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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지난 책을 즐겨읽는다. 그런 책 가운데 아주 훌륭한 책을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혹 '절판'된 책에서 발견되기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아쉽다. 만에 하나라도 '내 리뷰'를 통해서 다시 주목 받고 재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물론 이 책은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름에 대한 어원'을 밝히는 책이다. 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동식물 61종의 '이름'을 42꼭지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내용의 일부가 '수록'된 책이라서 초등필독서로 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말의 어원은 '순우리말'에서만 찾지 않고, 몽골과 만주, 일본의 말 들까지 살펴보아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다. 중국말과는 달리 이들의 말은 우리 말과 '어순'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발음'까지도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자어'도 우리 말의 어원을 찾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이전에는 '한자어'를 우리 식대로 써왔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 비롯된 '한자어휘'는 빼고 말이다. 그럼 이 책에 수록된 인상적인 '이름에 얽힌 어원'을 밝히며 책소개를 이어가도록 한다.
먼저, '황소'는 몸집이 큰 수소를 뜻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누렇다'는 뜻을 지닌 한자어 황(黃)에서 비롯된 것이 절대 아니다. 황소의 '황'은 크다는 뜻을 지닌 '한'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한쇼 > 항쇼> 황소]의 차례로 변형을 거쳐 오늘날 '황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황소는 대부분 '누렁소'들 뿐이다. 그래서 더 많이 오해를 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1920년대 말에 일제가 우리 나라의 소를 누런색으로 통일시켰고, 1970년대 한우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한우 개량 사업'을 펼치면서 오늘날 '누런색 소'만 남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칡소' 등 한우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점차 누런소가 아닌 황소도 만나게 되어 뜻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한국의 호랑이'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 때부터 호랑이 사냥을 펼치고 일제강점기 때, '말살 정책'이라고 할 정도로 조직적인 범 사냥을 하였고, 드디어 '한국전쟁'을 끝으로 호랑이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국토의 70%가 산지일 만큼 우리 나라의 호랑이들은 정말 많았다는데 아쉬우면서도 지금까지 서식하였다면 우리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등산가(?)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복잡한 심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호랑이는 '맹수 중에 맹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한자어일까?
국어사전을 보면 '호랑이(虎狼-)'라고 한자어로 표기되어 있다. 순우리말로는 '범'이라고 부르고 말이다. 하지만 근래에 국어학자들이 밝히기를 '호랑이'나 '범'이나 몽골말과 만주말에서 뿌리가 서로 같음을 밝혀냈단다. 옛 몽골말로 호랑이는 '할빌'이고, '할'과 '빌' 모두 호랑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할 > 칼 > 콜 > 홀]이 되어 '홀+앙이'가 되어 '호랑이'가 되었고, '빌'에서 '범'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맞다는 주장이다. 이는 우리 말의 어원을 '한자어'에서 무분별하게 찾아내던 고질적인 페단을 줄이는 쾌거로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우리 말이 중국말과 사뭇 달라서 새롭게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취지와도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랑이의 새끼'는 무어라고 부를까? 소는 송아지, 말은 망아지라고 부르는데 새끼 호랑이는 '갈가지'라고 부른다. 앞에서 호랑이를 부르던 말 가운데 '칼'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될 것이다. 이제 '호랑이'가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는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끼 돼지'는 무어라 부를까? 흔히 사투리로 알고 있는 '도야지'는 '표준어'라고 한다. 이 '도야지'를 줄여서 '돼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도+아지'가 되었다는 어원의 구조가 바로 연상이 될 것이고, 새끼를 부르는 말이 '-아지'를 빼고 남은 것인 '도(돝)'이 바로 '어른 돼지'의 이름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성장한 '돝'을 새끼의 이름으로 대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한자어'에서 유래한 이름은 없을까? 아니다. 많다. 해방 뒤에 무분별한 어원 정리를 하던 시절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우리 말'들을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다고 정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정확하고 적확한 경우도 많다. 바로 '지렁이' 같은 경우에 말이다. 지렁이는 '지룡(地龍)+이'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한자어'라고 해서 '외국말'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종대왕 이전'에는 말은 우리 말로, 글은 한자어로 수천 년간 써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쓰던 한자어'와 '우리가 쓰던 한자어'는 분명 구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애매'하고 '모호'하긴 하지만 '분명한 것'부터라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말글인 '한글'을 자국의 '지방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에 쉽게 놀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는 반만년 동안 '우리가 쓰던 어휘'이며, 중국과는 상관이 없다. 심지어 공자도 '은(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면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동이족의 문자'라고 주장하는 중국학자들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심지어 오늘날에 쓰는 '중국문자'는 변형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가 쓰는 한자는 '거의 변형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담컨대, 머지 않아 중국인들조차 자국에서 기록된 고대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 한국에 유학을 와야 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장구의 명칭>(출처:나무위키)
한편, 우리 나라 '나비 이름' 가운데 '부전나비'로 불리는 나비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전'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아서 이름만 보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기 일쑤였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순우리말로 '여자아이들이 차던 노리개'와 '장굿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조이개'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부전(조이개)'과 날개를 접고 꽃 위에 앉아 있는 나비의 모습이 닮아서 불리게 된 이름이란다.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 수십 종의 '부전나비'들이 살고 있으며 심지어 나비 이름 가운데 가장 긴 이름도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라고 13자나 된다.
![]()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출처: 나무위키)
요즘은 '비둘기의 수난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서 사랑받던 새였는데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여기저기 심각한 피해를 주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동네(경기 구리시)에서도 '유해 조류'로 선정되어 공원 곳곳에 [비둘기(유해 조류)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뚱뚱해지고 잘 날아다니지 않는 비둘기를 '닭둘기'라고 놀려대고 있는데, 우리 옛 문헌에 '아래 아'로 '비닭기'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 '비둘기'와 '닭'의 연관성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직 정확한 '어원'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새삼 '닭'과 '비둘기'의 연관성이 발견되어 주목받고 있단다.
새들 중에서 몸집이 크고 겅중겅중 걸어 다니며 깃털의 색이 하얀 새를 통틀어서 '백로(白鷺)'라고 부르는데 '백로'라는 이름의 새는 따로 없는 셈이다. 백로의 순우리말은 '흰 해오라기'라고 한다. 그러니 '백로'는 한자어이고, '해오라기'가 순우리말이다. 그런데도 '해오라기', '왜가리', '대백로' 등등을 모두 아울러서 '백로'라고 묶어 부르고 있다. 그렇다고 이미 부르고 있는 수많은 종의 '새이름'을 다시 바꿔 부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고심을 많이 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 '백조'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기 때문에 걸러줘야 할 말이다. '백조'의 순우리말은 '고니'다.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인 '고니', '큰고니', '흑고니'를 몽땅 묶어서 그냥 '백조(흰새)'라고 부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백조'도 너무나도 굳어진 이름이 되어 버려서 '백조의 호수', '백조자리' 등 다양하게 파생되어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하루 빨리 '고니의 호수', '고니자리'라는 이름으로 바꿔 불러 우리 입에 들러붙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식물의 이름'을 정리하며 마무리하겠다.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는 딱히 우리 말이 없는 실정이다. 은행(銀杏)나무의 열매가 '은색이 도는 살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세쿼이아' 나무와 닮은 새로운 품종으로 중국이 원산지인 '메타(새로운) + 세쿼이아' 나무라고 해서 그냥 '메타세쿼이아'라고 부르고 있다. 둘 다 서양에서는 모두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7세기 이후 '동서양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19세기 이후에는 동양(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서양으로 씨앗을 가져가 널리 퍼지게 된 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나무다. 하지만 '은행'이라는 말과 '메타세쿼이아'라는 말을 듣고서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속히 '우리 말 이름'이 필요하다.
한편,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자작나무는 '숲의 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작나무 숲속을 거닐 땐 매우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인데,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까닭에 우리 나라 강원도 등지에서도 자작나무 숲을 찾아볼 수 있단다. 옛날에는 자작나무의 껍질로 '초'를 만들어 썼다는데, 밀랍으로 만든 '화촉(華燭)'과 발음이 똑같은 '자작나무 화'와 '촛불 촉'(樺燭)을 써서 부른단다. 신혼방을 밝히던 '화촉'은 아닌 셈이다. 아쉽게도 도시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요즘 고급아파트에서 자작나무를 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흔한 벚나무보다 운치 있는 '자작나무'를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나라꽃, 백단심계>(출처: 행정안정부)
마지막으로 '무궁화'를 알아보자. 무궁화는 고조선시대부터 우리 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었고, 신라는 '무궁화의 나라'라고 지칭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무궁화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였다. 더구나 일제강점기 때에는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특징을 살려서 '우리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이렇게 국내외 옛 문헌을 살펴보면 고대부터 우리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지천으로 피던 꽃인데도, 국어사전을 보면 '무궁화(無窮花)'라고 한자어로 표기하였다. 심지어 어원연구학자들조차 '무궁화 근(槿)자를 쓴 '목근화(木槿花)'에서 비롯된 한자어라고 밝히고 있는데, 조선시대 이전에는 '목근화'라는 기록이 아예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주변에 '무궁화'가 있었는데, 과연 '무궁화'가 한자어에서 비롯된 말일까? 라는 의문은 왜 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세종 이후 '한글'로 표기된 책에도 '목근화'라는 표현은 없고 모두 '무궁화'라고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무궁화'의 사투리조차 '무우게', '무게', '무강' 등으로 불리고 있다. 어쩌면 원래부터 '무궁화'는 순우리말 '무궁'으로 불려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 <전국 방방곡곡에 다시 심어야 할 나라꽃, 홍단심계>(출처: 행정안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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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0 서로 이름을 알기에 아끼고 사랑합니다 ―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 이주희·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5.11.30. 13000원 이름을 알 때하고 이름을 모를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사랑스레 지내는 두 사람이라면 서로 이름을 모를 수 없습니다. 아끼고 보살피는 사이라면 서로 이름을 살가이 부릅니다. 오순도순 살갑게 어우러지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기쁘게 이름을 부르면서 활짝 웃습니다. 이름을 모르면 서로 어떻게 부를까요? ‘저기’라든지 ‘거시기’라든지 ‘여보셔요’ 하고 부를 테지요. 때로는 ‘야’라든지 ‘너’라든지 ‘거기’라든지 외치면서 부를 테고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야! 임마!” 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너! 임마!” 하고 부르지 않아요. 어버이도 아이도 서로서로 사랑스럽고 따사로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릅니다. 이웃이라면 이름을 알고, 동무라면 참말 이름을 알지요. 그리고, 이웃이나 동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아요. 이웃이나 동무가 되고 싶기에 이름을 묻고,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려고 마음 깊이 이름을 새깁니다. ‘크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하다’라는 말을 썼어. 우리가 잘 아는 ‘한강’은 한자로 쓰기도 하지만 본디 뜻은 ‘큰 강’이지. (16쪽) 어른들은 그 친구의 머리를 보며 ‘말총머리’라고 했어. 그때는 ‘말총’이 뭔지 잘 몰랐어. 말은 가축이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말이 없어서 말총을 본 적이 없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말총은 ‘말 꼬리털’을 뜻하는 거였어. (35쪽) 이주희 님하고 노정임 님이 글을 쓰고 안경자 님이 그림을 빚은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철수와영희,2015)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꽤 지난 일인데, 스님 한 분이 자그마한 멧자락하고 골짜기하고 숲을 지키려고 ‘꼬리치레도룡뇽’이라는 이름을 부르던 때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그냥’ 도룡뇽도 아닌 ‘꼬리치레도룡뇽’이라는 이름은 무척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스님 한 분이 이 도룡뇽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그저 가뭇없이 사라질 뻔하던 작은 숨결 숲동무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무렵에 부쩍 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강원도 멧골을 휘감으며 흐르는 작은 물줄기 동강에서 사는 ‘쉬리’라든지 ‘비오리’ 같은 이름을 살가이 부르던 사람들 모습도 떠오릅니다. 쉬리라든지 비오리라는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닙니다. 이 숲동무요 숲이웃이 사는 터전을 곱게 지키거나 보살필 수 있을 적에, 사람들이 사는 보금자리하고 마을도 곱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이 흐르는 이름이지 싶습니다.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라는 책은 바로 이 대목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동물이나 식물하고 얽힌 이름을 말밑이나 지식이나 정보로 헤아리기보다는, 동물이나 식물하고 얽힌 이름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우리 삶을 둘러싼 깊고 너른 숨결 살피자는 이야기이지 싶어요. ‘밝은 쥐’, 그러니까 ‘밤눈이 밝은 쥐’라는 뜻인 거지. 어떤 학자는 ‘밤’ + ‘쥐’가 합쳐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해. (42쪽) 고라니와 비슷한 노루는 ‘노랗다’라는 말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해. 일본에서는 노루가 살지 않는데, 이름을 ‘노로’라고 해. 우리나라 말인 노루가 일본에 건너간 거야. (64쪽)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에서 다루기도 합니다만, ‘고니’라고 하는 새를 아직 한국에서는 ‘백조’라는 일본 한자말로 가리키기 일쑤입니다. 어린이한테 읽히는 책에도 “백조의 호수” 같은 말을 씁니다. 한국말은 바로 ‘고니’이고, 고니가 노니는 못은 ‘고니못’이에요. 일본말로 “白鳥の湖水”를 한글로 “백조의 호수”처럼 적는다고 해서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연잎이 떠다니고 연꽃이 피는 못을 ‘연못’이라고 하듯이, 고니가 자주 찾아오는 못이라면 ‘고니못’이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개구리가 많이 살면 ‘개구리못’이 될 테고, 잉어가 많이 살면 ‘잉어못’이 돼요. 못에 있는 물은 못물이요, 못 둘레에서 논다면 못가로 놀러 가는 셈입니다. 그래서, 풀이름을 놓고 살피면 민들레는 민들레일 뿐, ‘포공영’이 아닙니다. 한방에서 ‘蒲公英’이라 쓴다 하더라도, ‘포공영’은 한국말도 풀이름도 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라면 ‘蒲公英’을 쓸는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민들레’라 해야지요. 콩은 콩일 뿐 ‘대두’가 아니에요. ‘大豆’라고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쓸 때에 즐겁고, 한겨레가 예부터 사랑한 이름을 고이 물려받아서 쓸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신발을 벗어 놓은 댓돌 바로 위에 집을 지었지. 거기에 집을 지으면 제비가 싼 똥이 신발에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어. 봄마다 있는 일이니까 어른들은 잘 알고 계셨어. 그래서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제비집 바로 아래에 얇은 나무판을 대었지. (104쪽) ‘갗’은 무슨 뜻일까? 바로 까치의 ‘갗갗’ 우는 울음소리야. ‘갗갗 하고 우는 새’가 까치인 거지. 제비의 이름에는 ‘졉졉하고 우는 새’라는 뜻도 있었지? 꾀꼴꾀꼴 꾀꼬리, 뻐꾹뻐꾹 뻐꾸기처럼 울음소리로 이름을 지은 새들이 많아. (114쪽) 해마다 사월이면 전남 고흥에 있는 우리 집에 제비가 찾아들어요. 우리 마을에도 이웃 마을에도 제비는 무리지어 바다를 건넌 뒤 이곳저곳으로 퍼집니다. 해마다 봄에 다시 찾아오는 제비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만, 우리 집 처마 밑은 봄마다 어미 제비하고 새끼 제비가 부산스레 어우러지면서 복닥복닥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봄하고 여름 내내 제비 노랫소리를 듣고 제비 날갯짓을 지켜보지요. 애벌레를 잡고 나방하고 나비를 잡으며 잠자리나 풀벌레를 잡는 제비를 놀랍게 쳐다봅니다. 우리 집은 마당이나 텃밭에도 풀약을 뿌리지 않기에 애벌레가 많이 삽니다. 요즈음에도 애벌레를 봐요. 십이월이지만 애벌레가 갓잎하고 유채잎하고 모시잎을 갉아먹거든요. 겨울에도 포근한 고장이라 한겨울에도 새 풀이 돋고, 새 애벌레가 깨어나서 풀잎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이 새로운 애벌레는 어느새 번데기를 틀어요. 봄부터 첫가을까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지요. 논뿐 아니라 풀밭과 텃밭에서도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참개구리가 있고 풀개구리가 있어요. 그리고 개구리가 우리 집에서 사니까 구렁이도 함께 살아요. 비가 많이 온 날이면 마당 한쪽이나 자전거 밑에서 구렁이가 웅크리면서 쉬기 일쑤입니다. 늦가을하고 겨울에도 번데기를 봅니다. 새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이 찾아올 적에는 초피나무나 후박나무 한쪽에 대롱대롱 매달린 번데기를 보고요. 나는 아이들하고 우리 집에서 새로 깨어나는 나비를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나비 한 마리는 그야말로 오랫동안 번데기에서 잠이 들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 뒤에 더없이 눈부신 새 몸으로 깨어나서 훨훨 날아요. 부전나비도 범나비도 제비나비도 팔랑나비도 흰나비도 노랑나비도 네발나비도 우리 집 마당하고 텃밭을 저희 보금자리로 삼습니다. 이 고운 나비를 바라보면서 먼 옛날부터 옛 한아비가 나비한테 붙인 이름을 가만히 부릅니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 주어 고맙다고 말합니다. 달래를 ‘참꽃’이라고도 했는데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을 ‘개꽃’이라고 불렀지. ‘참꽃’의 ‘참’ 자가 한자어 ‘참 진(眞)’ 자로 바뀐 거야. (144쪽)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 길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살살이꽃이라고 말한다면 언젠가는 이름도 바뀔 수 있겠지. (179쪽) 들국은 들에 피기에 들국입니다. 산국은 산에 피기에 산국입니다. 우리는 들국이나 산국을 ‘들국’이나 ‘산국’이라고 할 수 있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붙일 수 있습니다. 검은등지빠귀를 그냥 ‘검은등지빠귀’라 할 수 있고, 이 새한테 우리 나름대로 새 이름을 지어서 붙일 수 있어요. 꾀꼬리나 소쩍새한테도 이 새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살펴서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볼 만합니다. 서울말로는 ‘부추’라 하더라도, 경상도에서는 ‘정구지’요, 전라도에서는 ‘솔’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마당 한쪽에서 봄이랑 여름에 실컷 나물로 먹고 늦여름부터 꽃 구경을 하는 하얀 숨결을 바라보면서 ‘솔꽃(경상도라면 정구지꽃, 서울이라면 부추꽃)’이라고 말해요. 이름을 제대로 살피고 마음에 새길 적에 이 자그마한 이웃이자 동무를 한결 살가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는 모두 서른여덟 가지 이름을 새롭게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책끝에는 서른여덟 가지 이름을 ‘책 속 작은 동식물 사전’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짐승이나 새나 꽃하고 얽힌 이름을 돌아볼 수 있고, 예부터 늘 우리 곁에 있었으나 이제 우리 곁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짐승이나 새나 나무하고 얽힌 이름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서로 이름을 알기에 서로 깊이 사랑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서로 따스히 어깨동무합니다. 이 넋을 우리 모두 곱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8.12.1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숲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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