하고요.
전직 첩보원이기도 했던 작가의 작품이기에, 밀도와 실감과 심도 있는 주제의식은 여타의 첩보물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장르문학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고차원의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공통적입니다. 사실 come in from the cold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오다"라는 뜻보다, 소외되고 힘든 직무로부터 대우 좋은 곳으로 복귀하다 정도로 새겨야 하는데, 이 유명한 제목이 한국어로는 저리 굳어버려 어쩔 수가 없죠. "동독"은 그리 추운 나라도 아니고, 내용에도 나오듯, 진짜 추운 나라(소련)는 여기서 배경으로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작품 처음에 나오는 Control의 대사 measure for measure(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이기도 합니다)가 사실은 일종의 복선이고, 소설 전체를 통해 깊은 의미를 지니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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