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세계사,1999년 밑줄 긋는 남자를 읽고 난 후에 구바님이 '책 읽어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것이 이 책인줄로 착각..^^; 생각해보니 그 영화는(책 읽어주는 여자는 영화였다) 어렴풋이 나도 본 기억이 난다. 어제 잠자기 전..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읽을려고 하다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 책을 발견..훑어보기만 하려고 했는데..아..정말 재미있는 책은 또 이렇게 나의 밤을 앗아가버렸다. 어젯 밤에 다 읽지 못한 것을 일어나자마자 읽기 시작하여 밥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읽었는데, 어이없게도 미하엘이 한나를 만나러 간 장면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잘 없는데 무엇이 나의마음을 흔든 것일까?..그들의 사랑?..한나의 처지? 아니면 미하엘의 무덤덤한 행동에서 배신감을 느낀걸까?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미하엘과 한나의 만남과 그들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2부에서는 헤어진 한나를 우연히 법정에서 만나 그녀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된 미하엘의 마음과 한나의 과거가 주를 이룬다. 3부에 와서 미하엘이 결국엔 한나에게 사랑보다는 그 시절의 그리움과 그녀를 못본체해서 그녀를 떠나게 했던 죄책감으로 시작한 그녀에게 책을 읽어 테이프로 보내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 둘은 다시 연결된다. 하지만 미하일에게 있어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고, 한나에게는 진실한 사랑으로 남아 사면되어 나가기로 한 아침에 자살한다. 열 다섯 먹은 남자와 서른 다섯 먹은 여자와 사이에 진정 사랑이 존재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서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한나가 죽은 뒤 몇 년 동안 혹시 내가 그녀를 부인하고 배반한 것은 아닌지, 혹시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 빚을 진 것은 아닌지, 혹시 그녀를 사랑한 까닭에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닌지, 혹시 내가 진작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했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그 방법은 어떠해야 했었는지 하는 해묵은 질문들로 인해 괴로웠다. 가끔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리고 가끔 그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내게 한 행동에 대해서 화가 나곤 했다. 마침내 분노의 물결이 물러가고 그러한 여러가지 질문들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않을 때까지. 내가 한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 그리고 그녀가 내게 한 행동 - 그것이 이제는 바로 나의 인생이 되었다.]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문장들이 미하엘이 마치 내 앞에 앉아 고백하듯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을 놓치 못하는 흡인력으로 시작하여 감동으로 마무리 하는 이 책을 올 가을엔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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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김재혁/세계사/2002 이 책을 읽고나서 사실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는데요, 모든 이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는 일인데도 굳이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가 있다라는 것 (당연히 저두요) 그렇게 자신이 부족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모든 이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 (당연히 저두요) 이걸 다 알면서도 모든 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매몰차게 대할 수 밖에 없는 비틀린 심리가 있다는 것 (당연히 저두요) 즉, 제가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하고 생각하던 그 요소가 너무나 절묘하게 녹아들어간 이야기 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출판사가 별로 상업적이지 못했던 관계로 출판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려져 최근에는 영화로까지 상영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저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최근에 몇 년간 읽었던 이야기 중에서는 가장 마음을 울린 이야기 같습니다.
한나는 어째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요? 아마 사랑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알게 되고, 눈을 뜨게 되면,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 저는 생각이 되네요.
감상적인 오후, 오래전에 읽은 소설들을 리뷰해 보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을 잘 읽게 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슬플 거예요. 오늘, 누군가 또 저를 깜짝 놀라게 할 소설을 탈고 했길 기대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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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상대방을 위해
5년전쯤 읽었던 이 구절, 너무도 강렬하게 가슴에 새겨져 버렸다.
결국 자아는 그 가슴을 따라 살게 되었고,
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말도 그 언어자체의 의미보다 내용이 주었던 그 감흥에 이끌려 내가 이리도 좋아하는 문구가 되었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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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사실 소설을 먼저 읽었다가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포기하고 영화로 보게 됐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겠다. 작가가 그렇게 어려운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로 번역이 이뤄진 것도 아닌데 가독성이 유독 떨어졌던 건 그냥 작가의 문체가 나와 상극이었던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영화가 괜찮았던 것에 용기를 내 다시 읽어본 이 소설은 영화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 읽히거나 하진 않았다. 영화로 먼저 접한 원작 소설을 굳이 다시 찾아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원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이 오히려 영화보다 불친절하다면 불친절한 편이라 내심 놀라웠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가 번걸아가며 진행돼 궁금증을 높였던 반면 원작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돼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더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철저하게 주인공 '나'의 시선에서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슈미츠 부인 - 왜 '부인'인지... 옛날 번역의 한계인 건가? - 의 비밀이나 주인공의 심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이나 감정의 골이 풀어지는 것도 모조리 주인공의 내면에서 이뤄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영화가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복선이라든가 여백의 미 등 영화가 서사적으로 조금 더 고급스런 연출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외국 소설을 읽을 때 번역을 탓하려고 않는 편인데 최근 들어 그런 다짐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비롯해 이 책 <책 읽어주는 남자>는 내가 직접 사거나 빌려 읽은 것이 아닌 집에 이미 있는 책, 어머니가 옛날에 구매하셨던 책을 우연히 발견해 읽은 것인데 아무튼 그렇다 보니 번역의 느낌이 딱 옛날 느낌이었다. 번역가로선 좀 억울할 수 있겠으나 옛날 책은 어쩔 수 없이 옛날 책이라고, 그 특유의 현실감 떨어지는 문장들이 요즘 번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작가의 문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번역이란 현시대의 감각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이상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아 말을 아낄 것이지만, 확실히 '느낌적인 느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약간 철이 지난 번역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밟혔다.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쓸 때 많이 했으므로 특별히 더 덧붙이거나 하진 않겠다. 이 말은 즉, 소설과 영화가 연출의 차이는 있어도 내용상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더 돋보였다.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가 없다는 말을 반박할 때 좋은 예시가 될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아주 명작이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565014971 이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포스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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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허약한 15살의 소년 미하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토를 하다가 전차 차장인 35세 한나의 도움을 받게된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의 행위를 경험한 15세의 소년은 그날 이후 자신이 습득한 남성다움과 우월감으로 힘이 넘쳤고, 모든 가족이 사랑스러워보이는 그야말로 사랑에 흠뻑 빠져버린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의식이 있다. 사랑의 행위를 하기전에 먼저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나서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눈뒤 나란히 누워있다가 혹은 잠이들었다가 헤어지게 된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미하엘은 한나에 대한 사랑이 진정이었는지 확신을 하지 못한채 응어린 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몇년 후 미하엘은 그녀를 법정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나치수용소의 감시원이었는데 여자 유대인 이송중 발생한 화재사건시 그들을 감금하고 그들이 죽도록 방치했다는 이유였다... 그녀에게는 읽지도 ,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그 수치심을 들어내지 않기위해 그 모든 일을 도모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모든 벌을 떠맡는다,, 종신형이었다.
그후 미하엘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을 하여 보내주고 그녀는 그곳에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워 미하엘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18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친 그녀가 나와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는 집과,여러가지 봉사프로그램등을 마련한다. 그러나 그녀는 출감하지 바로 전날 자살을 선택한다...
15세 소년과 35세 중년 여성의 비정상적인 애정관계가 주를 이룬 소설이 아닌 사랑과 역사적 사건 사랑의 근간에 있는 인간의 자존심과 수치심, 열정과 배신등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소용돌이 친다..
천천히 스타킹을 신고 있는 한나 욕조 앞에서 커다란 타월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있는 한나 치맛자락을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나 아버지의 서재에 서 있는 한나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나 수영장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나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게 말을 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나와 사랑을 나누는 한나 그는 그녀의 이러한 모습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를 기억하고 , 그녀와의 사랑을 간직한다...
그리고는 훗날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할때면 이 사실만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돈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림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떄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모든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내가 지금의 감정을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은 예전의 것을 경험해 보고 그들이 알려주는 기준들 때문일 것이다. 가끔 내 삶의 매력이 없을때 그때의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지 않더라도 그들로 인해 치유되기도 또한 상처받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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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 이 책을 읽은 며칠전 새벽 난 '울었다..'라는 문장으로 간단하게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나갔다. 울었다...라니?? 그때 그 느낌으로 지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선 더듬어보자. 내가 그 이후에 무슨 글을 펜으로 끄적었는지... '울었다. 내가 책을 읽고 울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그래 과연 책을 읽고 울었던 경험이 나에게 많았던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잃어버린 너라는 김윤희 소설이 한참 유행했었다. 그때 난 시내서점에서 그책의 2편을 보면서 콧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울었던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든지 말든지 그것에 관여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땐 눈물이 나는 소설이었다.
대학때? 그땐 한수산 소설이나 눈물의 작가, 경요의 작품을 신입생 시절에 열심히 찾아가며 읽었던 경험이 있다. 둘다 엄청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애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을까? 비교적 최근으론 굳이 '울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무라카미 류의 '교코'를 보고 잠시 눈자위가 시큰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작년의 일이었던가?.....-중략-> 대강 이런 식으로 펜을 끄적인 것 같다.
우선 내가 베른하르트의 '책읽어주는 남자'소설에 대한 본론을 쓰지 않고 이렇게 울었다라는 것만을 갖고 사변을 늘어놓는 것은 그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옛 소설들과 이 소설과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전작들은 대충 연애소설이라는 틀에 도저히 울지 않고서는 안될 것을 주축으로 쓰 여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연애소설만은 아니다. 이곳엔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역사에 대한 색다른 시각, 사랑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모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것들, 개인의 자존과 그것을 고착시키려는 인간의 허영심.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가능케 하는 소설이다. 단지 연애소설만이 아닌, 이 소설이 이젠 스물의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순수함이 사려져 버렸을지도 모른 나에게 눈물을 제공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지금 나를 그렇게 감성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소설이 있는가 말이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읽어주는 남자'가 그 장본인이 될 줄은 그 소설을 구입했을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 책을 처음 서점에서 보았을때 레몽장의 '책읽어주는 여자'와 비슷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그냥 지나쳤었다. 뭐 비슷비슷한 패러디 이류작품이겠거니 하면서. 그러다가 이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서평에서 좋은 평을 보았다. 심지어 스무살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하는 책으로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누군가 그러더라. 십대의 남자와 삼십대 의 여자가 나누는 사랑 이야기가 전반부에 흘러 재미있다고...
책장을 열었다. 전체 3부로 나누어있다. 남자주인공은 미하엘, 여자주인공은 한나. 1부에선 여타의 다른 연애소설과 같은 감미로움이 흐른다. 그것도 좀 불륜에 가까운. 아니 불륜은 아니다. 그냥 십오세의 남자와 삼십육세의 여성이 육체적 관계를 나누고 그리고 사랑을 한다. 이런 식으로 책의 서두는 연애소설인가? 하는 가벼운 떨림을 가져온다. 예나지금이나 하이틴로맨스같은 류의 소설은 읽으면 흥분된다. ^^;; 그러나 이야기는 점차 발전된다.
1부에서 갑작스럽게 떠난 한나. 2부에서 법대생이 되어 그녀를 법정에서 만나게 된다. 여전히 그에겐 그녀를 떠나게 했다는 자책감이 흐르고 몇년만의 만남이었지만, 한나가 나치시절에 보호감시원일을 했다는 것에, 심한 자괴감과 그녀를 사랑한 자신도 유죄가 아닐까 하는 그런 여러가지 감정들이 흐른다. 다시 3부에선 그녀가 감옥생활을 하고 다시 그는 그녀에게 테이프를 녹음시켜 책읽어주는 남자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출감하기로 한 바로 전날 그녀는 자살한다. 여기서 많은 이야기가 중간생략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 흐음..너무나 흥미로운 소설이기에 난 이글을 보는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지식을 이렇게 짧게 나에게만 얻지말고, 직접 경험하길 바란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감히 단언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단언하고 싶어진다. ^^;;
중간생략된 글은 그냥 놔두자. 어차피 일일이 설명하기엔 이 공간은 너무나 부족하다. 이 책의 미덕을 하나하나 훑어보겠다. 우선 그녀 한나는 문맹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책을 읽게끔 하고, 그리고 샤워하고, 섹스하고 나란히 눕게 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시에 그 문맹이라는 것은 그녀가 하지 않았던 많은 죄를 뒤집어 씌우게까지 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자존심이란, 아니 자신이 결코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부질없는 허영, 그것을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미하엘. 당신도, 아니 나에게도 그런 부분은 있을것이다. 감히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것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사랑이 사람의 일생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이 소설에 선 소상히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관점. 나 치시절의 독일. 그 나치일을 한 사람에 대한 다른 시각을 이 소설에서 제공해 주고 있다. 무조건 그들을 벌할 수 있을까? 당연히 우리에겐 나치는 나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일을 담당한 문맹이었던 한나는 단지 보호감시원의 일은 그에게 직업, 하루의 일이었다. 나치라는 것은 어떤 소수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고, 그녀와 같은 사람에겐 단지 명령하달의 일로 존재할뿐이다. 이런 시각이 섣부르게 보일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런 식으로 사고한 적이 없었다. 한나에겐 단지 하루 일상사 였을지도 모른다는...
글이 쓸데없이 또 길어진다. '꼬마야, 너 참 많이 컸구나' 이 부분에서 한바탕 울어버렸던, 이젠 순수함이 조금 남아있는 피플이, 얼마나 감명을 받았으면...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감동을 당신과 함께 누렸으면 한다. 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내가 감히 남에게 권력을 휘두르는(김영하가 말한것처럼) 최고의 목록이다. 감동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끔 한다. 재미는 물론이다. 김재혁님의 번역도 무리없이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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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마치 "책 읽어주는 여자" 아류작 같지만 절대 아니다. 제목만으로 섣부른 판단은 삼가기 바란다. 오랜만에 억지 슬픔이 아닌 정말이지 눈물나는 소설을 만난 듯 하다. 이 소설은 열다섯살짜리 소년과 서른여섯 살의 성숙한 여인 사이의 정상정이라 말할수 없는 애정관계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은 매일같이 만나 먼저 소년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다음 샤워를 하고 나서 사랑을 하고, 조금 누워 있다가 헤어지는 일정한 의식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이 단순지 어린 소년과 중년의 여성은 사랑만이 주된 포인트가 아닌 사랑과 나치의 시대사,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이 문제가 드러난다.
화자 '나' 와 한나와의 깊은 관계.. 깊은 슬픔이로 기억된다. 진정 둘이 사랑을 속삭이지 못함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웠다. 한나가 감옥에 있는 동안 계속 문학작품을 녹음해서 보낸 소년, 그리고 출감하루전 자살을 해야 했던 한나, 한나의 유품중에 발견된 주인공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장 사진... 둘의 사랑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인상깊은구절]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기 위해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
|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고했던가.. 성경에 있던 말인 것 같은데. 난 교회에 다니지 않으므로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 이런 말을 들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하여 그 사람이 저지른 죄를 미워하면서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지만 나만의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에 갈 수록 가슴이 징하게 울리도록.. 문맹인 그녀가 택한 직업인 유대인 수용소의 감시자인 '한나'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나', 그리고 그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부녀. '나'는 '한나'의 관계를 위해서 공부를 재개했고, 결국 그녀가 사라진 후에 법학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법정에서 만난다. 그녀는 피고로, 나는 재판을 바라보는 방청객으로. 사람에게는 의무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의무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10명을 선발해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버리는 역이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버린 다는 것이 그토록 쉬운 일이었던가? 그녀의 괴로움과 아픔은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가는 유대인들의 마음은 그녀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인간은 서로서로를 이해하지 못한채 자신의 생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죄는 결코 이해한다고 사라져 버리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대인 학살은 잊혀지지 않았다. 참상의 역사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비록 그것이 진부한 표현으로 변할지라도. 하지만 그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아무도 이해해 주려 하지 않은채 동료에게도 버려진 채 홀로 투쟁한다는 것은 '한나'와 같이 강인한 여자에게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딸이 가진 아픔은 비록 처참하고 쓰렸지만, 그녀의 아픔은 '나'와 모든 이의 마음에 비록 진부하지만 각인되어 이해되어졌다. 하지만 '한나'는 과연 그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 난 그녀와 사랑을 나눈 '나'조차 그녀가 목을 매어 자살을 했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 녹음한 것은 그녀에 대한 향수였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외로운 것이다. 그녀와 같이 마음은 아직 젊은.. 이 시대의 강압받아 죽음으로 몰린 어린 아이들처럼. 그녀 역시 딸이 쓴 '수용소 체험기'를 읽기 전까지는 딸의 입장을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세 사람들 중, 맨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한 이는 목을 매 자살을 한 그녀였다. 나는 단지 그녀를 사랑한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 후에 살아남은 수용소의 그녀는 '한나'가 그녀에게 보낸 그 돈들을 보며, '한나'가 수용소에서 돈을 소중히 모아 둔 빈 깡통을 손에 쥐어든다. 나는 그 돈을 '문맹퇴치를 위한 유대인 단체'에 보내고 그 증명서를 그녀의 무덤에 얹는다. 그렇게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 것일게다. 비록 그 죄는 지워지지 않겠지만.. 12월 차가운 눈이 내리는 계절이다. 아무도 없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가 없는 그런 사람을 생각하며 차가운 눈을 녹여줄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담은 소설이 여기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