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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꽃을 봐도 무감각했다가 그 정반대의 내가 된 건 삼십 대 중반 무렵인 듯하다. 나도 아주 어릴 땐 그렇지 않았는데...
나는 타인은 물론이고 가족과도 잘 섞이지 않는 이방인의 삶을 오래 자청해왔다. 왜 그런지 가족만 생각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에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삶에선 나 자신 외엔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식물이든 그게 뭐든.
한순 시인은 내가 오래 잃고 살았던 위의 두 가지에 은은하게 촌철살인 하는 삶을 살았구나 싶다. 그래선지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여울지는 잔상으로 한동안 멍해 있었다. 생에 스민 잔잔한 슬픔에 비하면 고독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
언니의 제삿날은/그래,/꽃잎이 난분분 떨어지는 때/손바닥 위로/분홍색 꽃잎 하나 팔랑이며 내려앉으면/나는 그 꽃잎 그늘에 엷게 숨어들었지//봄마다 언니는 환한 분홍으로 피어나/다시 흩날리고 있을 뿐//꽃의 길목에 서 있으면 떠났던 것들은 돌아온다는 것을/봄마다 새로 배운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 <돌아온 꽃잎>)
위의 시를 읽던 나도 문득 딸들만 줄줄이 낳다가 막둥이 아들을 낳고 어화둥둥 하던 어느 날 그 아들을 낳은 지 불과 2년 만에 하늘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부모님의 슬픔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처럼 시 곳곳에서 부모님과 고인이 된 언니, 남편 등의 가족·친지를 향한 시인의 지극한 사랑이 전해졌는데, 그 안엔 짠한 안쓰러움, 비애 등의 감정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병원도, 서울 나들이도” 모두 거부하는 80대 노모를 “하루라도 더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녀의 왼쪽을 노”(<개망초 3>)리며 엄마 대신 아프고 싶어 한다거나 “말을 지우고/탑 그림자를 밟고 발길을 옮”긴 후 “무겁게 젖어드는”(<도선사>) 남편의 등이나 잠든 모습, “작은 의자에/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아버지의 노을>)에게서 느끼는 가엾음과 같은. 그런 감정들을 덤덤하게 할퀴는 데서 오는 묘한 슬픔이 휠씬 더 오래 지속된다는 걸 본서의 시들에서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 조련사인 시인은 슬픔을 슬퍼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생의 순간순간 마주치는 불안마저도 매혹적으로 조감鳥瞰한다. “봄의 불안 속을 걷노라면/아버지의 생이 천천히 지나가고/이복 삼촌의 미안한 웃음이 비치고/비 오는 날 새끼 낳는 돼지와/말을 주고받던 엄마가 보이고/아름다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지나간다는 것인지/이 매혹적인 불안” (<연둣빛 불안>) 그 모든 그림자의 의미를 포용하고 톡톡히 치러냄으로써 자가 치료와 자기 위무慰撫를 하게 되자, 그녀는 마침내 부지불식간에 기습하는 슬픔을 노련하게 대처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슬픔을 잘 다룰 줄 아는 시인은 자주 꽃(나무)를 보고 그를 껴안는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생사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꽃에게서 사람, 즉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봄이 오고 있어요//이 봄이 마지막인 듯/화사한, 꽃들//웃지 말아요//그 봄과 그 봄 사이/색은 바래고//승복을 입은 당신이 끌고 온/주름진 햇빛//늙은 봄이 오고 있어요//꽃을 슬퍼하는 건/내 오래된 지병//아버지 그림자로 핀 겹복사꽃/꿈속의 꿈을 꾸어요 (<겹꽃의 자락>)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희로애락도 어쩌면 자연이 선점한 건지 모른다. 시인은 그중에 ‘슬픔’을 인간과 자연의 대표 감정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감정의 우위에 있는 슬픔은 그 외의 감정들마저 끌어안는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도 비슷한 슬픔에게 기쁨, 화남, 즐거움은 그 자체로 어딘지 애처롭고 애틋해 보인다. 나이 먹어 늙고 병든 나를 나은 부모, 그 부모의 자식인 나의 자식들마저도 언젠가는 나이 들어 주름진 노인이 되는 삶의 순환을 시인은 슬픔으로 일갈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봄과 화사한 꽃에서조차 슬픔을 읽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시詩로 놓고 간 사람 또한 한순. 나는 그녀가 아프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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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낭자하다 저렇게 농익을 때까지 한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비명도 지나가고 한숨도 지나가고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한숨이야 말할 것 없겠고 터질 것처럼 붉은 해 두 알 업보를 다 덮어줄 푸른 손바닥 때 된 것들의 만남 향기가 낭자하다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연잎 아래 감 두 알〉(전문)에서 - * 시인의 시선은 놀랍습니다. 푸른 연잎에 떨어진 감 두 알을 보고 지난 시절의 비명과 한숨을 읽어냅니다. 인생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비명과 한숨이 수없이 교차합니다. 그 세월을 오래 견디면서 익을 만큼 익으면 저절로 내뿜는 향기가 사방에 가득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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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자란 토란잎은 내 근심거리보다 얼굴이 더 커졌다 저 넓은 잎에 무거운 마음을 많이 기대었다 녹색의 이파리는 내 어두운 얼굴을 이리저리 굴리다 바닥에 쏟아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토란잎에게〉(전문)에서 - * 얼마나 간절했으면 토란잎을 보며 가벼워졌다 했을까요. 그래요.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일도 공부도 신나고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무거워지거든 토란잎을 바라보십시오. 꽃과 나무를 바라보세요. 그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질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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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노을 낮게 해 지는 저녁 작은 의자에 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 얼마나 많은 신음을 석양으로 넘기셨나요?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아버지의 노을〉(전문)에서 - * 아버지들은 때로 신음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울대 안으로 삼키고 또 삼키며 붉은 노을을 바라봅니다. 내일 다시 떠오를 붉은 태양을 미소로 기다립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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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를 볼때도 그렇고 책을 읽을 때도 그런데
슬픔이 내안에 잔재되어 있다고 늘 생각하는데,,,
시집을 읽다보니 참 공감이 되네요.
"별의 허물"
몸살로 두어 시간 깊은 잠에 들었다 깨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어느 외로운 별 침대라는 곳에 누워 있다.
참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ㅎㅎ
거실로 나오니 수묵화 같은 산 아래 반짝이는 저 불빛들 역시 생경스럽다.
이런 시적표현들이 어렵지 않고 착착 다가오는거 같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 뭉클해지면서 공감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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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시인의 첫 시집,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를 처음으로 읽은 후에 드는 주된 감정은 슬픔, 공허함, 쓸쓸함, 덧없음 등의 감정이었다. 왠지 가슴 한 쪽이 스멀스멀 비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별로 달갑지 않은 감정이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시집을 들어 읽어본다. 이번엔 처음 시집을 접했을 땐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처음 왠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쓸쓸함이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시인을 떠나버린 시간들에 대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찬란한 젊음의 시간들과는 이별해버린 중년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시인의 삶의 투쟁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 시간의 흐름은 결국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쓸쓸함만을 우리에게 입혀준다. 하지만, 그 흐름 안에 우리가 견뎌내 온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인의 시들 역시 그렇다. 쓸쓸함 이면에 담겨진 삶의 흔적들이 보인다. 물론, 그 삶은 때론 고단하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한다.
건너편 은행 회전문은 사람들을 차례차례 삼키더니 고단한 발만 토해낸다 <중심을 수선하고> 일부
그렇다. 우리네 모습이 이렇다. 그 고단함 뒤에 남는 것은 기껏해야 땀 냄새 절은 부은 발뿐. 때론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몸살에 걸려 아파하기도 한다. 때론 아들도 남편도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즐기는 시간 “혼자 삶은 밤을 소리 없이 파먹고”<해독되지 않는 오후> 있어야 하는 외로움이 가득하기도 하다. 어차피 삶의 한 단면은 쓸쓸함 아닐까?
하지만, 시인의 시는 이러한 삶의 고단함, 세월의 쓸쓸함이 농익어 향으로 틔우게 된다. 시인의 시 가운데 다음의 시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
저렇게 농익을 때까지 / 한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 비명도 지나가고 / 한숨도 지나가고 //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한숨이야 말할 것 없겠고 // 터질 것처럼 붉은 해 두 알 / 업보를 다 덮어줄 푸른 손바닥 // 때 된 것들의 만남 / 향기가 낭자하다 < 연잎 아래 감 두 알 > 전문
어쩌면 우리 역시 농익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고단함이 가득하고, 때론 군중속의 고독함에 몸을 떨게 될지라도 그럼에도 한자리에서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때론 비명도, 한숨도 가득한 삶이겠지만, 그런 세월을 한 자리에서 견뎌낸 후엔 내 삶 속에 향기가 낭자하게 되길 소망해본다. “때 된 것들의 만남 / 향기가 낭자하다” 이런 향기가 낭자한 그 날, 그 때, 그 만남을 기다리며, 오늘도 일상의 삶 속에 고단한 향내를 저축해본다. |
에세이스트이자 나무생각 대표인 시인 한순님이 54세가 넘은 나이에 펴낸 첫 시집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제목이 와닿으며 가라앉아 있던 감성을 끌어올리며 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겨봅니다. 추천글에서도 말했듯이 한순님의 시는 한마디로 농익었다 짙은 향이 감추어지지 않는다고 표현해요. 그만큼 시가 전하는 진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집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삶의 내공이 시에 고스란히 묻어나 따뜻함과 안쓰러움 때로는 그냥 지나쳤던 사소한 것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어떤 원시나 막, 흑백사진, 오래된 습관등 시 저마다의 개성이 느껴지네요. 3장에 실린 아버지의 노을 낮게 해 지는 저녁 작은 의자에 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 얼마나 많은 신음을 석양으로 넘기셨나요? (p97) 강하고 크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자리가 든든하게만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아버지의 노을 가슴뭉클하게 다가오네요.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져 이제는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드리고 조금은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속 다짐도 해보네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 짧지만 강한 여운과 생각이 깊어지게 만들어 바쁘고 지친 일상에 시를 통해 조금의 여유를 가져볼 수 있게 해주는것 같아 요즘 시와 좀더 가깝게 지낼려고 하네요. 시에 대한 해설도 나와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또 다른 시선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것 같아 좋았어요. 추워진 날씨에 차 한잔의 여유와 좋은 시를 만나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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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 경력이 30년이 되어가는 즈음 발간한 한순님의 첫 시집. 얼마나 설레고 뿌듯할까?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작가들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원고를 보았을까요? 그 속에서 자신의 꿈도 보았을까요? 직장인과 아내로서의 가슴 속에 품은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묶혀온 지난 세월은 오로지 이 첫 시집을 출산하기 위한 기나긴 잉태의 시간이었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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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나는 어렸을때 시 쓰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시를 써보지는 않지만, 시를 읽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때문에 이 시집을 읽게되었다. 저자 한순님은 시인이자 에세이를 쓰시는 분이다. 그리고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이사이다. 나는 한순님의 시집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시 한편한편을 읽을때마다 마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마음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상태이기도 했다. 짧막한 시가 아닌 조금은 긴 시였다. 나는 시를 여러번 읽으면서 시를 감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삶에 대한 시를 표현한것 같았다. 우리의 일상을 시로 표현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책이였다.
이 책은 그렇게 두껍지는 않다. 하지만 시 한편한편 읽을 때마다 마음 속 울림이 있어서 더욱 좋았던 시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을 통해서 책 제목처럼 내면 속 깊이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참 가벼워졌고, 시를 통해서 배움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되돌아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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