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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어보자고 달려들었다가 나가 떨어진 책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솔직히 저자의 이름을 보고 룩셈부르크라는 나라의 이람이 들어가 있어서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인터넷으로 제목만 보고 구입한 책이었는데, 이전의 <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서 구매를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져들었다. <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의 경우에는 공리주의 철학자로 알고 있었던 벤담의 철학과 사유를 파놉티콘이라는 감옥이라는 실제화된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과정이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바로 마르크스주의(맑스주의라고도 하지만, 이 책에서나느 마르크스주의라고 하기에 이렇게 표기함)에 대한 해석 논쟁과 주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사상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어렵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흐름을 다루기에는 부족한 나의 능력으로 인하여 스냅샷 형식으로 간략히 정리를 해보았다. 1.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하여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검색으로 인하여 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 책에 언급된 그녀의 삶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보았다.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로자 룩셈부르크는 유태인 출신으로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5살때 병을 앓고 평생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가지고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조국인 폴란드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차르를 찬양하고 러시아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단 마리 퀴리도 위인전에서 어렸을 적에 폴란드 역사가 아닌 러시아 역사를 배워야 했으며, 그들의 언어로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음을 언급하였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도 동일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스위스로 건너가서 취리히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된다. 이후 그녀는 당시 조국의 상황으로 인하여 투쟁의 방법으로서 사회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에서 사회민주당의 좌파로 활동하면서 지도자로서 이론의 정립과 그에 따른 사회주이 운동을 주장하지만, 계파 내에서도 의견 충돌로 인하여 곤란을 겪게 된다. 베른슈타인의 수정 사회주의가 주장되기도 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민족주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회주의보다는 독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인하여 로자 룩셈부르크의 입지는 약화되며, 결국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반전 사회민주주의 조직을 만들지만, 탄압을 받게 되고, 독일 혁명 이후 풀려났다가 다시 혁명운동을 주장하여 체포된다. 결국 그녀는 감옥으로 호송되다가 반혁명주의자들에 의하여 구타와 폭력으로 무참히 살해된다. 그녀가 오늘날 부각되는 이유는 공산주의와 이념 대결에서 승리를 하고 전세계에 정착된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폐해로 인하여 그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 사회주의가 부각되고 있으며, 이전의 소련에 의한 국가 사회주의와 서부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의 장단점이드러난 상황에서 순수 마르크스주의의 대중 전체에 의한 혁명론을 지지하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이 재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당시 슈타인이 주장한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 개진한 책으로서 그녀의 사상을 읽어내기 위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등장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을 낸 이유는 바로 베륜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하여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자로서 독일의 핍박을 받아 영국에 체류하면서 당시 영국으로 망명해온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교류를 하였다. 이후 그는 독일의 사회주의 탄압이 완화되자, 독일로 귀국하였고, 그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비판하고 수정주의를 주장하였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로 인하여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는 더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며, 현재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그러한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진화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붕괴론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자본주의를 개혁하여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추가하자는 것이 수정주의의 요체이다. 또한 계급 투쟁도 역시 자본주의에서 점차 중간계급과 농민들이 노동자와 점차 공통된 목표를 갖게 되는 공동체의 등장으로 노동조합등을 예를 들면서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베른슈타인은 독일 제국의회 의원으로 활동을 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의원을 역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가 정치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여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던 그의 이론을 행동화하였다. 3.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의 기초가 되는 경제적 관점, 정치적 구상, 사회주의 전만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그 논의의 기초를 허물고자 함을 밝히게 된다. 또한 그녀는 레닌에 의한 투쟁 조직의 결성에 따른 혁명을 반대하며, 노동자 계급 전체가 참여하는 전체의 투쟁을 강조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도 언급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의 운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 발전의 운명이 사회주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다." 라는 그녀의 문장은 민주주이에 대한 그녀의 관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베른슈타인의 주장에 대하여 세밀하게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파악하고 있던 베란슈타인의의 주장은 다음의 문장으로 짧게나마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베른슈타인)의 전체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최종 목표인 사회 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라는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p.11) 이렇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녀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자와 구별하고, 전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질서를 교정하는 한가로운 수선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에 반대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도록 만다는 것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라고 주장을 하면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의 무제는 바로 사회민주주의로서는 곳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강력히 주장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반박을 통하여 베른슈타인의 이론을 자본주의의 퇴락에 관한 속류 경제학 이론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퇴락에 관한 이론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4. 경과 이러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강력한 반박과 함께 결국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이론은 패배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인 면을 놓고 본다면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사회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으며, 지지도 이끌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른슈타인은 정부에서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조금씩이나마 실현을 이루게 된다. 한편 로자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을 반박하면서 보여준 마르크스주의의 순혈주의를 자처하게 되는데, 이후 카를 카우츠키와 방법론에 있어서 의견차이를 보이게 된다. 카를 카우츠키 역시 순수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유물론에 집착하면서 방법론에 있어서는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에 의하여 붕괴되기를 기다리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중에 독일의 나치의 등장을 견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요소로 파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을 부러워하면서도 레닌의 투쟁 집단에 의한 방법론(사실 이 부분은 아직 사회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모든 노동자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주도에 의한 봉기로 혁명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혁명 이후에 특정 지배 계층의 탄생을 가져온다는 것을 지적하며(실제 스탈린의 사례를 보면 될것 같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주도성에 중점을 두게 된다. 따라서 자연적인 자본주의의 붕괴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중심이 된 계급 투쟁을 통하여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이행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앞서 생애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방법론의 차이로 결국 사회 민주당에서 나와서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하였지만, 같은 사회주의 계열 내에서도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반혁명주의자에 의하여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책의 구성과 관계없이 나름대로 간략히 정리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해석과 이론 주장은 어느 정도 이러한 부분에 식견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책이라 생각되지만, 나에게는 다소 무리가 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정리를 해보았지만, 실제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를 하였는지 여전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그저 의미를 부여한다면 1900년대 초반의 마르크스 주의자들끼리의 이론에 대한 해석과 주장의 모습이라든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인물에 대한 존재를 파악한 정도로 두고 싶다. 다행히 이 책은 구입을 한 책이기에 나중에 좀더 이러한 분야에 지식을 갖추고 읽어볼 수 있으니 애써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위로해본다. 그리고, 최근에 구입한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말했다>라는 책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공계 출신에 과거 학창시절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적대적인 것으로만 배워서 그런 것인지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였지만, 이 책을 계기로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가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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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짧은 책이지만, 읽는 데는 한달 보름이 걸렸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이리저리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사상가들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책에 있는 사상가들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통해 그들을 접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만, 주요한 인물들을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만날 수 있는 수단은 역시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Marx 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본론'을 읽으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뜻이겠죠. 이런 책들이 흔히 말하는 '원전', '고전'이 될 터인데, 예상할 수 있듯이 무척 어렵습니다. 특별히 잘난 사회과학 배경이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정말 난해한 문장들로만 가득 차 있는 책이죠. 하지만 한 문장의 이해가 어렵다면 이해에 필요한 것들을 다른 문헌을 찾아 해결해나가면서, 다음 문장으로 나가는 수고를 해서라도 원전은 읽을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읽기는 쉽지만 압축된 글보다는 어렵더라도 모든 걸 직접 설명하는 글을 보는 게,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Rosa Luxemburg는 폴란드 출신이며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던 사회주의자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몸을 담았었고, 스위스에서 학위를 받은 뒤 폴란드와 독일을 넘나들면서 아주 왕성한 사회주의 이론가 겸 활동가의 모습을 보여줬더군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사회주의자가 거의 그랬겠지만, Rosa Luxemburg 역시 그의 마지막은 독일의 반사회주의자 그룹에게 당한 린치로 인해 숨졌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Rosa Luxemburg를 '역사상 존재했던 사람들 중 가장 빨간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하더군요. 다른 책들을 통해 뜨문뜨문 접하면서 제가 살짝 느꼈던 Rosa Luxemburg의 인상 역시 비슷했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원칙적 사회주의자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원전을 하나씩 읽어나가기 위한 대상으로 Rosa Luxemburg를 골랐고, 겨우 하나의 책을 끝냈지만 Rosa Luxemburg에게 가졌던 경외심은 더해지는 중입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Rosa Luxemburg가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던 당시, 개량주의 그룹의 이론가였던 Eduard Bernstein의 저술에 대하여 반론하는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Eduard Bernstein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있을 수 있는 약간의 개선을 통해서도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의회 진출이나 노동법 개정 같은 체재 내 투쟁을 통해서도 사회주의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이죠. 이에 대해서 Rosa Luxemburg는 Bernstein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실제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주의 체재 내에서 이뤄지는 개선들은 대부분 사회주의로의 전진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착취를 위한 체재 내 개선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Bernstein의 주장이 왜 反사회주의적인지와 그의 주장이 절대 과학적이지 않으며 여전히 자본주의의 붕괴에 이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것이 필연임을 증명하기도 하죠. 이를 설명하기 위해, Bernstein의 책을 예로 들며 그의 주장을 하나하나씩 논파하거나, 당시 정치 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서 여러 근거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물론 Rosa Luxemburg의 말이 훨씬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ㅎㅎ
저에게 Rosa Luxemburg의 이 책은 어렵기도 했지만, 아프기도 했습니다. Rosa Luxemburg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체재 내 개혁을 위해 만든 한국의 정당이 민주노동당이고, 제가 그 당원이기 때문이죠. 실제 민주노동당이 창당하던 2000년 전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정당 운동을 한다는 것은 바로 '개량' 내지는 '투항'일 수도 있다는 비판을 심심찮게 듣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이 점차 사회주의의 본류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결국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기도 했었죠. 이 책의 서문에서 Rosa Luxemburg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중략)을 사회 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중략)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중략)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혁명이나 개량이냐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은 혁명에 이르기 위한 수다단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Bernstein이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도 '사회주의'를 이루고자 한다는 사람이 목적을 '사회주의'에 두는 것이 아닌 '개량'에 뒀다는 점이었지요. 아무리 당장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개량'이라 할지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당함이 없다면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저도 물론, 제도권 정당으로써 의회 정치에 진출한 이후 끊임없이 다가올 '무한정 개량'의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이 목표에 부합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한 뒤 이를 지키는 길을 걸어여만, '의회주의에 매몰된 정당' 또는 '개량 정당'의 비판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한 정당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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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비판한다. 물론, 베르슈타인은 비판 사회주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그렇다고 전달하지만, 수정은 수정이다. 그리고 이를 룩셈부르크는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정통을 고수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누가 옳았는가? 라고 한다면, 둘 다 틀렸다. 혹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정 됐다. 혹은 소멸 됐다. 혹은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 열띤 열정과 실천이 있었던 당시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지젝은 공산주의를 새롭게 제안해 보지만, 그 공산주의가 과거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젝도 알 것이다. 분명 자본주의의 한계를 다들 느끼고 있지만, 그 대안을 찾기는 힘들다. 자본주의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인간을 탓하는 경우도 있다. 제도가 무슨 죄냐는 것이다.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인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이미 수정주의가 등장해서 논쟁이 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기존 이론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곧 둑은 가래로 막혀 있었던 찰나를 거대한 물길로 묻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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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룩셈부르크에 따르면 사회주의 변혁은 소수의 행동에 국한되기 보다는 다수인민에 있다고 한다. 레닌의 조직 개념은 오히려 자본주의에 의해 각인된 규율개념에 묶여있고 단지 그 지휘봉만 부르주아지의 손에서 사회민주주의 중앙위원회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열린당 인간주의적 - 자유중심적 사회주의를 꿈꿨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서도 아래로부터의 참여적 민주주의를 끝까지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비해 더욱 광범위한 대중의 정치 사회적 권리를 포함할 것이며 더 높은 대중참여(대중의자발성에기인한)를 수반한다.이러한 관점에서 참여를 통한 ''공적통제''라는 개념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제시하는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단지 정부 당을 지지하는 자만을 위한 자유는 그 지지자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전혀 자유가아니다 자유는 언제나 그리고 전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자들의 자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