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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풀러 책과 처음 마주했을 때 '어머나'하는 감탄이 나왔다. 귀여운 고슴도치 한 마리가 주황색 장화를 신는 것이 앙증맞기도 하고 아무런 가감없이 그려낸 듯한 그림이 아주 사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그렇게 푸근할 수가 없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듯 하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이 책을 제일 싫어한다. 열 두달 이야기이니 이야기가 열 두개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하나의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만도 않아 그 하나 만으로도 짧은 이야깃 거리가 될 만하기에 책 한권의 분량은 잠자기 전 읽어 주는 책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글이 많아 큰 아이(8살)에게 적합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둘째(5살)가 이 책을 즐겨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들고와 읽어달라는 통에 여간 고역이 아닌 것이다. 처음엔 하나만 읽어달라고 한다.(늘 우리 부부는 녀석의 잔꾀에 넘어가 책을 읽어준다.) 그러나 하나를 읽고 나면 그 다음 달, 또 그 다음 달 해서 책 한권을 몽땅 읽어주고 만다. 5살짜리 아이가 보기엔 글이 꽤 많은 편인데도 아이는 그림 보는 재미에 푹 빠진다.
이야기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읽으면서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1월: 숲속 빈터의 작은 눈송이, 8월: 여름 밤에 별들이 빛나는 까닭, 10월: 가을 사로잡기 작전 등이다. 코가 유리창에 눌린 것을 보고서 눈송이가 돼지라고 하자 진짜 돼지가 밖에 있는 줄 알고 추운 바깥에 있는 돼지 걱정에 밤에도 잠 못이루는 모습, 여름 밤의 별을 반짝이게 하려고 소나무 위에 올라가 별을 닦는 모습, 여름이 가지 않도록 가을을 붙잡아놓았는데 겨울이 미리 오는 것을 보고 다시 가을을 풀어주는 모습 등 아이들의 천진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아침이 되자 모든 것이 하얘졌어요. 숲이 온통 서리로 덮인 거예요. 다람쥐가 말해요. "우리는 정말 바보들이야! 가을을 가두니까 가을 다음에 올 겨울이 미리 왔잖아!" 고슴도치와 산토끼와 다람쥐는 얼른 달려가 아기 곰을 풀어 주어요. 그런 다음 모두들 그물을 잡고 잘 흔들어 주어요. 가을이 숲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요. 그 아름다운 황금빛 가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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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저자가 세르게이 코즐로프라는 러시아 작가라고 하네요. 국내에서 출판되는 대부분의 그림책들이 미국이나 유럽권 작가들의 작품에 치중되어 있는 터라 작가의 프로필만 보고도 큰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러시아 동화 작가들은 자연이나 동물의 생태에 대해 보다 사실적인 글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아마도 광활하고 풍부한 대자연의 혜택을 받고 자라난 덕분이겠지요. 역시나 이 그림책의 저자 세르게이 코즐로프도 아름다운 숲 속의 사계를 서정적이면서도 재미있게 그려내며, 주인공 고슴도치가 당나귀, 곰 등의 숲 속 친구들과 펼쳐가는 자연의 사건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봄은 코끼리가 굴뚝으로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다, 밤마다 별을 닦아주어야 빛을 낸다, 가을을 가두어두니 겨울이 빨리 와버렸다와 같은 발상들은 어른이 읽어도 절로 웃음이 납니다. 저는 착하다, 영리하다와 같은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주인공 고슴도치의 행동을 보며 문득 곰돌이 푸우가 떠올랐답니다. 전혀 닮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은 프랑스 그림 작가가 그렸는데, 세르게이 코즐로프의 글에 러시아 그림 작가가 그렸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프랑스 그림 작가의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좀 더 새로운 그림이 아니라는 게 아쉽다는 것이지요. 아..., 부록으로 들어 있는 2002년도 달력, 아주 아주 예쁩니다. [인상깊은구절] 겨울이에요. 얼마나 추운 날인지 성에가 유리창에 예쁜 그림을 그려 놓아요. 고슴도치는 성에를 녹이려고 유리창에 대고 호호 입김을 불어요. 앞발로 싹싹 문지르니 동그랗고 작은 구멍이 생겨나요. 밖에는 눈이 내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