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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저의 선언문. 분량이 많진 않으나 마르크스의 사상적 견해가 깔려있는 글이라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며,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르주아지(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간의 계급 갈등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인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통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며, 이를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계급 투쟁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이 선언문은 위의 공산주의 혁명을 촉구하는 선언문으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 라는 유명한 문구가 이 선언문의 마지막에 나와 있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으로 자리잡은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 실존을 억압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의 노동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임금으로 대체되었다. 인간은 사라지고 자본 생산이라는 가치로 교환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를 비판하면서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존엄은 교환가치로 녹여버렸고, 인간의 자유를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거래의 자유로 대체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으로 말살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통해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혁명을 촉구하는 실천가이자 혁명가인 동시에 철학적 사유를 제시하는 사상가임을 알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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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읽었다. 이 얇은 책이 몇 백 페이지의 소설 책보다 오래 걸렸다. 다시 정리하면서도 보고,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보는데 내용이 온전히 이해가 안 된다. 처음 읽었을 때도 리뷰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세 번째 읽어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여전히 어렵다.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했지만, 채사장님의 열한계단이 그나마 이해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이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어려움을 다시 느꼈다. 새삼 이 책을 읽고 이해하신 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여러 사업을 하신 채사장님이 대단하다 싶다.
일단 이 책을 일고십 도서로 선정한 이유는 얇지만, 경제와 사회, 정치를 전부 돌아볼 수 있게 해주며, 그래도 얇으니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했다. 그 결과는 나만 이해 못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 ㅋㅋㅋ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려워하셔서 오히려 위로가 되었달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구나 다시 깨닫는다.
- 우리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면, 또 우리가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실 문제를 올바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철학자’ 마르크스를 만나야 할 것이다. (11)
- 마르크스의 예언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엇보다 인간 해방의 문제를 ‘철저하게’ 사유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128)
얇지만 결코 얇지 않은 책이다. 세계사를 꿰뚫어보고, 현재 상황까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결론을 내리는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다. 우리가 현재 자본주의에 살고 있고, 적어도 마르크스가 짚었던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사실이기에 더더욱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마르크스처럼 현실에 온전히 집중한 철학자가 있을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사람을 사랑했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평화를 추구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성찰한 철학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한편,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사회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혁명가의 얼굴을 하고 있다. (7)
- 세계를 변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철학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130)
그의 생각의 기반도 멋지다. 그저 생각하고, 혼자 해탈하고 혼자 뿌듯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변화를 추구한다. 이런 마음에 더 끌렸다고나 할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구하며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도 꺾지 않았던 모두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 존경스럽다. 그래서 그 내용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뒤흔들지 않았던가.
- ‘철학자’ ‘문제 해결’의 이데올로기 이론가에서 ‘문제 제기’의 철학자로 다시 태어나는 지점. 마르크스는 모든 진정한 이론은 오로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만 명료화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확신. (8)
이제는 세계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 공산주의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 현대 역사의 결과를 대담하고 인상적인 문장에 압축적으로 서술하여, 가능한 미래의 길을 제시한다. 선언에는 이처럼 혁명에 대한 열정과 현실 분석의 냉철함이 용해되어 있다. (11)
마르크스는 글을 잘 쓴다고 하는데, 이해가 될랑 말랑. 막 잘 쓴다고 하기에는 내가 내용을 너무 못 따라가서 쉽사리 용인하지 못하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 힘 있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이야기하는 건 알겠다. 게다가 이 얇은 책 한 권에서 전체 역사와 미래 예측까지 일목 요연하게 논리적으로 한 번에 풀어 낸 건 정말 대단하다 싶다. 천재들은 역시 다른가…
왜 부르주아지가 점점 커지다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가. 먼저 부르주아가 생기면서 사회는 확고히 양분화 된다.
- 부르주아지 시대는 이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전체 사회는 점점 더 두 개의 커다란 적대진영,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계급, 즉 부르주아지 시대는 이 계급 대립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전체 사회는 점점 더 두 개의 커다란 적대 진영,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계급,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열하고 있다. (16)
- 이 전제 정치는 그들의 목적이 영리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면 할수록 더욱더 편협하고 혐오스럽고 잔인한 것이 된다. (25)
부르주아는 일단 자신들 아니면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많은 적들이 생기고 더욱더 세계가 양분화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논리로 인해 세계는 더 보기에 수월해졌다. 나 아니면 그들이니까. 그로 인해 저자의 말대로 점점 편협해지고 혐오스럽게 잔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사는 이유는 그들 자신의 모임을 위해서일 뿐이며,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러한 면모를 분명해 드러내는 게 다음과 같은 항목이다.
-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을 교환 가치로 용해시켰고, 문서로 확인되고 정당하게 획득된 수많은 자유들은 단 하나의 비양심적인 상업 자유로 대체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종교적, 정치적 환상들로 은폐된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게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꿔놓았다. (19)
- 존경 받으며 경외의 대상이었던 모든 직업에서 그 신성한 후광을 걷어내 버렸다. (중략) 임금 노동자로 바꿔놓았다. (19)
- 현대 노동자들의 위치는 산업 발전과 더불어 올라가는 대신 자신의 계급이 처해 있던 조건보다 더 못한 처지로 깊이 추락하고 있다. 노동자는 빈민이 되고, 사회적 빈곤은 인구와 부가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31)
이전까지만 해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던 많은 사회 계층들을 전부 돈이라는 단일 가치로 환산하면서 그 의미를 타락시켰다. 세속적인 물질로 그 가치를 논할 수 없었던 많은 대상들을 한낱 돈이라는 물질로 환산하면서 그 가치가 가식적으로 변하고, 양분화된 계층 안에서 그 지위마저 박탈당한다. 마르크스의 말에 감탄하며 끄덕인다. 모든 사람을 그저 임금 노동자로 바꿔 놓아, 그저 돈을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측면을 어떻게 보겠는가? 물질만능주의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물론 왜 특별함을 누려야 하는지 의문인 지위들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이 다루기 수월한 돈이라는 한계로 묶어 놓았던 부르주아의 술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었던 부르주아는 지속적으로 돈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었지만, 노동자들은 그저 입에 풀칠만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순리라고 본다. 부르주아지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적을 만들어 낼 뿐이며, 직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은 순식간에 몰락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지배권을 이용하여 차츰 차츰 부르주아지에게서 모든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빨리 생산력의 크기를 증대시킬 것이다. (43)
- “국가들의 다면적 교류와 다면적 의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농촌은 도시에, 저개발 국가는 산업국가에, 그리고 동양은 서양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존 관계는 이전 시대에는 결코 이해될 수 없었던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에 의해 더욱 심화되리라는 것이다. (147)
가장 큰 문제는 과잉 생산이다. 대공황이 저자 사후에 일어났다는 게 소름인 정도. 년도를 착각해서 그 전에 일어났었던가 생각했을 정도다. 저자는 정확히 대공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결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결론을 내린다. 생산력이 증대한다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당시에는 그저 성장하고 있음을 감탄하고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이야 수축 사회라며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팽창하는 경제 체제 말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 마르크스는 많은 걸 꿰뚫어 본 모양이다.
-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머물 능력이 없으며, 그들 계급의 생활 조건을 규제적 법칙으로 사회에 강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노예에게 노예 상태로서의 실존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에 또 노예에게서 부양받는 대신 그들이 노예를 부양해야 하는 상태로 노예를 전락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배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31)
물론 저자가 주장하는 그런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경제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나고,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처럼 예측할 수 없다.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고, 다양한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자가 생각하는 대공황과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위의 인용문을 참고한다면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지배 계급으로 머물 능력이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돈이라는 권력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고 여러 측면에서 그들을 보호했다.
게다가 저자가 예측한 유토피아적인 세상은 현실로 적용되니 망가졌다.
- 혼란은 매번 전체 문명을 위협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빈곤으로 몰고 갈 뿐만 아니라 다수의 부르주아지도 파멸시킨다. 따라서 대규모 산업 자체를 완전히 접어야 하는가 (중략) 또는 서로 경쟁하는 공장주들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가 확고한 계획에 따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욕구에 따라 산업 생산을 주도하게 되는 전혀 새로운 사회 조직이 요청이 불가피하게 된다. (73)
- 새 질서는 무엇보다 산업과 모든 생산 부문의 경영 자체를 서로 경쟁하는 개인들의 손에서 빼앗아 전체 사회를 통해, 다시 말해 공동 책임하에 공동의 계획에 따라 사회의 전 구성원들의 동참 아래 경영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새 질서는 경쟁을 없애고 그 자리에 연합의 내세울 것이다. (74)
부르주아지 제외 모든 사람을 노동자로 집결시켜 변혁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없앨 것이라 예측했으나, 사실 돈의 힘은 엄청났고, 자본주의의 임기응변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저자가 주장했던 것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공산주의가 세상에 알려진 건 아닐까? 정확히 공산주의와 세계사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인민을 위해서 어떻게 사회를 운영해야 할지,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혹자는 공산주의는 제대로 꽃 펴보기도 전에 독재자들의 손에 망가졌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공산당 선언을 쓴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니까.
해제를 읽어도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 중에 콕 박히는 부분이 있다.
- 만약 나의 실존 근거가 나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는 것이 노예적 삶이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과거의 노예들만큼이나 노예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노예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115)
우리는 노예가 불법인 걸 알고, 노예라고 이야기 한다면 불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스스로도 현대판 노예는 아닐까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살고 있다고 하는 부분들이 어쩌면 그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노예적 삶일지도 모른다. 왠지 니체가 생각난다. 니체의 이야기를 들어야 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우리는 어떤 관점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노예라는 말이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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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임금과 노동을 주고받는 사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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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받아 구매하긴 했지만 참 읽을 때마다 잠이 오더군요.ㅋㅋㅋ 마르크스는 어떤 학문을 배우든지 자주 접하는 이름이라 각잡고 한번 알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읽기는 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와 자본가의 숙명적인 대립. 혁명을 통해 권력을 쥔 프로테스탄트는 전복 후 즉시 해체한다.... 사실 터무니없게 들리는 주장 같았습니다. 권력 맛을 본 사람들이 그 후에도 평등을 외칠까 라는 의문이 들었구요. 유사 이래 기득권층은 끊임없이 다른 류의 사람들로 전복되고 순환되어 왔지만 마르크스의 이상에 근접한 적이 없었지요. 흥미롭지만 현실성이 없어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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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수많은 인문학책을 접하다 보면, 자주 거론되는 책중에 하나이다. 이책이 궁금하기도 하지만서도, 한편으로는 불온서적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다. 그래서 손이 가기 좀 꺼려진다. 나의 유녀시기만 하더라도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과 공산당에 반대에 대한 교육이 지극히 당연한 시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일명 삐라(북선전용전단)을 주워다 경찰서에 가져다 주면, 학용품이나 상품을 주었던 시대이니 말이다. 그당시 삐라를 주웠다는 것은 마치 지나가다 복권, 또는 돈을 주운것보다 그이상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만큼 나의 세대에는 공산당이라는 단어자체가 주는 거북스러움은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진다. 공산당선언은 최근 유시민작가가도 언급한것으로 기억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선언을 읽으면 이해가 될것이라 말했다. 굳이 공산당선언이라는 책에서 다른 이념들을 느낄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그 말이 옳았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성향을 띄지만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문제점 또한 냉철하게 바라본다. 또한 공산주의가 왜 되어야 하는지를 말함과 동시에 사회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점도 인정할껀 인정한다. 그러나 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얘기할때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얘기하는데 자본주의 문제점을 공산주의가 그런 해방을 할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의 첫 개념은 인간에서 비롯된것이다. 인간해방, 인간의 가장 하급 계급인 임금노동자가 없어져야지만, 인간은 모든 평등하고 인간의 계급사회에서 탈피한다는게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마르크스의 입장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말도 안되는 공산주의 설득들이 있다. 그러나 그 설득은 어쩌면 내가 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시하게 여기는것을 책에서 얘기하는 것이기에 잘못된걸 미리 알고 읽기에 실소를 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것이 출발은 사람의 인권과 존중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의 한가지 눈여겨 볼 지점이 있다. 바로 공산주의를 옹호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비판을 하는데, 그 안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못한 부분을 마치 마르크스는 미리 예견하듯 꼬집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이 책은 한편으로 정치적성향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철학책에 가깝다. 즉 국가에 대한 이념과 사상은 한마디로 말해서 도덕과 윤리적인 부분과 같아서 어느 하나를 고치더라도 장단점이 명확히 나타나기에, 어떤 부분을 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그것을 공산화시킨다면 그것또한 자유에 대한 억제가 되는것이고 한마디로 모순적인 부분들이 수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말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도 100프로 이해한건 아니다. 이해해봐야 10-20프로이다 ㅜㅜ 조금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라고 꼬집던 부분들을 다시한번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실패 덕분에 민주주의와 현대사회는 그만큼의 오차범위를 줄이고 좀더 빠르게 발전할수 있었던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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