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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위한 기획에 대해 언급하는 책 중에 이전 시대에 쓰였지만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특히 콜럼버스와 네브리하 둘을 언급하며 영토와 의식(또는 무의식)의 영역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방법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모어(모국어)의 형성을 추적하며 토박이말과 대별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몇 구절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모어라는 용어는 처음 쓰였을 때부터 한 번도 토박이말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를 뜻했다. 103 따라서 토박이말은 교회에서 쓰는 라틴어나 궁정의 프랑크어처럼 전문화되고 학습되는 언어와 달리, 11세기에 이르까지 토속 음식이나 포도주의 맛처럼, 또는 집이나 괭이의 모양처럼 다양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모어라는 용어가 난데없이 출현한다. 108 모어라는 용어는 처음쓰인 순간부터 일상어를 제도적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바꿔놓았다. 111 1장에서 언급되는 야만인에서 저개발국민이 되는 과정처럼, 네브리하가 모어 문법체계를 확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이전에 자급자족 상태의 사회에서 브레이크 없는 성장, 발전 사회로 나아가는데 그림자노동이 은밀하게 강요되는 형편과 유사합니다. 글의 나뉘어 있는 장들의 행간과 문맥은 권력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통치대상, 또는 식민지인, 또는 여성에게 유무형의 일방적인 강요를 해왔다는 것을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제목에 있는 그림자노동이라는 표현보다 오히려 다음의 구절이 책 전체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토박이말은 대화로 맺어진 완전한 인간들 사이의 교류에서 생기지만 가르치는 언어는 소음을 방출하는 것이 임무인 확성기와 동일한 주파수를 갖는다. 토박이말과 교습되는 모어는 구어라는 스펙트럼의 양 끝과도 같다. 언어는 철저히 교습될수록 철저히 비인간적이 된다. 훔볼트가 말한 것도 이런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진정한 언어는 수학을 가르치듯 가르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며 오로지 북돋을 수만 있다고 했다. 126 저자는 인간을 억압하는 몇몇 기획들을 비판하며 자급자족, 토박이말 등의 애초에 그것 자체로 충분한 것들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인위적으로 강요된 일체의 것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몇 개의 장으로 나뉜 이 책은 각각의 에세이로 보기보다는 개념 사이의 연결지점을 궁리하고 짜임의 일관성을 파악한다면 더욱 깊은 성찰이 가능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호모사케르, 감성의 분할, 비식별성의 영역 등의 개념과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을 연결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권력에 의해 법외의 존재로 취급당하고 권력의 작용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감성의 영역이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에 어느정도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