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프랑스 혁명은 인류의 지배질서를 바꾸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혁명의 중심에 있던 ‘시에예스’라는 이름은 나에게 그리 익숙치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정규 교육과정 속에서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지난 유럽 역사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다루어지는 프랑스 혁명이건만, 왜 그 혁명을 가능케 했던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제 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 책은 실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오늘날의 불평등한 세계 질서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글이다. 과거의 귀족과 제3신분간의 갈등 그리고 오늘날의 자본을 소유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 혹은 자본을 많이 소유한 이와 적게 소유한 이의 갈등. 전자는 전통적인 신분제라는 점에서 후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는 많은 부분에서 묘하게도 닮은 꼴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는 다름 아닌 제3신분이었다. 그렇기에 시에예스는 제3신분은 완벽한 하나의 국민으로서 이야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귀족과 성직자 등을 제하더라도 제3신분은 그 거대한 인구로 인하여 전체 국가의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런 제3신분이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프랑스 사회는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 진보했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한 법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영역 안에 속해야만 했다. 영역 외에 존재하는 제3신분은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가질 수 없었다. 신분 전체를 대표한다고 이야기되어지는 삼부회는 결코 제3신분을 위한 기구라고 할 수 없었다.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제 1,2신분으로 인해 제3신분이 지닌 욕구는 충족되어질 수 없는 구조였다. 시에예스는 꽤나 구체적으로 제3신분의 요구를 이야기했다. 동시에 그는 정부와 특권 신분이 제3신분에게 제안한 점들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꼼꼼히 짚었다. 그는 제3신분의 이익은 제3신분만이 대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삼부회에서 제3신분의 요구가 수용되기 위해서는 제3신분의 대표자 수가 제1,2신분 대표자의 수와 동일해야 하며 동시에 신분 집단이 아닌 개개인으로서 표를 행사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이러한 제3신분의 요구를 수용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배계층은 제3신분이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것 같다. 제3신분이 지닌 대표성에 대해 부정하였으며 더 나아가 제3신분의 정치적 역량을 의도적으로 낮추어 평가했던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제3신분의 이익도 대변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으로 제3신분의 요구를 묵살하려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제3신분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너무도 많은 것들에 눈을 뜬 상태였다. 그들은 법이 결코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법은 그들을 감시하고 처벌하기 위한 기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시에예스는 모든 국민이 의견을 게재하는 것은 정치적 아노미 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본 듯 싶다. 그는 대표에 의해 통치되는 형태를 선호하였고, 제3신분의 수가 월등히 많은 만큼, 제3신분만으로 이루어진 국민의회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했다. 그 당시로서는 이러한 그의 의견이 하나의 대안이자 해결책으로서 제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시에예스가 오늘날의 선거제도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선거제도에 의해 선출된 이들이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물론 오늘날에는 대립에 있어서 과거와 같은 가시적이고도 첨예한 대립은 존재치 않는 듯 하다. 더 이상 신분제도는 존재치 않으며 (형식적으로나마) 모든 국민은 동등하게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는 경제적 빈부의 격차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신분제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법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유전무죄가 용납되는 세상. 그 안에는 놀랍게도 프랑스 혁명의 동인이 되었던 구조적/모순적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겐 혁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이 될 수 있는 삶은 언제쯤 과연 가능할지 묻고 싶어진다. |
|
촛불항쟁에서 국회해산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배경적 원인은 구체제 모순이다. 당시 프랑스는 절대주의 왕정 체제와 신분제 사회를 동시에 유지하는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었다. 전체 인구 2%밖에 되지 않는 성직자와 귀족이 세금 면제 혜택을 받으며 연금 수령, 관직 독점, 토지의 약 30%를 소유하였다. 반면 전체 인구 98%인 제3신분은(시민계급, 농민, 노동자) 세제 혜택은 없고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었다. 심지어 농민은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었지만 영주권은 여전히 농민에게 여러가지 의무를 부담하게 하였다. 18세기에 프랑스 세금은 200% 이상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100%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세금 200%를 제3신분이 부담하게 되자 반발이 심해지고 루이 16세는 1614년 이후 175년이나 열리지 않았던 삼부회를 1789년에 소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