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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하고 나를 치유한 완소소설 나는 신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교회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항상 그들의 말에 '왜?'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고, 내가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로부터도 그 질문들에 관한 명쾌한 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도 잘 설명을 못하는 하나님을 왜 그렇게 믿으라 하는지 더욱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소설을 읽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기다리며 이런 책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를 생각하며 우연히 서점에서 몇 장 넘겼다. 그런데 메켄지가 파파로부터 쪽지를 받았을 때부터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궁금해져서 그날 밤 바로 예스에서 주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학과에 다니는 동생의 말에도 귀기울이지 않던 내가 이 책 한권으로 자진해서 교회를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갖고 있던 궁금증들을 한 방에 모두 털어내주며, 동시에 성경 완독도 한 번 하지 않은 내 안에 주님을 먼저 세울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신이 그렇게 우리들을 사랑한다면 왜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이고,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피해가도록 인도하시지 않은 건지.. 신기하게도 저자가 이끄는 이야기들이 모두 내가 가진 궁금증이었다. 그런 여러 질문들에 진심으로 하느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 난 굳이 성경을 먼저 읽고 하느님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오두막>을 통해 난 직접 하느님을 만난 것 같았다.
백인이며 아버지이고 하얀 수염이 나있을 것만 같은 하느님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깨며 흑인 어머니로 맥 앞에 나타난 파파. 그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생겼을 상처를 똑같이 가지고 있던 파파. 나까지도 하느님을 '파파'라고 부르고 싶게 만들었다. 또, 사라유와 함께 정리한 정원은 복잡한 맥의 정신이자 나의 머릿속이었다. 그렇게 때로 눈물까지 흘리며 단번에 책을 읽어 내려 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난 내 곁에 파파(하느님)와 예수와 사라유(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에 행복함마저 들었다. 그분이 여기 내 안에 거하신다는 생각에 두려움없이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이 책을 그렇게 만나도록 한것도 그 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선순위를 두어 리스트를 정리해야 할 정도로, 정말 내게는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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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위로일지라도 거절합니다.
하나님께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가장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었는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에도,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해주실 수 있는데 해주지 않은 것,
그 거절이 저에게는 가장 큰 상처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사람에게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더 화가 납니다.
복음서에 가득한 기적은 그때뿐인 기적이었나요?
기적은 예수님 공생애 기간으로 막을 내리고
이제 유효한 것은 내게 요구하는 온갖 계명과 율법들뿐인 겁니까?
‘맥’이 찾아간 ‘오두막’에서 삼위 하나님을 맞닥뜨렸을 때, 나도 모르게 원망의 말들이 터져 나왔다. 책을 읽기 바로 직전, 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맥’을 따라 좇아간 ‘오두막’에서 이렇게 실재적인 하나님을 마주할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미안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요.
아니 적어도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오두막’ 안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하나님과 직접 해결하지 않은 채, 묻어둔 나의 상처가 다시 건드려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의 방식대로 알아서 처리하고 겨우 진정하고 있는데,
결과를 바꿔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상처의 한 가운데로 나를 부르십니까.
잔인하십니다.
더구나 내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친근하고 인자한 모습이라니!
나는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엿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두막]의 저자인 월리엄 폴 영은 부모가 선교사로 활동하던 뉴기니에서 자랐고, 그곳 원주민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소개된다. 그런 월리엄 폴 영에게 ‘오두막’은 모든 비밀, 아픔, 치욕적 기억들을 묻어두는 마음속 깊은 곳을 상징한다고. 나는 이 소개 글을 읽자마자 흠칫 놀라 내 마음 안의 오두막이 안전한지 확인했다.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놀란다. ‘내 안에도 오두막이 존재하는구나!’ 잊은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집 짓고 살고 있는 은밀한 고통들. 나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누구에게도 꺼내놓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비밀스런 오두막을 안전하게 숨겨둔 채, 단지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 안에는 이러한 ‘오두막’이 실재한다. ‘맥’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매켄지’에게 ‘오두막’은 사랑하는 딸이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장소이다. 즉, 그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된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맥은 ‘파파’(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른다)로부터 쪽지를 받는다.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이 장난 같은 쪽지의 진위를 맥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오두막’을 찾아간다. 마침내 그가 찾은 ‘오두막’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쪽지보다 더 황당한 세 사람과의 만남이다. ‘파파’(성부 하나님)와 ‘예수’(성자 하나님)와 ‘사라유’(성령 하나님),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은 그들과의 교제 가운데로 맥을 초대하며, 그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나는 구약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대면하고자 하실 때에는 ‘원점상황’, 즉 아무것도 없는 광야(사막)로 그의 백성을 불러내신다고 배웠다. 하나님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곳, 그리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은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상처를 재료로 스스로 마음 안에 지은 집, 하나님과의 대화를 거절한 채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와계셨다. 더 달아날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고, 감출 것도 없는 바로 나의 가장 은밀한 그곳에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든, 부정하는 사람이든 살면서 한 번쯤은 신에 대한 실망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부조리와 불행은 신, 특히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학자, 설교가, 철학자, 저술가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왔고 답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여러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과 ‘맥’의 대화를 통해 지금 내가 얻은 대답보다 역동적인 답변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신학적 이론을 초월하면서도 논리적이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면서도 명확한 이해를 제공한다.
삼위 하나님을 알 때, 그분의 일하심을 이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나의 경험에 의하면, 치료와 자유함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함으로 비로소 나와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맥은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한다! 맥이 경험한 치유와 자유함의 신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경험한 치유의 신비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에게 부어지는 자유와 평강의 충만함! 그는 아신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신다. 내가 겪는 고통과 쓰라림을 아신다. 그분이 아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사랑과 손에 잡힐 듯한 실재적인 소망 가운데 내 안의 상처에 새살이 돋고, 오두막은 막 피어난 꽃향기로 가득한 정원처럼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그것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신비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하나님을 향했던 나의 원망과 분노 위로, 예수님을 욕하며 죽어간 좌편 강도의 모습이 겹쳐진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신 예수님.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역사였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예수님께 끊임없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해보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오두막]을 읽은 사람들이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치유와 용서와 자유를 선물하는 축복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하는 것이다. 나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오두막지기가 되고 싶다. 그 은밀한 [오두막]에서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가 대답임을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영혼은 [오두막]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감지한다. 그리고 고백할 수 있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나를 위해 일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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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고통에 몰입이 되면 그 고통이 너무나 커 보이고, 나만 왜 이런 고통속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지고, 깊은 슬픔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그 고통의 기간이 길어지면 이제는 간절함이 타성에 젖어서 기도의 끈마저도 놓아버리다가 결국엔 등을 돌리게 되는게 가장 인간다운 수순이 아닐까? 사람들이 제 아무리 좋은 방법들을 제시하고 조언을 하더라도 결국 욥의 친구들과 같이 느껴질 뿐이고, 나의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은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과만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 거대한 고통의 문제를 바라볼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크리스찬들을 왜 이런 고통속에 방치하시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과연 내 안에, 그리고 이 곳에 계시는 걸까?
윌리엄 폴 영은 자신의 여섯 자녀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주위사람들에게 15권을 복사본으로 돌렸다가 이 소설에 감동받은 사람들의 권유로 출판에 이르게 된다. 입소문으로 2008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이 책을 읽었던 수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동일한 감동을 받았나 보다.
주인공 맥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어린나이에 가출을 감행한다. 장성하여 가정을 일군 맥은 다섯명의 자녀를 두고 본인이 받지 못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베풀며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어느 날 어린자녀 3명을 데리고 캠프를 떠난 맥에게 인생이 뒤바뀌는 일이 생기는데, 연쇄살인범이 6살 짜리 막내 딸 미시를 유괴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에서도 오랫동안 찾고 있던 범인이었기에 결국 주도 면밀했던 범인을 잡지는 못하고, 산 속 깊은 외딴 곳에 세워진 허름한 오두막에서 피가 묻고 찢겨진 딸의 옷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그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저녁약속의 편지가 도착한다.
주인공 역시 그러했지만, 하나님은 물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기에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야 유대인의 자손이었기에 중동사람의 모습이었다고 예측할 수 있지만, 하나님, 성령님을 사람의 형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하나님, 성령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셔서 그 깊은 상처의 공간인 오두막에서 맥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을 흔히 아버지라고 칭하기에 아버지에 대한 편견으로 하나님을 바라볼까 싶어 흑인 여성의 모습으로 분하여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또한 바람이라는 뜻의 사라유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성령님은 그 광채에 대한 묘사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눈이 부실지경이다. 2박 3일간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과의 대화의 시간을 통하여서 맥의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게 된다. 성경 속에서만 알고 있던 두려운 모습의 하나님을 대화속에서 실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경험하는 기분은 정말 특별한 느낌이었다. 맥이 아파할 때, 미시가 소리칠 때, 그리고 내가 부르짖었을 때, 그 순간 순간마다 함께 아파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 왜 6살짜리 꼬마아이 미시는 연쇄살인범과 함께 오두막에서 상상하기도 싫은 순간을 보내야 했을까? 이는 하나님이 이미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나님이 미시를 살인범을 통해서 해하길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선택하면서 시작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정의로 죄를 심판한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선택 받을 수 없는 입장이지만 그는 사랑의 방법으로 자기자신이자 그 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모두 구원하는 방법을 택하셨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도 순간 순간 그 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맥과 가족들은 상처가 치유되고 슬픔의 오두막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나, 나의 오두막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할까? 친절한 하나님의 음성과 내 심령의 정원을 가꾸시는 성령님과 상처난 팔로 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따뜻한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나 역시 맥과 같이 그분들과의 진심어린 대화로 문제를 해결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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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요새 베스트 셀러로 나온 책으로
엄청난 횟수의 리뷰를 달고 인터넷 책 판매 싸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한 상술로 펴낸 책이다.
자. 책의 시작하는 말을 살펴보자.
대부분 시작하는 말에서는 작가의 생각을 담기 마련이다.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말에는 이런식으로 시작이 된다.
'매켄지 엘런 필립스'라는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서 작가가 서술하는것 처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매켄지는 맥으로 불리운다.
20년 전 , 이웃을 돕기 위해 외양간에 쓸 건초를 묶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 함께 일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맥과 나는 친하게 지내왔다. 그 후 우리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커피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두유를 넣은 아주 뜨거운 차이 티를 마셨다.) 우리는 자주 웃음을 터트렸고, 가끔씩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언제나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중략
자. 이 내용은 다름 아닌 시작하는 말에 들어가있다.
시작하는 말에는 당연히 소설 부분이 아닌 작가의 하고 싶은 말이라든지, 책에 대해서 하고 싶을 말을 쓰게 된다.
다음을 더 읽어보자.
맥은 이야기는 잘하지만 글쓰기는 젬병이었다. 그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고, 또 자신의 내면 세계,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임하시는 그런 세계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중략
다음을 읽어보면 맥이라는 사람은 글을 못쓰지만 작가인 윌리엄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자 마지막을 다음을 읽어보자.
그러나 이글이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어질 글은 맥의 회상을 내가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맥의 이야기이지 내 이야기가 아니다. 도중에 나도 가끔 등장하지만 맥의 시점을 따라 나를 3인칭으로 부르겠다.
다음글을 끝으로 시작하는 말이 끝맺음이 된다.
자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뭐라고 생각이 드는가?
작가인 윌리엄이 자신의 친구의 맥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는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줄거리를 살펴보자.
이 책의 줄거리는 맥이라는 중년의 사내가 자신의 아들 한명과 딸 둘을 데리고 강가로 휴가를 보내던 중,
딸인 케이트와 아들인 조시가 보트를 타다가 전복 사고를 겪게 된다.
다행이도 아버지인 맥은 그 둘을 무사히 구하게 되지만, 맥이 둘을 구하는 사이에
막내인 '미시'가 행방불명 되게 된다.
휴가도 잊은 채, 맥, 케이트, 조시는 미시를 찾지만, 찾을 수 없게 되고
경찰의 조사에 따라 납치범에게 잡히게 된것을 깨닫게 된다.
남치범을 찾아 증거를 쫓던중, 오두막에 범인이 있다는것을 알고
경찰이 오두막으로 범인을 검거하러 들어가지만
남은것은 미시의 드레스와 흘러내린 선혈뿐이었다.
이로 인해서 맥은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게 된다.
그러던중 어느날 자신의 집으로 '파파'(맥의 아내가 하나님을 부를때 쓰는말)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도착하고,
그 편지 내용에는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쓰여져 있다.
맥은 이 것이 범인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혹시나 정말 하나님이 보낸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혼자서 오두막으로 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친구인 '윌리'가 차를 빌려 주게된다. 이 글을 쓴 작가이다.)
오두막에 도착한 맥은 자신의 딸의 선혈 자국을 보며 다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다가
지쳐서 집으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오두막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 오두막으로 다시 들어간 맥은 그 안에는 하나님(여자 형상), 예수, 사라유 셋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맥은 이 셋으로 인해서 마음의 치유가 되고,
그들을 만난지 삼일째 날에는 딸의 시체가 파뭍힌 장소를 하나님이 알려주신다.
맥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나님께 하고는 그 살인자를 용서하게 딘다.
그리고 맥은 다시 눈을 뜨게 되는데, 자신이 잠시 잠들어있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이 것에 대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말해주기 위해
차를 타고 집에 가던중 사고를 당하게 된다.
몸이 어느정도 완케된 후에 맥은 이 때 있었던 일을 친구인 윌리에게 말을 해준다.
윌리는 맥이 하는 말이 약물투여로 인한 정신적인 환각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를 믿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된다.
그리고 맥이 병세가 호전되자, 맥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자신의 딸의 미시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경찰의 조사를 요구하게 되고, 경찰은 미시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며 그것을 증거로
살인마를 체포하게 된다.
자 여기까지가 줄거리이다.
맺는 말을 읽어보자.
내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모든것이 맥이 회상한 대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교통사고와 모르핀 때문에 그의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결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요즈음 맥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다...중략
이 글을 쓸 당시 맥은 꼬마숙녀 살인마의 재판에서 증언 중이었다. 그는 범인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아직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는 판결이 내려지고 한참 후에라도 그를 꼭 다시 만나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을 같지 않은가?
이 정도 읽고 다면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은 더욱 믿음이 단단해질 것이며, 확신이 들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정말 엄청나구나라고 생각이 들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비록 꿈이었지만, 자신의 딸의 시체의 위치를 알 수 있지 않았는가?
본래 내가 생각한 이 책의 평점은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몇페이지를 넘기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맺음말 다음으로
책을 더 넘기면 몇페이지로 된 추천의 말이 있고.
또 몇페이지를 더 넘기면 옮긴이의 말이있고.-_-
더 넘기면 '오두막의 뒷 이야기'가 있다.
자. 다음을 읽어보자.
나는 내 아이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그것을 통해 아빠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과 아빠에 대해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윌리(나)가 맥 대신 이야기를 대필해준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떠올랐다. 내 첫번째 책에 오두막. 매켄지 앨런 필립스 저, 윌리엄 폴 영 공저라고 쓰게 될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나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고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맥은 실제 인물이 아니다. 내 아이들은 맥이 나와 비슷하고 낸은 킴과 많이 닮았으며 미시와 케이트등 다른 인물들도 우리 가족이나 친구와 닮았다고 여겼고.....중략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낸 픽션이다...
그렇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뒷편에 이러한 설명이 있으니, 독자들은 이 책이 허구라고 생각할까?
대부분의 독자들은 왠만하면 책 뒷쪽까지 읽지 않는다.
내 말이 거짓말 같은가?
그러면 인터넷 책 판매싸이트에서 리플을 보아라.
가관이다.
허허허.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 책은 미국에서 60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작가라고 하는 윌리엄이라는 사기꾼은 초기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잔머리를 썼나보다.
뭐. 처음부터 이 내용은 허구요. 라고 명시하고 글을 썼으면
누가 이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무튼, 이 책은 쓰레기다.
개인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기를 치는 놈들은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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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은 교리를 앞세우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런 종교인들은 타 종교인들 혹은 무종교인들에게 배타적인 행동을 취하곤 한다. 왜 그럴까? 왜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서로 사랑하며 조화롭게 지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타 종교인들이나 무종교인들을 배척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절대 자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배척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 이외에 다른 종교를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종교지도자들은 타 종교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 인양 선전하고 신도들에게 강요한다. 이건 결코 하느님의 뜻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자신을 믿든 안 믿든 어차피 다 하느님의 창조물인데 하느님이 그렇게 배제하라고 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가 이 말이다. 한편 기독교 혹은 천주교에서는 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을 왜곡시키는 행위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나 자신을 있게 한 조상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정점엔 하느님이 계신다. 다시 말해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조상을 숭배하면 하느님을 덜 숭배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조상숭배를 금지한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이 이치를 왜 종교지도자들만 모르는 것인지 난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종교지도자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만 하지 않았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종교를 불신하거나 도외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타 종교를 배척하거나 배제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따랐을 것이다. 종교전쟁이나 일으키고 종교 때문에 서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종교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 무언인지를 제대로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지인인 맥(매켄지)이 겪은 일을 토대로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하느님에 대한 고정관념이 실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하느님이 백인 남자가 아닐 수 있다 라든가, 하느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든가, 하느님이 자신 이외에는 다른 존재를 믿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든가 하는 것을 이 책에선 다루고 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가 실은 하느님의 뜻을 왜곡되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총 18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 매켄지가 딸 미시를 잃은 슬픔으로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매켄지는 ‘거대한 슬픔’이 서려 있는 오두막에서 하느님에게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한 번도 옆에 계시지 않았죠.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도, 미시를 잃었을 때도요. 지금도 없군요. 정말 대단하신 ‘파파’입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도 20대 초반에 실패로 힘들었을 때 하느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지만 하느님은 도움은커녕 오히려 거듭 실패를 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난 공공연히 종교를 비난했고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종교의 문제점인 배타성까지 문제 삼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자살하려고 했을 때 항상 개방되어 있었던 옥상 문이 그 날만 잠겨 있어서 죽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옥상은 아주 넓은 공간이었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맑은 날엔 빨래 널기에도 좋아 늘 그렇게 열려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던 난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하다 마침내 결심이 굳어져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난 그때 문득 하느님이 나를 아끼시고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이 순간만 버티고 이겨내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살을 포기한 그 순간 들었기에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돕는 방식인가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일을 겪은 후부터 난 완전히 달라졌다.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되었고 힘든 일도 잘 버텼다. 그리고 그 덕분에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종교에 관한 예수님의 생각’을 전한 부분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매켄지에게 “나는 제도를 창조하지 않았어요. 그건 하나님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자들의 소관이죠. 나는 종교를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결코 종교를 강요하지도 계율을 강요하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방침이 마치 하느님의 말씀인양 떠들고 그걸 신도들에게 강요한다. 하느님이 뭐가 아쉬워서 창조물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겠는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인데 왜 인간들의 사랑을 목말라 하겠는가 이 말이다. 십일조 같은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나 성당을 으리으리하게 지으면 하느님이 좋아하실 것이란 착각도 버려야 한다.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분이 고작 건물 하나 번지르르 하게 지어놨다고 손뼉치고 좋아하실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매켄지가 왜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여기서 매켄지는 “내 생각엔, 어 ,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대체 왜 나를 사랑하는 건가요?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는데요?”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더할 것도, 앗아갈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무척 자유로울 거예요…….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겠죠.”라고 답변하신다. 이 말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을 낳아준 것에 대해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도 창조물인 우리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게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느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시다. 그러니 바랄 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몇몇 종교지도자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설교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일 하느님의 뜻을 잘 전달해야 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부를 더 늘리고자 왜곡된 사실을 마치 하느님의 말씀인양 전달해 하느님의 자식들을 혹세무민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이런 몇몇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고 있는 분들까지 도매급으로 매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신성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이제 더 이상 부정한 일들로 하느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종교는 거래하는 장사가 아니다. 십일조를 받았다고 그에 대한 대가로 천국행 티켓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다. 하느님의 본연의 뜻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자식들을 배제하는 행위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물인 우리들에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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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worry. Be happy!'라는 팝송을 후렴만 알고 지내다가 얼마 전 전체 가사를 본 일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 문제만 보고 있으면 문제를 double로 만들 뿐'이라는 가사가 있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이 노래는 조금은 오래된 노래인데도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상처) 속에서 살고 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미국 사람들도 힘들단 말이지~'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 맥은 특히 더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맥이 가진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깊이 빠지지 못하고 헤매는 경향이 있다. 이 책 역시 주인공을 이해하고 그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고 빠져드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에게도 사랑스런 딸이 셋 있기 때문일까? 미시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면서부터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며 책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미시를 찾기 위한 맥의 발걸음마다 눈물이 있는 것 같았고, 그날 아침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돌이켜 보면서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면서 안타까워 하는 맥을 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 '악몽을 꾸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웃음과 기쁨이 순간 순간 돌아왔어도 죄책감은 여전했다.'라고 말하는데 그 부분에서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그런 맥에게 주말에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쪽지가 온다. 맥은 그 쪽지를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오두막으로 간다. 그런데 그 곳에 누가 있었는가? 놀랍게도 거기엔 하나님이 하나님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초월하는 깜짝 놀랄 모습을 하고 맥을 기다리고 있었다. 맥에게 파파(성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간달프처럼 턱수염을 휘날리는 거구의 백인 할아버지로 나타났다면 당신의 종교적인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되었겠죠. 하지만 이번 주말은 당신의 고정관념을 강화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랍니다. "
맥이 놀란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외모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그 후로 파파가, 또 예수가,또 사라유(성령)가 맥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맥과 대화하는 부분에서 그들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강제로 맥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고, 또 맥의 상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한 분씩 맥과 데이트하는 방식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맥을 만지는 모습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있던 상처를 떠올려보았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사업을 이유로 인천으로 이사왔지만, 안타깝게도 사업은 실패했고 엄마는 너무 많은 고생을 하며 우리 다섯 남매를 기르셨다.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엄마가 고생하는 원인이 아버지의 무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엄격하며 자상한 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점점 더 미워하며 자랐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기독교 동아리 MT에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직면했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 날 많은 이들에게 기도를 받고 내 마음 속에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은 놀랍게도 싹 사라졌다. 그 때 함께 한, 간사님이 내 등을 만져주실 때 나는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경험이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사일에 지치고, 나의 나다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 '영아부 부모 세미나'에서 여자 목사님께 기도를 받은 일이 있다. 다른 엄마들이 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나는 내 아이들을 챙기느라 다른 쪽에 앉아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갑자기 내게로 오시더니 기도를 해 주시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목사님은 내 귀에 '딸아 내가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별 것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너를 귀하게 지었다. 다 괜찮다. 너는 특별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괜찮다'라는 세 글자가 지닌 놀라운 힘! 나는 그 세 글자에 울고 또 행복해졌다. 맥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그 분 때문에 맥은 데이트 하는 동안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치유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맥이 고통에서 해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에서 해방된 맥은 자신에게 상처준 그를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넓은 아량만으로 남을 용서하기에 부족하다. 이런 놀라운 용서가 우리들 삶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맥은 딸 케이트의 상처를 알아주고 치유해준다. 맥이 케이트의 상처를 알아주는 부분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나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놀라운 소망이 생겼다. "아들아, 첫날과 두 번째 날에는 용서한다고 백 번을 선언해야 할지도 몰라. 셋째 날부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는 완전히 용서했다고 깨닫게 될 거야. 또 그 사람의 온전함을 위해 기도드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의 사랑으로 그의 삶에서 타락의 모든 흔적을 태울 수 있도록 나에게 인도하겠지.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이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 책 표지 앞, 뒤에 '소설'이라는 글자가 없었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처럼 눈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 좀 신비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너무 맞아 떨어지는 대화들~ 한 사람을 치유하는 따뜻한 대화와 사랑에 매료되었기에 사실로 받아들일 뻔했다.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저자는 단지 자신의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 또 나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볼 때는 작고 허름한 오두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뒤덮인 그리고 가장 평안한 곳,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 그려진다. 얼마 전 영화'나니아연대기'를 보았는데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던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아슬란이 사는 세계(천국)는 그 입구만 보여주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기대하고 있다가 그 곳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감독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3D영화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곳이 천국일 것이다. 보이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오두막'을 읽다 보면 사라유의 그 부드러운 몸짓과 편안한 웃음, 그리고 오두막 주변의 멋진 풍경들을 마음껏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을 사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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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상 속에서도 항상 내 자신보다는 타고난 운명을 탓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오랜 물음에 아우성치며 건배하고 있는 나에게, 항상 옆에서 웃으며 나에게 힘이되어주는 친구녀석이 푸른 빛이 감도는 한 권의 책을 선물해 주었다. 표지에는 <오두막>이라는 제목과 아주 한적해 보이는 눈내리는 날의 오두막 사진이 보였고 그 오두막을 봄기운이 느껴지는 따스한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이 내게 준 선물은 단순한 재미와 감동, 지식이 아닌 그 모든 것을 포용한 나의 오랜 물음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오두막이란 내가 만든 작은 공간. 20살 이후 난 차근 차근 그 집을 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짓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실망과 상처들.. 감당하기 힘든, 아니 너무나 부정하고 싶은 일들이 나를 가두고 가두며 오랜 시간을 내 안에 갇히게 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하늘에 대해 한강에 대해 물었던 찾았던 무엇.
오두막은 맥과 하나님의 대화를 통해 내게 마음으로 대답해 주고 있다. 작은 오두막 안에 내가 나를 가뒀지만, 이젠 이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오랜 시간동안 걱정해주며 슬픔을 나눴던 친구 유리에게 이젠 오두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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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에 CCC내 교사모임인 TIM 수련회에 다녀왔다. 결혼에 대한 강의를 듣다가 관계, 가정에서의 문제와 교사가 된 후 생겨난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파견 가게 된 2년 동안 성숙을 위한 자아탐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지난 주일에 미리 생일 선물 받은 "오두막"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고 읽기 시작했다. 선물 받고도 아직 펼쳐보지 못했던 그 책을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펼쳐들게 하시는, 내 삶을 계획하시고 깊이 있게 개입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 좋다.
이 책은 마치 사영리를 삶에 적용하여 쉽게 풀어쓴 책 같다. <제1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제2원리: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제3원리: 예수 그리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제4원리: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네가지 원리가 맥이 살아온 삶과 주말동안 했던 기이한 체험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야기는 맥의 죄와 경험했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공동체 속 관계를 회복하고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틀을 깨고 일상적인 대화와 친근한 비유를 통해 종교적 색채를 줄이고 독자로 하여금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돕고 있다. 요즘 읽는 재미에 빠진 우리말 성경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보여주는 통찰력과 깊이, 그러면서도 재미와 이해하기 쉬움이 공존하고 있어서 신기하다.
사실 죄 없는 사람, 어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거 완전 신앙 서적 아니야??'라고 생각해버리면 읽기 어렵겠지만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맥이 경험하는 변화와 성숙을 나도 경험하고 싶어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책을 읽으면서 파파의 '하영아, 내가 너를 특히 사랑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뭉클해졌다.
수련회 가기 전날 교회 함께 다니는 선생님께서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으셨다며 생일 선물로 주셨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을 권해야할 많은 사람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과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베스트셀러가 되었을만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영화 제작도 생각하고 있단다. 두고두고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고, 영화로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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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이란말은 추억의 장소 또는 왠지모를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아주 작고 정감있는 장소 그리고 무언가 모를 좋은일이 생길것 같은 막연함이 있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따뜻한 책이다. 이 책은 무명의 작가가 어렵사리 출판사를 찾아 어렵게 찾아낸 책을 독자들이 사랑하고 600만부가 팔려나가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갖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많은사람들이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읽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대단한 소설이란 생각에 기대도 많았다. 물론 큰 기대는 실망을 안겨주는 법이라 기대의 강도를 살짝 낮추긴 했다. 이 책의 오두막은 어찌보면 비극의 장소이다. 딸의 납치와 살인이 일어난 장소 그리고 결국 딸아이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오두막에서 핏자국만 발견한다. 그리고 몇년간이나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맥에게 어느날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파파-라는 메세지를 받게 된다. 아내는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맥에게는 왠지 모를 어려움과 거리감이 있다. 그리고 딸아이를 잃은후로는 줄곧 하나님을 원망해왔다. 왜 내 아이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지. 오두막을 가기전 살인자의 쪽지일까 아니면 진정 파파일까 하는 무한한 고민을 가지고 오두막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맥은 파파와 예수 그리고 사라유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대화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찾고 본인속에 잠재하고 있는 아픔과 상처들 그리고 무한한 분노를 알아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다. 그리고 종교에 관한이야기가 나오면 맹목적으로 비난하거나 맹목적으로 믿거나 둘중에 하나인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기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난후 적어도 하나님에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질투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등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님은 본인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누구보다 아름답게 여기신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망가져가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 틀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나나 이 책에서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만들어 버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전하려는 메세지가 뚜렷하다. 우리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에게 접목시켜 죄책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용서에는 누구보다 인색하게 살아간다. 어쩔수 없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이 내 책임이다 라는 가정아래에 죄책감을 가지고 스스로 방어막을 치며 다른사람에게 가까이 가려하지 않을때가 있다. 그리고 남몰래 하나님을 원망한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당신때문이에요. 나를 좀 구해줘요.. 하지만 구해주려는 따뜻한 손길을 알고 잡기란 참 어려운일이다. 항상 곁에 있는것에서는 소중함을 못 느낀다. 그리고 용서라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도 알게된다. 이 책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가슴아픈일을 겪고 스스로에게 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았으면 한다. 나또한 그런부류의 사람이었고 좋은일이 있을때는 모르고 지내다 힘든일이 생기면 어느순간 다른대상을 찾아 원망하는 나를 보곤한다. 그리고 무슨일인가 일어났을때 그리고 내 실수에 대해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스스로를 멍청이라 부른다. 나 스스로를 가둬놓고 힘겹게 산다고 달라지는것은 없다. 오두막은 나에게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고 다시 태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작은 공간이 맥에게는 절망의 장소에서 다시 희망의 장소로 바뀌었다. 아마 하나를 보는 관점도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수있을것이다. 왜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이 책을 만남에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이책을 읽은후 잔잔한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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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가의 인지도가 아닌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소설인 만큼 내용에 대한 믿음은 강한 책으로 다가왔다. 내가 맥의 상황이 되었을때는....
신은 인간에게 견딜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
모든 고통은 인간 스스로 만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한다. 용서와 화해로 밝은 빛이 가득한 사랑의오두막을 지어야겠다. 대한민국이 찬란한 오두막의 빛으로 물들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