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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산책의 즐거움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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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비록 한정된 여유일지라도 내가 매어있는 장소와 시간을 모두 벗어나 자유의 일단을 맛보게 해주니.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고 여행을 떠난다. 수백만원을 들여 열 몇 시간씩 좁은 비행기 좌석에 처박혀 유럽으로 떠나기도 하고, 버스와 기차와 셔틀을 번갈아 타며 바닷가의 리조트를 찾기도 한다. 단풍철이면 모두가 사실상 줄을 지어 한발짝 씩 옮겨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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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비록 한정된 여유일지라도 내가 매어있는 장소와 시간을 모두 벗어나 자유의 일단을 맛보게 해주니.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고 여행을 떠난다. 수백만원을 들여 열 몇 시간씩 좁은 비행기 좌석에 처박혀 유럽으로 떠나기도 하고, 버스와 기차와 셔틀을 번갈아 타며 바닷가의 리조트를 찾기도 한다. 단풍철이면 모두가 사실상 줄을 지어 한발짝 씩 옮겨야 하는 색고운 명산을 올라가느라 하루 온종일을 낭비하면서도 우리는 떠난다. 그런데 가끔 나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들이, 우리가 정말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다만 내가 살아가는 지금-여기가 싫고 진저리나기 때문은 아닌가 하고. 우리는 그저, 집과 회사가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

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정원선의 책을 세 번 째 읽는다. 제주, 전주를 거쳐 아주 작은 도시 제천에 다다른 그의 삶을. 그는 이전에 역사와 문화가 남다른 섬을 이야기했고, 또 후백제의 수도이면서 조선왕조의 본향인 예향의 고장 전주를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충청북도 산골 제천이다. 서울과 2시간 거리로 멀지 않으면서도, 딱히 기억나는 무언가가 없던 제천을 그는 왜 선택했을까. 독자들인 우리는 제천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작가가 말하는 제천은, 넓고 크다. 단지 면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가 아주 섬세한 혜안으로  그 소도시의 내력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의 냉철하면서도 다감한 문장은 제천의 곳곳을 때로는 가혹하게 논파하고, 때로는 애정 가득히 어루만지며, 때로는 제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국가의 존망과 포개 몇 겹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인생과 독자의 삶을 위무한다. 제천의 입구인 박달재는 그의 책 속에서 통시적 생명을 얻어, 구석기 시대의 피한경로가 되고, 망한 신라의 왕족들이 안식처를 찾다가 비로소 삶을 깨닫는 '철학의 거리'가 된다. 유배지로 쫓겨나는 어린 단종을 저버리지 못하는 생육신 원호의 '통곡의 벽'이 되고, 거센 박해를 피해 산골 토굴로 숨어드는 천주교인 황사영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동학의 이념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농민군의 바람찬 노숙지이면서 또한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외세와 긴 싸움을 벌이다 끝내는 만주와 상해로까지 건너가는 한국 임시정부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고개를 말하면서 역사적 희노애락과 살아가는 일의 슬픔과 외로움을 하나로 껴안는 그의 문장에는 확실히 유장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구성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진지하고 속깊은 이야기 꼭지와,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꼭지가 거의 번갈아 가면서 이어져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어 지루하지 않은 호흡을 선사한다. 원호와 황사영을 다룬 꼭지에서는 끝내 실패했으면서도 도저히 실패라 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여정 가운데 지독한 슬픔과 격렬한 공감을 자아내고, 빵카페와 술집을 다룬 꼭지에서는 기발한 재치와 격의없는 농담으로 평범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일에도 해학과 골계를 담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저자가 낸 세 권의 책 가운데 이번 책이 단연 으뜸인데, 사건을 다루고 분석하는 솜씨나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정서를 몰아가는 리듬이 모두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책 곳곳에 전면 사진(통 사진)을 많이 써 시원하고 편안하게 상상력을 도와주는 편집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정말 두통약을 먹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책 바깥의 현실을 잊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 책은 350여페이지로 짧지 않은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짧다고 느껴진다.


  아름다운 바닷가나 계절색 가득한 산을 찾아가는 것도 좋고, 휴양으로 이름난 여름날씨의 이국으로 떠나거나, 볼꺼리가 많은 새로운 대륙으로 날아가는 것도 당연히 좋은 선택이겠다. 그렇지만 만약 여행이, 그저 몸의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얻는 일이라면, 다시 말해 여행이 삶을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는 하나의 기회라면 나는 독자로서 정원선 작가의 책을 아주 특별한 지적 여행으로 권하고 싶다. 우리 곁에 있는 작은 도시, 별 것 없다 느꼈던 작은 산골도시는 그의 글에 힘입어 이 땅 역사의 연원깊은 장소,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오밀조밀 살아있는 강렬한 색감의 도시, 생명력 가득한 소우주로 탈바꿈한다.  


  여행은 결국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자신을 바꾸는 어떤 사건일지도 모르겠다고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그런 즐거운 변화가 우리네 일상에 매일 벌어지는 일은 아닐테니, 삶이 지겹고 대도시가 지루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의 책을 들고 소도시를 산책하는 일, 그의 눈으로 커지고 넓어진 작은 산촌마을의 광대한 깊이와 소소한 내력을 확인하는 일. 그건 아주 즐거운 작업이다. 올해 겨울에는 제천을 여행해 볼까 한다. 작가가 나에게 세상에 없던 도시를 선물했다.


m*****1 2015.12.0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의 한 대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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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를 다룬 "호반환상곡(Lakeside Rhapsody)" 중 발췌.===========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봄이 꽃들을 앞세워 물태리를 샅샅이 포위하고 있는 2015년 4월의 두 번 째 금요일날 오전이었다. 구경꾼들이 전에 없이 늘어난 청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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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를 다룬 "호반환상곡(Lakeside Rhapsody)"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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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꽃들을 앞세워 물태리를 샅샅이 포위하고 있는 2015년 4월의 두 번 째 금요일날 오전이었다. 구경꾼들이 전에 없이 늘어난 청풍문화재단지를 둘러보다 슬슬 물태리로 내려가서 점심이나 먹어야지 하던 무렵. 전에 없이 밝게 찰랑거리는 청풍호의 물빛이 곱고 산뜻해서 응청각 뒤편의 벤치에 잠깐 등을 기댔다. 아이들 손잡고 나온 어른까지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단지 내 꽃그늘 속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 허리 아래 쪽이 불편하신 듯 곁의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지팡이 짚고서 간신히 걸음을 떼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께서 연신 땀을 닦아주시며 할아버지를 내가 앉은 벤치 옆, 호숫가로 난 또다른 벤치 한 켠에 앉혔다. 은연중에 두 분이 나누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들은 부부이고, 충주댐이 세워지기 전에 청풍면 도화리(桃花里)에서 살았던 실향민인 것 같았다.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도화리는 한벽루 뒤편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 밑에 가라앉은 마을이었다. 칠순, 이십 년 같은 단어들로 이들이 아주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로 할아버지가 입을 여셨고, 할머니는 대개 고개만 끄덕이셨다. 몸은 불편하셨지만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발음이 확실해서 그의 말은 바람이 가지를 쓸어내려 꽃잎이 쏟아질 때마다 소풍객들이 환호를 지를 때를 제외하면, 아주 잘 들렸다. 그는, 벚꽃도 좋지만, 복사꽃 피는 청풍강변의 봄날이 훨씬 더 어여뻤다고 했다. 마을 샘이 있던 자리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번듯하고 훤칠했는데, 결국 통째로 물에 잠겼다고 했다. 봄이면 마을 회관에서 화전 부치고 닭 잡아 잔치를 벌이던 기억이 똑똑하지만, 지금은 전부 퍼런 물로 차올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어졌다며 입술을 잠그고는 호수쪽만 바라다 보았다. 노부부는 그 뒤로 말도 고갯짓도 없었다. 바람도 멈추었는지 벚나무들도 한순간 고요하였다.


그때 금병헌 앞쪽에서 너댓살 된 여자아이를 앞세운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한벽루와 응청각 뒤편, 나와 노부부가 띄엄띄엄 앉아있는 벤치 사이로 걸어와 돗자리를 폈다. 작은 벚나무 아래 였다. 따스한 햇살과 땅을 뒤덮은 벚꽃 흔적에 부부는 기분이 좋았는지 돗자리에 거의 반 쯤 누워 번갈아 아이를 무릎으로 비행기 태워주며 옹알거렸다. 여자애는 꺅꺅 거리며 흥분해 소리지르다 갑자기 내려와서는 제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주겠단 것이었다. 느닷없는 가족의 출현에 노부부도 나도 저도 모르게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꼬마는 일어서서 양 손을 허리춤에 갖다대더니 좌우로 몸을 흔들며 약간 높은 음색으로 노래불렀다. 곡은 모두에게 친숙한 ‘고향의 봄’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아이가 그 다음을 부를 때쯤 내가 앉은 벤치 옆, 그러니까 노부부가 앉아있는 쪽에서 신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는데, 그때껏 앙다물고 있던 할아버지가 입술을 열어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그 끝부분을 따라부르는 소리였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이의 노래가 끝나고, 가족이 짝짝짝 박수를 치고는 아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고 있던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그 마지막 문구를 후렴처럼 반복해 되뇌이고 있었다. 그, 속, 에, 서, 놀, 던, 때, 가, 그, 립, 습, 니, 다…….



d******n 2015.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만 알고 싶은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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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과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여행이 가진 ‘아름다운 곳이나 이름난 곳을 두루 다닌다.’는 사전적 의미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이름난 곳, 경치가 빼어난 수많은 곳을 찾아 주말마다, 휴가 때, 시간과 돈을 만들어서라도 떠난다. 그러나 돌아보면 ‘두루 다닌다.’라는 여행의 뜻, 의미와 실제 여행은 점점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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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과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여행이 가진 ‘아름다운 곳이나 이름난 곳을 두루 다닌다.’는 사전적 의미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이름난 곳, 경치가 빼어난 수많은 곳을 찾아 주말마다, 휴가 때, 시간과 돈을 만들어서라도 떠난다.

그러나 돌아보면 ‘두루 다닌다.’라는 여행의 뜻, 의미와 실제 여행은 점점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아름다운 곳, 이름난 곳을 다녀와도 어쩐지 똑같은, 한곳을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이제는 어딜 가나 똑같은 모습으로 들어선 프랜차이즈 숙박업소나 식당, 커피숍. 특정 지역이 갖는 특징들이 점점 사라지고 도시화하고 산업화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낯선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이른바 ‘생고생’은 이제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렵게 낸 시간과 돈을 들였을 때 당연히 ‘편리’를 사려고, 사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남는 아쉬움과 찜찜한 기분, 왜 여행을 다녀왔는데, 푹 쉬고 왔는데도, 충만해지기는커녕,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야. 집이 최고지.’ 하게 되는지.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열심히 찍어댔으나 이게 올해 다녀온 곳인지 작년에 다녀온 곳인지 알 수 없는가(그나마 셀카가 대부분이 되어버린 사진들)

그때 이 책은 정말 귀하다.

작가가 몇 년의 시간을 들여 제천의 산과 들, 강을 표류하면 그려낸 ‘소동여지도’는 천 년의 시간을 살아간 존재들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곡절을 담아냈다.

작가는 대도시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본연의 생태와 계절의 조화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제천이 아주 커다란 아스피린의 역할을 해준다고 했지만, 그의 책은 남들과 똑같은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똑같은 여행에 갈증을 느끼는 게으른 여행자에게 ‘나만 알고 싶은’ 여행, 제천이라는 도시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y*******0 2015.1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