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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에서는 상류층은 아니지만 일종의 지식인 중간계층에 속하는 교수나 작가, 은행원, 사서 등등 의 아모스 오즈의 가족들의 삶과 유대인이지만 낯선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아모스 오즈의 어린 시선으로 주로 나온다. 아모스의 주위에는 유럽과 러시아, 시오니즘과 공산주의 등 여러가지 그들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 언급되지만 어린이인 오즈인 그것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에서는 1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지지만 전쟁이 발생하면서 일상이 깨진다. 낯설지만 민족의 고향이며 희망이었던 이스라엘 땅은 주변 민족, 아랍인들과의 전쟁으로 깜깜한 어둠이 덮인다. 또한 아모스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어머니의 정신적, 육체적 쇠약과 죽음은 그 자신에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라를 잃은 삶, 떠돌이의 설움, 뿌리를 잃어버린 이들의 슬픔 뭐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서 없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나라없는 설움을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일본의 지배와 강요는 물론 만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러시아로 뿔뿔히 흩어져 이방인으로서 살아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또한 타인의 결정에 의해서 결정된 나라의 존립과 이를 둘러싼 각종 논쟁들은 이스라엘 건국, 우리나라의 독립이 단순한 텍스트로의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사태를 보면 나라없는 설움이 느껴진다.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각 나라들의 결정이 어쩌면 냉정하고 차갑게 느껴졌던 것도 생각이 났다. 난민들의 수용에 대해서 강렬히 찬반 논쟁을 펼치고 있는 사태를 보면 인간적인 한편에서 불쌍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수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민은 그 전에 그 개인이 무슨 일을 하였더라도 뛰어난 교수든 지식인이든 아니면 그 어떤 직업이든 간에 난민이며, 국가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이런 모습들을 뉴스에서 마주할 때면 아무리 못한다 살기 힘들다고 말해도 국가라는 테두리안에 내가 보호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민족의 얼, 단군,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 민족이라는 뿌리 라는 말들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뿌리를 찾아나간다. 또는 나는 어디 누구의 몇대손으로 우리 집안은 양반 집안이라며 근본있고, 뿌리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 근본을 찾고자 한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또 혹은 무언가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물론 나도 이글에 작성한 된 어떤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근본, 뿌리, 소속에 대한 생각들은 이방인, 떠돌이 생활에 처했을때 피부로 느껴진다. 뭐랄까 우리나라사람이 해외의 다른 나라에 갔을 때나 다른나라의 사람들을 만났을때 새삼 애국심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많은 외국인들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혼혈들이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가고 태어나 자라간다. 단일민족, 민족의 얼, 뿌리 이런 단어와 말들을 그들이 접했을 때 느껴지는 소외감도 클 것같다. 두가지 경계에 한 발씩을 걸치고 있는 이들에게 이것들은 때때로 상처로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선민 혹은 이스라엘이라는 근본을 가지고 흩어진 가운데 이스라엘 땅으로 모인다. 다시 나라만 있으면 모든것이 해결될거 같았던 막연한 희망을 가졌던 이들은 이스라엘땅에서 냉혹하고 거친 현실가운데 내몰리며 절망한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다가 이스라엘에 온 이들은 기존에 있었던 그들의 터전에서의 삶과 이스라엘 땅에서의 삶과 가치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기에 가끔은 과거의 그때를 떠올렸을 것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혹은 기존의 가치와 삶을 추구한다. 변화를 좋아하고 추구하더라도 그러한 변화가 힘이 들때면 과거가 아무리 힘겨웠을지라도 과거의 평안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이부분을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성경적으로 말하면 애굽의 노예생활이 차라리 광야생활보다 좋다 뭐 이런 느낌이려나? 특히 과거의 터전을 알고, 홀로코스터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생각, 가치의 격차도 굉장할거 같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은, 혹은 비극적 사건들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사고의 차이는 크다. 6.25, 민주항쟁, 4.19, 5.18 등을 체감했던 이들과 지금의 세대가 그런 사건에 가지는 인식차이가 있는 것만큼.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이자 소설이다.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그들의 사랑이었고, 꿈이었고, 희망이자 소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슬픔이고, 고통이었고, 절망이자 어둠이었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라니 뭔가 감성적이고 뭔가 로맨스 소설에나 어울릴 것 같던 제목이 이해가 되던 순간이었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여러모로 느끼고 생각한 것이 많았던 거 같다. 이스라엘을 그 자체도,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 나와 나의 나라도, 그리고 평소에는 기억하지 않던 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좀더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것같다. 나로서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웠기에 해설의 내용을 참고 하면서 위의 글을 작성했다. 내가 참고한 소설 해설의 일부 가져왔다. 오즈가 이소설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뿌리 뽑힌 알리야 세대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이민 시대 그의 선조들이 겪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란 곧 수천 년 살던 디아스포라의 고향을 떠나 이전의 정체성과 언어와 기억과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고향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니의 자살도, 아버지의 부적응도, 이모들의 까다로운 생활도, 유명 인사들의 허세도, 정치적 논쟁과 갈등 그리고 폭력 역시도 따지고 보면 두 세계의 시공간의 살아야했던 알리야가 잉태한 자식들인 셈이 아니던가? 그들이 꿈꾸던 환경은 현실과 달랐고, 상황은 끊임없이 바뀌었고, 정체성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몸은 새 땅 이스라엘에서 살지만, 마음은 자꾸만 자기들이 떠나온 낡은 곳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어디가 진짜 고향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사랑이 가득한 유토피아이자 고향이지만 동시에 벌거벗은 어둠의 사막이리라. 4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