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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택, 아니 미자(美者)선택?
"성선택, 아니 미자(美者)선택?" 내용보기
책 제목에서 책 내용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무언가와는 좀 다른 것을 읽게 되는 경우다. 내용도 잘 파악하지 않고 책을 고르고 읽게 되었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을 잘 아는데 왜 책을 읽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혹은 내용이 공개된 책 앞부분은 안 그런데 가려진 뒷부분이 그런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성선택, 아니 미자(美者)선택?" 내용보기

책 제목에서 책 내용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제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무언가와는 좀 다른 것을 읽게 되는 경우다. 내용도 잘 파악하지 않고 책을 고르고 읽게 되었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을 잘 아는데 왜 책을 읽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혹은 내용이 공개된 책 앞부분은 안 그런데 가려진 뒷부분이 그런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데이비드 로텐버그의 『자연의 예술가들』도 그런 경우다.

 

『자연의 예술가들』은 그야말로 자연의 예술가라 할 수 있는 정자새(bowerbird)에서 시작한다. 정자새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정자(bower)를 짓는다. 발각되기도 쉽고, 별로 삶에 유용할 것 같지도 않은 그런 구조물을 짓는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것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고 한다. 찰스 다윈이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생각해냈을 때,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뜨린 공작의 꼬리와 같은 경우다. 성선택은 『종의 기원』에는 등장하지 않고, 다윈의 또 다른 책 『인간의 유래』에 나타난다. 꽤 오랫동안 성선택은 무시되다 20세기 중반에 들면서 진화의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생존에 직접적인 이득이 없더라도 자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방법으로 짝짓기에 유리하다면 특정 형질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로텐버그는 이것만으로는 정자새의 정자, 혹등고래의 노랫소리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방법이 굳이 이런 방법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원제목인 “Survival of the Beautiful”이다. 다윈은 아니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감화받은 사회진화론자인 스펜서가 고안해낸 용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를 비튼 용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미자(美者)선택쯤 될 것이다(실제 그렇게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도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때문에 암컷이 아름답게 여길 만하게 정자를 만든다는 얘기다. 동물도 예술을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생물학, 나아가 과학이 무시해왔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이 책은 자연의 예술가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냥 예술에 대한 얘기로 접어든다. 물론 그것은 자연과 관련된 것이다. 몬드리안이나 폴록의 예술도 자연과 관련시킨다. , 예술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수시로 주지시키고 있다. 몇몇 철학자, 예술가들의 생각과 작품을 통해서 자연과 통하는 예술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과연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비록 그런 게, 즉 정의내릴 수 없고, 어떤 정형화된 틀이 존재하지 않는 예술이, 저자가 정말로 얘기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계속 이어지는 주장과 설득이 오히려 피곤해지는 구조다.

 

미자선택도 그렇다. 사실은 성선택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선택이 들어있다고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성선택을 과연 어떤 의미에서 쓰고 있는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너무도 좁게 한정시켜 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다윈은 성선택을 상당히 큰 개념으로 봤다. , 자연선택의 하위 개념이 아닌, 또 다른 진화의 메카니즘으로 말이다. 로텐버그는 그 후의 진화학자들이 성선택을 좁은 개념으로 한정시켜놓았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이 그 개념을 좁게 만들어버리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암컷이 짝을 찾는 데 어찌 아름다움이 그 기준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건강함의 상징이라든가 하는 다른 이면의 메커니즘을 찾는 이론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설의 하나이고, 그런 가설에 기대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을 선택한다는 것 역시 성선택의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미자선택을 통해서 예술을 설명할 때의 문제점이 있다. 왜 그 아름다운 정자를 짓고, 아름다운 휘파람을 부는 건 수컷이냐는 것이다. 동물의 예술은 수컷만이 행하고, 암컷은 감상만 한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예술을 비유로 보지 않고, 어떤 의식적인 행위라고 했을 때 모순이 생긴다.

 

과학도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하나의 당위를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나오는 모순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움일 필요는 없다. 과학이 진리를 추구할 때 그것의 결과가 아름다움이라면 모를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6.03.24.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