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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는 마을일까. 이름이 낯설다. ‘산골’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쉽게 닿을 수 없는 마을인 듯하다. 저자는 포내리라는 곳이 고향이라고 했다. 도시에서 공부를 해 간호사가 되어 고향을 찾았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고향이어도 쉽진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젊은 사람에게 고향은 그리움 가득한 장소이기 보다는 벗어나고픈 고리타분한 곳처럼 여겨지는 때가 잦다. 그렇게 보건진료소에서 보낸 지가 이십 년이 넘었다. 지금 그녀는 진료만 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어르신들의 정겨운 모습이 사진으로 담겼다. 거기에 글까지 덧입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세상을 뜨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한다 했다.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거액을 거머쥔 게 아니라면 이 땅에선 주목받질 못한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킨 이들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가치 없다 말해선 안 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기에.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한 개인의 역사이자 우리 시대의 역사였다. 결코 잊혀져서는 아니 되는 역사. 어느 날부터인가 ‘아카이브’(archive)라는 말을 어렵잖게 듣고 있다. 뜻을 물으면 머쓱한 미소와 함께 “아카이브가 아카이브지”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우리말로 바꿔보고 싶으나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일종의 아카이브 작업이라 부를 수 있는 작업을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틈틈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사진을 찍었다. 이를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겠다는 식의 현실적 이득을 추구한 건 물론 아니다. 어르신들의 삶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당위성에 깊이 마음이 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르신들의 어투를 최대로 살린 말투가 정겨웠다. 직접 목소리로 들었더라면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았다.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는 게 노인들의 속성이라고는 해도 제 속내까지 털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몇몇 이들은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들도 왠지 한둘 정도는 있었을 것만 같다. 강요는 정답이 아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어르신들과 동고동락하며 관계를 맺어왔다. 그녀의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이라면 더더욱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꼈으리라. 결코 내가 행할 수 없을 법한 일을 그녀 덕에 편히 앉아 응시해 본다. 인생이란 참 달고도 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평균 수명이 길어서일까. 이야기의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우리나라의 보편적 정서가 ‘한’이라고 하던데, 어느 정도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에 버티어낸 시간들을 담담히 쏟아내는데, 이야기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농담만이 살아 있는 무채색에 가까울 듯했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의 모진 마음이 느껴졌고, 고된 시집살이, 남편의 폭력 등을 견뎌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한 또한 읽혔다. 나이로부터 오는 심적 고독과 육체적 시림은자녀의 뒤틀린 삶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들의 이혼, 며느리의 사망 등을 두고두고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앞에서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욕심이라 하여도 해 보고픈 마음이 일었다. 삼십 년 넘게 살아온 마을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 집이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요, 마을 골목이 한산하기 그지없다고는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며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거창하게가 아니라 소박하게, 내 주변의 사람들,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남기는 일은 역사를 써 내려는 것과 맞먹는다. 지금 당장은 무모하다는 평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작업이 지닌 가치를 언젠가는 세상도 알아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