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에 다닌 이후로, 나에게 끊임없이,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돈]에 관한 부분이라고 서슴없이 말할수 있다. 다른 부분들도 있지만, [돈]에 관한 부분만큼은, 어느정도 하나님을 믿은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어렵고, 힘들다. 다르게 말해보자. 그래 [헌금]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다른 교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정말 흔들리지 않는 물질관을 가진 분들도 많이 봐왔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봐왔고, 믿음이 좋은 목회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중에 하나가 성과 아울러 [돈]문제라는 것은...그만큼...우리 인간들에게 뼈아픈...고통이 될수도 있다는 문제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이 <깨끗한 부자="">라는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김동호 목사는, 그 스스로가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소득세를 내는 목사에 속한다. 그는 목회자가 세금의 의무를 감당할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나의 생각에는...목회자로서는 부유한 편인 김동호 목사이기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섣부른 생각도 해본다. 너무나 어려운 목회자들에게는 그것이 가능치 않을텐데...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김동호 목사는 우리에게 바른 <물질관>을 가지길 말하면서, <소유형>과 <존재형>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하나의 수단으로, 어느정도의 생계를 위해서 돈을 쓰고, 가난한 이를 존재형의 인간이 되기를 말한다. 그리고, 노후대책에 관해서, 자신과 또한 교회를 위해 할수있으면, 저축을 할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색다른 무엇인가를 약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색다른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좋은 점은 김동호 목사가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기에,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부자>와 같은 주제에 있어서 충돌했던 책이, 바로 김영봉 목사가 지은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이다. 나는 김영봉목사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그는 김동호목사가 주장하는 청부라고 할지라도,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라고 되어있는듯 하다. 기독교인의 재정에 관해서, 이 책과, 김영봉 목사의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와 리처드 포스터의 <심플라이프>를 읽어보는 것을 강추한다.심플라이프>바늘귀를>바늘귀를>깨끗한부자>존재형>소유형>물질관>깨끗한> |
| 궁극적으로 김동호 목사가 주장하는 청부론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100% 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소득의 일부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떼어 놓는다면 나머지는 자기 자신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성경이 전혀 지지하고 있는 바가 아니다. 물론 이렇게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현실적인 여건에서 본다면 이렇게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 너의 돈으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다음에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한 가르침이고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는 가르침일 수는 없다. 따라서 청부론은 자발적 가난 즉, 청빈한 삶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우리 그리스도인의 지향점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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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살다보면 과연 이런 사람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는 게 타당할까 싶을 때가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각양각색의 다양한 견해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갈리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아마 극과 극이 아닐까 싶다. 본인이 가진 기존의 견해에 따라 호불호가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분명하게 보았을 때 과연 그 주장이 그렇게 급진적이거나 전복적일까, 혹은 기독교의 기존 논리와 역행하는 걸까, 하는 거다. 저자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부자로 사느냐, 가난하게 사느냐가 아니라 그 부함이나 가난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누가 원하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가끔 살다보면 본말이 전도되거나 핵심은 놓치고 사소한 거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한 지리멸렬한 논쟁들이야 말로 바리새인과 같은 행동이 아닐까 싶다. 부자로 사는 게 옳다, 가난하게 사는 게 옳다, 이게 과연 논쟁할 꺼리가 될까?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부할 수도 있고 가난에 처할 수도 있다는 신앙, 그런 마음가짐이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사람들이 신앙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일종의 저울추와 같다. 지나치게 좌로 치우친 사람은 우향우를 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우로 치우친 사람은 좌향좌를 할 수 있도록.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모든 부자들이 다 천국에 갈 수 없는 걸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는 아마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가난하다고 모두 존경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청빈한 삶이 존경받아야 하는 것처럼 부자라고 모두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청부라면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면 청렴한 부자가 되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이라면 불의하지 않고, 정직하게 부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는 부모님들도 모두 쳥빈하게 사셨던 분들이라 그런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아 크게 물질에 욕심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소박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야망이나 세상적 성공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건데, 이 책을 읽으며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많은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을 가지고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으니깐. 꼭 물질을 구하지 않고, 청빈하게 사는 것만 믿음이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배운 사람도 들어 쓰시지만 학식이 없는 사람도 들어 쓰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모든 물질을 내려 놓고 가난하게도 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역으로 많이 벌어서 그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쓸 수도 있다. 이게 바른 신앙인 것같다.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는 순종.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물질은 복이 아니라 은사이다. 은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라고 선물로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은 하나님을 위해 써야 한다. 그리고 은사란 쓰면 쓸수록 늘어 나지만 쓰지 않으면 소멸한다. 따라서 물질의 은사 역시 하나님을 위해 바로 쓰지 않으면 언제든 소멸할 수 있다. 물론 물질의 은사를 잘 활용하면 더 큰 물질의 은사를 얻을 수 있고. 물질을 복으로 보는 건 일종의 기복신앙이지만, 물질을 은사로 보고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기독교적인 바른 물질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렇게 축적한 부를 자기만을 위해 쓰지 않고 물질을 은사로 생각하고 그 물질이 가야 할 곳으로 제대로 흐를 수 있도록 잘 쓰는 것이 '깨끗한 부자'이다. 즉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개처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라도 무조건 돈만 버는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과 방법대로 잘 벌어서 잘 쓰는 부자가 '깨끗한 부자'이고 그런 바른 물질관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부자들이 자기의 부를 옹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주장들을 쓴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물질관과는 다소 다른 새로운 물질관을 접하고(물질을 무조건 터부시하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무조건 축복으로 여기는 것도 아닌), 젊은이들이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물질을 많이 소유한 기독교인들이 그 물질을 '은사로서'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유익이 될 수도 있겠다. 낙타는 바늘 구멍을 통과할 수 없겠지만 이런 부자들이라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고 하나의 주장만 일관성 있게 해서 내용을 파악하기도 쉽고 책을 읽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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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부자 - 김동호
머리말 나는 열 번 설교 중 최소한 예닐곱 번은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할 만큼 돈과 관련된 메시지를 많이 증거했다. 청빈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알고 있는 교인들에게 청빈은 훌륭한 것이지만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과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히려 청부라는 것을 강조하여 설교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반박과 저항이 있었는지 모른다. 1부 신앙과 돈 부자 크리스천, 가난한 크리스천 예수를 잘 믿어도 얼마든지 가난해질 수 있고 예수를 안 믿어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부자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 절대로 부자를 잘 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못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물질의 은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 1:2-7) “물질의 은사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저축은 땅에 보물 쌓는 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돈을 하나님처럼, 더 나아가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돈에 대해 바른 계획을 세우고 규모 있게 저축하며 사는 것을 금하신 말씀은 아니다. 가난해야만 깨끗하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서로 다툴 때 하나님은 과연 누구 편을 드시겠는가? 정답은 둘 중 옳은 사람이다. “나는 가난이 싫어” 가난이 무섭지 않다는 말과 함께 가난이 싫다는 말씀도 좋다. 2부 돈에 대한 성경적 자세 운동화를 자랑하랴?<준철 피드백>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자랑하는 것은 자기 존재가 10만 원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랑스런 가난, 자랑스런 부함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과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하나? ‘도대체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얼마만큼 써야 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만큼 써야 하는가? 나를 위해 과연 어느 정도의 돈을 쓸 수 있고 또 어느 정도까지 저축할 수 있는가?’ 제 2의 십일조는 삼 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므로 일 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삼십분의 일조가 되고 이것을 매달 수입이 있는 사람의 경우로 환산해보면 한 달 수입 중 하루분에 해당한다. 나는 부하게 사는 것이 좋다. 나는 부하고 넉넉하게 살기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3부 돈지갑의 회개 내게 들어온 돈이라고 다 내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 하늘에 보물 쌓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늘에 쌓을 수 있는 것은 깨끗한 돈과 보물이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 23:18) 마음과 생각이 투자에서 투기로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자동적으로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되고 만다. 믿은 사람들은 이 좁은 길을 기도와 실력으로 승부하며 나아가야 한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남들보다 좀 늦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버티면 결국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일례로 그는 편법으로 사업하는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을 손발을 묶고 함께 경주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망하면 망하리라는 각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정직=깨끗함 사업에 있어서 정직함이란 거룩한 “순교”를 의미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망하면 망하리라. 청빈! 하나님의 몫은 하나님께 돈에 대해 깨끗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려면 몫에 대해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신앙의 특전대원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방위 교인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목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십일조는 믿음이다 한 달에 엽전 두 푼을 십일조로 드리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밥을 굶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먹여주실 것이다. 나라의 몫 - 세금 절세는 할 수 있으나 탈세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탈세해서는 안 된다. 첫째, 돈 벌어서 직원들 월급 주려고 그럽니다. 이자 받아 살면 나만 살게 되지만 사업을 하면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직원들 월급 주는 재미로 사업합니다. 둘째, 나라에 세금 내려고 사업합니다.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열심히 벌어 세금을 내기 때문에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세금 내려고 사업합니다. 다른 사람의 몫 - 임금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품삯을 지불하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자가 되고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크리스천 기업가들은 기업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의 포도원 주인의 심정으로
4부 청부의 길 돈을 땅에 쌓으면 안 되는 3가지 이유 첫째, 돈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돈에 대한 욕심은 우리 눈을 나쁘게 하기 때문이다. -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정견과 선견이 있어야만 한다. 셋째, 돈에 대한 욕심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하늘에 쌓을 수 있을 만큼 벌어라 기독교에서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니다. 왜냐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세상이 잘못되어 얼마든지 가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로운 부자 되기 돈을 벌어 하늘에 쌓는 부자 하늘에 보물 쌓는 부자가 되는 법 1. 돈을 땅에 쌓지 말자. 2.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돈이 하나님이 된다. 3. 적극적으로 돈을 벌어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라 공평과 불공평 “송명희 씨가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이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부자와 강한 자 바로 보기 부함과 강함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눈을 가져라. 부함과 강함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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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론으로 유명한 김동호 목사님의 책이다. 신앙과 돈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할수 없다. 돈이 악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하다는 논리로 시작해서, 하나님 뜻에 맡게 벌어서 하나님 뜻에 맡게 쓰면 된다는 논리로 흐르고 있다. 물론 옳다. 하나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기복적 논리가 아니라 부는 은사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는 것과 청지기로써 주어지는 부는 옳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에 남는 느낌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난이 싫지만 무섭지는 않다. 나도 동감한다. 그러나 보통 인간이, 구원받았으니 성숙되지 못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 과연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진의를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의로운 부자가 되라는 말 속에서 부자가 되라는 말만 듣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또한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하나님을 위해 벌어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만으로 정리하는 부분도 조금은 이견이 있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혹은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라는 논리는 조금 성경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하늘에 쌓는 보물은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씀의 궁극적인 뜻은 헌금얼마 하고, 헌신을 얼마나 했으냐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에게 맡겨진 것,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 인생, 가족, 재주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하여 선용하는 삶을 가르키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이 부분을 모르셨다고는 보지 않는다. 책이 가지는 주제에 맞는 부분만 전달하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부론을 간략히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책인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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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써 돈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가져야 될까에 대해 서로 논의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돈이 없이 산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해서 악하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돈 자체로서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고 하는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이 옳다고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쪽에 속합니다. 돈이 악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 악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생각이 우리 나라 사람들 속에 팽배해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 속에서도 모로가도 천국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김동호 목사님처럼 서울에 못가더라도 바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왔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것은 은연중에 바로 가면 서울에 못간다는 말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가면 서울에 못간다는 부정적인 사고관을 제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진리가 밥 먹여주냐는 말에는 너는 밥만 먹고 사느냐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가치관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진리를 지키면 밥을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연중에 저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감동받은 내용은 동안교회 건물을 지으면서도 북한에 1억원이라는 엄청나게 큰 돈을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선뜻 내 놓을 수 있었던 것과 또 한가지는 백억원짜리 건물을 지으면서 2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다른 교회를 위해 내 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돈의 주인이,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이웃사랑이라는 일을 교회에서 직접 보여준 좋은 아니 좋다기 보다는 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또 이 모든 것들에는 사람들의 주 관심사인 먹고 사는 문제, 입는 문제, 거주하는 문제 등 모든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닫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보통 청빈사상을 이야기하는데, 김동호 목사님께서 청부라는 사상을 이야기하시니, 요즘에는 이런 청부가 교회에도 필요하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재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있는 것처럼 이 땅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청부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돈과 부와 경제와 믿음에 대한 혼란스러웠던 가치관을 정확히 잡아준 책이었다. 돈은 가치중립적이고 문제는 존재가치에 대한 것이다. 가난해지더라도 사기쳐서 돈 벌지는 않겠다라는 자세는 존재가치에 중점을 둔 말이다. 사기쳐도 돈만 많이 벌면 되지 않느냐는 소유가치에 중점을 둔 말이다. 중요한 차이점은 The Goal이다. 인생의 행복, 즉 만족을 어디에 두느냐. 소유냐, 존재냐 그 차이다. 내가 혼란스러워 했던 이유는 소유와 존재의 비중을 동일하게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이 잡힌 이유는 존재에 모든 비중을 두고 소유는 무시가 아니라 따로 떨어뜨려 놓는데에 있었다. 소유는 존재에 영향을 못 미친다. 존재도 소유에 영향을 못 미친다. 중요한 것은 소유와 존재를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존재에 내 인생의 사다리를 놓는다면 돈과 부와 경제와 믿음에 대한 가치관이 확연해질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 원칙이 존재하고 가려져있던 것들을 쓸어버리고 혼돈을 거두고 확연해 질 수 있는 책이었다. 모든 미사여구, 논증, 논거등은 다 제쳐두고라도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존재 가치 향상' |
| 가난해도 깨끗하고 당당할 수만 있다면야 청빈하게 사는것도 문제될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물질이 필요악으로 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 크리스챤으로서 더욱이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서 흠없이 깨끗하게 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김동호 목사님의 저서 '깨끗한 부자'를 읽고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신 청부로 사는 방법들을 어렵잖게 실천해 볼수 있었습니다. 십일조에서부터 자녀에게 나누어 줄 상속분에 이르기까지 두아이의 아빠인 제게 그리고,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집고 넘어가야 할 금전 문제들을 참 지혜롭게 가르쳐 주셨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적 부요함이 감사가 될수 있는 청부로 살수 있도록 지인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책입니다. "여러분, 깨끗한 부~자 되세요~~~!" |
| 신앙생활 가운데 항상 부딛치는 문제는 '돈'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다. 돈은 너무나도 많은 유혹과 시험거리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크리스챤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부정적인 인식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돈은 은사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필요에 의해서 방언의 은사등을 주시듯, 돈도 그분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에게 쥐어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청지기적인 마음이 없어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돈은 '재앙'이다. 이 책은 우선 돈에 대해 죄악시 하는 관점을 피했다. 김동호 목사님만의 독특한 물질관이 아닌 성경적인 물질관을 피력하시고자 노력하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돈은 마치 전기와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선하게 벌어서 그분의 뜻에 따라 선하게 사용하는 노하우를 체득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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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리스찬으로서 돈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즉 기독교적 재물관에 대해 아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통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통쾌하다는 말은 목사님이 짚어주시는 주제 하나 하나가 아주 적절하였으며, 또한 목사님께서 당신의 논리를 아주 잘 설명해서 100% 나를 이해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지만, 십일조에 대한 목사님의 설명만 잠깐 소개한다.
"특전대원들이 처음부터 고공 비행기에서 용감하게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지상에 점프대를 만들어 놓고 연습을 하는데, 그 높이가 10m라고 한다. 사람이 가장 강렬한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인데, 점프대 위에 서면 대략 눈높이가 11m에 맞추어지는 것이다. 이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자꾸 하면 결국 비행기에서도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십인조란 사람이 돈에 대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액수이다. 십일조를 낼 수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점프할 수 있다.'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의 특전대원이 될 수 있다. " (p.124)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난 후, 외쳤다. 할렐루야! 아멘! 점프해 내리라. 그리고, 신앙의 특전대원이 되어 주님의 강한 군사로 거듭나리라! 이런 생각을 하니, 정직한 십일조에 대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거룩한 다짐과 기쁨의 환호성을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돈에 대해 정직하고 깨끗한 몇몇 사람들의 얘기를 읽을 때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하나님의 깨끗한 부자가 되리라고.
김동호 목사님으로부터 가르침 받은 재물관을 정리해 본다.
먼저 신앙과 돈에 대한 기본적 생각 바꾸기를 위한 정리부터 하자.
■ 돈은 福이 아니다. 오히려 은사에 가깝다. 복은 예수님을 믿으면 다 받지만, 은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은사는 주를 위하여 쓰라고 주시는 것이다.
■ 하나님께 물질의 은사를 받지 않았는데,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물질이 부어지는 통로가 하나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사탄과 마귀를 통해서도 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물질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지를 늘 판단해야 한다.
■ 부함을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난을 미화하는 것도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서로 다툴 때 하나님은 누구 편을 드시는가? 옳은 사람 편을 드신다. 깨끗함은 깨끗함 자체에 있지 가난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온 천하보다 크고 귀하다는 것은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인간 이해이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온 천하를 다 얻어도 그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없다. 우리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 사람의 행복과 성공은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될 때 얻어진다. 즉, 사람의 행복은 소유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에 있다. 존재가치를 팔아 소유가치를 높이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마라. 기독교 신앙의 관심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이때, 함정을 조심하라. 소유가치가 높은 사람을 무조건 존재가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위와 같은 사고를 통해 최소한의 재물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돈지갑의 회개'라는 chapter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항목들을 얻었다.
■ 돈 중에는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과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도둑질, 정당치 못한 직업으로 벌어들인 돈, 불로소득 등)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런 돈들은 헌금해도 하늘에 쌓이지 않는다.
■ 내가 벌었다고 해서 다 내 돈이 아니다. 돈에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몫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몫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몫이고, 셋째는 내 몫이다. 돈에 대해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돈의 바른 몫 가르기'를 정직하게 행해야만 한다.
- 하나님의 몫 : 십일조
- 다른 이의 몫 : 세금(탈세금지), 임금과 노동(부린 만큼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만큼 성실히 일하는 것), 빚, 구제(한 달 수입의 하루 분은 온전히 구제하는 데에 쓴다)
- 나머지가 내 몫이다.
이 몫 가르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 것을 가르쳐 주신 후, 김동호 목사님은 마지막 장에서 '청부의 길'을 언급하심으로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깨끗한 부자가 될 것을 권유하신다.
■ 성경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부자가 되되 그 부함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중요한 것은 보물을 쌓을 만큼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쌓느냐 하는 것이다.
■ 돈에 대해 욕심이 없다고 그저 자기 먹고 살 만큼만 돈을 벌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잘못된 사람이다. 자기 먹고 살 만큼만 벌지 말고 하늘에 쌓을 수 있을 만큼 벌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돈만 벌고 더 이상 돈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까지 읽어오니, 별로 돈에 대한 욕심이 없던 내가 거룩한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돈을 가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특전대원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소명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벌자! 청부(淸富)가 되어 나의 돈을 선용하는 자가 되자'라는 또 하나의 소명을...
"나는 부자로 사는 것이 좋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싫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무섭지 않다. 가난하게 되는 것이 싫지만 만일 가난하게 되더라도 그 속에서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국 가난을 극복할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럴 자신이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이자, 나의 고백이다. 마지막 문장의 자신감의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 고백은 나의 마음과 똑같다.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재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동시에, 깨끗한 부자의 꿈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편견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이 돈에 대한 고민의 대부분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특전대원들이 처음부터 고공 비행기에서 용감하게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지상에 점프대를 만들어 놓고 연습을 하는데, 그 높이가 10m라고 한다. 사람이 가장 강렬한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인데, 점프대 위에 서면 대략 눈높이가 11m에 맞추어지는 것이다. 이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자꾸 하면 결국 비행기에서도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십인조란 사람이 돈에 대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액수이다. 십일조를 낼 수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점프할 수 있다.'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의 특전대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