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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진은 산속의 분지 율어에 해방구를 만들었다. 자신과 혁명동지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곳이며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역에 글들만의 이상향을 만들었던 것이다. 작인들이 지주에게 내주어야 할 쌀을 나누어주며 적극적인 대민홍보전략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다른 한 편의 벌교에서는 정사장에게 소작을 부치먹고 살던 작인들이 정사장이 땅을 팔아버리자 소작이 끊어지고 그들의 생계가 끊어지게 되어 정사장에게 행패를 서인출에게는 치명적 중상을 입히는 사건을 저질러 버렸다.
점심시간을 지나가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결국 살기위해 먹어야 한다. 먹어야만 사는 현실. 허구헌날 죽을 쑤어먹고, 아이가 술지개미를 먹어 취하고, 진달래꽃을 물똥을 싸도록 먹고, 그래 보아도 부황기에 누렇게 뜨고... 불과 몇 십년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해마다 벌어지던 광경이었다. 그토록 배를 곯아보지 않는 나에게 상상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너무나 처절하다. 그리고 모두 같이 굶는것이 아니라 옆집 담너머로 떡 찧는 소리, 전 부치고 고기 삶는 냄새가 흘러나온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회구성원간에는 언제고 계층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 통계치들이 그러하듯 종형의 그래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좌우폭의 차이가 탄력성을 가지는데 어떤 물질이라도 탄력치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은 회복이 아닌 파괴를 가져온다. 60년 전 반도가 잘라져 두쪽이 나고 만것은 이념 이전에 그 탄력이 한계를 넘어 끊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연일 양극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 분단조차 극복하지 못한 우리에게 또다시 팽팽해지는 탄력성 실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 4편에서는 계속 대치하고 있던 염상진과 심재모의 충돌을 합니다. 누가 승리를 했다고 말할수 없는 싸움이었어요. (아직은 계속 신경전이라고 이야기하는것이 더 옳겠네요.) 만약 심재모가 예전의 남인태 같은 친일파의 잔당이었다면 어쩜 염상진의 승리일수 있었겠지만 심재모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지요. 하지만 민심이라는 것이, 계속되는 지주들의 횡포와 함께 율어를 점령하고 있는 염상진 진영의 민심 회유는 달콤한 유혹처럼 보입니다. 술찌끼를 먹고 취한 아이…, 진달래를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나는 아이들… 계속 한숨만 나올뿐입니다. 게다가 지식인이고 성직자들인자들 역시 민심을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가진자의 계층에 서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모습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황숙직 목사와 서민영과의 만남/승려간의 세력싸움) 내가 그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면, 그리고 민심의 편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지주의 강력대응과 민심사이에 힘들어 하는 심재모를 보면서 마치 바람앞에 흔들리는 촛불을 보는 것 같아 조마 조마해요. 아마도 서민영도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심재모가 다치지 않는 편에서 도와주려하지요. 재미있게도 소화는 무당이어서 천대 받았지만 무당이기 때문에 정사장과 함께 다시 벌교로 돌아올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지숙에 대한 비중이 늘어가는데 저는 점점 그녀에게 그리 정이 가지 않았어요. 아마도 소화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텐데… 계속 그렇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