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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철학서들을 보면, 철학 자체를 논하기 보다는 인생에 있어서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책이 많다. 그래서인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쓴 책 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쓴 책들도 많다. 철학이라는 것이 관심이 있으면 알아가게 되고, 지식이 깊어지는 인류에게 닿아있는 학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유헌식씨는 그런데 단국대 철학과의 교수로 재직중인 분이다. 그의 약력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도 일반인이 알지 못할 정도로 전문적이고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갑자기 들었지만 기우였다. 마치 고흐가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듯이, 작가는 독자를 향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편지를 쓰는 것 같다. 목차도 7개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지 속에서 인생에 대한 진실과 진심을 여러 사람들의 일화를 들어 가면서 이야기 해 주는 저자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첫번째 편지는 질서를 찾아서이다. 우리가 왜 살아가면서 목표를 갖기 못하고 혼돈 속에서 살게 되는지,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삶의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 신화 속에서 그 일화를 들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두번째 편지는 '타자와 만나는 법' 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타자는 나 외의 주변 환경에 대한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법, 나 아닌 세계와 매개하는 방법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말하고 있다. 세번째 편지는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해서 본질과 이데아, 현상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서평으로 쓰려고 설명을 하니 과연 용어 자체들은 철학과에서 바로 튀어나온 용어들같다. 하지만 풀어서 설명해놓은 책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더 쉽고 재미있다. 예를 들면 로빈슨 크루소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이라든지,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의 일화같이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 책의 내용을 편안하게 만든다. 여섯번째 편지에서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지식사회학의 탄생,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것들이 나오는데 언뜻 들어서는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독자를 감자 캐는 농부로 생각해서 그 작물을 빼앗겼을 때의 심정을 떠올리며 분하다고 느껴지는 그 후의 감정 속에는 분함 외에 수많은 다른 결과들이 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계급에 따라 좌지우지 되면서 어떻게 대중이 미래를 끌어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파트가 되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공자 맹자라든지 아리스토텔레스같은 고대의 철학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철학은 지금 읽어봐도 감동을 받을 정도로 참 훌륭하고 위대하다. 인간 자체에 초점을 둔 사유이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라든지 당시의 시대상황을 몰라도 충분한 공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고대의 철학자들 외에도 문학과 영화, 사회, 경제 등을 바탕으로 새롭게 피어나고 제창되었고, 또 소멸하기도 했던 철학의 사조들에 대해서 공부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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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외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타자라고 보았을때, 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더이상 혼돈이 아닌 질서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타자에 대해 알지 못할때 불안하고, 혼날스럽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 알게 되었을때 비로소 그것은 더이상 타자가 아닌 나의 삶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물고기에 대해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때는 타자일 뿐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위협을 줄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물고기는 그저 타자에 머물러 있지 않다. 물고기는 식용가능한 생선이라는 이데아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물고기를 생선이라는 식용가능하고 유용한 것이라고 정의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질서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사유하는 행위를 철학이라고 한다. 철학은 타자에 대해 사유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개별적인 현상들을 다루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큰 덩어리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위의 예에서 물고기가 식용가능한 유익한 생물이라고 정의 했지만, 피라니아처럼 우리에게 위헙을 가할수 있는 물고기도 있다. 하지만 그런것들을 하나 하나 다 고민하고 사유할수는 없다. 다시말해 철학은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큰 덩어리를 탐구한다. 위에서 잠시 엄급된 이데아란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개념과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사유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낸 개념이다. 인간을 예로 들어 '인간'이라는 건 눈에보이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렇게 모든 인간이 천차만별인데도 왜 우리는 이들을 인간이라고 부를까? 그 근거가 무얼까? 전부 다르게 생긴 인간밖에 없는데도 그들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속에 '인간의 이데아'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이 빠지면 인간일 수 없는 그런 요소, 다시 말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하는 그 무엇이 인간의 본질, 즉 인간의 이데아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아!'라고 말한다. 이 말은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이 빠지면 인간일 수 없는 요소를 '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요소가 양심이라는 '양심 이데아'가 감춰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이데아를 생각하면 거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데아들이 딸려 올라온다. 그런 연유로 철학은 말장난 같고, 고리타분하고, 끝도 없는 사막과 같다고 생각되는 것 같다. 이책은 친구에게 편지를 통해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내용은 고리타분하고, 어렵지만 친구에게 최대한 읽히기 쉽게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쓴 것이 느껴진다. 내가 작가의 친구가 되어 이 책을 읽고 있는 듯하다. 좀 어려워도 이것을 설명하려 애쓴 친구의 정성때문에 쉬이 책을 내려놓치 못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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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일반인에게(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어렵기만한 학문이다. 적어도 철학의 이론적 측면이나 철학사, 철학자들의 이론에 관해서는 도무지 어지간히 공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통달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나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진리를 찾는 학문,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는 학문,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는 학문이라고 생각할때에 철학이 그렇게 멀리만 있는 학문은 아닌 것이 된다. 철학에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중의 하나가 그 용어의 난해성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철학을 이갸기 한다고 할때에는 대부분 동,서양의 철학사나 철학자들의 사상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우선 어려운 용어들로 인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맥이 끊겨 버리기 일쑤이다. 철학사나 철학자의 사상에 관한 책은 저마다 그 표현과 드는 예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같은 이론인데도 책마다 다르게 이해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일률적인 개념 정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철학(사, 사상)에 대하여 많이 알고자 한다면 우선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립을 확실히 하고, 연대별, 철학자별 철학사 내지 사상의 흐름의 요점을 정리하여 외우고 사유하는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철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이번에 읽은 '철학 한 스푼'은 단국대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계신 유헌식님이 쓴 작품으로 K라는 사람에게 편지형태의 글로 써내려간 철학 개론서 라고 할 수 있겠다. 편지를 받는 K는 그의 제자가 될 수도 있고, 친구도 될 수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될 수도 있겠다.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쓴 이유는 읽는 이로 하여금 보다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리라. 이 책의 구성은 크게 7개의 편지로 되어 있고, 각 편지마다 여러개의 소제목을 붙여 철학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철학자들이 세계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세계는 나와 타자로 되어 있고, 이 타자를 자기화 하는 것이 곧 지식활동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편지는 주로 매개에 대하여 설명한다. 매개는 '나'가 '타자'와 관계하는 데 있어서의 중간자, 또는 도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 매개가 곧 기술, 과학이고, 그런 것이 문명을 이루었고, 문화를 발생시켰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편지는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즉, 형이상학의 출현을 설명하고 있다. 네 번째 편지는 데카르트를 필두로 하여 의심하는 '나'가 중요해진 사상을 설명한다. 즉, 신이 우선시 되던 시대에서 인간이 우선시 되는 시대로 변천한 것이다. 다섯 번째 편지는 이성, 여섯 번째 편지는 유물론과 그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의 의미와,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성의 시대에 대하여 설명하며 편지가 마무리 된다. 어떤 학문도 책 한권 읽는 것으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철학도 마찬가지여서 이 책을 나름대로 집중해서 읽었지만, 기억 나는 것 보다는 아리송한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철학에 대한 또 하나의 접근법을 얻었다. '나'와 '타자'의 관계로 부터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은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어디선가 봤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책이 두껍지 않아서 두 번 읽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한 번쯤 더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편지 형식의 글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독자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것 같다. 난 후자에 속한다. 어차피 쉽게 쓰기는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쉬운 책도 아니다. 그럴바에야 일반적인 어체로 썼더라면 오히려 읽기가 좀 더 편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편지 형식이다 보니 읽는 내내 머릿속에 문장의 억양이 들어가서 읽히는 바람에 가끔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반적인 문장에 비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평가이고, 작자나 출판자의 의도 자체에 대하여는 긍정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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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문학이 열풍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문학의 바다에 빠지려고 한다. 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문학의 기본은 문사철 중 철학이라고 본다. 물론 문학과 역사역시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학과 역사와는 달리 철학은 왠지 깊이가 있어 보이고 철학을 어느 정도 알면 나름대로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이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다. 하지만 철학이 만만한 학문인가? 다들 철학하면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처럼 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철학사도 살펴보고 유명한 철학자 한 사람을 택해서 읽어보기도 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철학을 좀 더 쉽고도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하여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철학사를 살펴보기도 한다.
하지만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철학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특히 청소년들이나 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읽을 만한 철학입문이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바램의 일부를 해결해 주었다. 물론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의 철학사나 철학책에서 볼 수 없는 편지형식의 글로 인해서 철학의 기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의 개념과 의미가 중요한데 단순한 명제적 정의가 아닌 우리 삶의 주변에서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한 것이 좋았다. 저자의 바램 대로 삶과 철학의 접점을 잘 찾아서 철학이 단순한 지적놀음이 아닌 인간의 삶과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었다. 이 책의 내용대로 잘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표현하는 ‘생각의 근육’이 강해질 것이다. 일곱 번의 편지를 통해서 철학의 기본을 담담하게 잘 설명했다. 세계의 신화들을 기반으로 인해서 창조와 질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논리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게끔 한다. 이후의 편지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이상학의 세계에 대해서 말해준다. 이런식으로 철학의 기본개념을 설명해준다. 어찌보면 철학사와는 달리 이야기속에서 개념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어느 부분에서는 아직도 철학이 어렵다.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각 편지 말미에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권하는 책들이다. 저자의 배려가 좋았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추천도서에 도전해 보는 것도 철학적 사고 즉 ‘생각의 근육’이 단단해지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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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거나, 영화와 음악, 미술 같은 예술 작품을 보거나, 여행, 운동 등 모든 것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철학은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서평을 쓰는 것, 이것도 하나의 생각이고 철학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현재 단국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신 유헌식님이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K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이다. K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가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독자에게 보내는 철학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말하는 것은 세상은 '나'와 '나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자기'와 타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자기'와 '타자'의 초점에 맞추어 우리 일상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과거의 유명한 서양 철학자의 생각을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다양한 예를 들며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르키메데스, 뉴턴, 칸트, 니체,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헤겔, 블로흐, 루카치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이 담겨 있고 어린왕자, 피노키오, 로빈스 크루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재미있게 풀이한다. 이를 통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어 철학에 입문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형이상학, 이데아계, 로고스, 사유, 모나드, 물자체(物自體), 유물론과 같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려웠을 법한 전문 지식을 쉽게 설명하고 있고, 더불어 그러한 생각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철학적인 관점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이 '철학 한 스푼'인 것처럼 저자인 유헌식 교수님이 독자들에게 떠먹여 주는 한 스푼을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철학자들이 어떻게 세계를 경제적으로 이해했느냐고?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은 세계를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갈라놓고 이해했던 거야. 너를 중심으로 보면 세계는 'K'와 'K 아닌 것'으로 나뉠 수 있지? 수학의 벤다이어그램에서 전체는 어떤 한 집합과 그 여집합을 합친 것이잖아. 이런 식으로 철학자들에게는 "세계 = '나' + '나 아닌 것'"이야.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는 '나'이기 때문에 각자를 중심으로 보면 이 공식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셈이지. 이 공식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좀 더 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자기'와 '타자'라고 해. 그래서 '세계 - 자기 + 타자'라는 아주 단순한 공식을 얻게 되지. '자기'와 '타자'라는 말을 잘 기억해두렴! 이 용어들은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거든. - p.11 타자의 정체를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틑 상태는 일종의 '혼돈' 상태라고 할 수 있어. 보통 우리는 무언가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를 '혼돈'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타자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곧 혼돈을 극복하는 일인 셈이지. 그 일은 아주 단순하게 'X is p'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 왜 하필 p냐고? p는 '술어'를 뜻하는 영어 'predicate'의 머리글자야. '그것은 이것이다'라는 주술 관계의 기본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문장으로 내가 타자인 X를 무엇이냐고 술어화한다는 것이지. 여기서 '술어화'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다시 말해 규정되지 않은 '무규정적인 것'을 '규정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활동이야. 'X is p'는 그러니까 정체불명의 타자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활동인 셈이지.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p.14 '인신론적'이 대상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면 '존재론적'은 인간을 벗어나 그 밖의 것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인간을 포함한 존재 일반을 설명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저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신론적인 성격을 띠지만, '저것은 어디에서 생겨났어?'하는 물음은 존재론적인 성격을 띠게 되지. 어린아이가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엄마에게 "엄마, 저게 뭐야?" 하고 묻는다면 인신록적인 질문이 되지만, "엄마, 기차는 누가 만들었어?" 하면 존재론적인 물음이 되는 것이지. - p.16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니? 나는 볼펜을 쓸 수 있는데 왜 볼펜은 나를 쓰지 못할까?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라고? 그럼 이건 어때? VIP의 경호원들이나 조직 폭력 집단의 행동 대원들이 하나같이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뭘까? 이들 현상은 모든 지식 관계의 불평등에 근거하고 있어. 무슨 말이냐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볼펜이 무엇인지 알지만, 볼펜은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우리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건 눈을 통해서잖아. 그러니 누군가가 몰래 다가서면 경호원은 그의 움직임을 보지만, 그는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무얼 보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말이지. 그럼, 누가 유리한지는 말 안 해도 뻔하지? - p.24 타자의 정체를 규정하는 문제에서 제시했던 'X is p' 기억하지? 이제 'is'에 주목해야 할 때가 온 거야. 'is'는 물론 여기에서 아무 뜻 없이 문법적으로 주어와 술어를 연결하는 be 동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는 달라. 위 문장에서 'is'는 연결사 또는 매사로서 기능하고 있어. 인간은 자기와 세계 사이에 항상 연결 끈을 개입시킨다는 거야. 인간은 중간항 또는 매개자 없이 세계와 관계하지 않아. 이 중간항, 매가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니? 바로 '문명'이라는 거야. '문화'도 마찬가지고 - p.44 불의 사용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식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야. 익혀 먹는다는 것은 자연물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는 행위이고, 이 거리는 '불'이라는 중간자를 통해 확보된다고 볼 수 있어. 그뿐이 아니야. 기후의 변화에 무관하게 늘 안온한 거주 공간, 즉 집을 만들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칸막이를 만드는 행위도 중간자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어. 이와 마찬가지로 옷도 맨살이 바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인간의 피부와 자연 사이에 있는 인공의 막이지. 이렇게 인간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고 항상 간접적으로, 즉 매개적으로 관계한다는 거야. - p.46 아쟈수 열매에 맞은 멧돼지가 쉽게 기절하겠니? 멧돼지는 왜 야자수 열매에 맞고도 끄덕하지 않을까? 야자수 열매는 멧돼지를 쓰러뜨릴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는 건데, 이 '강력함'이란 무얼 의미할까? 그건 매개자인 야자수 열매의 속성이 타자인 멧돼지의 속성과 만나는 데 실패했다는 거야. 더 정확히 말하면 야자수 열매의 속성은 멧돼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속성과 연결되지 못했다는 뜻이지. 요즘 말로 하면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았던 거야.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자기가 듣고 싶은 방송을 들을 수 없듯이 코드가 맞지 않으면 자기와 타자는 서로 만날 수 없어. - p.50 인간은 동물과 달리 매개자를 필요로 하고 고안해내는 존재야.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으로서' 산다는 것은 매개항과 관계하면서 산다는 것을 뜻해. '매개항과 관계하는 삶'이란 문화적인 것과 관계하는 삶을 뜻해. 이 사실은 인간이 세계의 알맹이와 직접 만나지 않고 항상 그것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즉 문화적 장치를 갈고 다듬는 데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야. - p.69 철학은 세계와 우주의 끝까지 생각하는 학문이야. 세계와 우주에 대해 더는 생각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까지 사고를 밀고 가는, 그래서 세계와 우주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닫혀 있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지. 물론 물리학, 특히 이론 물리학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만, 철학은 물리학처럼 물리 현상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물리 현상을 넘어서 작동되는 우주의 근복적인 요소나 원리를 찾고자 하는 데에서 철학은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 동양의 '오행설'에서 金, 木, 水, 火, 土를 삼라만상의 운행의 기본 요소로 삼는다거나 서양의 '사원소(四元素)설'에서 물, 불, 흙, 공기를 우주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보는 것, 그리고 동양의 음양의 원리와 서양의 수의 원리 등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 p.75 형이상학을 뜻하는 meta-physics의 meta는 '~다음에'라는 본래의 뜻을 넘어 그 이후에는 '~을 넘어서' 그리고 '~에 대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철학의 이러한 메타적 특성은 철학의 본령을 이루게 되었어. 따라서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현상과 지식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함으로써 이들이 진실로 무엇에 근거하고 또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그래서 경험적인 세계의 설명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세계관에 입각해 있는지, 이러한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사실을 검토하지. 이를 통해서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현상과 지식의 위상과 정체를 밝혀 이들이 총체적인 세계 안에서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는 거야. - p.77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용어'가 이데아의 성격을 띠지는 않아. 로고스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이데아의 성격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야. 무슨 뜻이냐고? 그러니까 세계에 특정한 질서를 부여하는 우주적인 영혼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에는 이데아가 상응하지 않는다는 거야. 세계의 합리적인 질서에 부합하는 현상에 대해서만 '이데아'라는 말을 붙일 수 있어. 이를테면 '크다' '작다'는 지각적인 사태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이데아가 상응하지 않지만, 어떤 것을 '크다' '작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인 '비교'나 '성질'에는 이데아가 상응한다는 거야. - p.82 '생각하는 나'가 있다. 사유가 자아의 존재를 결정짓는다 이 사실은 '생각하는 나' 밖에서 아무것도 끌어들이지 않고도 '나의 존재'를 정립한다는 점에서 소위 '주체 철학'의 여명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던 것이지. 데카르트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이 신에게 물려받은 것으로서 그 자체로 객관적인 존재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미 그렇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그냥 믿을 수 없었던 데카르트는 이제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전히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 자기가 사유함으로써 사유의 존재를 확보하게 되었어. 그는 인류에게 '사유의 사유', 즉 사유가 자기 자신을 사유한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거야. - p.107 고양이가 고양이이기 위해서는 개와 구별되는 특성을 지녀야 하고, 이를 개에게 양보하거나 개와 공유해서는 안 되잖아. 그렇지 않을 경우, 고양이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세계는 혼란에 빠지겠지. 그런데 K!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봐. 각자는 자기 자신만의 모습으로 자기의 자태를 뽐내면 진행되고 있잖아. 그 이유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야. 이렇게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선에 의해 닫혀 있는 각자의 자기동일성이 곧 모나드야. - p.114 이성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는 데에서 필수불가결한 매개자다. 그런데 그 매개자는 인간의 주관적인 능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성격을 띤다. 그 이유는 사유의 원리-질서가 사물의 원리-질서와 일치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신은 세계를 지을 때 자신의 로고스를 사용하는데, 그 로고스를 인간의 이성에 부여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 자체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의 보편성'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성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성만을 잘 들여다봐도 그 안에서 세계의 기본 원리를 찾을 수 있다. - p.124 헤겔은 이성을 그 자체로 완결된 원리가 아니라 완결을 기다리는 가능태로 보았으며 완결은 가능태가 현실태로 전환될 때에만 성립한다고 생각했어. 가능태와 현실태에 대한 발상을,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빌려 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본 운동으로 파악했지. 꽃씨가 나중에 꽃이 되는 것은 꽃씨 안에 꽃이 될 가능성을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식이야. 꽃씨가 가능태라면 꽃은 현실태라는 말이지. - p.129 인정을 통해 타인의 삶에 내가 관여하게 되는 일 자체가 실은 앞에서 말한 '자기 되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어. 나를 '나'뿐 아니라 다른 '나들'도 인정할 때 참된 '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자기는 결국 자기 자신만으로는 자기가 될 수는 없어. 그런 점에서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거쳤던 '자기 되기' 전략은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지. - p.148 무한정 열려 있다는 것은 실은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가 과연 참된 의미의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니? - p.158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의 불행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조장되는 거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존재의 불행은 개인적인 성향이나 능력이라는 자연적인 조건, 그리고 운명과 같은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서 기인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의 부조리한 지배에서 생겨나지.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어서 특정 집단의 부당한 처사에 집단적으로 항거함으로써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지.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인간의 실천적인 의지와 행동이 곧 역사의 내용을 구성하도록 해야 해. - p.188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어. 사유하는 활동 자체는 정신이지만, 그 정신의 배후에는 항상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지. 보통 정신 활동을 그 자체로 독자적인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 정신 활동의 뒤에는 항상 감성적인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거야. 이 감성적인 의지는 생명체의 자연적인 속성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고 삶의 다양한 활동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어. 그것은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고 추진력이야. 이러한 '힘에의 의지'는 선과 악 같은 도덕적 판단 이전에 삶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욕구야. 선악의 도덕 판단은 힘에의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는 양태에 지나지 않아. 생명체의 본성에는 본래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게 없어. 있는 것은 오직 힘에의 의지뿐이지. 의지는 이성 이전에 모든 생명체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감성이야. -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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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을 아무 생각없이 그저 '열심히'만을 외치며 살아오다, 문득 나의 삶이 빈약함을 느끼면서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독서가 쉽지만은 않는다. 한 달에 겨우 한 두권을 간신히 읽어낸다. 또한 늦게 시작한 만큼의 조급한 마음이 있는지 책 편식이 심한 편이다. 주로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의도적으로 찾게 된다. 그 중에서 '철학'이 주 관심 분야이다. 책 읽기를 시작한 동기가 '생각하는 삶'을 살아 보고자 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지루함과 난해함은 나만의 편견에 의한 표상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더 근본적으로는 철학하는 사람들의 현학적 취향과, 철학을 일반 대중의 삶의 도구로 전파하지 못하고 그저 철학하는 사람들 본인의 삶에만 매몰하는 이기적 적용이 더 큰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다행히 철학의 고전이라는 책들을 잠시 덮어둘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최근에 나오는 철학 체험서, 철학 설명서, 철학 입문서들 중에서 꽤나 흥미롭고 유쾌하고 그래서 쉽게 읽혀지는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듯 하다. 이 책 '철학 한 스푼' 또한 그렇게 쉽게 읽으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삶과 철학의 접점을 찾아 나섬으로써 철학이 인간의 삶과 세계에 어떻게 관여하고 기여하는지를 보여 주면서 우리 독자들이 스스로의 삶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저자는 철학자들은 이 세계를 가장 경제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삶의 현장인 세계를 이해하는데 '경제적'이라는 용어로 표현된 사유방식, 개념들이 어떻게 도구적으로 활용되는지 우리 삶 속에서 이해의 근거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세계를 '나'와 '타자'로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유함으로써 존재하는 '나'가 주체가 되어 '타자'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과정에서의 매개의 이해. 철학의 근본적 목적 지향점인 인간을 찾아내고, 인간 존재의 행복을 상기시킴으로써 철학을 우리 삶 속으로 온전히 가지고 온다. 철학자들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으로 철학이 다가섬으로써, 이론으로써의 철학이 아닌 실천이라는 삶으로써의 철학이 대면되고있다. 즉, 합리적이라는 권력으로 무장된 이성에 의해 무참히 짓 밟혔던 감성을 보듬어 안음으로써 철학은 좀더 삶에 친근해지고, 인간다움에 다가서고 있다. 그 동안의 철학서 대면에서는 개념에 매몰되고 언어에 현혹되어 나의 삶을 지향하는 출발이 한 낱 도구에 불과한 철학이라는 비존재의 존재로 향했음을 고백한다.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철학이 나의 삶에 스며드는 듯 하다. 철학 전반의 개념이 얕으나마 나의 살아있는 삶의 언어로 이해가 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비로소 기존의 철학서를 접합에도 나의 삶의 언어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겠으며 그래서 몸 풀기 단계에서 그쳐 버렸던 철학의 이해를 본격적으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가져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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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 스푼』을 읽고 학문에는 여러 분류가 있다. 물론 각자가 자신의 적성이나 성격에 따라서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만 솔직히 철할 쪽은 많은 사람들이 꽤 어려운 분야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왠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분야로 생각이 들면서 괜히 회피하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 일상적인 생활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실에 적응하여서 수입과 함께 지출을 통한 생활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려운 철학의 사상들은 그렇게 큰 의미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자신도 학창시절에 대했던 여러 철학자들과 철학 사상들이 지금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다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 만큼 지금까지 내 하는 일에 모든 것에 쏟다보니 희미해지고 사라지려는 순간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런 내 자신에게 이 책은 철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면서 오히려 철학을 쉽게 대하는 방법을 대하고, 진리 찾기와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철학의 전반적이 내용들에 대해 한 걸음 한 걸은 다가서게 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직접 철학을 강의하고 계신 저자가 K라는 사람에게 편지형태의 글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에 대해서 편지 형식으로 전개하다 보니 더욱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오늘날에 편지를 쓰고 받는 경우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손으로 직접 쓰면서 마음과 정을 진실하게 나누었던 옛날이 그리울 때 이런 편지형식의 철학 관련 글들이 훨씬 더 가까우면서도 가슴으로 쏙 들어오는 느낌을 가졌다. 이 소중하면서 의미 있는 편지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이 책을 구입하여서 그 느낌을 느껴보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번 독서 기회를 통해서 내 자신에게서 멀어진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의 철학자에 대한 사상과 그 흐름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좀 더 세세하게 한 번 접근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결국도 철학이 내용 자체만으로 인식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바로 적용이 되고 실천이 될 수 있도록 저자 등 많은 철학자들이 노력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렇게 하여 오히려 삶속에서 철학을 함께 병행할 수 있다면 보다 더 나은 사회가 건설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오래 만에 대해보는 철학 관련 책이지만 그래도 편지형태로 씌어져서 그리 딱딱하고 어렵게 가 아니라 비교적 친근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해본다. 철학에 대한 배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나 나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통해 철학과 가까워질 수 있는 획기적인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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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관건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하면서 살아가나요? 저에게는 5살 꼬맹이가 있는데, 하루에 수백가지의 질문들을 쏟아내곤 합니다. 이 세상을 알아가기엔 수백가지 질문도 적어보입니다. 반면 나는 얼마나 질문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거의 질문을 안하고 살고 있더군요. 눈뜨자 마자 알아야할 것들이 넘쳐나고 삶의 생기로 가득한 아이의 세상과 눈을 뜨면 아침이구나, 무덤덤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무료한 나의 삶, 어딘가 달라 보입니다. 세상에 대고 수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 그것이 곧 철학일텐데, 어쩌면 아이는 세상을 배우는 것이 곧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것임을 매일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전혀 없는 것 보다는 매일매일이 궁금하고 알고 싶고 알기 위해 도전하고 좋은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는 거, 그것이 참된 삶이고 삶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지 어린 꼬마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에는 <철학 한 스푼>이 아쉽습니다.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도 걱정이지만 무엇을 채우며 살아갈 것인지도 인생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려면 이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사회가 너무나 복잡해지면서 나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니 머리도 복잡하고 풀릴 일은 안풀리고 되려 꼬이는 경험들은 없었나요. 바쁠 때일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해답을 찾는 길이고 그것이 곧 철학적 사유일 것입니다. 철학서는 유독 출판계에서도 냉대받는 분야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살면서 아주 중요한 것 또한 아마 철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듯 우리는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채 보고싶은 것만을 쫓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도 않은 저 너머의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저 또한 그런 이유로 접하지 않았던 철학인데, 유헌식 작가의 <철학 한 스푼>은 편지 형식을 취하며 독자들에게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형식을 넘어 철학사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사상가나 책 속 혹은 영화속 주인공을 예로 들어 나와 세계가 관계하는 과정을 세세한 원리와 함께 들려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 사유하기를 놓치지 않는 꽤 욕심쟁이 같은 책이에요.
고대 사상가인 소크라테스, 플라톤에서부터 근대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를 거쳐 이후의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관념론자들, 사회적 유물론의 마르크스,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니체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진화되고 수정되고 완성되어 왔는지를 한폭의 그림을 그리듯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그들이 전해주고자 했던 철학사적 의미들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궁극적 철학의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자기와 타자와의 통일을 이루며 존재의 행복을 경험해가는 원리며, 주체인 나와 타자인 세계를 이루는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 그 매개체가 무엇인지 끊임없는 탐구 과정이 있었고 그러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그 역동하는 삶의 한 가운데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원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은 기본을 찾는다는 것이고, 기본을 찾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이성활동과 경험을 통해 좀 더 원활하게 이 우주와 접촉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리는 보물찾기처럼 어딘가 숨겨져 있어 내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고정된 실체가 아니야. 그러니 하늘을 보며 진리의 빛이 내리쬐기를 기도할 수도, 땅을 보고 진리의 샘이 솟아나기를 염원할 수도 없어. 진리는 나와 그것 또는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지."(P.165)
작가의 생각처럼 책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관계하며 이 세상이 존재하는 원리를 확장된 눈으로 보고 일상의 삶이 철학적 사유로 한층 향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창 상영중인 '겨울왕국'이라는 영화에 발랄하고 유쾌한 캐릭터이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눈사람 "올라프"가 나오는데요. 올라프는 여름이면 다 녹아 없어질텐데도 누구보다 여름을 기다리는 녀석이랍니다. "뜨거운 여름 바람이 겨울 몰아낼 거야, 난 더우면 얼음이 어떻게 되는지 볼 거야, 정말 난 궁금해, 우리 친구들 생각이 정말 멋질 거야. 여름날 눈사람, 행복한 눈사람." 그렇게 올라프는 행복을 노래하네요. 눈사람 올라프가 여름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올라프는 알게 되겠지요. 그런 과정을 경험하며 깨달음을 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올라프는 알게 되겠죠. 우리도 올라프와 다르지 않겠지요. 가슴속에 꿈을 품고 현실을 마주하고 감성이 나오고 이성이 완성되고 다시 세상을 이루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철학적 사유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접촉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이 이만큼 확장된 걸 보면 생각을 하며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도 같습니다. 실생활에서 우리의 생각을 확장하고 새로운 눈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매일매일이 즐겁지 않을까요.
우리는 인생에 어떤 철학을 담아야 할까요? 똑같은 상징체계를 가지고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세계와 관계하고 다른 결과물들을 이루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철학이 존재하지 않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책을 읽으며 많은 질문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철학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지식의 다양함과 과학의 발전을 이루며 조화롭게 보조를 맞추고 균형을 이뤄가는 것은 그 누군가의 끊임없는 질문에서 비롯되었고 질문에 답하고자 피 땀 흘렸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어떻게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지 그 원리를 이해함으로써우리 삶이 한층 가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매일 먹는 밥에 어떤 것을 넣어서 먹을 건지 어떤 재료를 넣을 것인지 중요할 수 밖에 없겠지요. 우리 삶에 철학 한 스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삶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풍부함으로 의미를 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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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철학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도 않고 녹녹하지도 않다. 더구나 인간사유를 통한 철학적 용어들의 난해함은 삶에서 철학을 접하기 어려운 이유의 하나로도 손꼽힌다. 어떠한 학문이든 처음 시작은 용어의 정리와 학습이 선행되어야 다음 학습을 원활하게 진행 할 수 있는데 철학의 용어들은 여타의 학문들 보다 더 어렵고 의미를 파악하더라도 이런 내용인지 저런 내용인지 의미가 명확히 와 닿지 않음에 더더욱 멀리하거나, 철학은 철학자 또는 전문가들의 소양이라고 치부해 버린채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유헌식은 삶이라는 거창함보다는 생활이라는 소박함에 묻어있는 미쳐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던 철학적 사유의 개념들을 철학 한 스푼이란 가벼움으로 소개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생활철학'과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은 가벼움을 넘어선 묵직함으로 다가서는 철학 활용서쯤으로 파악 해도 될성 싶은 생각이 든다. 서간문 형태의 어투를 사용함으로서 읽는이에게 좀더 푸근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삶에 해박한 선생님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자상하게 설명하듯하는 어감은 따사로운 감정을 갖기에도 충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수 있어 좋았다.
K에게 부치는 일곱번째의 편지로 이루어진 내용중 첫번째 편지는 인간의 삶이 혼돈의 카오스에서 시작해 질서의 코스모스를 찾기라는 과정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으며,두번째 편지는 '나'와 '타자'의 구분 그리고 타자를 만나는 법을 통해 타자의 자기화를 이루어 내는 법, 세번째 편지는 변함없고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일반을 ,네번째 편지는 생각속에 세계가 있다는 주제아래 데카르트의 명제를 존재의 합리적 추론을 통해 생각의 존재가 역설되었음을 ,근대 철학의 주체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음을 토로하고,다섯번째 편지는 현실과 현상을 통한 이성의 존재가 타자의 인정을 구현해내어 자기화하는 내용을,여섯번째 편지는 존재의 행복론을 통해 주관과 객관의 주객동일성 주장,타자와의 관계, 유물론,노동가치설,인간과 역사 예술속의 사유로 인간적 정체성을 파악하고자 하며,마지막 일곱번째 편지는 이성은 감성의 그림자라고 하며 이성적 사유의 존재보다는 감성적 존재로서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의 합리론자들과 그이후의 칸트,고전철학을 집대성한 헤겔등이 주장하는 이성적 사유에 반기를 든 스패인의 생(生) 철학자 우나무노(M.de Unamuno)의 철학적 담론을,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명제를 인간이 주체가 된 사유의 존재로서 사유와 이성에 앞선 삶의 선험적 기득권을 주창하고 있다.
한권의 철학활용서를 통해 앎이라는 지식의 확장성보다는 오롯이 철학적 명제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이 했다는것에 더욱더 반가운 마음이고 손쉽게 명제들을 설명하기위해 에피소드와 동화등을 활용한 명쾌한 설명은 청소년들이 읽어도 그리 큰 부담이 없고, 성인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는 수준으로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 보인다.
여타의 책들은 한번 읽고 내려 놓으면 다시 읽기가 어려운 반면 쉽게 읽혀지고 이해가 되는 철학 한 스푼은 두고두고 반복해 보고픈 그런 책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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