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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깨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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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교수님의 메멘토 모리를 다시 읽습니다. 신문․방송을 통하여 다양한 죽음에 대한 뉴스를 전해 듣게 됩니다만,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 단순했던 옛날에는 죽음은 대개 마을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주검과 처음 대면하였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조모님께서 간암으로 꽤나 오래 고생하시다가 가을이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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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교수님의 메멘토 모리를 다시 읽습니다.


신문․방송을 통하여 다양한 죽음에 대한 뉴스를 전해 듣게 됩니다만,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 단순했던 옛날에는 죽음은 대개 마을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주검과 처음 대면하였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조모님께서 간암으로 꽤나 오래 고생하시다가 가을이 깊어지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래 전이라서 시골에 있는 할머님 댁에서 초상을 치렀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병원영안실 또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모시는 경우가 많아 절차 등이 간소하고 문상객을 접대하는 일도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례는 마을축제처럼 치렀던 것 같습니다. 원근의 친척들이 모두 오시고 5일장을 치루는 내내 사람들로 마당이 북적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모께서는 엄격하셨던 편이라서 무서워했었지만 안방에 모신 할머니 유해 앞에 놓은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는 어르신들의 엄명(?) 탓이었든지, 자정이 넘어서도 눈을 쥐어 뜯어가면서 향불을 이어븥여 꺼지지 않도록 하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공이 병리학인지라서 주검과 만날 기회가 많아서 죽음에 대한여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죽음에 대한 의식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읽었던 책이 인제대 김열규교수의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였습니다. 죽음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죽음은 누구나 입에 올리기를 피하는 금기단어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살기가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인구가 늘면서 인간관계가 복잡해져서인지, 최근 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직대통령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늘고 있는 탓일 것 같기도 합니다. 언론에서 유명인의 죽음을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보도함에 따라 모방심리가 작용하여 충동적으로 죽음으로 자신을 던지는 경우도 있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는 동서양의 문학, 신화, 철학에 나오는 죽음에 관한 기록을 검토하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상례절차에 담긴 철학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특히 정형화, 간편화되는 상례가 우리네 전통 속에서 상례에 담긴 철학적인 의미들을 퇴색시키고 있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는 죽음을 향해서 한발 한발 다가가는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자신이 아닌 가족, 혹은 의사를 포함한 타인이 나의 생명을 연장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즉 내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는 경우에 그들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죽음에 대한 평소의 나의 생각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짐이다.


위의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도 우리의 의사결정과 상관이 없이 나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자살 등과 같은 극단적인 죽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질병이던 사고이던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생을 추구하였던 진시황의 바램은 이루어지 않았지만,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는 삶의 의미와 질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되는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예로부터 높게 쳐준 우리네의 ‘갖추어진 삶’의 조건으로, 나이로는 환갑․진갑을 넘겨 살아야 하고, 자식은 적어도 3남2녀는 두어야 하고, 가장이 부와 귀를 누려야하며, 그 많은 아들․딸들이 빠짐없이 성혼을 하여 손자를 주렁주렁 두어야 하고, 드디어 세상을 하직할 때 고통이 없이 잠시 앓는 듯 마는 듯하다가 안채 안방 혹은 안사랑에서 이른바 ‘와석종신’해야 한다고 합니다. 임종자리에는 자식이 빠짐없이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며, 초상은 장중하게 치루어져야 하고 은성해야 하며, 무덤자리가 명당이라야 하고 삼대에 걸쳐 봉제사할 후손이 끊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 ‘갖추어진 삶’의 맺음이라고 합니다. 정말 호사의 극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선친의 죽음에 아직도 죄인된 듯한 이유는 4형제 가운에 유일하게 임종을 하지 못한 자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국외여행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리하였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시골에 있는 막내의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선친께 새로 구한 약을 아내편에 보냈는데 아내가 서울로 올라오는 사이 병세가 급속하게 나빠지면서 집에서 임종을 맞기로 하셨던 것인데, 서울로 올라온 아내를 기다려 차를 몰고 시골에 내려가는 사이 고물차가 몇 차례나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물론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셨지만 심장은 이미 멈춘 상태이니 임종을 모시지 못한 셈이니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열규교수는 표준의 한국인이 기피하는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 주고 있습니다. 요즘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세태에서 역설적으로 삶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y*****2 2011.06.17. 신고 공감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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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제목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내용보기
이 책, 2001년 가을에 나왔다. 그때는 NYY와 Arizona의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승부가 있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죽음이라. 그 때만 해도 죽음은 금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 내용도 부분부분 기억나지만, 제목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죽음. 죽음을 죽는다고 했다. 특히, 지은이가 책머리에 쓴, "손이 떨렸다. 손끝이 나도 몰래 떨렸다"라는 문장 자체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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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2001년 가을에 나왔다. 그때는 NYY와 Arizona의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승부가 있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죽음이라. 그 때만 해도 죽음은 금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 내용도 부분부분 기억나지만, 제목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죽음. 죽음을 죽는다고 했다. 특히, 지은이가 책머리에 쓴, "손이 떨렸다. 손끝이 나도 몰래 떨렸다"라는 문장 자체가 얼마나 고심해서 죽음에 대한 접근을 했는지 알 수 있고,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을지 가늠하게 한다.

 

      일단, 이 책 수필처럼 마음에 절대공감을 일으킨다거나 소설처럼 읽는 글자가 영상이 되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인문학 책에 대한 편견, '내용이 딱딱하고 3장 넘어가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고 10장 넘어가면 이 책 정말 안 좋다'!라고 넘기는 책은 아니다. 잠언집인 듯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있는 문학 작품들, 인문학 작품들 속에 나타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 기원과 속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마음에 든다. 다시 읽어도 정말 괜찮다. 내용이, 그리고 말하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읽고 있으면, 지식을 전달해 주면서도 삶보다 죽음 자체에 대해 약간은 정면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자료의 갈래가 많아서 마치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들을 풀어내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한 정점, 메멘토 모리, 평생 살 것처럼이 아니라, 어느 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의연하게 갈 것을,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이며 우리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삶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바리데기 부분(p.236-240)은 황석영 씨의 '바리데기'가 생각나며, 생각의 깊이를 더 깊게 한다. 마지막에 저승에 대한 노인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거기가, 아, 얼마나 좋으면 글쎄, 하고많은 사람 다들 가서는 안 돌아오느냐 그 말일세. 자네 거기서 돌아온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소리 듣기나 했던가." 어떻게 하면, 유머있는 웃음으로 죽음에 꽃향기를 진동하게 할 수 있을까?

 

 

 

YES마니아 : 골드 n********y 2009.03.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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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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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의 끝에 언론의 '돈 계산'은 빠지질 않는다. 보상금 얼마, 보험을 들었으면 얼마를 더 지급받을 수 있다는 그네들의 보도는 망자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왜, 무엇 때문에 '죽음'을 '돈'과 연관시켜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값어치를 잃기 시작한 것은 '물질'이 인간세상의 우위를 차지하고 난 후부터이다. 죽음조차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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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의 끝에 언론의 '돈 계산'은 빠지질 않는다. 보상금 얼마, 보험을 들었으면 얼마를 더 지급받을 수 있다는 그네들의 보도는 망자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왜, 무엇 때문에 '죽음'을 '돈'과 연관시켜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값어치를 잃기 시작한 것은 '물질'이 인간세상의 우위를 차지하고 난 후부터이다. 죽음조차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추하다. 죽음을 더럽히지 말자. "전쟁, 전염병, 대형사고는 죽음의 대량생산을 초래한다. 일시에 한 장소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죽어가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도, 피해갈 여지도 전혀없이 당하는 대량학살도 꽤나 흔하게 되었다. 오늘의 세계, 그 아무 곳에나 작은 '킬링필드'가 널브러져 있다. 무더기 죽음의 처리는 잔혹할 만큼 사무적이다."(68페이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 저자 김열규 교수는 오늘날의 죽음이 갖가지 반인간적인 행위가 죽음의 의미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죽음을 죽음으로 기억하지 않는 요즘 세태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불쌍하다. 2년 전 나는 하루 걸러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른 적이 있다. 하루는 후배 어머니의 관을 들어야 했고, 그 다음 날은 처남의 주검을 화장터로 옮겨야 했다. "불 들어간다. 불 들어가." 어머니의 관을 시뻘건 불길 속에 넣으며 오열하는 후배와 가족들의 모습, 구슬 같은 눈물과 처남의 뼛가루를 함께 뿌리던 아내를 보아야 했던 이틀 동안은 이 세상 모든 죽음의 의미가 나와 함께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는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만 앞섰을 뿐이었다. 인간의 죽음은 그냥 죽는 죽음이 아니라고 했다.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김열규 교수는 그러한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바리데기' 신화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오가며 아버지 오구대왕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바리공주의 효행은 이승과 저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 드신 분들이 자식들이 마련해준 수의를 기쁘게 받으셨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장롱 깊숙이 숨겨 놓는 것이나 미리 누울 자리를 보러가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자기 죽음의 자기 예비는 살아생전에 미리 자신의 죽음에 스스로 길들려고 든, 생과 사의 화해정신이었다. ...중략... 죽음 앞에서 고개를 외로 고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미래시제 속에 미루려 드는 기색도 있는 것이 아닌(본문 66페이지)" 한국인의 죽음은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물질'이 '죽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저자의 말처럼 '죽음이 몰개성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은 가까운 듯 멀리 있고, 멀리 있는 듯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반추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는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두렵고, 어떤 때는 농담처럼 가볍다. 우리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인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답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은 '죽음'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완곡'과 '대유'로 한발 비켜 뜻매김을 하게 마련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버림받고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죽음에 대해 '한발 비켜서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하고, 삶이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딜런 토머스라는 사람이 '맥박 그것은 제 무덤을 파는 삽질소리'라고 했듯이 우리는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b******i 2003.0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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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해결책은?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해결책은?" 내용보기
내 친구는 이 책을 몇장 읽어보더니 무서워서 못 읽겠다고 했었다.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잡을때는 약간은 싸늘한 느낌으로 읽기시작했다. 전통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하면서 흥미를 갖고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크게 묶어서 죽음과 삶, 그리고 현대와 과거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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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이 책을 몇장 읽어보더니 무서워서 못 읽겠다고 했었다.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잡을때는 약간은 싸늘한 느낌으로 읽기시작했다. 전통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하면서 흥미를 갖고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크게 묶어서 죽음과 삶, 그리고 현대와 과거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대개 회피적인 생각을 갖고 항상 저 편으로 밀쳐내버리곤 한다. 과연 죽음이 삶의 연속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죽음을 멀리하고 영생의 꿈을 갖고 삶의 끝자락 에서 조차 그 가느다란 실 한올가닥 마저 이어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우리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현대에 오면서 의학의 발달로 인해 생명연장의 꿈은 점차 길게 실현되어 가고 있고 불로장생하려는 욕심은 더욱더 커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 태어난 이상 죽음은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삶의 과정인 것이다. 누구든 죽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과 친해져야 하고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작가는 잘 이야기 해 주고, 옛 조상들의 모습을 예로 들어 죽음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고 죽은 이들을 마치 세상만 다를뿐 다른 세상에서 살고있다는 생각으로 제사와 비슷한 여러가지 형식을 써서 그들의 안존을 비는 모습도 잘 보여준다. 이런 형식들은 지금도 뿌리를 이어 행해지고 있지만 그 의미나 내용은 현대에와서 많이 달라져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편리해지고 고속화되어가는 추세에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동또한 편리한 걸 요구하고 점점 신속화 되어가는데 죽음에 있어서만 예외적으로 옛날의 절차와 기나긴 시간속에서의 의례를 따지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죽음에 대한 의미또한 표피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산자를 위한 죽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시대에 맞춘 장례풍습으로 변해가면서 잊어서는 정말 안되는 죽은자를 위한 장례의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점점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거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책 속에 말한 편한 죽음을 위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는 꽤 민감하게 의견이 대립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게 되어 있는 한 사람이 고통스러움속에서 하루하루를 아파하며 보내는 것보다 편하게 세상을 마감하는 것이 오히려 죽은자를 위한 죽음이 될 수도 있겠고, 반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산자의 편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와 함께 과거의 전통에 따른 죽음을 결부시켜서 무엇이 더 옳으냐라고 따지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질문이 되어버린다. 또한 화장하는 것과 전통적인 장례에 대해서 어느것이 옳으냐에 대한 것도 양자가 대립되어있는 상태일 것이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바로 이 것이다. 현대의 죽음과 과거의 죽음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다지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의 내 느낌은 두 갈래로 나 버렸다. 하나는 계속해서 말했던 현대와 과거의 죽음에 대한 모순적인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에 대한 나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인데, 죽음을 피해 항상 내 맘 어딘가에서 밝은 쪽만을 바라보고 죽음을 어둠으로 자꾸 밀어내 버리려고 했었던것이 이제 조금은 트인 시선으로 죽음을 친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죽음은 절대로 삶과 양분되는 존재가 아닌 삶의 한과정으로서 연속되는 생활의 일부일 뿐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봐도 무난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이 변해도 죽은자를 위한 죽음에 대한 의미만은 잊지 말아야 함을 자각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삶과 관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더 깊숙히 알아서 이 책에서 가진 의문들에 대해 어느정도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고 다른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m*****m 2003.01.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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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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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인의 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특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아파트에서 곤도라로 관을 내리는 것이나 장례차가 서행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 집값 떨어진다고 무덤터를 혐오하는 것, 간소화된 장례절차, 영안실이라는 협소한 장소에로의 제한, 그리고 이런 변화들에 아무런 비판없이 순응하는 무관심한 현대인들. 옛날에는 죽은 조상도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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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인의 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특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아파트에서 곤도라로 관을 내리는 것이나 장례차가 서행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 집값 떨어진다고 무덤터를 혐오하는 것, 간소화된 장례절차, 영안실이라는 협소한 장소에로의 제한, 그리고 이런 변화들에 아무런 비판없이 순응하는 무관심한 현대인들. 옛날에는 죽은 조상도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 생각하는 제도(사당이나 제사)들이 있었는데, 현대에 와선 죽음을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듯이 말이다. 죽음에 대한 경건함과 성스러운 분위기, 상징적 의미가 이로 인해 박탈되고 만다. 저자는 이런 세태에 대해 딱히 구체적인 대안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편리함 때문에 잊혀져 가는 죽음의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 옛날 전통 장례의 형식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살펴본다. 곡, 염하기, 묶기, 매장 방식, 무덤 위치 등등. 그래서 옛날의 장례풍습이 소개되는 대목이 꽤 흥미롭다. 특히 상고시대에 중장제 풍습이나 아기, 총각, 처녀 등이 죽으면 밤에 몰래 묻거나 결박하거나 엎어서 묻는 풍습 등이 흥미로웠다. 또 군데군데 소개되는 관련 학자의 견해나 문학작품 소개도 읽는 맛을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성과 죽음에 관한 어휘에 대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니 진짜 인간의 죽음은 완곡어법을 많이 사용하면서 이외의 부분에선 ''죽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읽다보면 저자의 이런저런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 집값 때문에 화장터나 무덤을 기피하는 님비즘 현상이야 나도 똑같이 비판하지만, 아파트에 살면 어쩔 수 없이 관을 곤도라로 내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관을 어떻게 내리든 가족의 슬픔은 같을 터인데 말이다. 요즘은 3,40층이 넘어가는 고층도 많은데 층계로 내려야 한다는 건 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저자도 반드시 어찌어찌 한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강압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테마 설정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하고 읽는 재미도 있지만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일단 죽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표현하는 문체가 마치 수필을 읽는 느낌이 날 정도로 주관적이어서 괴리감이 든다. 그리고 중장이나 옛 매장 방식, 죽음과 관련된 뭉크의 그림등을 언급하는데 관련 채록 기록이나 삽화가 없는게 아쉬웠다. 또 욕심이 지나친지 모르겠지만 음악이나 미술작품, 연극 등 다양한 방면에서 보다 많은 작품의 소개가 있었더라면 더 알찬 내용이 되지 않았을지. 또 좀 더 편년체적 방식으로 서술했으면 정리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맥박 그것은 제 무덤을 파는 삽질소리(딜런 토머스의 말을 인용) 60p
s******k 2006.03.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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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 그리고 또 죽음......
"죽음, 죽음, 그리고 또 죽음......" 내용보기
어느 누구나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는 삶이든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눈 뜨고나면 맞이할 내일을 계획하며 그리멀지 않은 또다른 내일을 꿈꾸며 어깨를 부딪히며 오늘을 그렇게 보낸다. 삶이란 밧줄을 두손부둥켜 안은채 놓지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중에 죽음이라는 명제를 생각해본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인의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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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는 삶이든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눈 뜨고나면 맞이할 내일을 계획하며 그리멀지 않은 또다른 내일을 꿈꾸며 어깨를 부딪히며 오늘을 그렇게 보낸다. 삶이란 밧줄을 두손부둥켜 안은채 놓지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중에 죽음이라는 명제를 생각해본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인의 죽음론이란 부제를 달고 죽음이란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 책에서는 죽음을 통한 삶의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죽음과 죽음 그리고 또다른 죽음만이 가득하다. 때론 무속신앙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죽음의 시인 릴케의 싯구를 싣기고 했으며, 참고 문헌의 문구를 다루기도 했다. 죽음의 본질과 죽음을 통해 그안에서 삶의 또다른 모습과 방식의 해결등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하고 이 책을 들었던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온통 죽음의 모습만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책을 덮는 순간 까지 지울 수 없게 만든 책이다.
b********2 2002.04.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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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든 내용이군...!!
"정말 힘든 내용이군...!!" 내용보기
내가 읽기에 정말 힘든내용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온사람이다. 내가 만약에 죽으면 묘지부족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국토를 위해서 화장(火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영혼과 육신에 대한 분리의 측면에서 나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진다. 내가 생각하는 영혼은 인간의 신체가 있기 때문에 존재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체가
"정말 힘든 내용이군...!!" 내용보기
내가 읽기에 정말 힘든내용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온사람이다. 내가 만약에 죽으면 묘지부족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국토를 위해서 화장(火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영혼과 육신에 대한 분리의 측면에서 나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진다. 내가 생각하는 영혼은 인간의 신체가 있기 때문에 존재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체가 죽고 소멸함에 따라 영혼(氣)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이책에서는 이런말이 있었다. 영혼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화장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각의 의미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한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며 늙고 병들고 아파하며 죽어가면서 겪었던 모든 것들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했던 상고대인들과 새롭게 변화하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가진 현대인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단지 이 책에서는 의미론저인 죽음만이 해석되어 있고 현실적인 죽음, 죽음이 지닌 주변의 슬픔과 아픔들을 부각시켰다면 현실적인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h******g 2001.12.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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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죽었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통곡한다. 마치 그것이 모든것의 끝이라도 되는 마냥. 상가집에 갔다온 사람들의 몸가짐은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이의 불행이 나에게 악을 가져다 주진 않을까 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느때부터인지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배척했던 것 같다. 삶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말도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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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죽었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통곡한다. 마치 그것이 모든것의 끝이라도 되는 마냥. 상가집에 갔다온 사람들의 몸가짐은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이의 불행이 나에게 악을 가져다 주진 않을까 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느때부터인지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배척했던 것 같다. 삶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말도 있긴 했지만, 이러한 표면화된 표현이 굳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은 산 자들에게 늘 배척되기 마련이었다. 무덤이나 화장터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 동네마다 일어나는 님비현상은 어쩌면 산 자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주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늘 그렇듯 산자들은 죽은자들에 대해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거만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피함을 원했던... 이 책은 그러한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바라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도입과 함께 죽음에 있어서도 도래된 몰개성화, 무가치화, 대량화 등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장례식차량이 지나갈 지라도 어느 누구 하나 그 차량을 보며 성호를 긋는다던지 조용히 묵념한다던지 하는 사람은 존재치 않는, 오히려 그 장례식 차량 조차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차량과 속도경쟁을 벌이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차가운 외침이랄까. 이 책의 그러한 관점이 때론 신선하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은 정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삶의 태동에 죽음이 숨쉬고 있고, 죽음은 삶을 영양분으로 삼아 서서히 커가고 있는 것이라고... 영양분인 삶이 다 떨어졌을 때 마침내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가끔씩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보다 그것을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으리라 본다. 이 책은 죽음의 역사에 대해 굉장히 정확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각 시대의 죽음에 대한 관점, 무덤의 모양 등을 통해, 태초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죽음을 삶과 분리시켜 생각하고 두려워하진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태양이 뜨는 동쪽방향을 향해 일제히 뻗은 무덤과, 산이 있는 곳을 향해 자리잡고 있는 무덤들은, 죽음이 한 사람의 영원한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상징함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예였다. 아이가 죽었을 경우 번데기처럼 나뭇가지에 매달아 또 다른 삶이 잉태되길 기원했던 모습, 죽은 이의 옷가지를 흔들며 그의 영혼이 혹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갈망해보았던 것. 이와 같은 것들은 오늘날은 도무지 꿈꾸지 힘든 것인듯 하다. 단 4일만에 죽음의 모든 과정이 끝나야 하는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에.... 중간에 인용된 제망매가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가장 여실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누이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부모와 자식이 나뭇가지와 낙엽에 불과하다는 식의 표현을 담고 있다. 자식의 모든 삶은 부모로부터 비롯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땅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존재임을... 어떻게 보면 너무도 쓸쓸하고 오늘날 죽음이 가지는 단절의 의미를 잘 부각시키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낙엽의 떨어짐이 부식 아닌 보다 더 큰 세계, 미타찰을 향한 나아감임을.... 또 다른 영생을 위한 한걸음 다가섬임을,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잊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신선한 내용의 이 책에도 무언가 문제점이 있긴 있는 듯 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무슨 죽음을 기억할 것인가.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때 나는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을 기대했었다. 그 내용이 조금은 어려울지라도,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이 이 책을 통해 벌어졌으면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역사적 고찰, 현재의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 제기 정도에 그친 듯 하다. 새로운 의미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있으나, 애초에 기대했던 거대한 의미는 함의하지 못하고 있는듯 해 조금은 아쉽다. 둘째, 계속적인 내용의 반복성이다. 역사적 고찰은 정말로 신선하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그 어떤 책에서조차도 죽음, 그것도 우리 나라 죽음의 역사를 이렇게 내실있게 다루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많이 읽은 내용이 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뒤에서 2-3번씩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문장 자체가 아주 비슷하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으나, 조금은 다른 말로, 요약 정리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q*****2 2001.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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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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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주제로 쓴 이렇듯 포괄적인 소재들을 찾아낸 경우는 많지 않을 거 같다. 특히 한국적인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갖가지 신화, 의식, 사람들의 태도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들이 죽음을 대하는 마음을 정리하고자 한 건 고무적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것도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두렵고 삶에 위협을 줄 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저만치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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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주제로 쓴 이렇듯 포괄적인 소재들을 찾아낸 경우는 많지 않을 거 같다. 특히 한국적인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갖가지 신화, 의식, 사람들의 태도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들이 죽음을 대하는 마음을 정리하고자 한 건 고무적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것도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두렵고 삶에 위협을 줄 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저만치 멀리하려 하고 홀대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을 제대로 대접하려고 한다면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어차피 한 번 살아가는 삶이고 죽음이라는 게 이토록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찾아올 수 있는 거라면 삶을 살아갈 때 좀 더 보람되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노력들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말이다. 그러나 조금 지리했다. 좀 더 논리적이고 정리된 느낌으로 다듬고, 많지만 비슷비슷한 소재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죽음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논증했으면 좋았을 거 같다. 현재 분량의 반 정도만으로 끝냈어도 될 책인데 넘 지리하게 나열해 신선한 느낌이 떨어진 거 같다.
g*****k 2002.02.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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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가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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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이래도 금잔기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 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박두진, <묘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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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이래도 금잔기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 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박두진, <묘지송>


누구나가 그렇다. 모두의 인생에서 죽음과 삶은 뗄 수 없는 것이다. 삶이 다한 후에 죽음이 따른다고 해서 꼭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죽음이라면 한번쯤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만의 깊은 사색도 중요하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호수에 잔물결이 퍼지듯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서 은은한 일렁임이 일면서, 나의 삶에 대한 자세를 어느 정도 교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런 책이기를 바라고 책의 첫 장을 뗐다.

편안하고 쉬운 문체로 독자와 대화를 하듯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다는 내 예상과 다르게, 딱딱한 문체와 많은 한자 사용, 그리고 외국문헌과 위인들의 어록들을 차용한 문장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란 것을 느꼈다. 보드리야르나 푸코, 릴케와 같이 외국의 작가들의 말들을 인용한 부분이 책의 흐름을 이어주고 있지만, 한국인의 죽음론이라는 부제답게 우리나라 전통 신화나 장례에 대한 파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많이 아쉽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그의 목소리는 무엇인지, 자꾸만 헷갈렸다. 같은 의미의 문장을 조금씩 바꿔서 쓴다던지, 내용 없이 뭉뚱그려진 짧은 구절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글을 잇는다던지, 그의 설명 없이는 연계성을 찾기 힘든 단어의 반복이라던지, 자꾸만 그가 혼자서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번 걸러지지 않고 의견 없이 단지 지식만 과잉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거쳐지지 않은 글들은 그렇게 독자에게 와닿지 못하고, 저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주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문화중 하나인 곡을 래드클리프-브라운의 인디만 섬의 실험이나 곡소리 연기를 알렉슈의 「희랍전통의 의례적인 울음」으로 굳이 설명하려고 했던 것은 조금 어색했다. 물론 그렇게 외국의 실험이나 전통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해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굳이 필요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저자는 계속 인용을 통해 다양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의 말의 힘을 위인들의 말을 통해 덮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지러운 편집과 구성도 아쉽다. 조금 더 일관성 있게 구성했더라면 부족한 저자의 목소리라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쉽다.

아직 어린 내가, 후에 더 많은 공부를 한 뒤에 다시 읽게 된다면 더욱 유익한 책이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어줄 그런 책은 아니었다고 본다. 끝까지 이 책에서 너무 아쉬운 건 저자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국 위인들이나 작가의 입을 빌려 하는 그런 이야기 말고, 이 책을 쓸 정도로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다면 자신만의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6 2010.11.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