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글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난감해 하기는 처음이었다. 김운하의 소설은 그야말로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성찰로 진득하면서도 낯선 형식과 질문들로 반소설다운 실험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몇 십년 전에 아방가르드적인 언어 형식 실험이 문학 내부를 향해 시도되었지만 우리 나라 문학은 지극히 정서적인 호소의 차원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우습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책날개의 저자를 거듭 확인하면서 국내 소설가라니! 같은 당혹스런 혼잣말을 해야만 했다. 내게는 이 소설이 아름답구나 혹은 가슴을 치는 인생의 통찰이다 류의 맥락과는 다른 철학적이고 지적인 반성을 불러오는 무엇이었다. 유대교의 탈무드가 끊임없이 다시 쓰여지고 덧붙여지면서 그 역사와 생성을 함께 하듯이, 문학 자체에 대한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작가는 다음에 올 것을 영원히 기다리고 있는 중인 셈이다. 그것이 이미 이 소설에서 처럼 반문학의 형식, 작가의 실종, 혹은 침묵이 된다 하더라도 결국 글쓰기 도정에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글쓰기로서 향한다. 그리고 내용과 형식은 누구든 글쓰기를 발견하는 이들로 인하여 끊임없이 변주한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나 구분이 아니라 글쓰기만이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생명력 같은 것. 그러나 그것은 이 머리 아픈 소설에서 느낀 것이었는지 그저 공상같은 내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문체의 매혹 없이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다. 읽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더라도 그만한 수고가 가치 있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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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 나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뭐 볼 만한 소설 없나,, 하고..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려봐도 그다지 눈에 띄는 소설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눈에 띄는 것이라 해서.. 뭐 대작이나 유명한 작가의 신작 소설을 바란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신선하고.. 어떤 돌파구를 주는 좀.. 참신한 소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웹서핑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한 작가의 죽음으로 시작된 추리소설적인 느낌도 맘에 들었고..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혼재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먼저 독자리뷰를 쓴 사람과는 달리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간단하다. 도저히 잘 읽혀지질 않는거다. 하나의 작품이 되기 이전 이 작품에는 작가의 날 것 그대로의 자의식이 표현되고 있다. 마치 개똥철학을 하는 사람(이건 좀 심한 표현이다) 존재니, 관념이니,... 하옇튼 세상과의 불화에 몸살을 겪는 한 청년의 거칠은 의식과도 같은... 그런 점이 나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한 배우의 필모그라피를 말할 때 비록 혹평을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했기 때문에.. 아주 성공적인 후속작을 할 수 있었다, 와 같은 맥락으로.. 이 소설도 그런 선상에 있어서 빛이 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보다 참신한 양식의 소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소설은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것일까? [인상깊은구절] K: 그는 시니컬한 사람이었나요? J: 글쎄요...... 어떤 면은 그렇고 또 어떤 면으론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문제로 얘길 나눈 적이 있었어요. 당신은 세상을 참 허무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제가 말하니까, 그는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