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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능으로 만드는 전문가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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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사회」 원제: DISABLING PROFESSIONS 이반 일리치의 주장이 지금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20세기 중반 이미 시민들을 불능으로 만드는 전문가들의 시대를 예견하고 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176p의 짧은 책이라 분량으로서는 아쉽지만 이반 일리치의 외 ①의료만능사회 ②서비스 사회의 정치학 ③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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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사회」

원제: DISABLING PROFESSIONS

이반 일리치의 주장이 지금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20세기 중반 이미 시민들을 불능으로 만드는 전문가들의 시대를 예견하고 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176p의 짧은 책이라 분량으로서는 아쉽지만 이반 일리치의 외

①의료만능사회

②서비스 사회의 정치학

③변호사와 사법 독점

④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등 세 부분에서 각기 다른 저자들이 큰 주제인 ‘전문가들의 사회’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분명히 주제를 표현해주고 있어서 좋았다.

 

특히 "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 주제단락에서는 기술공으로 오래 근무한 저자가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한 학문을 주체적이고 쉽게 끌고 나간 힘 있는 글쓰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빛나는 글이다. 아마도 실제 노동자가 자신의 삶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파고 들어가면서 가지게 된 아우라에서 분출되는 힘일 것이다.

대략적으로 소개하자면 이반 일리치는 20C를 인간을 불구화하는 전문가시대라고 명명한다.

 

정치가 시들어버린 시대, 유권자들이 교수들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법제화할 힘을 전문관료들에게 위임해버린 시대로 정의하며 따라서 기술전체주의(techno-fascism)를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마치 중세의 사제들처럼 더 상위의 엘리트집단에게 이익을 챙겨주는 대가로 그들의 양해를 받아 권력을 보유한다. 그리고 의료, 법률, 교육,기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자유전문직들은 지배적 전문직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사용가치의 해체, 시스템이 역생산성을 낳은 문제점 등을 힘주어 지적한다.

먼저 시스템의 역생산성문제란 무엇인가?

 

자원이든 비용이든 그 수치가 증가되어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효용이나 만족도가 체감하는 그래프를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는 소비의 증가가 일정 한계를 넘으면 삶의 질 측면에서 저하를 의미한다.

 

좀 더 구체화해보자. 현대사회는 서비스사회이다.

서비스는 돌봄(care)=사랑을 필요로 한다.

필요는 결핍을 낳고 필요는 산업경제 속에서 적절한 수입을 쫓아서 움직인다. 따라서 필요한 것, 무엇이 결핍인지가 재정의되고 과다생산(풍성히 논의)될수록 적절한 수입은 올라간다.

여기서 많은 교육문제, 의료문제, 법률문제, 노동자의 취업문제등은 아무리 자원을 쏟아 부어도 해결되지 않는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료는 의원병으로 의사들이 병을 만든다.

예전에는 병이 아니었던 대머리, 당뇨, 혈압상승등 많은 부분에서 병으로 분류되고 이름 붙여져서 의사들의 치료와 관리대상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건강의 개념까지 확대되어 건강이라는 큰 틀에서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되는 관리-비용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물음들이 적절한지조차 일반 소비자들은 제기할 수 없다. 즉 무엇이 적절한 물음인지 정의할 권리가 서비스제공자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들은 필요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가진다.

 

교육은 교육전문가들이 모여서 카르텔을 만들고 그들이 만든 체계를 확산-승인시켜서 제도권 내 교육이 아니면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배움은 사라지고 교육서비스라는 상품을 구입해야하는 소비자의 막중한 부담은 나날이 늘어간다.

의료만능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듣는 학생이 우수하고 높은 승인을 받는 것처럼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에 학생처럼 순종적인 태도를 취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좀 더 심한 경우에는 어떤 제지를 당할지 모른다.

 

"변호사와 사법 독점"에서는 어떻게 해서 독점이 수립되는가를 알아낼 수 있다.

독점을 수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절차를 고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으로 20C후반은 전문가들이 숭배를 받은 시대, 전문가들의 조언이 값비싼 상품이 된 시대였다.

이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비형사사건의 경우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려고 하고 그들의 전문지식이 자신의 문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과연 그럴까?

 

왜 입법을 하는 기관에서는 모호하고 어려운 법률적 언어를 사용하여 일반시민이 법률적 지식에 다가가기 계속 힘들게 만드는가?

사실 판사들은 해당사건에서 무엇이 공정한지 결론을 내릴 때 눈앞에 있는 증거로부터 결론을 끌어내지, 법조항이나 판례로부터 추론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를 시간이 늘 부족한 변호사에게 제대로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또 그들에게 값비싼 수임료를 지불해야하는 상황으로 더욱 몰리고 있다.

이제 “경제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판사들의 경제철학과 사회철학에 의존”하게 되었고 사회가 나아가려는 방향의 맥박과 그것의 분출이 일어나면 언제나 그것은 법의 심문에 붙여진다. 이것은 법적으로 정당한가?!

 

나는 여기서 기술전체주의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결정한, 전문가들에 의해서 관리되는 사회말이다.

마지막으로 "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에서는 과학적 관리가 얼마나 비인간적 개념인지 설명해준다.

매니지(manage)라는 영어단어는 ‘말을 길들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maneggiare'(마네기아레)에서 왔다. 즉 말에는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며 노동자를 말을 길들이듯이 다루는 기술이 manage(매니지)이다.

 

즉 “모든 가능한 형태의 두뇌노동을 작업장에서 제거하여 기획 또는 설계부서에 집중시킬 것”을 과학적 관리자의 아버지인 프레드릭 테일러는 주장했다.

노동자가 숙련노동기술을 가지면 독립성↑- 노동비용↑-권한↑-그러면 임금↑

따라서 독립성↓-저급기술로 대량생산을 유도하면 임금↓이므로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효율적이고 이윤에 적합하다.

 

노동자=일손(손만 필요하다: 머리와 몸은 따라 오는 것)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무의미하고 지겨운 파편화된 일로 바뀌면 여가 또한 소비를 위한 산업이 된다.” 이때 다시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피트니스 전문가, 여행전문가, 심신안정 전문가, 의료전문가,...

그들이 우리에게 휴식을 위한 더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만들지 노동자가 결정해야 한다. ‘대량생산체제에서 시스템이 역생산성을 낳는다’는 것을 기억했다면 지금 이 체제를 계속 지지하는 것에 잠시 천천히 물음을 던져봐야 되지 않을까!

YES마니아 : 로얄 d******2 2015.12.1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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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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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근대 사회의 출현 이후 그들은 많은 분야에 전문가라는 깃발을 걸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도와왔다. 그들은 일상에 바쁜 우리가 좀처럼 관심을 두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존재였고 이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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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근대 사회의 출현 이후 그들은 많은 분야에 전문가라는 깃발을 걸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도와왔다. 그들은 일상에 바쁜 우리가 좀처럼 관심을 두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존재였고 이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 거대한 성을 지었고 견고한 담합을 이뤄냈다. 그들은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줬고 막대한 지식 격차를 이용해 우리를 눈 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여전히 이타심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을 대하는지 의심해 봐야 할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필연적으로 고착화 된다. 전문가는 자신에 대한 일반인의 의존이 항구적이며 맹목적이길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무지한 존재로 남길 원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그들의 세계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험 전문가는 맞춤이라는 명목으로 도저히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갈기 갈기 상품을 쪼개며 의사와 법관들은 모국어로 쓰여도 해석할 수 없는 전문 용어로 자신의 보고서를 채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백기 투항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밥 그릇을 넘보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하수의 방식이다. 절대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것. 침범의 의지를 '스스로' 꺽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수성 전략이다.


전문가 사회의 거래는 오직 상품과 화폐로만 구성된다. 이 말은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뭐 이리 당연한 말을 하냐고? 의사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애를 낳을 땐 산파로 소문난 동네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고 감기에 걸리면 들과 산에서 구한 약초로 병을 다스렸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가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고 처방전을 써준다. 과거엔 상호 부조나(애 잘 받는 아줌마) 자연의 혜택(약초)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진료비와 주사비와 약 값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돈 없이는 생존권도 없다. 현대 서비스 사회에서 빈부의 차는 사치품을 더 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느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 좋은 주거 환경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러니까 삶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누릴 수 있느냐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흐름을 되돌릴 만한 힘은 없다. 한 때는 우리도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맹목적으로 전문가에게 위임한 결과 이제는 완전히 불구가 됐고 이로 인해 더더욱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난 전문가들은 이제 필요 자체를 정의함으로써 권력을 영속화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반려견 행동 전문가와 청소, 정리, 이사 전문가와 헬스 케어 전문가, 입시 상담 전문가, 스트레스 관리 전문가, 라떼 아트 전문가, 네일 아트 전문가, 레저와 여행 추천 전문가를 필요로 했는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너무 바보가 되어 정리도 청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심지어 내가 뭘 먹어야 하는지, 아니 뭘 먹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인간이 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우리 대신 우리의 필요를 정의하며 나아가 그 필요를 교묘하게 욕구로 바꿔 놓음으로써 우리가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순전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잘 나가는 상품들이 소비자의 필요(needs)에 호소하지만 더 위대한 사치품들은 우리의 욕망(wants)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전문가 사회의 가장 끔찍한 점은 그것이 가진 정치적 함의다. "전문 서비스의 일방적 공급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반민주적인 지도자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 훨씬 용이하게 마련이다."(p.113).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가들의 첫 번째 임무는 복잡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정의해 그것으로부터 일반인들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사안을 직접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전문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 함으로써 자발적인 노예가 된다. 그리고 노예가 된 자신을 이끌어줄 강력한 독재자를 원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공유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알게 된 21세기 선진 시민에게 이 같은 상황은 얼핏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2007년 12월 19일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경제 전문가를 대통령으로 뽑은 적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s*******r 2016.02.28.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