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이라는 것이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장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사람이 있었다. 흔히 실용주의자로 잘 알고 있는 존 듀이이다. 그는 교육, 철학, 심리학, 논리학, 미술, 종교 등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드는 사상가이다. 그의 사상은 한국에는 그렇게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교육학 분야에서만 그의 사상이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듀이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 책은 현대 예술계에 던지는 비판적 시선이 농후하다. 우선 그는 순수예술과 실용예술로 나누면서 예술에 대해 미적판단을 내리는 것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비판한다. 특히 사람들이 예술품이라고 하는 유럽의 미술관에 있는 작품에 대해서 비판한다. 예를 드어 루브르 미술관에 쌓여있는 나폴레옹 전리품들은 국수주의, 국군주의적인 제국주의의 유산이라고 마한다. 예술의 근대적 고립과 국국주의 간의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외에 신흥 재벌들이 소유한 값비싼 미술품들과, 오페라 하우스, 갤러리, 미술관으로 좋은 문화적 취미를 영유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어찌 보면 현대 예술이란 과거의 신분제처럼 계급을 나누는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는 예술이 순수미술이라고 칭하는 것에만 국한 되어 있고, 대중과 괴리되어 있기때문일 것이다. 미적판단 또한 철학과 미학에 대해서 아는 교양인(?)에 한에서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것을 어찌 그러한 분야에만 국한 시킬 수 있겠는가? 낚시꾼이 물고기가 입질할때 느끼는 손맛의 미적 경험 또한 예술품을 보는것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에서 경험이 중요할 수 있다. 예술을 창작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삶의 충실성의 정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안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활동과 예술을 연결시킨다고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면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자들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들의 철학, 미학, 예술적 지식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렇지만 듀이는 철학조차도 예술의 완성이 되어야된다고 한다. 예술이 철학의 시녀처럼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요즘도 미학을 알기위해서는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알아야된다는 것은 예술이 철학의 시녀가 된 것이라고 본다. 예술이 가지는 궁극적인 역량은 지식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느끼는 '애호'가 되어야 한다. 얼마나 그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느냐가 그 사람이 가지는 예술적 역량이라고 듀이는 말한다. 예술적 창작또한 마찬가지이다. 듀이의 글은 좋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생소한 용어들과 익숙하지 않은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예술에 대한 개념은 와 닿았다. '예술의 임무는 인습적 차별을 타파하고 이를 그 근저에 있는 경험 세계의 공통적인 여러 요소에 통이시키는 것이며, 또한 그와 함께 어떤 공통적인 여러 요소에 대한 사고 방식이나 표현 방식으로서의 개성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여러 차별을 조정.통합하고 인간적 존재의 여러 요소 간의 고립이나 갈등을 제거하고 또한 그 대립을 이용하여 풍부한 인격을 쌓아 올리는 일이 개인에게 있어서의 예술의 임무가 된다.'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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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간파하고, 그 해결점을 '교육'에서 찾았던 듀이. 이 책에서도 듀이는 예술이 지식인, 상류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도 향유되어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번역이 문제인지, 원체 원문이 어렵기 떄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다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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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체가 아니네요;; 총 14개 장 중에서 1장부터 3장까지만 실려있고 그 뒤에 옮긴이의 해제가 붙어있네요;; 이 듀이의 세 개의 장이 '해제'라는 낚시(?)를 위한 미끼(?!)인건가 싶기도 하고;;;; 뭐 해제를 보면 이 세 개의 장 말고도 전 장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이 있긴한데, 그 해제를 보니 원 저작에는 도판도 있다는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해제'가 주고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거들뿐인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연구(?)'정도가 적당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