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7%
  • 리뷰 총점8 7%
  • 리뷰 총점6 7%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을 기억하라,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
"기억을 기억하라,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 내용보기
책갈피 용도로 쓰려 빨간 띠지를 벗겨내니 깊은 퍼런 빛을 띠며 '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벌써 2주기를 맞는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얼마전 KBS에서는 최수종이 충무공 이순신으로 분한 임진왜란 1592 - 총 5부작이 방영되었다.  방영직후부터 시청자들의 평
"기억을 기억하라,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 내용보기

 

책갈피 용도로 쓰려 빨간 띠지를 벗겨내니 깊은 퍼런 빛을 띠며 '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벌써 2주기를 맞는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얼마전 KBS에서는 최수종이 충무공 이순신으로 분한 임진왜란 1592 - 총 5부작이 방영되었다.  방영직후부터 시청자들의 평이 좋았는데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던 프로그램이었다. 때마침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남긴 류성룡의 징비록을 바탕으로 < 기억을 기억하라 > 라는 책이 있다하기에 얼른 읽어보기로 했다. <난중일기>에 이어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 징비록 > 이었는데 정종숙님의 생각과 덧붙여 읽으니 더욱 생생하게 그날의 일들이 기억에 남게 되었다.

300쪽에 달하는 책을 후루룩후루룩 무슨 무협지 보듯 읽어버렸다. 아니 영화 한 편을 보듯 읽어버렸다고 해야할까? 읽으면서 어찌나 화가 나고 애가 타고 복장이 터지던지 한숨에 탄식에 여러 감탄사들이 줄줄 나와버렸다. 다 읽고 나니 기억을 기억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했다. 최고 무서운 것은 무지한 이를 우두머리로 앉혀놓고 별 수 없다며 따르는 것이고 또 하나, 잘못된 일에 대한 반성없이 다시금 똑같이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순신이라는 세기의 명장을 곁에 두고도 자신만 돌보며 코앞만 걱정하던 선조, 위기의 순간에 백성을 버리고만 임금과 그에 맞장구치며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관리들을 떠올리며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을 담은 < 징비록 >의 마지막을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순신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렇게 이순신의 죽음과 함께 길고 잔인했던 7년간의 전쟁은 끝을 맺게된다. 이후 류성룡도 반대세력의 탄핵을 받아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그저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붓끝에 담아 < 징비록 >을 남기게 되었고 후대에 징계로 삼으라 한다.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잘못된 선택들을 잘 살피고 깨달아 가슴깊이 기억하여 다시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이 책에는 임진왜란 그 전후 조선의 상황이 정교하게 그려져있다. 그 시대에 영재소리 듣던 류성룡이 글솜씨가 뛰어난 것인지 그것을 정리하여 풀이한 정종숙님이 잘 쓰신 덕인지 책을 한번 펼치니 함부로 놓을 수가 없었다. 후회되는 지난 일들을 들추다보면 " 대체 왜? " 라는 말이 곧잘 붙는다. <기억을 기억하라>에서도 끊임없이 '대체 왜?'가 붙는다.  난다긴다하던 명장 신립은 왜 일본의 조총을 우습게 보았나? 대체 왜 조선은 20일만에 일본에 한양을 뺏겼나? 신무기 조총때문이었나?  과연 그것이 전부였을까 자문한다.

책을 덮으며 온 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당시 수많은 백성들의 억울한 죽음과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아파했고 나랏일 보신다는 이들이 보여준 무책임함과 무지에 똑같은 실망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너와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의롭게 일어선 이들과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방향을 고집했던 이들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본다.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말이 주는 커다란 힘을 본다.


YES마니아 : 골드 d*****4 2016.10.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징비록을 통해 보는 우리 현실
"징비록을 통해 보는 우리 현실" 내용보기
정종숙 작가의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는 개인 회고록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132호)된 서애(西厓) 류성룡의 ‘징비록’을 분석한 책이다. 전쟁 후 일본의 끈질긴 요구에 국교를 재개할 때 개방한 부산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당시 동아시아를 열광시킨 베스트셀러가 된 ‘징비록(懲毖錄)’은 그 만큼 임진왜란을 정확하게 묘사한 책으로 반대파의 탄핵으로 파면당했다가
"징비록을 통해 보는 우리 현실" 내용보기

정종숙 작가의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는 개인 회고록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132호)된 서애(西厓) 류성룡의 ‘징비록’을 분석한 책이다. 전쟁 후 일본의 끈질긴 요구에 국교를 재개할 때 개방한 부산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당시 동아시아를 열광시킨 베스트셀러가 된 ‘징비록(懲毖錄)’은 그 만큼 임진왜란을 정확하게 묘사한 책으로 반대파의 탄핵으로 파면당했다가 회복되어 임금의 두 번의 부름을 받았으나 뿌리치고 정치의 중심이 아닌 전쟁의 전모를 담고자 한 류성룡의 집념이 만든 역작이다.


징비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훗날의 환란이 없도록 조심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징비록’에는 류성룡이,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통신사 일행 중 김성일(유일하게 일본의 침략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고 보고한)을 따로 만나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재차 묻는 장면이 나온다. 김성일은 황윤길의 말이 너무 강경해 잘못하면 온 나라가 동요(動搖)될까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라 답했다. 김성일은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지 못하게 된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선조(宣祖)는 여러 사람이 보고한 전쟁 가능성론을 듣지 않고 유일한 의견 즉 전쟁이 일어날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수용한 뒤 전쟁이 일어나자 김성일을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선조는 무능한 만큼 간교했다. 기축옥사(정여립鄭汝立의 모반으로 서인에 의해 동인 1000여명이 고문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때 정철에게 전권을 주어 모진 고문으로 동인의 핵심 세력을 제거하게 한 것이다.


정철은 세자 책봉 문제를 건의한 것이 빌미가 되어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걸작들을 남겼지만 피를 묻힌 손이었다. 정철은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의 부름을 받고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뒤 모함을 받는다. 이에 정철은 강화로 들어가 살다가 굶어죽는다. 선조는 파천(播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을 이르던 말)에 반대한 류성룡을 유도대장에 임명해 한양 사수를 지시했다. “소심한 복수”였다.


전쟁이 나자 어명을 받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薦擧)한 사람이 류성룡이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일곱 품계를 뛰어넘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당연히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천거였다. 선조는 이순신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빗발치는 상소를 윤허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당시의 주력 전함(戰艦)인 판옥선(板屋船)이 전투 요원이 노출되는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옆을 막은 것이 거북선이다.


군함 건조 역시 류성룡의 절대적 지지와 후원 덕에 가능했다. 놀라운 것은 조선 수군의 대응이었다. 조선 수군은 일본 함대가 새까맣게 몰려오는 것을 보고도 출정하지 않았다. 대포 한 방 쏘지 않고 상륙을 허락한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의 대한민국 재난 구조 시스템을 연상하게 하는 상황이라는 말을 한다. 당시 조선의 수뇌부는 일본을 너무 몰랐다. 수군을 폐지하자는 말도 있었을 정도이다. 전쟁 발발 230일만에 수도를 적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조선의 방어체계는 제승방략(制勝方略)이었다. 유사시에 각 고을의 수령이 군사를 이끌고 자신의 고을을 떠나 약속된 방어 지역으로 집결하고 중앙에서 임명된 순번사, 방어사, 도원수 등이 도착하면 그 휘하에 예속되어 지휘를 받는 체제를 말한다. 그런데 류성룡은 이 체제가 지휘관이 적군보다 늦게 도착하면 싸우기도 전에 붕괴될 위험성이 있는 문제적 체제였기에 진관체제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물론 반대에 부딪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류성룡은 전쟁 초기 도망치기 급급했던 조정의 모습을 숨김없이 기록했다. 백성들의 원망과 질책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는 선조가 전란 극복 과정에서 국왕으로서 전혀 모범을 보이지 않은 것을 임진왜란의 또 다른 비극이라 말한다. 명(明)나라에서는 아무리 왜적(倭賊)이 강하다 해도 그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선이 일본과 손을 잡고 요동을 넘보려 한다는 말이 나돌기까지 했다. 선조가 진짜인지 의심하기도 했다.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 다니기 바빴던 임금이기에 가짜 왕으로 의심받은 것, 그리고 일본군의 조롱과 협박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때 수군을 폐지하려 했던 조정을 구한 것은 이순신의 수군이었다. 이순신은 한산해전에서 학익진 전술을 구사해 대승을 거두었다.(한산대첩) 류성룡은 한산해전의 승리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썼다.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143 페이지) ‘근세일본국민사’란 책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은 한산해전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썼다.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 사람들을 부왜(附倭)라 한다. 부왜는 전국 곳곳에 있었다. 적극적으로 간첩 활동을 한 자로부터 단순 부역자들에 이르기까지... 전쟁 초기 임금이 도성을 버리면서 문제의 싹이 튼 것이라 할 수 있다.(172 페이지)


행주대첩의 권율과 6진 개척의 김종서가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듯 류성룡 역시 문관으로 3도도체찰사(都體察使: 일본군이 남하하는 지역을 담당하는 총사령관) 역을 수행했다.(여담이지만 권율은 행주대첩을 자신의 최고 전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웅치 - 이치 전투를 자랑스러워 했다. 한민족 4대 대첩은 살수, 귀주, 행주, 한산 대첩이다. 웅치熊峙는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과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치梨峙는 전라도 진산군과 고산현 경계의 고개이다.)


명(明)의 참전으로 전쟁을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우리는 그제나 이제나 작전 지휘권이 없는 나라이다. 명의 장군 이여송은 탄핵을 받았다. 그가 참획했다고 주장한 일본군 머리의 절반이 조선 사람의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명의 원조를 받아 전쟁을 치르는 입장이기에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여송이 행주에서 참패한 이래 사기가 꺾일대로 꺾인 일본군의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병력 손실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온건파였던 류성룡도 이 부분에서만은 강경했다. 류성룡은 명의 황제를 상징하는 기패(旗牌)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명군과 일본군의 합의 내용을 전하는 기패였다. 합의 내용에는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면 참형에 처할 것이라는 조항도 있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참배를 거부한 것은 합의 내용을 승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그렇게 강화를 반대하면서 왜 당신네 국왕은 도성도 버리고 도망쳤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일본은 한양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철수하게 되자 진주성을 함락시킨 후 주민 6만을 몰살시켰다. 일본은 아예 남해안 각지에 성을 쌓고 들어앉아 장기 주둔 상태에 들어갔다. 전쟁 후 조선 최초의 직업군인인 훈련도감(訓練都監)이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은 류성룡의 제안으로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1594년 봄 류성룡은 선조에게 조총 제작 기술을 개발하자고 요청했다. 대구 광역시 달성군의 녹동서원에 임진왜란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총이 보관되어 있다. 당시 조선군으로 투항한 일본 장수 김충선(일본명 사가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만든 것이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의 끝을 이순신의 이야기로 장식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전쟁도 끝이 났다. 선조는 종전과 함께 전란 극복에 기여한 공신들을 선정했다. 104명이 선정되었는데 직접 싸워 공을 세운 선무공신(宣武功臣)은 18명에 불과했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李舜臣), 권율(權慄) 등 18명의 무신(武臣)에게 내린 훈공(勳功)을 말한다. 어이없는 것은 호성공신 86명은 선조가 피난갈 때 호위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선조는 우리 장수들은 간혹 명군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요행히 잔적(殘賊)의 머리를 얻었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선조는 전란 극복의 공을 명군에게 돌림으로써 이순신 같은 전쟁 영웅의 공을 상대적으로 축소시켰다. 선조에게 백성들이 따르고 존경한 이순신은 위협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선조는 곽재우, 조현, 고경명 등 의병장들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선조가 명군을 절대적으로 평가한 것은 피난만 다닌 무능한 왕이 아니라 명군을 불러 전란을 극복한 구국의 왕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명으로부터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을 입었다는 점을 강조한 탓에 그 논리에 갇혀 조선은 명청 교체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조선이 명을 섬겨야 할 나라가 인식했기에 막을 수 없었던 참변이었다. 저자는 역사는 기억하는대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류성룡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병산서원(屛山書院: 경북 안동)에 가보고 싶다.

 

이달의 사락 m******1 2016.09.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을 기억하라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개인이건 집단이건,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면화된 후라야, 그 개인(혹은 집단)에 비극적인 운명이 거듭 닥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런 가르침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back in the habit, 인간 좀 되라고 베푸는 충고와 훈육에, 못난 에고는 "이대로가 뭐 어때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개인이건 집단이건,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면화된 후라야, 그 개인(혹은 집단)에 비극적인 운명이 거듭 닥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런 가르침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back in the habit, 인간 좀 되라고 베푸는 충고와 훈육에, 못난 에고는 "이대로가 뭐 어때서?"라고 발끈해하며 오히려 종전보다 더 어리석고 자멸적인 오류로 깊이 빠져듭니다. 사람이건 집단이건 배배 꼬인 못난 심사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달한 모습입니다. 못나게 살아온 과거,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현재를 모두 왜곡하고, 그도 부족해서 손상된 두뇌, 형해화한 기억(이미 썩어 문드러져 기억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으로부터 말도안되는 거짓을 지어내어 사실인 양 고래고래 떠들기까지 합니다(현실이 아닌 망상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죠). 개인의 경우라면 명예훼손과 무고죄를 걸어 감옥에 보내 교화를 이룬다고나 하겠습니다만, 집단의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정신을 버쩍 들게 하여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거듭나게 도울까요?

서애 유성룡은 미증유의 전란을 맞아 민족 전체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우선순위를 매겨 가며 난제를 해결했고, 저마다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대소신료들간의 불협화음을 조울했으며, 점령군보다 까다롭게 구는 명 측의 장수들을 일일이 달래고 어르느라 자신이 모시는 나라님보다 더 노심초사하던 7년을 지새웠습니다. 국망의 순간을 넘겼으나, 현명한 그의 시선으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해 또다시 구태(舊態)로 회구하는 주변을 보고, 가슴에 사무치는 기록을 남겨 당대와 후손 그 마음가짐을 단단히 추스리게 해야겠다는 결의를 가졌습니다. 그 징표가 바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이며, 지금 리뷰하는 이 책은 방송작가 정종숙님이 쓰신 그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입니다. 정종숙 저자님은 한솔교육 등에서 출간된 여러 어린이용 도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입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우리 조선에서뿐 아니라, 명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힌 "당대의 화제작"이었습니다. 정종숙 저자님은 책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 노량에서 이순신이 적의 흉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할 무렵, 서애 역시 탄핵을 당해 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후 북인의 영수로서 정국을 전횡하다 인조반정(일단 "반정"이라고 하죠)때 대숙청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정인홍이 직무태만을 이유로 그의 태도와 능력을 걸고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인홍 역시 공과 과가 뚜렷한 인물이긴 하나, 이 대목에서의 국력 소모, 국론 분열은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억울한 죽음을 맞긴 했으나, 어찌 그 쌓인 죄과가 적었다고 하겠습니까?

여튼 이 때문에 서애는 영영 벼슬을 잃었고, 뉘우치기도 잘하는 선조가 그를 다시 조정에 불렀으나, 사양하고 내내 자택에 칩거하여 깨끗한 이름을 지켰습니다. 심기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간곡한 언사를 통해, 이미 병을 얻은 노구의 처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정어린 사의(辭意)를 임금께 전달한 과정이 따로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일종의 흥정이나 "몽니"를 부리는 소이라면, 이는 중대한 불충이자 뼈대 있는 사대부 출신 원상으로서 오히려 부끄럽고 격 떨어지는 처신에 해당합니다(밑바닥에게는 아예 이런 개념이 없죠). 그가 노년에 칩거한 고장은 오늘날 "하회마을"로 유명한 안동이며, 본관은 풍산이고 출생지는 인접 의성이지만 외가가 안동입니다. 그의 직계 후손인 탤런트 류시원 가족이 소유한 고택(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십여 년 전 방한했을 때 신을 벗고 마루에 올랐죠)이 안동에 자리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한 발짝만 걸어도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흔적이 곳곳에 스민 경상도 해당 지역민의 높은 긍지는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실패한 과거, 부끄럽고 부족한 자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오, 현재까지도 관리에 실패하여 파탄이 난 환경, 이런 것들을 왜곡하고 윤색하고 제 편할 대로 꾸며댄다면, 그런 영혼은 구제불능으로 타락하여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원문 그대로는 아니고 독자인 제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이런 저주받은 나쁜 습성은 대개 타인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중상모략, 뻔한 거짓 망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보통이라, 경솔하고 천박한 처신이 얼마나 중대한 결과(전과자가 된다거나)로 이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가까운(혹은, 이제 곧 가까워질)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 내각을 이끈 최고위직 관리의 반성문이자 국난 극복의 역사 철학서". 바로 이 구절에서, 우리는 저자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정확히 현실을 꿰뚫고 민족의 올바른 각성을 정당히 촉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당대 관념으로 왕이 수도를 비우는 그 자체가 이미 망국의 신호탄이요, 몽진의 행렬이 국경을 넘는 그 순간 국권이 포기되었음을 선언함이나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때로부터 800년 전 당 현종이 안사의 난을 맞아 서방으로 피신했을 때도, 아들 중종에게 보위를 물려준 후에야(완전한 자의는 아니었지만) 비로소 발길을 떼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며 때로는 대책 없는 독선에 빠져 자신과 주위를 모두 위기에 몰아넣었던 부족한 군주였다고는 하나,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거물 왕족의 사저에서 금지옥엽처럼 자란 분이 이처럼이나 모진 고초를 겪은 것도 안타깝기는 한 일입니다.

명이 이여송, 조승훈 등을 앞세워 참전했다고는 하나, 왜의 강력한 역공을 겪은 후에는 전의를 상실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동병을 회피했습니다. 서애는 이런 이여송에게 간청도 하고, 국토 수복을 조선 조정이 이룸이 바로 명 제국의 안보에도 직접 기여하는 전략적 선택임을 정연한 논리와 빈틈없는 근거를 대며 설득에 나섭니다. 허나 탐욕과 비겁함으로 점철된 그의 인격은 이런 탁월한 통찰에 눈과 귀를 막았으며, 충무공은 이 와중에도 해전에서 왜를 연전 격퇴하는 전공을 올려, 침략군이 보급을 받고 원기를 회복하는 길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만약 이때 해상이 무방비로 뚫렸다면, 무능한 장수 이여송은 세 길로 진군하는 왜의 협공을 받아 평양성에서 궤멸했을 수도 있고, 재정이 부족하고 내정이 불안했던 명은 군사를 물려 한반도를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풍신수길이가 전 중원을 먹는 오타쿠 만화에서나 볼 법한 사연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에서 군사력으로 왜의 혼을 빼 놓았던 분이 충무공이었다면, 북방에서 내정과 외교를 통해 왜가 망상을 못 품게 동분서주한 분이 바로 서애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남과 북의 두 영웅이 조국을 피땀흘려 구한 간절한 사연을 텍스트로 곱게 수놓고 있습니다. 왜와 명이 서로 눈치를 보며, 힘 안들이고 반도를 반분할 흉계까지 꾸미던 와중, 서애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명의 한심한 장군들을 설득하고, 이 강토가 비참하게 열강의 손에 분할되지 않게 만전의 노력을 기했습니다. 이때로부터 200여년 후, 호언촐러른,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세 제실(帝室)의 농간에 의해 폴란드가 과분된 역사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번 휴지기를 맞은 전쟁은 풍신수길의 진노(심유경이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게 폭로된 탓입니다)로 인해 다시 재연되기에 이릅니다. 서애의 비통함은 이 시점에서 극에 달합니다. 그러나 한심한 소인배들이 국정에 참섭하여 나라를 망쳐간다 쳐도, 자신까지 의욕을 잃고 손을 놓아 나라를 파탄지경에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서애의 위대한 인격은 이 지점부터 그 본연의 빛을 발합니다.

책의 문장이 참 빼어납니다. 본래 작가님이 문장력이 좋은 덕분이겠습니다만, 이 임진란과, 사건을 다룬 소재인 <징비록> 원문, 그리고 집필자 서애의 철학과 인품에 일일이 저자가 공명 공감하며 글을 쓴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나의 조선과 당신의 대한민국이 대체 다른 게 무엇인가?"
서애는 지면을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이처럼 준엄한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던 거죠.

v*****7 2017.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요즘 서점에 가면 역사책이 참 많더라구요그중에서 조선시대의 책이 참 인기가 많은것 같아요저도 관심가지는 분야중에 하나라 이 책, 저책 다 읽어봤는데어찌나 재미가 있던지~^^요즘 제가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어요~그리고 KBS에서 다큐멘터리도 했다고 하던데전 TV를 전혀 안봐서 하는지도 몰랐고 보지도 못했네요 ㅠㅠ조만간 다시보기로 봐야할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요즘 서점에 가면 역사책이 참 많더라구요

그중에서 조선시대의 책이 참 인기가 많은것 같아요

저도 관심가지는 분야중에 하나라 이 책, 저책 다 읽어봤는데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요즘 제가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KBS에서 다큐멘터리도 했다고 하던데

전 TV를 전혀 안봐서 하는지도 몰랐고 보지도 못했네요 ㅠㅠ


조만간 다시보기로 봐야할듯해요!!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정종숙지음

Book Star



<징비록>

서문을 살펴보면 류성룡은 참혹한 전쟁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그에게는 전쟁을 온전하게  극복하는 길이었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미래의 기준이 될 과거가 묻혀 버린다면 반성도 할 수 없고, 혁신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참혹한 과거, 참담한 기억이라고 해서 지워버린다면,

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각색한다면, 과거의 악몽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류성룡은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의 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 그럼에도 그는 붓을 꺾지 않았고, <징비록> 을 썼고, 완성했다.


우리나라 조선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게 있었는데 최대한 사실적으로 쓴다고 했지만

사실 축소되거나 왜곡되거나 과장되는 부분이 많은건 사실이었다


우리 역대 왕들중 제일 부끄럽고 무능력하고 별로였던 선조...

그는 이순신이 자기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게 싫어서 모든 업적을 축소하고

없애버리려고 하고 모든 전쟁의 공을 명나라로 돌렸던 무능한 왕이었다


왠지 지금 우리나라의 현재와 참 비슷한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순신도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뿐인듯 하다...



류성룡으로 인해 사실적인 부분이 전달되기는 했지마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수가 없는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대해서 한번 더 알게 되었던 계기가 된듯 해서

너무 좋았던 시간이었던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8 2016.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고급스런 컬러의 표지를 대하니 무언가 묵묵함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네요. 책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운이 바로 우리의 역사속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답니다. 임진왜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사건.그 사건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왜 우리가 다시 되짚어 봐야 하는 것인지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채 살아가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고급스런 컬러의 표지를 대하니 무언가 묵묵함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네요. 책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운이 바로 우리의 역사속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답니다. 임진왜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사건.

그 사건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왜 우리가 다시 되짚어 봐야 하는 것인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찌보면 지나간 일인데 뭐가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배우는 바는

분명 또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노량해전과 징비록의 공통점을 시작으로 책을 읽어 나가게 되었답니다.

일반 역사서와는 다르게 약간은 영상을 상상하면서 느낌이 있게 읽어 나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드마라 해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 나가면서

보게 되었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감정들, 그리고 떠오른 생각들.

그렇게 읽어 나가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톡톡히 있었다고 보네요.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접하는 사람들이나, 역사를 어렵게 느끼는 여자들같은

경우 이런 책이 더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었네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겪었던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반성을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고, 삭탈된 관직과 명예가 회복되어도 응하지 않고,

임금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고 침거한 류성룡.

정치에 다시 나아가지 않고 그가 선택한 일이 전쟁의 음모를 기록하는 일이었다고 하니

생각부터가 남달랐기에 남들과 다른 행보를 거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29건의 재난과 300건의 이상 징후들이 있었던 일.

그런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들을 깨닫게 되네요. 일본이 사절단을 보내

정세를 탐하고, 그런 행동들을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쪽의 행동.

누군가는 침략 가능성을 얘기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니 어떤 상황에서든

현명한 판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대적 상황들,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알고도 당장의 편안함을

위해 외면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단순히 역사의 기록을 알아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깨닫게 되네요. 그만큼 허술한 점을 드러내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시토시가 주고 간 조총을 가지고 신무기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훌륭한 장군들이 있었지만 더 발전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힘을 어찌

감당할 생각이었는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디었답니다.

군인이나 남자들이 보면 더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더욱 더 들었답니다. 지휘관의 역할에서 느끼는

무능하게 대응하는 행동들에서는 정말 답답할 뿐이랍니다.

징비록이 우리나라에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네요.

​위기의 순간에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조정의 모습.

선조가 전란 극복 과정에서 왕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은 것이 임진왜란 속의

또 하나의 비극이며, 수준을 폐지하려 했던 조정을 구한 이순신의 힘.

그 이순신의 이야기로 징비록이 끝납니다.

미래의 기준이 될 바로 전쟁의 기억을 바로 잡기 위해 든 붓.

스스로 지킬 힘이 없을때는 전쟁도 휴전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잘못된 판단, 잘못된 기억은 불행한 역사를 만든다.

역사속에서 일어났던 일에서만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서도 대응하는 방식과 일 처리 방식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과거에서 배워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현재까지도 우리는 어쩌면 대응과 대처법이 완벽한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역사 속의 기록을 통해 느끼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면 느끼게 되는

바가 크답니다. 과거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교훈삼아 앞으로 그런 고난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아픔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들면서 읽어 나가다 보니 그 역사의 기록을 남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답니다. 

 

g*******s 2016.10.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시간이 지날수록 저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또다시 그 참담한 기억이 엄습해 온다. 화살도 성벽도 소용이 없었다.왜적의 조총 앞에 채 십여 일도 버티지 못하고 삼도가 함락됐다.전쟁 초기, 왜 우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무너졌을까.왜 적의 신무기 조총 때문이었을까. 정녕 그것이 전부였을까.참혹한 전쟁을 진정으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시간이 지날수록 저점 또렷해지는 그날의 기억.

또다시 그 참담한 기억이 엄습해 온다. 화살도 성벽도 소용이 없었다.

왜적의 조총 앞에 채 십여 일도 버티지 못하고 삼도가 함락됐다.

전쟁 초기, 왜 우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무너졌을까.

왜 적의 신무기 조총 때문이었을까. 정녕 그것이 전부였을까.

참혹한 전쟁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서야 한다.

2014년 늙은 노학자라고 칭하였던 송복 교수님의 「류성룡, 다시 나라를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읽은적이 있었다. 당쟁싸움으로 나라 안팎의 정세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조선.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부터 왜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 나오며 통신사가 직접 일본에 갔을 때에도 그것을 직접 보고 준비하기에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함에  젖어 객관적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힘마저 없었던 조선은 어영부영하다 위기를 맞게 된다.

육지에서는 류성룡과 바다에서는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두 영웅이 태어나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몇년 전에 읽었던 송복 교수님의 징비록은 류성룡이 전란을 끝내고 안동에 내려가 써진것을 옮겨진 부분에 교수님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형식이었는데 군량미 조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차지했었다.

그저 조정에서 목소리만 높여 대비해야한다 안해도 된다의 의견만 주구장창 부르짖었던 이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과 달리 현실적으로 전란이 일어났을 때 직시해야하는 부분에 이것이 전쟁이구나! 했더랬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조금만 신경쓰면 눈치채어 방비할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까지 모두 허비한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했던 그때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데 전란이 끝나고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팔렸던 베스트셀러임을 감안할 때 아무리 전란으로 인해 전국이 초토화되고 수습하는데까지 오래걸렸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에서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칭송받았던 것을

볼 때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의 물음에 쉽게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지난 날의 잘못을 징계하여 훗날의 환란을 경계하라!"의 의미였던 징비록. 고통받지 않고 다시는 되풀이되어져서는 안되기에 몇년에 걸쳐 집필했던 징비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떻게 남아있는 것인가?

"나의 시대와 당신의 시대는 어떻게 다른가? 나의 조선과 당신의 대한민국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늘날 우리가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지 않을까?

d****i 2016.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북스타]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북스타]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작년 청소년 문고인 「징비록, 임진왜란 극복의 기록 유성룡 리더십」 (http://blog.naver.com/dark0405/220310504997) 이 책을 읽었었다. 책을 통해 유성룡 이라는 인물에 대래 많은걸 알 수 있었다. 참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그가남긴 징비록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었다. 징비록이 무엇인지 그 안에 어떤 기록들이 남겨진건
"[북스타]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작년 청소년 문고인 「징비록, 임진왜란 극복의 기록 유성룡 리더십」 (http://blog.naver.com/dark0405/220310504997) 이 책을 읽었었다. 책을 통해 유성룡 이라는 인물에 대래 많은걸 알 수 있었다. 참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그가남긴 징비록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었다. 징비록이 무엇인지 그 안에 어떤 기록들이 남겨진건지 더 알아봐야겠다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다른책들을 읽느라 잠시 잊고지냈다.

 

얼마전 「징비록, 기억을 기억하라」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궁금증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성룡이 남긴 임진왜란 7년의 기록들.. 제목만큼이나 눈에 띠는 문구였다. 최근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써는 알고있는 내용보다 모르는 내용들이 더 많았지만 친절한 설명들 덕분에 지루하지않게 읽을 수 있었다.

 

참혹한 전쟁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해 남겨진 유성룡의 징비록! 임금의 부름에도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쟁을 극복해 나갔다. 그 시대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 이었음에도 그는 징비록을 썼고, 완성했다. 덕분에 난 사무실 한켠에 앉아 그 기록들을 읽어볼 수 있었으며 당시의 상황들을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29건의 작은 재난과 300건의 미세한 이상징후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 이라 말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우연한 재난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서를 가지고 온 일본의 사절은 이전과는 달리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것이 조선이 일본의 정세를 탐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고 우리나라는 진의 파악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 다녀온 사절단을 통해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언급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황윤길과 김성일.. 함께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황윤길의 의견에 힘을 싫었지만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란 김성일의 의견에 손을 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답서는 선전포고에 준하는 것이었음에도 애써 외면한것이다. 이후에도 오억령을 통해 침략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하지만 조정은 오억령을 파직시킨다. 또한, 그해 5월 쓰시마의 소 요시토시가 부산에 와서 '내년 봄에 침략할 것' 이라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이를 외면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의 분노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던 김성일에게 향했고 책임 면제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전쟁을 대비해도 시원찮을판에 선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서인인 정철을 이용해 동인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정철이 기축옥사를 진압한 공로로 좌의정에 오르자 선조는 정철에게서 등을 돌려버린다. 결국 정철또한 삭탈관직되어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서인세력도 무너지고 만다. 기촉옥사가 일어난 지 1년째 되었을때 통신사 일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보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모습들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태도였다.

 

드디어 전쟁이 일어날것 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믿음직 스럽지 못했던 선조였지만 다행히 그에겐 류성룡이 곁에 있었다.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에 임명된 이순신의 파격적인 인사로 인해 거센 반발이 일어나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감싼다. 류성룡에 대한 선조의 신뢰덕분에 우리는 이순신 이라는 강직한 장군을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조선 최고의 장수로 꼽히던 신립 장군이 왜적들이 해전에 능하지만 육지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수군폐지를 외친다. 그러나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수군 폐지에 반대하는 장계를 올리며 힌겨운 투쟁을 벌이며 14개월동안 빈틈없는 전쟁 준비의 나날을 보낸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에 상륙

4월 14일 부산진이 함락

4월 15일 동래성 함락

4월 25일 이일 장군이 상주 전투에서 패배

4월 28일 신립 장군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결

4월 30일 선조 임금 한성 버리고 피난

5월 3일 수도 한양이 함락

 

불과 한달도 안되는 사이 수도가 함락되었다. 전쟁 발발 십여일 전 왜군의 침략 계획을 알리는 첩보가 있었음에도 조선이 함락되는 데는 20여일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16만 대군이 출격했음에도 조정에는 적의배가 400척이 채 못되며, 인원은 만명쯤 될것이라 보고되었다. 해안 일대를 노략질하는 왜구 정도로 오판한 것이다. 또한 전쟁일 발발하자 성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장수들과 수군은 해제시켜버린 장수들로인해 왜군은 너무나 쉽게 한양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라에 힘이 없어 명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런 명군의 횡포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강화협정에만 목을 메다는 명군의 태도와 명군의 노략질로 인해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고, 우리나라 군대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심유경과 고니시의 사기행각을 보며 나의 답답함은 극에 달했다. 7년여의 전쟁이 막을 내린 후에도 선조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장군들의 업적을 치하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 칭해도 모자랄판에 오로지 자신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왕이라는 꼬리표를 띠기위한 작업에만 몰두했고 이순신의 업적은 '다소 빛날 뿐' 이라며 깍아내릴 뿐 이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이 없었다면 이러한 상황들은 역사속에 묻혔겠지만 징비록을 통해 알게되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다. 안타까운 역사든 박수가 절로 쳐지는 역사든 우리나라 역사를 잊지 않기위해서라도 더 많은 책들을 통해 바르게 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d******5 2016.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을 기억하라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류성룡이라는 인물은 TV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징비록>도 다양한 저자들이 소설로, 인문학 작품으로 출판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류성룡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징비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 -->  아마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류성룡이라는 인물은 TV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또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징비록도 다양한 저자들이 소설로, 인문학 작품으로 출판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류성룡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징비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대국에 치여 주권을 잃어버린 듯한 나라, 눈앞에 적군을 두고도 자기의 안위만 찾는 왕과 신하들,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적군이 보이자마자 도망부터 치는 병사들, 수많은 사람들의 경고에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무능한 정부.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들려주는 생생한 기록물이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숨길 수 있으면 꼭꼭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다. 그렇지만 치욕의 역사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만 두 번 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징비록은 그런 류성룡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징비록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 이유는 류성룡의 그런 마음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닿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강대국에 뒤덮여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 나라, 하지만 그런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이전의 치욕스런 역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민초들의 마음이 징비록으로 향한 것은 아닐까.

 

징비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이 가진 특징 혹은 장점이라고 한다면 먼저 방송작가인 저자의 필력이 아닐까 싶다. 방송작가로 다양한 역사 프로그램에 관한 글을 쓴 저자의 전력이 이 책에 바로 묻어난다. 글을 읽으면서도 방송을 보는 듯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들이 징비록과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준다.

 

또 다른 특징은 징비록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은 징비록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설명한 반면 이 책에서는 비록 길지 않지만 징비록이 일본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통해 징비록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잘못된 판단, 잘못 된 기억은 불행한 역사를 만든다. 류성룡은 미래의 기준이 될 전쟁의 기억을 바로잡기 위해 붓을 들었다..... 기억을 기억하라. 역사는 기억하는 대로 움직인다.

p*****4 2016.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징비록(기억을 기억하라)
"[서평]징비록(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우리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일기를 쓰기도 하고 메모를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서 자신의 기록을 스마트폰에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순간 스마트폰의 메모리에 문제가 발생 하면 스마트폰 안에 내장된 모든 기록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기록이란 친필로 종이에 써서 남기는 것이 가장 안전 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기
"[서평]징비록(기억을 기억하라)" 내용보기

우리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일기를 쓰기도 하고 메모를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서 자신의 기록을 스마트폰에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순간 스마트폰의 메모리에 문제가 발생 하면 스마트폰 안에 내장된 모든 기록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기록이란 친필로 종이에 써서 남기는 것이 가장 안전 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기록도 이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데 한나라의 기록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고 하는 임진왜란 때의 기록물의 가치는 더욱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이란 때론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면서 써야 하는 것으로 맘에 들지 않은 내용은 축소나 삭제를 하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록이란 때론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 할 때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당시의 시대에 맞는 올바른 선택을 하였는지부터 시작 하게 된다.

징비록 서문에는 이러한 글귀가 있다.

“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에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나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임진년부터 무술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따라다니며 듣고 본 것을 대강이나마 서술 한다. 우매한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기록 하고자 한다.” 라고 씌여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당시 류성룡이 몸으로 체현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잇다.

이 책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에는 위기가 나타나기 전 여러 징후가 먼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일본에 갔던 통신사 일행의 경과보고는 뜻밖의 파란으로 일어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느냐 라는 선조의 질문에 황윤길은 침범할 것이오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으나, 김성일은 그 반대의 대답을 하여 당시 선조 임금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대신들에게 판단여부를 물어 보게 되는데 마침내 선조임금은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어 김성일의 말을 믿게 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게 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역사는 거꾸로 갈 수가 없는 것임을 이 기록을 통해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지금도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전념하여 큰 국가의 대사를 망치는 그런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잘못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u******2 2016.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종숙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7년간의 기록
"정종숙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7년간의 기록" 내용보기
기억을 기억하라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정종숙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맞아 전사하던 그 때, 조정에서는 류성룡이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면, 류성룡은 조선 내부의 적과 싸웠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류성룡은 복직 대신 징비록을 쓰
"정종숙 #기억을 기억하라 #징비록 7년간의 기록" 내용보기

기억을 기억하라

시대의 목격자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정종숙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맞아 전사하던 그 때, 조정에서는 류성룡이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면, 류성룡은 조선 내부의 적과 싸웠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류성룡은 복직 대신 징비록을 쓰기 위해 붓을 꺼냈고 개인이 남긴 회고록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징비록 때문에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 정세와 함께 전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임진왜란의 전모를 파악 할 수 있다. 징비록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징비록은 일본에서 <조선 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징비록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을 미화 했다면 징비록을 본 이후에는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 장수들의 활약상도 소개 하기 시작한다.


임진년 4월 13일 왜가 몰려오는 그 때...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선조는 그것을 무시하고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16만 대군이 부산 앞바다를 당도 했을 때 조선의 최초 보고는 1만 명 정도의 왜구가 침략한 것이었다고 한다. 큰일을 이렇게 작게 무마시킬 수 있다니 흡사 현재 정부를 보는 듯하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적을 보고 도망치기 급급한 조선의 수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때의 현재 정부의 재난 시스템을 보는 것 같다. 역사를 보고 배우기는 커녕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급급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미국으로 도망가는 누구를 보는 것 같다. 류성룡은 그런 나라의 왕이라도 왕이라며 모시는데 답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대와 바다에서 승리를 했던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행주대첩에서 크게 승리한 조선군은 언제든 한양을 탈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명나라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에서 싸우는 것조차 맘대로 하지 못하다니... 명의 이여송은 류성룡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일본군이 무사히 철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국과 일본이 사이에 껴서 맘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의 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류성룡의 전시내각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양반의 특혜를 없애고 병력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양반들의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지금도 국회의원의 자식들은 군대에 안가는 것을 보면 그 때와 다를 바가 없다.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이란 말이다. 선조는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고 류성룡은 자기반성으로 전쟁을 기억했다.


요즘 위안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가 과연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먼 훗날에나 알 수 있을까...

m*********s 2016.01.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