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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를 처음 펼친 게 사월 사일이었다. 언 한 달 동안 계속 다른 형태로 변하며 기승을 부리는 감기랑 함께했다. 미세먼지 등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틈틈이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울음을 집어삼켜야했다.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컨디션이 좌지우지되는 내게 이 책은 낮고 깊은 신음을 내뱉게 했다. 꽃구경 한 번 못하고 봄을 보내지만 저자의 인생이 꽃보다 진하게 향기로웠기에 괜찮다. 지독했고 변덕스런 ‘봄의 기억’ 속에 이 책도 앞으로 함께 할 듯싶다.
어찌 보면 그는 담담히 죽음을 기술한다. 태어날 때의 고통은 망각되고 없지만 삶을 빠져나가는 건 그렇지 않다고. 억울해하거나 원망하는 울분이나 히스테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통증이 몰려왔다. 누르고 눌렀던 감정은 222쪽에서 통곡이 되어 터져 나왔다. 구멍 난 것 같은 폐 부위를 움켜잡고 못처럼 소리내 울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는 동안 종합병원을 지나칠 때면 그의 양심과 책임감이 떠오르곤 했다. 저자와 같은 의사가 있다면 지금처럼 내가 병원을 꺼리지 않았으리라. 사십년을 살면서 작고 큰 의료사고를 직간접적으로 번번이 접했다.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의사를 향한 불신을 상기하며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전문용어가 많았지만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번역이 그의 해박함과 무게를 어떻게 옮겨놓았을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가 전하는 극적인 상황과 철학이 웅숭깊어 물 흐르듯 책장을 넘겼다. 만약에 그가 문학전공자로 학사(생물학도 전공)와 석사학위를 받지 않았어도 이리 마음이 가고 흔들렸을지 잘 모르겠다. 흔히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유의 심연을 끝간 데 없이 펼쳐 보이는 그의 진득함에 매혹되었다. 무형을 유형화하는 손짓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재고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일편 좋으면서도 마치 칙칙한 나를 비춰보는 듯해 괴로웠다. 생각이 많고 거듭 해석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려놓는 멍한 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는데 얼마간의 잊고 털어내는 가벼움이 반드시 필요한데 말이다..
그가 논문주제로 삼은 휘트먼도 그답다고 생각했다. 몸과 정신의 균형을 중시하고, 과학과 문학을 똑같이 사랑하는 그에게 알맞은 주제라는 생각이다. 그는 두 가지를 다 섭렵할 통섭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신은 그에게 많은 걸 허락하는 대신 서둘러 데려갔다. 나이 먹을수록 이런 미리 당겨 씀이 두렵다. 그러다가도 그가 남들처럼 좀 덜 되묻고 느슨하게 일했어도 말기암에 걸렸을지 자문하며 몸을 비틀어야했다. 그가 해줄 수 없는 답을 구하며 울컥해지곤 했다. 저자는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음에도 단순하고 건강하고 싶은 바람에 밀쳐내고픈 충동도 일으켰다. 심연, 어비스(abyss)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지만 그를 읽는 일은 바닥으로 계속 가라앉는 행위였다.
그는 레지던트 마무리 단계에서 폐암을 선고받는다. 정상의 시간은 턱없이 짧다. 뇌종양을 주로 집도하는 전문의로서 그는 환자의 갱생과 죽음에 비교적 익숙하다. 선고자로서 지내온 삶이 어느 날 갑자기 환자와 결정을 따르는 위치로 뒤바뀐다. 혼돈스럽고 자괴감도 들 텐데도 그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더 맹렬하게 탐구한다. 생명 연장보다는 생활의 질과 존엄을 높이 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없고 영위하지 못한다면 시간을 끌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한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는데 치이는 나에게 다음의 말은 아프고 또 아팠다.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다. 만약 이년이 남았다면 글을 쓰고, 십년이 남았다면 집도의로 돌아가겠다.”
나약하게 당장 눈앞의 시간만 살던 하루살이 같은 나의 어깨를 잡고 세게 흔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너의 삶이니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대놓고 몰아세우지 않지만 그의 사색과 회고가 회를 거듭할수록 주체적이고 유연하게 살라는 일침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의 판단을 믿고 지지하는 아내도 더한 감동을 준다.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남편의 암 진단은 위협 혹은 도망칠 빌미로 다가올 텐데 그녀는 오히려 중심을 잡고 그의 곁을 지킨다. 의리와 진짜 사랑을 몸소 보여준다. 심지어 남편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내다보고도 2세를 갖는다. 떠나고 없을 그의 자리를 이중으로 연장한다. 딸을 낳아 한 번, 이 책을 마무리(에필로그)하며 다시. 함께 나눈 잠자리를 말할 때 그녀의 어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작년 <스토너>에 이어 나를 강타한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내게 수겹의 짙은 침울함을 주사했지만 가장 근원의, 어쩌면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헤치는 시간이었다. 나보다 더 무겁고 진중하게 삶을 짊어지는 사람 앞에선 나도 떼쓰고 어리광 부리게 된다. 그들을 설명하는 고집과 밀도와 깊이라는 단어를 깨물며 이만 감상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