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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모든 선택에 리스크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30여 년 동안 공부하고, 30세부터 20여 년 동안 일한 뒤, 50여 세에 정년을 맞아 100세까지 살아가야 한다. 화이트칼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간이 20년뿐인 것이다. 심지어 30세에서 50세까지, 20년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내 월급에는 취직되기 이전의 내 삶, 50세 이후의 내 노후, 심지어 내 자식의 미래와 내 위 세대인 부모의 노후까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러니 우리는 돈을 벌기 전에도 불안하고, 돈을 벌고 있을 때도 불안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지나도 불안하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불안의 사회학>에 나타나는 사회는 불안으로 만연해 있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개인의 불안이 언급된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분명 독일의 사례이건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복지선진국으로 명명되는 독일임에도 중산층은 중산층에서 이탈될까봐 불안에 떨었고,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보다 밀려나 건강 등을 잃고 일할 수조차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까봐 불안해하고 있었으며,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은 관계가 허물어질까봐 전전긍긍했고, 개인들은 인터넷에 내 모든 개인정보가 떠다니고 국가가 나를 사찰할까봐 걱정했으며,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위협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책에는 불안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우리가 불안을 제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혼자 공포에 떠는 것을 넘어, 타인까지 해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불안은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 세금이 무한정 들어간다', '제3국 사람들이 우리 일자리를 다 빼앗아간다'부터 흔히 일베하는 남자들의 여성혐오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개인을 파편화시키며,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 사이에서 누군가는 사회적 이익을 가로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주는 모 집단이 될 법하다. 불안이 이미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라면 그것을 사회가 존재하므로 생산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불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불안이 어떻게 생산되고 또 소멸하는지 들여다보라고 한다. 이는 즉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통제한다면 좀더 긍정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통제할 수는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불안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법은 사실 꽤나 미약하다. 타인은 원래부터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안정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불안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것 등인데, 이것으로 어떻게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안을 준 것이 '타인'이듯, 불안을 제거할 방법 역시 '타인'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을 적으로 간주했을 때는 분명 불안을 주는 존재이나, 그를 공동체의 한 사람,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았을 때는 비로소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언제나, 정답은 공동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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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아쉬운 점과 한계를 많이 느꼈다. 다른 나라의 말을 옮기면서 흔히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데 번역자의 역량에 따라 언어의 묘한 뉘앙스를 온전히 옮기지 못해서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이 겹쳐 책의 재미가 많이 감된다는 것과 사회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나처럼 평범한 독자들은 책 뒤편 각주에 열거된 연구사례 및 인용 문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책의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 맨 마지막에 번역자가 쓴 소감을 읽고 내가 느낀 불편함을 번역자도 똑같이 느꼈다는 대목에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예전에 읽었던 번역서들 중 훌륭한 번역으로 모국어로 출판된 것처럼 독서 중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던 책들도 있었던 반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뭔가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책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던 책도 다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독서 중 책에 대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독자로서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레포트 작성이란 중차대한 사명감으로 이 책을 완독했다. 나에게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로 한 시간이었다. 독서소감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독일사람, 한국사람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불안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정도 라고..
저자는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라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안정됐다는 독일에서 수없이 많은 책 소재 중에서 왜 굳이 불안에 대하여 책을 썼을까? 이게 저자의 전공인가 독일 국민들은 한국보다 더 불안감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일까? 등등 저자의 집필계기에 대한 궁금증은 많았지만 알 길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책이 나옴으로 인해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괜한 노파심마저 생긴다. 마지막 장에서 불안감 해결책이 조금 언급되지만 완독을 목표로 단순히 읽기만 했을 뿐 내 수준으로는 진정한 행간의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ㅠ ㅠ “누군가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자기가 말하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이는 가르칠 때도 듣는 사람이 아주 이해하기 쉽게 말하고, 반대로 자기가 말하는 내용을 잘 모르거나 어설프게 아는 이는 가르칠 때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게 말한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튼 이 책은 어렵고 재미없다. 독일은 현재 eu연합국가 중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가와 상관없이 스스로 불안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존재하는 공통점인가 보다. 우리나라 속담에 “만석군은 만가지의 근심이 있고 천석군은 천가지의 근심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막연히 독일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극우주의자 등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지만 성공적인 통일, 안정된 국가경제 상황, 저렴한 대학등록금, 최근 난민에 대한 관용 등 우리나라가 본보기로 삼아 국가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할 제도가 여러 가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꿈같은 나라(?) 독일이 왜 불안감 속에 살고 있을까 독일에서도 이민자, 저소득층의 자녀가 많이 다니는 학교는 중산층 학부모에게 거리낌의 대상이며, 박봉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은 현재 한국사회와 너무도 흡사하다 안타까움과 동병상련을 넘어 독일마저도 라는 배신감이 생겼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 소득 재분배정책은 한국과 비교해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일까? 독일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이 부정적인 의구심만 키우는 역할을 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