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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을 소개하면서 누워서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 옛사람들이 남긴 와유의 기록들이 제일 먼저 등장하다니 감탄했다 생각할수록 멋진 것 같다 와유, 와유!
*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 석가산은 선비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5세기에는 채수 외에도 안평대군, 성임 등 부귀를 누렸던 사람들의 집에는 대부분 이러한 석가산이 있었다. 16세기 이후에도 문인들의 원리미에는 다투어 석가산이 만들어졌다. 이 무렵 바위를 사서 산을 만드느라 만금을 소비했는데, 이러한 일은 서울의 부호들 사이에서 경쟁거리가 되었다. 또 석가산은 향리로 물러난 사족들의 원림으로 확산되었다. 성산 서하당과 창평의 소쇄원에 서가산을 만들고 꽃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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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에서 접했던 조선의 모습과는 다른 점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암행어사 편과 유배지 편이 그 점에서 특히 재밌었다. * 임금님을 뵙는 것은 고사하고 '계신 곳을 바라보는 것' 조차 당시 제주 사람에게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법에 제주 여자는 바다를 넘어 육지로 나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금강산 유람, 하지만 일정 정도의 신분에 있는 남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 조선놈들 짓거리좀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