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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문제는 관련 사건이 있을 때에만 관심사로 떠오르는 이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평소에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 필요하다면 법적조처를 갖추도록 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는 어떤 조처를 해주었으면 하는지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캇 펙 박사가 쓴 <영혼의 부정>은 ‘혼돈에 빠진 안락사, 그 참된 의미에 관하여’라는 부제처럼 안락사에 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책입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제1부는 안락사의 정의를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비종교적 세속주의의 정신적 문제, 영혼의 문제 및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안락사문제와 관련된 법률적?사회적 측면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 unplugging을 번역한 ‘플러그를 뽑는 것’은 아마도 소극적 안락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인위적인 생명연장이나 적극적인 안락사에는 반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과정을 경과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조처가 주어져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락사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스캇 펙 박사는 1938년에 창설된 미국 안락사협회에서 내린 “심한 육체적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통증없는 수단을 동원한 생명의 종지(終止)”라는 정의에 찬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안락사란 비교적 말기 단계의 현존하는 치명적 질병으로 육체적 죽음에 처한 경우, 그 고유한 생존적, 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받지 않고 행하는 자살 행위를 의미한다”라고 좁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플러그를 뽑는 시점에 대한 그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환자가 분명 치명적 질병을 앓고 있으며 병의 진행 상황이 상대적으로 말기나 최종단계에 있는 경우에 한한다. 2. 이것은 궁극적으로 육체적 요소에 관한 의학적 결정이어야 한고 말기적 질병의 육체적 요소 이외에 환자 생명의 질에 대한 평가가 개입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3. 이것은 결국 의학적 결정이기 때문에 의사가 결정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례에 있어서 특정한 모호성이 있다거나 관계 당사자 사이에 충돌이 있을 경우, 의료윤리위원회가 하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환자나 그 가족도 이 결정에 평등하게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4. 이상의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인간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다거나 인도적 판단이 아닌 경우에는 플러그를 뽑는 결정이 내려져서는 안된다. 이 책의 제목 “영혼의 부정(Denial of the Soul)"은 안락사를 선택하는 일은 바로 신이 창조자라는 사실과 그 신이 예정한 죽음의 시간을 거부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산다라고 말하고는 합니다만, 사실은 ”모든 일생에 걸쳐 우리가 계속해서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는 일생동안 계속해서 어떻게 죽느냐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세네카의 말대로 하루하루는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안락사를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치명적이고 회복할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 대하여 적극적인 치료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보호자가 과거에 비하여 분명 많이 적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캇 펙박사가 정의하는 ‘훌륭한 죽음’의 정의를 옮깁니다. 1. 그것은 자살이나 살해의 결과가 아닌 자연사라야 한다. 2. 그것은 육체적으로 통증이 없어야 한다. 그 무통은 자연적인 것이든 적절한 의학적 통증 완화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다. 3. 죽는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사망하여야 한다. 즉, 그가 죽더라도 살아남을 사람들과의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4. 죽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즉, 죽음을 부인한다거나 죽음이 진행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안된다. 5. 죽는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이 죽음을 맞을 준비가 외어 있다는 의사를 표현해야 하며 사별인사를 표하여야 한다. 6. 위의 다섯 가지는 그를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 생존적 고통의 전 과정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한다. |
| '영혼의 부정'은 안락사 논쟁을 끝내기 위한 책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하기 위한 책이다. 읽고 난 후에도 인생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스캇 펙 다운 책이다. 아주대의대 임기영교수님의 말씀이다. '영혼의 부정'(DENIAL of THE SOUL).... 언제부턴가 책을 시작하기 전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하고 한참을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안락사에 대한 책임을 알고 있었기에, 단순하게 영혼=죽음이라 생각했다. 역시, 제목은 그 책을 한번에 알 수 있게 하는 의미심장한 선택인 것같다. 다읽고 난 지금은 '영혼'에 대해 더 모호해지기는 했으나, '영혼의 부정'이란 말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또한 스캇 펙의 고심도 함께 느껴진다. 혼돈에 빠진 안락사, 그 참된 의미에 관해 피력해본다는 이 책은, 그것을 절대지지도 그렇다고 거부도 하고 있지 않다. 단지,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다 정말 인간답게 끝을 맺자는 인간본연의 자세에 바탕을 하고 있다. 스캇 펙 자신이 의학박사이기에, 자신의 환자들과 다른 여러 사람들의 상황을 예로들어 이 어렵고도 무거운 주제를 조심스럽게 풀어가셨다. 살인,자살,자연사의 경계뿐아니라 죽음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등, 객관적인시선을 잃지 않고 읽는이 또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며 밝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빠의 투병생활로 죽음에 임박한 이들과 가까이서 여러달 생활해보면서 느낀것이 있었다면, 그건 '고통완화'라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의 의료계는 치료라는 목적에서만 기인하여 맹렬히 전진하고 있는 것 같다. 허나,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는 또는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치료란 그다지 의미있는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더한 고통을 안겨줄 뿐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수용'의 자세를 담담히 가질수 있는 일에 남은 이들은 주목해야할 것이다. 죽음을 삶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지 않고,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자신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그려보아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평온한 모습으로 마감할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플러그를 뽑을수도 있으리라..... 책 뒷부분의 조금은 강하게 표현된 종교적관점은 썩 맘에 들지 않지만, 고통완화나 호스피스에 대한 발전에 대해 힘있게 주장하는 모습은 참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제 우린 죽음이라는 마지막 축제를 즐겁게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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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요점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고작 육체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 책은 제법 무거운 주제인 ‘안락사’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안락사의 정의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을 색다른 정의인 ‘플러그를 뽑는 일’로 설명한다. 사실 여기에 적혀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안락사’ 자체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고통’이라는 주제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옹호하는 주요한 근거로 내세우는 ‘끔찍한 고통’이 사실은 현대 의학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이제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자연적인 죽음에는 반드시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리라는 가정 하에 그 육체적 고통의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서 안락사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공포는 불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육체적 고통을 적절하게 완화시켜줄 수 있는 의학적 약품창고가 있으며, 우리의 약품창고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풍토가 개선되고 있고, 치명적 말기 질병 환자들에게 병원에서 나와 호스피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음에 따르는 지속적인 공포를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2부에서는 안락사 논쟁에 뛰어드는 저자의 독특한 전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독교적 배경을 이 문제에 대입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 지으려는 현대의 세속적인 흐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서 저자는 ‘죽음’이 사람의 성숙에 주는 많은 영향들을 설명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마지막인 3부에서는 좀 더 기술적(技術的)인 차원에서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구분한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기계론적 견해에 근거한 안락사 지지는 결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 수 없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헷갈렸던 점은 저자는 안락사에 관해 찬성을 하는가, 반대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분법적인 견해를 저자는 썩 내켜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사고에 익숙해 있는 나로서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선 이 부분을 정확히 알기가 참 힘들었다. 다 읽고 나서야 저자가 제한된 의미에서의 안락사를 ‘플러그를 뽑는 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플러그를 뽑는 일’이란, 치명적 질병의 말기에 이르러 어떠한 의료적인 시술도 환자를 치료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단지 기계장치들을 이용해 ‘억지로’ 육체적인 활력을 유지시키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 강제적인 생명유지장치들을 환자로부터 떼어내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분명히 자살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유의 생명을 끊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예컨대 뇌사 상태에서 뇌나 신체 조직이 극도로 손상된 상태에서 인공호흡장치와 각종 주사액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상태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안락사의 정의 자체를 하기 싫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들의 속성상 한 번 정의를 내리면,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빠져나갈 구멍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저자는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혼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이다. 동시에 오늘날 무사공평하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과학’ 또한 사실상 하나의 ‘판단’과 ‘가설에 근거한 믿음’이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부분도 중요한 내용이다.(이 부분에 관해서는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서평을 쓸 때 조금 더 서술하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공교육에 끼친 결과로 ‘더 이상 학교에서 가치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는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가치’가 아닌 ‘정보’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붕괴를 낳고 있다는 증거들이 점점 자주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에 담겨 있는 주요한 함의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논거로 사용되어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책에는 내가 갖는 견해와 다른 견해들도 몇 가지 등장하곤 한다. 육체적 부활의 부정이라든지, 제한된 의미에서의 안락사에 대한 찬성도 아직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제를 다루는 저자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세심한 접근과, 저자의 주장이 담고 있는 실천적인 영역에서의 유효함은 결코 깎아내릴 수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안락사에 대한 보다 진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된 기회를 얻은 것 또한 개인적으로는 큰 수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