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일전에 우스개 소리로 했던 말들이 있다.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우리는 제대로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의 번호는 고사하고 집이나 가족의 번호도 외우지 못한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때는 내 휴대폰 번호도 아리까리한 때가 있다. 일전에는 친구들이나 가족들 전화번호 대부분을 외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네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모두들 길치가 되어가는 것 같고, 노래방 기계의 출현은 노래 가사를 끝까지 아는 것이 없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서도, 기술의 발달에 따른 문명기기의 출현은 나의 뇌를 편하게 해주는 것인지, 아님 퇴화 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 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비롯한 스마트 기기의 출현은 우리를 또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흔히 사람들은 이들 기기가 인간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사유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서핑 하면서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눈에 자극적인 정보만을 찾고 있고, 소셜 네트워킹의 단문 전송은 사람들이 그나마도 싫어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이 인간들의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왔다. 나 역시 이들 스마트 기기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정신세계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 반기를 든 학자가 나타났다. 이 책 [생각은 죽지 않는다]의 저자 클라이브 톰슨이 바로 그이다. 그는 최근 들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하나하나를 짚어보며 그것이 우리들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먼저 우리 인간이 컴퓨터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경쟁대신 협력을 한다면 우리 인간 스스로가 훨씬 더 똑똑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로 든 인간과 컴퓨터간의 체스 시합에서 인간은 컴퓨터에 패했고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 두뇌의 한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창의력은 없지만 번개같은 속도로 경우의 수를 계산해내는 컴퓨터와 상대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직관과 통찰력을 가진 인간이 한편이 된 개량체스에서는 고성능컴퓨터나 그랜드마스터로만 구성된 팀들을 쉽게 제압했다. 이처럼 인간이 기술과 공생을 한다면 우리의 지능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기술의 협력, 다시 말해 인간이 컴퓨터 즉 인터넷을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를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설명한 기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저자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주장하는 것도 있지만, 그 중에서 관심이 가는 것은 다음 몇 가지이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집단지성으로 대표되는 협업지능이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보통사람들의 지혜가 모여 크고 작은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때로는 해결하는 것을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또한 네트워크에 의한 연결은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됨을 '아랍의 봄'이나, '촛불시위'에서 우리의 눈으로 확인했다. 저자가 내세우는 견해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완전기억과 분산기억이다.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메모리는 우리에게 완전한 기억을 가져다 주어, 우리가 그간 구상했던 아이디어나 수십 년간에 걸친 사건을 되살려내게 만들어 준다. 비록 저장했다는 그 자체나, 검색할 마땅한 방법을 잊는다면 쓸모 없는 자료가 되지만, 디지털 메모리의 진정한 힘은 인간 메모리를 촉발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리 조상들은 기억하는 법을 배웠지만, 이제 우리는 잊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예전부터 지식이나 기술을 주변사람이나 책 등에 분산하여 저장해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컴퓨터는 분산기억의 훌륭하고도 새로운 파트너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이들 디지털 기계가 새로운 문해력을 기르게 만들어 준다고 강조한다. 글쓰기는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어떤 지식을 외워야 할 때, 쓰면서 외우면 더 오래, 그리고 더 잘 기억할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기억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며, 새로운 문해력을 주장한다. 디지털 툴은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데 새롭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컴퓨터는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구식문해력 뿐만 아니라, 동영상, 이미지, 데이터 등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문해력을 향상시켜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더 큰 영역에까지 확장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한편으로 나 자신도 수긍하는 것이 있다. 새로운 문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의 공개가 글쓰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블로그에 올린다는 것은 내가 해왔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제하게 만들어준다. 한 번 생각할 것 두 번 생각하게 만들고, 타인의 생각이 어떠할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지능은 이대로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것에 훌륭히 적응하고 새로운 툴의 사용법을 터득하면서도, 옛 것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해 왔다는 사실에 일말의 안도를 느낀다. |
|
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디지털 교과서 사용에 찬성한다. 내용면에서 디지털 콘텐츠가 책이라는 기존 틀이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고 연결과 편집, 복제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기존의 텍스트 이미지와 사진 외에도 동영상, 링크, 데이터 등 새로운 정보를 다양하게 재현할 수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도 무거운 교과서를 잔뜩 책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보다 아이들 척추와 관절 건강에도 이롭다. 명실상부한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교과서가 아이들을 생각없는 바보로 만든다는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자. 보다 중요한 문제는 디지털 툴을 보다 스마트하게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이다.'스마트폰 강국'답게 우리 교육환경도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
기술의 문제에 있어서 종말론자나 유토피안 모두 틀렸다. 종말론자들은 기술이 인간을 무능하게 하거나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고 엄살을 떤다. '생각의 종말' 운운하면서 심지어 듣기에도 거북한 '디지털 치매'라는 혐오스런 용어까지 만들었다. 반대로 디지털 유토피안들은 정보통신혁명과 소셜 네트워킹이 일으킬 장미빛 르네상스를 꿈꾼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디지털 환경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정신 습관과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그 영향은 긍정적인 작용과 부정적인 작용을 동시에 갖는다. "새로운 툴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지까지 결정한다. 활자화된 단어는 우리의 지식창고를 크게 확대시켜 줌과 동시에 우리의 인식을 선형적이고 추상적으로 만들도록 거든다. 신문은 세상을 좁히고 전신은 한층 더 확실하게 좁힌다. 문화를 예언하는 사람들은 이런 혁신으로 우리가 기술적 종말론을 향해 가는지, 아니면 유토피아를 맞고 있는지 논쟁을 벌인다."(17쪽)
캐나다 저널리스트 클라이브 톰슨은 디지털 환경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문화비평적 입장을 들려준다. 일단 저자는 해럴드 이니스의 '편향성' 개념을 토대로, 디지털의 툴의 핵심적인 편향성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엄청난 규모의 외부 메모리를 활용한다, 아이디어와 사진과 사람과 뉴스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쉽게 만들어준다, 커뮤니케이션과 생각 공개의 과잉을 부추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무한한 메모리, 인터넷이라는 연결성,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생각 공개라는 디지털 툴의 세 가지 편향성이 새로운 '생각 도구'를 만들어내고, 다시 이런 생각 도구가 우리의 정신 활동의 습성을 뒤바꿔놓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디지털 메모리와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인 '라이프로거', 온라인 글쓰기와 청중효과, 터믈러와 터믈링, 디지털 리터러시, 분산기억과 검색엔진 같은 사례들을 통해 디지털 환경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재미나게 성찰한다.
아, '터믈러'나 '터믈링'이란 말이 생소할 것이다. 온라인 토론에서 사교와 예절을 담당하는 이를 터믈러라 부르는데, 인터넷 회합의 분위기 메이커라 할 수 있는 터믈러가 악성댓글을 추방하거나 인신공격을 방지하는 기술을 터믈링이라 부른다. 터믈링은 디지털 예절의 일환이다. |
|
니콜라스 카가 2011년에 출간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http://blog.yes24.com/document/7329944>에서 미디어혁명과 인간 사고의 확장,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인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 이래, 디지털 툴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바 있습니다. 혹자는 인터넷 미디어 혁명을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과 인쇄술은 기존의 미디어체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공통점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쉽게 책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책읽기를 통하여 사고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책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전달받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폭주하는 정보를 적절하게 다루는 기술이 아직 몸에 익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꼼꼼히 읽고 생각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정리해야 나만의 철학이 완성되는 것인데, 넘쳐나는 정보를 욕심껏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물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새뮤엘 존슨이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책을 통하여 정보를 얻던 시절의 한가한 이야기입니다. 인터넷혁명은 이제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기억을 아웃소싱하게 된 것입니다.
일찍이 기억을 아웃소싱하게 된 것을 우려한 사람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드루스(Phaedrus)>에는 이집트에서 문자를 발명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집트의 나우크라티스 라는 곳에 살고 있는 발명의 신테우스는 “왕이여, 여기에 내가 심혈을 기울려 완성한 작품이 있소. 이것은 이집트인의 지혜와 기억력을 늘려 줄 것이오. 기억과 지혜의 완벽한 보증수표를 발명해낸 것이지요.”라면서 자신이 발명한 문자를 이집트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할 것을 왕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타무스왕은 “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해 내적 자원에 의존하기보다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지요. 당신이 발명해낸 것은 회상의 보증수표이지, 기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문자를 습득하여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착각하는 자들의 오만을 경계한 타무스왕이 오늘날의 인터넷혁명을 보고받게 되면 어떤 답을 내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기기의 발전으로 기억을 아웃소싱하게 된 결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생각이 없는 디지털 치매에 이르도록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만프레드 슈피처박사는 <디지털 치매; http://blog.yes24.com/document/7299875>에서 그저 편리하다는 이유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하고 기억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조기에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치매라고 하는 불청객을 일찍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클라이브 톰슨의 <생각은 죽지 않는다>입니다. ‘종말론은 정서적으로 자기방어적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클라이브 톰슨은 인터넷혁명에 대한 비관적 시각에 대하여 “첨단 기술이 문화의 기반을 흔든다고 투덜대면, 알맹이도 없는 소셜 네트워킹의 유행에 현혹되지 않은 예리한 비평가로 보일 테니까. 그렇게 하면 과거를 더 풍부하고 심오하게 이해하며, 오늘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시적 현상에 초연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모른다.(402-403쪽)”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대단한 긍정주의자로 보이는 저자는 기술 과학 분야의 베테랑 저널리스트로서 특히 디지털 기술과 그것의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에 집중하며 이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 역시 종말론자처럼 새로운 기술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몸에 익은 행위를 버리고 새로운 유형의 행동을 배우도록 밀어붙인다는 데 동의합니다. 해럴드 이니스는 이를 ‘새로운 툴의 편향성’이라고 불렀는데, 새로운 기술이 일상생활을 어느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디지털 툴이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편향성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디지털 툴은 엄청 규모의 외부 메모리를 활용한다. 둘째, 오늘날의 툴은 아이디어와 사진과 사람과 뉴스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쉽게 만들어준다. 셋째, 디지털 툴은 커뮤니케이션과 생각 공개의 과잉을 부추긴다. 저자 역시 ‘우리가 두뇌를 자주 활용하지 않거나 부정행위를 하거나 지름길만 찾으려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툴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치디스처럼 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종말론자들이 우려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컴퓨터가 출현한 이후로 체스의 그랜드마스터 지위에 오르는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분명 IT기술을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14893>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34212>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놀라운 기억력이 부러우면서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경험에 따르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하여 망각기능을 발전시키는 진화를 선택하였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http://blog.yes24.com/document/7310686)
흥미로운 점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놀라운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보고들은 것을 모두 기억할 수 있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기기의 발전으로 이룩해낸 인간의 메모리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토탈 리콜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녹음기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할 뿐 아니라 열어본 모든 웹 페이지와 주고받은 이메일, 전화통화 내용까지도 기록하는 사람을 라이프로거(lifelogger), 즉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기록한 내용을 불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두뇌의 회상기능과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수록한 기억은 단서가 없거나 데이터가 올바른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두뇌는 관련된 단서들을 떠올리다 보면 번쩍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기억을 아웃소싱할 수는 있지만, 저장된 기억을 불러내는 회상과정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글이 아닌 사진 혹은 영상으로 SNS를 구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경향은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SNS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대중과 공유하는 일이 의외의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 누군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취중에 써 올린 포스팅 이 의도치 않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하여 세상과 교감을 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SNS에 올린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고 포스팅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청중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청중효과는 공부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글쓰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의 앤드리아 런스퍼드교수가 미국 젊은이들의 글쓰기문화에 대하여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요즈음 학생들이 써내는 에세이의 길이는 한 세기전보다 여섯 배 이상 길어졌지만, 문법 실력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백 년 전에는 ‘봄에 피는 꽃’처럼 에세이 주제를 정해주었지만, 1980년대에는 학생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주로 쓰게 하다가, 요즘에는 논증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찾아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는 에세이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디지털 툴이 창의력과 기억력을 후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알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풀어야 할 문제에 매달리는 과정에서 관련 지식을 많이 쌓아놓았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저자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즉 정신적 연료 없이 창의적인 통찰력이 번득이는 순간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흥미를 느끼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에 대하여는 좀처럼 기억의 스위치를 꺼놓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잘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들은 아웃소싱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다만 디지털 툴을 이용함에 있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문제는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착과 열정이 우리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추진시키는 힘이라고 한다면 그런 집착과 열정을 폭넓은 대상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의 업무 특성상 회의가 많은 탓인지 회의를 줄일 수 있다는 부분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통하여 집단의식을 형성하고 집단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선호하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적 회의는 의견대립만 조장하는 거추장스러운 절차라고 생각하고, 짧고 비공식적 회의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상황을 알리는 연락을 수시로 취하고 온라인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물리적으로 했던 업무를 디지털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할 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툴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디지털 툴을 통하여 모두가 연결되는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책임할 것 같은 디지털 세대들은 책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집단적 무지가 문제가 되는데, 이는 주변에 태도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거나 과소평가할 때 일어난다고 합니다. 결국은 정보의 흐름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선하게 되면 잘 보이지 않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하면 집단적 무지는 의외로 쉽게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IT강국임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네이버가 구굴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낸 비결이라든지, 생각이 날듯 말듯한 상황을 표현하는 ‘입안에서 뱅글뱅글 돈다’고 하는 우리의 관용구가 훨씬 재미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2008년 제2차 광우병사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회원수 100만을 자랑하는 동방신기의 팬카페 카시오페아의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결정되자, 대통령의 결정이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청계천광장에 모여 촛불을 켰는데, 10대 소녀들이 경찰에 구타당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군중을 해산시키려는 진압작전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고, 대통령의 유감과 내각은 총사퇴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과연 사실은 얼마나 될까요?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디지털 세상은 아직까지는 많은 문제를 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분명 인쇄술에 이어 인간의 사고체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혁명이 완성될 것으로 믿습니다.
|
|
'생각은 죽지 않는다' . 인터넷이 사고력을 좀먹는다는 우려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짧고 강렬하게 응수했다. 이런 책이 나온 것부터가 벌써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기가 우리 일상 생활에 깊숙히 파고 들면서 그 장점 못지 않게 단점이 드러났고, 컴퓨터와 스마트기기에 관련한 긍정과 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기술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전제를 두고 디지털기기에 대한 활용을 살피고 있다. 디지털기기가 생활방식 뿐 아니라 사고력 나아가 정치와 제도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그 힘과 파급 범위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디지털 문명에 대한 내 생각은 왔다갔다 하고 있다. 어떤 땐 장밋빛 쪽으로 어떤 땐 잿빛 쪽으로 그 효과에 대해선 반신반의다. 아날로그로 어린시절을 보내고, 디지털 기기에 능숙하지 못하다보니 활용도가 떨어져서 그런 점도 있고, 그 어느나라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에서 부정적인 경우도 많이 접해서인지 디지털 기기로 더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까 필자는 인터넷이나 디지털을 유용한 쪽으로 사용한 사례 위주로 접하다 보니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건 아닌가 하고 삐딱하게 바라보게도 된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나 접근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디지털 기기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태도와 숙련도를 함께 갖춘 케이스였다. 그러고보면 내가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구나 싶었다. 기사보고 인터넷 쇼핑하고, 블로그에 글 올리고,메일 보내고 받고 검색하고, 영화보고 음악듣고 그정도가 고작이었으니. 이 정도만 해도 사용해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는 건 아닌가 불안해지는데.
디지털 매체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저장과 기록이 용이하다는 점과 검색으로 자신의 기억이외의 지식을 가져올 수도 있고, 글이나 의견을 공개하면서 얻는 장점도 크다. 디지털 학교는 인터넷 등장이후 꾸준히 거론돼 왔던 활용방법이고. 이 책에서는 이런 장점을 잘 부각시켰고, 그래서 저자는 디지털 매체의 장점과 인간의 통찰력 등의 장점이 결합하게 되면 사고력과 창의성은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사고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우라고 주장한다.
특히나 연결성은 공간을 뛰어넘은 네트워킹이 가능해지면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압력수단이 되면서 사회와 제도를 개선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일리가 있다. 몇년전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서 SNS의 역할이 실로 막강했던 예에서나 또 그 어느나라보다 먼저 인터넷을 선거에 활용한 것이 우리나라인만큼 그 위력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만큼 저자는 지금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늘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디지털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세상과 생각 그리고 제도를 바꾸는데 그 어느 기술보다도 기여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디지털 매체는 툴을 다룰 수 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활용범위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활용한다면 시간과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아이디어를 얻고 창의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저자처럼 디지털 매체나 툴에 대한 접근성이나 활용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정보격차가 더 심해질 염려도 있을텐데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디지털 매체 사용자가 선의을 갖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사실을 올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유저가 악의를 갖고 사용한다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치적인 목적으로 SNS를 악용한다면? 신빙성이 낮은 정보를 사실처럼 올려 선동한다면? 범죄에 악용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인터넷이나 SNS의 여론과 실제 투표후 결과가 괴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복사해서 숙제하거나 레포트를 제출하는 표절이 만연한다거나 중독성에 대한 걱정도 제기되고 있는데. 기술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사용하는 목적과 의도가 중요한데, 그 점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가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학습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단점과 그로 인한 혼란은 사용 역사가 쌓여갈수록, 또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보완되고 개선돼가지 않을까. 간편한 툴을 개발하고,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 법적인 정비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유저들도 온라인으로 유포되는 정보에 대해서 시시비리를 따지는 판단력을 갖춰갈 것이고.
지금까지 인간이 일궈온 문명과 문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의 전망처럼 켄타우로스들이 대거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기대하게 된다. 디지털 매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통찰력과 직관등 인간의 능력, 둘의 장점만을 취한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우로스. 도구는 사용하라고 만들어지는 것이고,기술은 세상을, 또 인간을 변화시킨다.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인간의 활동과 능력은 향상돼왔다.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디지털 매체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애정을 가져보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지금까지는 반신반의였다면 지금은 긍정7 부정3 정도라고 할까. 디지털매체는 온-오프 세상을 연결함으로써 인간이 사고력과 창의성을 다양하게 발휘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고, 나아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利器)로서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
|
소크라테스가 현대에 산다면 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도 IT세상에 맞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는 책도 지식을 암기를 해야 했던 시대이다. 암기 능력이 그 사람의 지적인 능력의 시대였다. 많은 지식을 안다는 것은 그 만큼 머리에 담겨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어떤가?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인 현대는 그 많은 정보를 다 저장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머리 사용량이 적어 걱정을 한다. '혹시 많이 사용하지 않으니, 퇴화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런 두려움과 걱정을 이 책은 해소시켜 준다.
우리는 오랜 전의 사진을 보면 과거의 행동이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그 당시에 했던 행동이나 생각을 적어두었던지, 아니면 녹음을 했다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지도 않았고 기억속에만 남겨두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의 기억은 정확히 생각이 나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과거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현재에는 그리운 추억일 뿐이다.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우리는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고 하는 심리적인경향이 있는데, 이런 증상을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쓴다. 프랜시 베이컨 경은 "독서는 여유로운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며,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만들기 위한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글을 자신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본다. 이런 현상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도 잘 읽게 표현할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 끄적거리던 것이 이제는 보여지는 환경 속에서 글을 쓰다보니, 많은 생각하고 읽게 되고 정리하게 된다.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청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을 쓴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 쓴 글을 읽고 생각하고 같이 공유하고 댓그을 달아주는 것도 작은 소통이라고 생각이 든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때문에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기억을 더듬거리면서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는 백과사전 대신에 인터넷을 뒤지고 찾으면서 더 많은 풍부한 지식을 갖게 된다. 다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보조기억장치를 달고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무엇일까?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이고, 백과사전이며, 이정표이다. 그리고 보조기억장치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
|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조선시대 당쟁처럼 어이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왕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3년상을 할지 말지 싸우면 현대 사람들 중 누구라도 이해 못할 말다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물론 당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현안임에는 분명했지만... 지금의 IT혁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이로움에 대한 찬반논쟁 역시 후대에서 바라볼 때 이해는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라는 평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IT기기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넘어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큰 변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몇해 전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간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손안의 세상’을 구현한다며 세상에 등장한 아이폰은 순식간의 유선 온라인 사업의 몰락과 모바일 산업의 초고속 성장등 온라인 분야의 혁명을 가져왔고 수많은 기업들의 명운을 갈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부진과 몰락의 기운, 반대로 아이폰의 창시자 애플의 끝을 알 수 없는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손안에 문명의 이기를 갖게 된 현대인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의존도는 폭증하였고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일상생활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모바일 기기에 노출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하려 들면서 생각하지 않는 빈도가 많아지고 종국에는 ‘디지털 치매’에 이를 정도로 점차 퇴보한다는 우려가 나오게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명저는 그러한 현실 우려와 디스토피아적 사회현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문제점을 제기하며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생각은 죽지 않는다>는 바로 니콜라스 카의 대척점에 있는 저서이고 인간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 앞에서 나약하게 사그러들거나 종속되기 보다는 새로운 분야로 더욱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점을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통해 증명해 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클라이브 톰슨은 하나의 첨단기술이 문명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과 근거는 마치 종말론적인 주장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지나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을 따져보고, 그것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험을 인식하고, 해롭다고 판명이 난 툴을 철저히 기피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생각을 고양시키고 우리에게 지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툴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첨단기기와 IT산업의 역할이 바로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툴(인간은 호모 루덴스임을 더 강조하는 것일까?)임에는 분명하다. 저자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사례를 통해서도 니콜라스 카가 제기한 논쟁과 유사한 우려가 수차례 반복되어 왔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 인쇄술, 전신술 등 당시의 기술혁신이 유명한 지식인의 우려를 자아냈던 점을 소개한다.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을 파멸시킬 것이라 걱정했던 소크라테스의 지적을 거론하며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가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저자는 니콜라스 카의 우려와 달리 인간은 신기술의 등장때마다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면서 유용하고 이로운 방향으로 적응해 나갔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에게 인터넷의 등장과 활성화는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갈 기회의 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사유)는 이러한 환경에 맞게 더욱 확장해 나갈 것이고 후대에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현재로서는 어느 주장이 더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합리적인 추론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니콜라스 카의 주장이 이 책으로 인해 의심받거나 용도폐기되지도 않을 것이고 클라이브 톰슨의 주장 역시 헛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폄하되지도 않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부작용 내지는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유의 완성 내지는 확장이 이뤄지기 전인 성장기에 인터넷을 접하게 되는 아동기, 청소년기 세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내심 부족과 정서불안 등의 부작용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또한 인터넷 등 온라인을 구동하는데 필수인 전력 등 에너지의 부족이나 고갈 내지는 천재지변에 따른 원천적 사용불가로 야기될 지도 모를 ‘사유의 공백’ 역시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날로그적 유산을 무조건 구태며 불편한 것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인류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인터넷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이러한 논쟁에서 한 켠 비켜나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성숙함이 돋보일 것이다. 반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거나 스스로 저해했을 난관을 극복해 나가며 현재에 도달한 인류의 능력 또한 무시할 순 없을 것이고 인터넷 시대에 인류 역시 그러한 전례를 이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굽이굽이 돌아 왔지만 결론은 니콜라스카도 클라이브 톰슨도 완벽하게 맞는 것이 아니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각은 죽지 않는다>도 모두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
|
텔레비전을 두고 멍청이 상자라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에 나온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특수한 우리 환경은 어디서든 인터넷과 접속할 수 있으며, 주변은 스마트 기기와 컴퓨터로 둘러쌓여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게임을 하거나 DMB 시청을 하고 인터넷 검색을 즐긴다. 이용시간만을 놓고 보면 잠자고 밥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놓고는 한시도 떨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리감옥>이라는 책을 통해 인터넷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전만큼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컴퓨터와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각종 디바이스 기기들은 니콜라스 카가 경고한 것처럼 인간의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깊은 사색과 지능을 떨어뜨렸을까? 클라이브 톰슨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책을 읽는 내내 클라이브 톰슨의 주장이 현실적이며, 타당한 면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존에 갖고 있었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단지 우리는 컴퓨터의 기능을 제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보조기억장치는 우리가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 기억을 저장시키는 장치다. 매순간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메모지에 중요내용을 기록해놓곤 하는데 얼마든지 종이에 남길 수도 있지만 거리간 이동하면서 내 스마트기기에 저장해두면 요즘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세인만큼 어느 디바이스에서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윈도우즈와 애플이 하나의 OS로 통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인간의 집중력과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기존에는 구현해내지 못한 많은 영역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생각은 죽지 않는다>를 역작에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정보와 기기간 융합은 기존에 가졌던 생각의 틀을 한차원 높여주고, 인간이 실수를 저지를 확률을 줄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게리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의 체스 대결은 인간과 컴퓨터가 벌인 대결이라 더욱 관심을 모았었다. 인간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수를 계산해놓고 즉각 답을 내려놓을 수 있는 슈퍼 컴퓨터를 인간이 이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는데 이 대결에서 진 카스파로프는 이후 인간과 컴퓨터가 한 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켄타우로스를 생각해낸다. 인간에만 있는 직관과 많은 경우의 수를 분석해내는 컴퓨터가 한 팀을 이루게 되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이 대목이 주는 시사점은 인간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일에 컴퓨터의 기능을 잘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늘 생각한다. 생각이 멈출 수도 없고,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도 없다.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하는 컴퓨터, 게임시스템의 도입, 모두와 연결된 사회 등 앞으로의 미래는 인간이 컴퓨터를 제대로 이용할 때 유용할 듯 싶다. 스마트폰으로 단순한 게임을 하는 데만 활용한다거나 아직 지식체계가 미숙한 어린이들에겐 어느 정도 절제하는 방법들이 추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
|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 변화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010년 6월 이집트에서 칼리드 사이드라는 젊은이가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사이드의 참혹한 시신의 모습은 SNS 게시판을 도배했다. |
|
편견이라는 것은 한번 자리잡으면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우리가 다각도로 사고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 내용이나
여러 사람의 구변을 통해 접한 내용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지는데, 스마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기기의 도움으로 게을러지거나 더 이상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인식 또한 편견이라 할 수 있겠다. 위 예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마트기기의 출현이 인류를 퇴보시킨다는 생각은 좀 위험할 수 있으며, 이러한 통념들을 뒤집는 내용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클라이브 톰슨이 지은 책이 바로 ‘생각은 죽지 않는다’이다.
1장 ‘켄타로우스의 등장’에서는 이미 슈퍼컴퓨터가 세계 체스 그랜드 마스터를 이겼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직관은 아직 흉내 낼 수 없으며, 인간과 슈퍼컴퓨터가
함께 협력하여 체스 경기를 할 때 더욱 더 복잡하고 현란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닌 인간과 기계가 협력할 때의 시너지, 즉
반인 반수인 켄타로우스가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2장 ‘완전한 기억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좀더 괴팍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생의 보다 완전한 기억을 위해 우리의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외부 저장매체에 모든 생활을 기록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목에 걸 수 있는 카메라를
통해 본인의 생활을 실시간으로 모두 녹화하는 사람, 유아의 언어발달 과정을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해 아이가 갓 태어난 시점부터 본인의 집에 수십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녹화하는 사람들이 그 주인공인데, 이 사람들이 저장한 어마어마한 용량의 데이터들은 그들의
뇌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을 올바른 기억으로 돌려줄 수 있을뿐더러, 그들과 접촉한
주변인들의 과거까지도 기록된 진실에 기반하여 확인해 줄 수 있다. 상당히 엉뚱해 보이는
이러한 발상이 시사해 주는 점은 온전하지 못한 기억에 의존하려 애쓰는 것 보다는 확실한 메모리에 의존하여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길 수 있는 우리의 뇌를 다른 곳에 집중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후의 챕터들에서 다루는 것들도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온라인을 통한 생각의 공개나, SNS를 통한 상태
업데이트들이 단순히 디지털 시대의 소음들이 아닌 긍정의 side effect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실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책에서는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많은 부분 동의가 되지만, 편견이 우리의 눈과 사고를 가릴 수 있다는 전제와 같이 기술이 우리의 사고 패턴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할 일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새로운 도구의 출현은 새로운 적응력을 만들어 냈고,
인류는 보다 현명하게 이를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
이 책의 표지에 보면 '인터넷이 생각을 좀먹는다고 염려하는 이들에게'라는 글이 있다. 어느새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들어와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필요한 자료도 찾아보며, 서평을 남기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는 어떻게 살았는지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편리하기도 하면서 우리를 어느 정도 구속하고 있다. 과연 인터넷 세상에서 스마트 기기의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스마트 기기가 인간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고, 깊은 생각을 방해하며, 지능마저 떨어뜨린다?' 이 말이 과연 진실인가 궁금하기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트위터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져 세상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낙관도, 구글이 우리 뇌의 뉴런의 구조를 바굴 것이라는 비관도 갖지 않는다. 분별력 있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는 결국 디지털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가 쓰기, 종이, 인쇄기, 전화기와 같이 장단점을 모두 갖춘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향상시키고 우리의 삶을 증진시키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는 묻는다. "검색할 때마다 우리는 더 멍청해지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웹과 위키피디아와 쉽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은 창의적인 인간 정신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 맞는 말이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저자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종족의 이름을 딴 '켄타우로스'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과 컴퓨터가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는 체스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컴퓨터는 창의력은 없지만 번개 같은 속도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분석해내는 재주가 있고, 인간은 상대의 심리를 역이용할 수 있는 직관과 통찰력이 있으니, 잘 협력하면 그 능력이 배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완전한 기억에 도전하는 사람들, 생각의 공개가 갖는 위력으로 이어지는 2장과 3장을 바라보며 이 시대의 장점을 인식하게 된다. 계속 이어지는 책의 흐름을 읽어나가며, 이 시대의 모습을 폭넓게 바라보게 된다. 어느덧 달라진 사회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6장을 보며 협력과 집단적 사고의 성공 규칙을 유념해서 보게 되고, 7장으로 교육의 현실이 좀더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8장과 9장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미 생활 속에 파고들어 자리잡고 있는 디지털 사회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된다.
인터넷 현실을 긍정적인 부분만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지금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를 보다보면 '아, 이런 좋은 점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점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이 두뇌의 회로를 바꾼다. 지금 여러분이 이 부분을 읽었다면, 읽기 전의 두뇌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 거래가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29쪽)
이 책을 읽으며 디지털 세상의 현재에 대해 여러모로 살펴보게 되었다. 스마트 시대의 단점을 보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하여 더 스마트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배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변화에 잘 적응하며 활용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에 잘 편승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요즘 세상에서는 누구나 한 번 읽어보고 생각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고 툴의 사용법을 이해하려면 비판적인 시각과 아울러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갖춰야 한다. (4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