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의 지워진 기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 흐름이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한 흥미로움으로, 추리소설로 이 책이 그 재미를 전달할 거로 생각했는데, 추리소설의 모양을 한 이 작품이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면서, 가슴 속 외침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긴장했다. 나를 오래전 시간으로 되돌리곤 했다.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본성이 지금 어느 정도 비슷하고 다른 건지, 그 흐름을 계속 끌고 가도 이 삶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기적의 인간이라 불렸던 그의 현재 삶이 자꾸만 과거를 불렀던 것처럼, 찾아내고 싶었던 것처럼 단단한 고리가 이어져 있던 것인지...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기록한, 8년 전 교통사고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아들이 깨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간 병상일지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스물둘 가쓰미의 사고에 모두가 절망의 시선을 보냈다. 가망이 없다고 했다. 뇌사 판정만 남은 상태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살아날 거다, 내 아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기적이 찾아올 거다, 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낸다. 어머니의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듯 아들 가쓰미는 깨어난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으로. 말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처음처럼 배운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살아오던 중 어머니가 죽고 그는 퇴원한다. 겨우 초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넘긴 그는 보통의 서른 남자 삶을 끌어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사라진 기억에 관한 답답함은 여전하다. 병원에도 집에도, 그의 사고 전 삶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별수 없다. 직접 찾아 나서는 수밖에. 그렇게 그의 과거 찾기는 시작된다.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학교의 졸업 기록, 친구나 가족이 보아왔고 기억하는 나'와 같은 흔적들. 보통 그런 시간과 사람의 기억을 과거라고 부른다면, 과거가 나를 증명하고 표현하는 거나 마찬가지. 나의 존재를 이어주는 다리인 거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다리가 뚝 끊긴다면 어떨까. 물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새로 걷는 인생이 시작되어도 나쁠 건 없다. 근데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건 자꾸만 사라진 그 기억을 확인하고, 나에게서 뚝 떨어져 나가 사라진 기억을 들추고 싶어진다. '나'라는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궁금해한다. 어쩜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서른 해를 살아온 '나'는 어떤 사람인지, 기억이란 것을 가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기억이 사라진 그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어찌 그 시간을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누구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젊은 시절이 있는 법 아닐까요? 젊었기에, 생각이 모자라기도 하고,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그런 일 소마 씨는 없어요?" (231페이지)
여기서 한 가지. 그렇게 찾아낸 기억에 만족하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그 기억이 지금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하는 염려도 이어진다. 어떤 식으로든 그 기억을 찾아냈다고 치자. 막상 확인하고 보니 과거의 나는 참 형편없는 인간이었다면? 누구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의 주인공이라면?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의미로 이어져 온 시간이라면? 어머니의 병상일지와 가쓰미의 퇴원 후 삶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게 한다. 물론 그 답은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다. 영원히 그 답의 중간쯤에 서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며 계속 묻는 역할이다. 그런 과거를 마주하고 혹시라도 반성해야 한다면, 지금을 사는 내가 과거의 그 시간에 용서를 구하면서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결과일 것이다. 반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역시, 난 그런 인간이었어.' 라는 자책과 개선될 수 없는 여지로 판단하여 추락하는 길을 걷는다면 최악의 결과가 될 테지.
나란 인간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제발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겠는가. 어이없게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이었을까. 다 큰 어른이 지금은 어린애처럼 울고 싶었다. (409페이지)
가쓰미의 과거는 어떤 모습일지, 그 퍼즐을 찾아 기억을 마주하고 나면 그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지워진 기억을 찾아가는 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를 증명하는 것이 과거이고 기억인데 그마저도 온전하지 못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동시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으며, 그 질문 안에서 '과거'라는 시간이, '기억'이라는 매개가 인간의 삶을 어떤 흐름으로 이끄는지 보게 한다. 그 기억을 마주함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과거에 묶이지 말고 그 시간의 좋은 것만 끌어올 수 있는 인간이 되길 바라는 욕심을 부려본다.
|
|
어머니가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겨질 이제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 뒤를 가쓰미가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기 직전 소생하고 다시 식물인간 판정에서 깨어나 기억은 모두 잃었지만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한 명의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가쓰미의 어머니가 적은 병상 일지를 통해 8년 동안 가쓰미가 어떻게 기적의 인간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작가가 심포 유이치인 만큼 어느 정도 미스터리에서 벗어난 방식일 거라고는 짐작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방법으로 인간의 본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가쓰미가 퇴원을 하고 자신의 과거, 학교를 졸업한 졸업장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면서 서서히 작품은 가쓰미의 과거로의 여정을 따라가며 미스터리를 비로소 만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것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요구될까? 그 기억을 함께 공유했던 과거의 사람들의 존재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기억해주는 가족, 친구, 이웃들. 가쓰미에게 가족이 없다. 기억을 잃은 뒤에 알게 된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없다. 그런 이유로 가쓰미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떤 기억이었든지 간에 과거가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가쓰미는 8년 전의 과거의 가쓰미와 8년 후의 가쓰미로 나누어 봐야 할 것인가가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인간은 어떤 일을 겪지 않아도 세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변한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매정하게 된다. 심포 유이치가 말하려고 하는 것에서 한참을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기적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명이 다하지 않아 살아갈 날이 남아 있기에 소생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똑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회복하고 누구는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현대 의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기적이라고 말하는 거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조물주께서 모든 인간을 공평히 만드신 거라면 기적이란 말은 불필요하고 아니라면 조물주께서 불공평하다는 말이 되니 선택은 자유다. 기적이라는 것은 소생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하려는 것을 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기적인 것이다. 가쓰미가 기적의 인간인 것은 마지막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을 되찾을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답답하게 전개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마지막에서는 뭐라고 할까 이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끈기 있게 가쓰미를 따라가게 만들어 결국 가쓰미에게 동화되게 하는 작가의 힘, 이것이 미스터리이자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인간애, 인류애의 한 방식, 인간 구원의 기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작가의 이름에 걸 맞는 기적 같은 휴먼 미스터리다! |
| 놀랍도록 세밀하고 깊이있는 묘사의 ''스트로보''를 읽고 반해버린 작가 심포 유이치. 그의 또 하나의 전작 소설 ''기적의 인간''이다. 소마 가쓰미라는 주인공은 31살의 남자. 23살에 낸 교통사고로 무려 8년간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후 놀라운 속도로 회복해 나가면서 ''기적의 인간''이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다시피 하여 현재는 중학교 소년(14세) 정도의 지능/의식 수준인 상태. 책은, 주인공이 오랜 입원 끝에 퇴원을 하면서 새로 사회에서 살아가게되는 이야기를 보여주며, 희미한 단서를 가지고서 불편한 몸을 끌고 실제로 과거의 자신을 찾기 위한 방황, 또 그로 인하여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여전한(실제 시간상으로는 ''스트로보'' 이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묘사력과 치밀한 스토리 전개로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탁월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나 할까. 잘 짜여진 추리소설? 미스테리? 한편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참, 책 앞머리 ''옮긴이의 말(?-지금 책이 내 옆에 있지 않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은 절대 미리 읽지 말 것. 스포일러가 한 가득이다. 그리고 책 상태는, 아무리 나온지 오래된 책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안좋은 상태의 책이 배송되었다. 물론 읽는데는 지장이 없어서 그냥 보았지만... |
| 이글은 처음 몇페이지 까지는 조금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한 환자의 인생역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볼수록 빠져드는 그 무엇때문에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고 말았다. 소마 가쓰미라는 서른한살의 청년이 8년간의 투병끝에 기적적으로 일어서지만 그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장만이 남아 그의 과거를 알수있는 아무것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투병생활을 뭍고 새로운 삶과 이웃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갔다면 후반부의 반전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발견하게 된 의문.. 그의 감춰진 과거...애써 숨기려했었던 어머니의 행적들속에서 그는 과거의 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곳들에 곳곳이 베인 그의 발자취들은 그를 반신반의 놀라게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한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과 그의 친했던 친구들.. 도코에서 그토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할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강한 모정 참으로 놀라운 소설이었다. 마지막 그가 화재가 난곳에서 아이들을 구하고 다시 삶의 앞을 가늠할수 없는 환자가 되고 말지만 아마 그는 그래도 행복했을 것이다... |
| <스트로보>를 읽고 이 작가의 나지막하면서도 강한 목소리가 좋아서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소감은... 역시 좋은 작가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 소마 가쓰미는 교통 사고를 당하고 죽거나 혹은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보낼지도 모를 위중한 상태에 빠졌었다. 하지만 기적같은 생명력으로 그는 다시 태어난다.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그는 아기처럼 그 이전에 당연하게 해왔던 모든 일들을 다시 배워야 하는 백지 상태가 되어 있다. 말을 배우고, 숟가락을 움직여 혼자 밥먹는 법도 다시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고, 그렇게 8년이 흘러 중학생 정도의 사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 이전의 기억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질 않은데, 그는 과거의 자신을 간절히 찾고 싶어한다.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록을 뒤져 도쿄로 떠나서는 조금씩 과거의 조각들을 모으는데, 밝혀질 듯 밝혀질 듯 하면서도 쉽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질 못했다. 그리고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과거와 접한 가쓰미만큼이나 나 역시 허탈한 기분에 빠져 버렸다. 기억을 잃어도, 아기처럼 다시 태어나서 모든 걸 하나하나 배워 나가도 내재된 본성은 버릴 수 없다는 게 작가의 메세지라면 너무 허무하다. 허나 작가는 다행스럽게도 나나, 가쓰미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다만 그 해법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식의 구제가 없었다면 어머니나 가쓰미가 너무 가엽게 느껴졌을거다. 이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들이 점점 더 좋아지니까 말이다. |
| 씨네21에서 이 책을 소개해 놓은 짤막한 기사를 읽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가, 작년엔가 개봉한 영화 '화이트 아웃'의 원작자라는 것도 책을 선택하는데 한몫을 했다.(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배달되어온 책을 봤을때 그 두께에 조금 놀랐고 그 두꺼움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과거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내용이라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었고, 뒤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될 뻔 하다가 제목처럼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한 주인공.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를 돌봐주던 유일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8년만에 퇴원하여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만 하는데, 집안 어디에서도 사고가 나기 전의 자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 과거를 추적하게 된다. 낯선 작가에 대한 불안감은 읽으면서 차츰 사라졌고,점점 책에 빠져들어 재미있게 잘 읽었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조용히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던 그 두께도 다 읽었을 때에는 뿌듯함으로 남았다. |
| 기적의 인간? 제목 부터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끼? 과연 주인공이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아님 어떤 기적적인 일을 겪었을까? 제목만으로도 나의 상상은 점점 커져갔고 결국 책을 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기며 책 안으로 들어갔을떄는 내가 바라던 기적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교통사고 피해자 인데…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한다는 그런 내용을 이루고 있기에, 내가 바라던 기적이 아니라 조금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며 31세의 청년이면서 14세의 지능을 가진 주인공을 만나 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점점 책 속으로 빠져 들었고,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가슴에 스며드는 따뜻함을 계속 느끼고 싶었기 떄문이었습니다.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는 주인공… 읽을수록 그에게 공감하게 되고 그에게 정을 나누어 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적의 인간… 이 소설은 온통 따뜻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차가운 것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번 씩 읽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