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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겠지. 화장실을 가고 마트에도 다녀오겠지. 산책을 하다가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겠지. 책상에 마주 앉아 빈 벽을 노려보다가 자판을 두들기겠지. 내가 상상 할 수 있는 시인의 일상이란 이렇듯 사소한 일 뿐이다. 뭐야, 나와 똑같잖아. 생각하다가 그들은 시를 나는 글이라고 할 수 없는 걸 쓴다는 게, 커다란 차이라는 걸 깨닫는다. 시인의 하루를 상상하는 것보다 시집을 들고 읽어가는 일로 시인의 세계를 염탐한다. 이근화의 시집을 두 권 가지고 있다. <우리들의 진화>와 <차가운 잠>이 있고 <칸트의 동물원>은 없다. 시집이 한 권 없다는 것보다 두 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언제 샀을까. <우리들의 진화>를 들춰보니 2009년 7월 31이라고 쓰여 있다. 여름이고 아마 며칠 휴가를 받았을 날인 것 같다. 그 외에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가운 잠>에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이제하 선생이 그린 시인의 프로필을 바라본다. 2009년과 2012년에 출간된 시집 표지에 그려진 시인의 얼굴은 변함이 없다. 2015년에 출간한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에는 시인의 사진이 실려 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몸을 가졌다고 썼는데 사진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환한 웃음을 짓는 시인의 얼굴에서 글만큼 단정한 기운을 받는다. 산문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에서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이근화는 좀 다를까 싶어서 글을 꼼꼼히 읽었지만 똑같은 자의식으로 일상을 살고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시인.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누군가의 어머니는 시인의 역할에 충실한다. 하루를 지탱하는 균형을 놓치지 않고 다른 이의 글을 읽어가며 내일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을 준비를 한다. 생활인과 시인이 나누어지지 않은 채 보내는 일상은 한 권의 산문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 단순한 흑백 논리가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자매를 키우면서도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자신의 시를 쓴다.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시적인 것'에 다가가려 한다. 문학이 아닌 자리에도 문학의 감정을 들려준다. 주위에는 온통 문학으로 가득하다. 나도 당신도 알고 있다. 문학이 아니면 안 되는 게 오늘이고 내일이다. 먼지를 치우고 물건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는다는 그의 고백에 놀라지 않았다. 가족들끼리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샤넬 백을 선물하고 아버지와 비슷한 점을 꼽는 세심한 점들이 좋다. 다르지 않다.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시인의 어두운 풍경도 구름을 거두면 밝은 빛이 들어차는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엔진 -이근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리고 귀여워지려고 해 최대한 귀엽고 무능력해지려고 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려보려고 해 연통처럼 굴뚝처럼 늘어나는 감정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울어보려고 해 우리는 젖은 얼굴을 찰싹 때리며 강해지려고 해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에는 시인이 읽은 책과 본 영화, 그 자신이 쓴 시의 일부들이 들어가 있다. 모든 것이 시가 될 수밖에 없는 문장과 이미지는 산문집 곳곳에서 시로 위장되어 있다. <우리들의 진화>에 담긴 첫 번째 시 '엔진'은 세상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귀여움과 무능력함으로 강해지고 싶은 화자의 소곤거림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힘으로써 엔진은 쓸모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귀여움 밖에는 없다는 목소리를 읽으며 웃음 짓는다. 만일 시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시를 읽고 쓰지 않는 삶이었다면 우리 자신의 불안은 빵빵 터져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시인의 표정에는 울음 직전의 찡그림보다 웃음으로 만든 주름이 자리 잡고 있다. 산문집 안의 하루는 '고요한 오렌지빛'이다.
푸른 바다 향기 치약 -이근화 입술 가득 하얗게 고인 이것은 고래의 숨결인가 오늘의 고래는 떠오르지 않고 내일의 고래는 어렵다 뻐드러진 칫솔을 들고 타일을 닦는 건 어떨까 날마다 조금씩 모래가 흘러든다면 맨발로 잠들 수 없는 날이 오겠지 가가솔솔 틀니를 덜거덕거리며 웃을까 일곱 개의 임플란트가 내 몸과 같을까 입속 가득 고인 거품을 좀 더 시원하게 내뱉고 싶은데 누군가는 실족을 하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잃는다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조용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의 밤을 뱉어낸다 하얗게 밤이 일어난다 꿈속 일은 흉내 낼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마린보이를 지나 바다로 숲으로 없는 가게로 그곳에서 없는 사람을 만나고 하루 세 번 이를 닦지 않아도 좋다 아침마다 마주 보는 나는 언제나 거울 속에 있지만 조금만 알아볼 수 있을 뿐 끓어오르는 주전자가 한낮의 전등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나는 그때 또 어디 있을까 날마다 나를 증명하고 또 나를 키우는 푸른 바다 향기 치약 시인의 어머니는 임플란트를 일곱 개나 하고 피를 가득 뱉어냈다고 한다. 이가 없는 입은 텅 빈 고래 뱃속을 연상하게 한다. 그 속에 들어가 한낮을 보내고 싶다. 고기를 씹고 날 것을 먹을 수 있는 힘은 딱딱하고 하얗게 돌출된 뼈 때문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살 수 있는 힘이 입안에 몰려 있다. 하루 세 번, 입안을 청소한다. 거품 가득한 치약을 짜서 화가 난다는 듯이 이빨을 문질러댄다. 그러다 보면 나의 꿈은 바다로 가 있다. 거품을 몰고 와 나를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주는 파도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돈다. 난파한 배에서 떨어져 나온 호랑이를 만날 수도 멍청한 청새치를 그물로 건져낼 수도 있는 하루 세 번의 몽상. 시가 되지 않아도 좋다. 시인은 흰 우유 이백 밀리로 가난의 척도를 잰다는데 나는 중국집 전단지를 보며 시간의 헐거움을 가늠해본다. 이제 만 원을 줘도 짜장과 짬뽕을 시킬 수 없다. 전단지는 자꾸 주문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산뜻하게 전화를 걸어 이리로 와달라고 할 수 없어 이근화의 신작 시집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2016년에 나온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