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갈피 용도로 쓰려 빨간 띠지를 벗겨내니 깊은 퍼런 빛을 띠며 '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벌써 2주기를 맞는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
|
정종숙 작가의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는 개인 회고록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132호)된 서애(西厓) 류성룡의 ‘징비록’을 분석한 책이다. 전쟁 후 일본의 끈질긴 요구에 국교를 재개할 때 개방한 부산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당시 동아시아를 열광시킨 베스트셀러가 된 ‘징비록(懲毖錄)’은 그 만큼 임진왜란을 정확하게 묘사한 책으로 반대파의 탄핵으로 파면당했다가 회복되어 임금의 두 번의 부름을 받았으나 뿌리치고 정치의 중심이 아닌 전쟁의 전모를 담고자 한 류성룡의 집념이 만든 역작이다.
|
|
개인이건 집단이건,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면화된 후라야, 그 개인(혹은 집단)에 비극적인 운명이 거듭 닥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런 가르침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back in the habit, 인간 좀 되라고 베푸는 충고와 훈육에, 못난 에고는 "이대로가 뭐 어때서?"라고 발끈해하며 오히려 종전보다 더 어리석고 자멸적인 오류로 깊이 빠져듭니다. 사람이건 집단이건 배배 꼬인 못난 심사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달한 모습입니다. 못나게 살아온 과거,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현재를 모두 왜곡하고, 그도 부족해서 손상된 두뇌, 형해화한 기억(이미 썩어 문드러져 기억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으로부터 말도안되는 거짓을 지어내어 사실인 양 고래고래 떠들기까지 합니다(현실이 아닌 망상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죠). 개인의 경우라면 명예훼손과 무고죄를 걸어 감옥에 보내 교화를 이룬다고나 하겠습니다만, 집단의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정신을 버쩍 들게 하여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거듭나게 도울까요? |
|
요즘 서점에 가면 역사책이 참 많더라구요 그중에서 조선시대의 책이 참 인기가 많은것 같아요 저도 관심가지는 분야중에 하나라 이 책, 저책 다 읽어봤는데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요즘 제가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KBS에서 다큐멘터리도 했다고 하던데 전 TV를 전혀 안봐서 하는지도 몰랐고 보지도 못했네요 ㅠㅠ 조만간 다시보기로 봐야할듯해요!!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정종숙지음 Book Star <징비록> 서문을 살펴보면 류성룡은 참혹한 전쟁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그에게는 전쟁을 온전하게 극복하는 길이었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미래의 기준이 될 과거가 묻혀 버린다면 반성도 할 수 없고, 혁신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참혹한 과거, 참담한 기억이라고 해서 지워버린다면, 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각색한다면, 과거의 악몽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류성룡은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의 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 그럼에도 그는 붓을 꺾지 않았고, <징비록> 을 썼고, 완성했다. 우리나라 조선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게 있었는데 최대한 사실적으로 쓴다고 했지만 사실 축소되거나 왜곡되거나 과장되는 부분이 많은건 사실이었다 우리 역대 왕들중 제일 부끄럽고 무능력하고 별로였던 선조... 그는 이순신이 자기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게 싫어서 모든 업적을 축소하고 없애버리려고 하고 모든 전쟁의 공을 명나라로 돌렸던 무능한 왕이었다 왠지 지금 우리나라의 현재와 참 비슷한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순신도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뿐인듯 하다... 류성룡으로 인해 사실적인 부분이 전달되기는 했지마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수가 없는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대해서 한번 더 알게 되었던 계기가 된듯 해서 너무 좋았던 시간이었던것 같다^^
|
|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고급스런 컬러의 표지를 대하니 무언가 묵묵함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네요. 책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운이 바로 우리의 역사속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답니다. 임진왜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사건. 그 사건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왜 우리가 다시 되짚어 봐야 하는 것인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찌보면 지나간 일인데 뭐가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배우는 바는 분명 또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노량해전과 징비록의 공통점을 시작으로 책을 읽어 나가게 되었답니다. 일반 역사서와는 다르게 약간은 영상을 상상하면서 느낌이 있게 읽어 나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드마라 해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 나가면서 보게 되었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감정들, 그리고 떠오른 생각들. 그렇게 읽어 나가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톡톡히 있었다고 보네요.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접하는 사람들이나, 역사를 어렵게 느끼는 여자들같은 경우 이런 책이 더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었네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겪었던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반성을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고, 삭탈된 관직과 명예가 회복되어도 응하지 않고, 임금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고 침거한 류성룡. 정치에 다시 나아가지 않고 그가 선택한 일이 전쟁의 음모를 기록하는 일이었다고 하니 생각부터가 남달랐기에 남들과 다른 행보를 거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29건의 재난과 300건의 이상 징후들이 있었던 일. 그런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들을 깨닫게 되네요. 일본이 사절단을 보내 정세를 탐하고, 그런 행동들을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쪽의 행동. 누군가는 침략 가능성을 얘기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니 어떤 상황에서든 현명한 판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대적 상황들,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알고도 당장의 편안함을 위해 외면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되네요. 깨닫게 되네요. 그만큼 허술한 점을 드러내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시토시가 주고 간 조총을 가지고 신무기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훌륭한 장군들이 있었지만 더 발전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힘을 어찌 감당할 생각이었는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디었답니다. 군인이나 남자들이 보면 더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더욱 더 들었답니다. 지휘관의 역할에서 느끼는 무능하게 대응하는 행동들에서는 정말 답답할 뿐이랍니다. 징비록이 우리나라에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네요. 위기의 순간에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조정의 모습. 선조가 전란 극복 과정에서 왕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은 것이 임진왜란 속의 또 하나의 비극이며, 수준을 폐지하려 했던 조정을 구한 이순신의 힘. 그 이순신의 이야기로 징비록이 끝납니다. 미래의 기준이 될 바로 전쟁의 기억을 바로 잡기 위해 든 붓. 스스로 지킬 힘이 없을때는 전쟁도 휴전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잘못된 판단, 잘못된 기억은 불행한 역사를 만든다. 역사속에서 일어났던 일에서만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서도 대응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과거에서 배워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현재까지도 우리는 어쩌면 대응과 대처법이 완벽한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역사 속의 기록을 통해 느끼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면 느끼게 되는 바가 크답니다. 과거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교훈삼아 앞으로 그런 고난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아픔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들면서 읽어 나가다 보니 그 역사의 기록을 남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답니다.
|
|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시간이 지날수록 저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 또다시 그 참담한 기억이 엄습해 온다. 화살도 성벽도 소용이 없었다. 왜적의 조총 앞에 채 십여 일도 버티지 못하고 삼도가 함락됐다. 전쟁 초기, 왜 우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무너졌을까. 왜 적의 신무기 조총 때문이었을까. 정녕 그것이 전부였을까. 참혹한 전쟁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2014년 늙은 노학자라고 칭하였던 송복 교수님의 「류성룡, 다시 나라를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읽은적이 있었다. 당쟁싸움으로 나라 안팎의 정세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조선.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부터 왜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 나오며 통신사가 직접 일본에 갔을 때에도 그것을 직접 보고 준비하기에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함에 젖어 객관적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힘마저 없었던 조선은 어영부영하다 위기를 맞게 된다. 육지에서는 류성룡과 바다에서는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두 영웅이 태어나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몇년 전에 읽었던 송복 교수님의 징비록은 류성룡이 전란을 끝내고 안동에 내려가 써진것을 옮겨진 부분에 교수님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형식이었는데 군량미 조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차지했었다. 그저 조정에서 목소리만 높여 대비해야한다 안해도 된다의 의견만 주구장창 부르짖었던 이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과 달리 현실적으로 전란이 일어났을 때 직시해야하는 부분에 이것이 전쟁이구나! 했더랬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조금만 신경쓰면 눈치채어 방비할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까지 모두 허비한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했던 그때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데 전란이 끝나고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팔렸던 베스트셀러임을 감안할 때 아무리 전란으로 인해 전국이 초토화되고 수습하는데까지 오래걸렸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에서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칭송받았던 것을 볼 때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의 물음에 쉽게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지난 날의 잘못을 징계하여 훗날의 환란을 경계하라!"의 의미였던 징비록. 고통받지 않고 다시는 되풀이되어져서는 안되기에 몇년에 걸쳐 집필했던 징비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떻게 남아있는 것인가? "나의 시대와 당신의 시대는 어떻게 다른가? 나의 조선과 당신의 대한민국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늘날 우리가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지 않을까?
|
|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작년 청소년 문고인 「징비록, 임진왜란 극복의 기록 유성룡 리더십」 (http://blog.naver.com/dark0405/220310504997) 이 책을 읽었었다. 책을 통해 유성룡 이라는 인물에 대래 많은걸 알 수 있었다. 참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그가남긴 징비록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었다. 징비록이 무엇인지 그 안에 어떤 기록들이 남겨진건지 더 알아봐야겠다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다른책들을 읽느라 잠시 잊고지냈다.
얼마전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궁금증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성룡이 남긴 임진왜란 7년의 기록들.. 제목만큼이나 눈에 띠는 문구였다. 최근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써는 알고있는 내용보다 모르는 내용들이 더 많았지만 친절한 설명들 덕분에 지루하지않게 읽을 수 있었다.
참혹한 전쟁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해 남겨진 유성룡의 징비록! 임금의 부름에도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쟁을 극복해 나갔다. 그 시대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 이었음에도 그는 징비록을 썼고, 완성했다. 덕분에 난 사무실 한켠에 앉아 그 기록들을 읽어볼 수 있었으며 당시의 상황들을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29건의 작은 재난과 300건의 미세한 이상징후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 이라 말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우연한 재난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서를 가지고 온 일본의 사절은 이전과는 달리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것이 조선이 일본의 정세를 탐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고 우리나라는 진의 파악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 다녀온 사절단을 통해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언급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황윤길과 김성일.. 함께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황윤길의 의견에 힘을 싫었지만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란 김성일의 의견에 손을 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답서는 선전포고에 준하는 것이었음에도 애써 외면한것이다. 이후에도 오억령을 통해 침략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하지만 조정은 오억령을 파직시킨다. 또한, 그해 5월 쓰시마의 소 요시토시가 부산에 와서 '내년 봄에 침략할 것' 이라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이를 외면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의 분노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던 김성일에게 향했고 책임 면제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전쟁을 대비해도 시원찮을판에 선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서인인 정철을 이용해 동인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정철이 기축옥사를 진압한 공로로 좌의정에 오르자 선조는 정철에게서 등을 돌려버린다. 결국 정철또한 삭탈관직되어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서인세력도 무너지고 만다. 기촉옥사가 일어난 지 1년째 되었을때 통신사 일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보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모습들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태도였다.
드디어 전쟁이 일어날것 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믿음직 스럽지 못했던 선조였지만 다행히 그에겐 류성룡이 곁에 있었다.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에 임명된 이순신의 파격적인 인사로 인해 거센 반발이 일어나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감싼다. 류성룡에 대한 선조의 신뢰덕분에 우리는 이순신 이라는 강직한 장군을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조선 최고의 장수로 꼽히던 신립 장군이 왜적들이 해전에 능하지만 육지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수군폐지를 외친다. 그러나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수군 폐지에 반대하는 장계를 올리며 힌겨운 투쟁을 벌이며 14개월동안 빈틈없는 전쟁 준비의 나날을 보낸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에 상륙 4월 14일 부산진이 함락 4월 15일 동래성 함락 4월 25일 이일 장군이 상주 전투에서 패배 4월 28일 신립 장군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결 4월 30일 선조 임금 한성 버리고 피난 5월 3일 수도 한양이 함락
불과 한달도 안되는 사이 수도가 함락되었다. 전쟁 발발 십여일 전 왜군의 침략 계획을 알리는 첩보가 있었음에도 조선이 함락되는 데는 20여일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16만 대군이 출격했음에도 조정에는 적의배가 400척이 채 못되며, 인원은 만명쯤 될것이라 보고되었다. 해안 일대를 노략질하는 왜구 정도로 오판한 것이다. 또한 전쟁일 발발하자 성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장수들과 수군은 해제시켜버린 장수들로인해 왜군은 너무나 쉽게 한양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라에 힘이 없어 명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런 명군의 횡포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강화협정에만 목을 메다는 명군의 태도와 명군의 노략질로 인해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고, 우리나라 군대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심유경과 고니시의 사기행각을 보며 나의 답답함은 극에 달했다. 7년여의 전쟁이 막을 내린 후에도 선조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장군들의 업적을 치하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 칭해도 모자랄판에 오로지 자신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왕이라는 꼬리표를 띠기위한 작업에만 몰두했고 이순신의 업적은 '다소 빛날 뿐' 이라며 깍아내릴 뿐 이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이 없었다면 이러한 상황들은 역사속에 묻혔겠지만 징비록을 통해 알게되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다. 안타까운 역사든 박수가 절로 쳐지는 역사든 우리나라 역사를 잊지 않기위해서라도 더 많은 책들을 통해 바르게 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
류성룡이라는 인물은 TV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징비록>도 다양한 저자들이 소설로, 인문학 작품으로 출판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류성룡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징비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대국에 치여 주권을 잃어버린 듯한 나라, 눈앞에 적군을 두고도 자기의 안위만 찾는 왕과 신하들,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적군이 보이자마자 도망부터 치는 병사들, 수많은 사람들의 경고에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무능한 정부.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들려주는 생생한 기록물이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숨길 수 있으면 꼭꼭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다. 그렇지만 치욕의 역사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만 두 번 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징비록은 그런 류성룡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징비록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 이유는 류성룡의 그런 마음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닿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강대국에 뒤덮여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 나라, 하지만 그런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이전의 치욕스런 역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민초들의 마음이 징비록으로 향한 것은 아닐까.
징비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이 가진 특징 혹은 장점이라고 한다면 먼저 방송작가인 저자의 필력이 아닐까 싶다. 방송작가로 다양한 역사 프로그램에 관한 글을 쓴 저자의 전력이 이 책에 바로 묻어난다. 글을 읽으면서도 방송을 보는 듯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들이 징비록과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준다.
또 다른 특징은 징비록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은 징비록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설명한 반면 이 책에서는 비록 길지 않지만 징비록이 일본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통해 징비록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잘못된 판단, 잘못 된 기억은 불행한 역사를 만든다. 류성룡은 미래의 기준이 될 전쟁의 기억을 바로잡기 위해 붓을 들었다..... 기억을 기억하라.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
|
우리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일기를 쓰기도 하고 메모를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서 자신의 기록을 스마트폰에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순간 스마트폰의 메모리에 문제가 발생 하면 스마트폰 안에 내장된 모든 기록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기록이란 친필로 종이에 써서 남기는 것이 가장 안전 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기록도 이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데 한나라의 기록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고 하는 임진왜란 때의 기록물의 가치는 더욱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이란 때론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면서 써야 하는 것으로 맘에 들지 않은 내용은 축소나 삭제를 하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록이란 때론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 할 때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당시의 시대에 맞는 올바른 선택을 하였는지부터 시작 하게 된다. 징비록 서문에는 이러한 글귀가 있다. “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에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나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임진년부터 무술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따라다니며 듣고 본 것을 대강이나마 서술 한다. 우매한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기록 하고자 한다.” 라고 씌여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당시 류성룡이 몸으로 체현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잇다. 이 책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에는 위기가 나타나기 전 여러 징후가 먼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일본에 갔던 통신사 일행의 경과보고는 뜻밖의 파란으로 일어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느냐 라는 선조의 질문에 황윤길은 침범할 것이오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으나, 김성일은 그 반대의 대답을 하여 당시 선조 임금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대신들에게 판단여부를 물어 보게 되는데 마침내 선조임금은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어 김성일의 말을 믿게 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게 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역사는 거꾸로 갈 수가 없는 것임을 이 기록을 통해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지금도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전념하여 큰 국가의 대사를 망치는 그런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잘못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
|
기억을 기억하라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정종숙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맞아 전사하던 그 때, 조정에서는 류성룡이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면, 류성룡은 조선 내부의 적과 싸웠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류성룡은 복직 대신 징비록을 쓰기 위해 붓을 꺼냈고 개인이 남긴 회고록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징비록 때문에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함께 전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임진왜란의 전모를 파악 할 수 있다. 징비록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징비록은 일본에서 <조선 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징비록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을 미화 했다면 징비록을 본 이후에는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 장수들의 활약상도 소개 하기 시작한다. 임진년 4월 13일 왜가 몰려오는 그 때...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선조는 그것을 무시하고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16만 대군이 부산 앞바다를 당도 했을 때 조선의 최초 보고는 1만 명 정도의 왜구가 침략한 것이었다고 한다. 큰일을 이렇게 작게 무마시킬 수 있다니 흡사 현재 정부를 보는 듯하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적을 보고 도망치기 급급한 조선의 수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때의 현재 정부의 재난 시스템을 보는 것 같다. 역사를 보고 배우기는 커녕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급급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미국으로 도망가는 누구를 보는 것 같다. 류성룡은 그런 나라의 왕이라도 왕이라며 모시는데 답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대와 바다에서 승리를 했던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행주대첩에서 크게 승리한 조선군은 언제든 한양을 탈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명나라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에서 싸우는 것조차 맘대로 하지 못하다니... 명의 이여송은 류성룡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일본군이 무사히 철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국과 일본이 사이에 껴서 맘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의 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류성룡의 전시내각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양반의 특혜를 없애고 병력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양반들의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지금도 국회의원의 자식들은 군대에 안가는 것을 보면 그 때와 다를 바가 없다.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이란 말이다. 선조는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고 류성룡은 자기반성으로 전쟁을 기억했다. 요즘 위안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가 과연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먼 훗날에나 알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