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님의 역저 "프랑스혁명사 10부작"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사형당할 때까지의 과정을 10권이라는 큰 분량으로, 생생하게 영화를 보는 듯, 내가 그 당시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해 주시고 프랑스 혁명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해 주실 수 있게끔 기회를 주신데 매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프랑스 혁명"을 자세히는 몰라도 그 이름 자체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프랑스혁명은 "혁명"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어떤 한 계층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귀족 및 성직자 계층이 아닌 부르주아 계층이 주도한 구체제를 급속히 뒤엎어버리는 - 왕정까지 폐지함도 모자라 루이 16세를 처령해버리는 -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겠죠. 루이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할 때만해도 프랑스가 혁명의 회오리에 휩쓸릴 줄은 전혀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교수님이 본 작품의 권두마다 들어가는 글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요약하자면 "프랑스 혁명을 거울로 삼아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나름의 혁명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맞나요? 프랑스 혁명이란게 결국 그렇더군요. 혁명으로 인해 사회제도를 다 갈아엎었다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고 이를 틈탄 나폴레옹이 제정을 선포함에 따라 실패한 혁명이 됩니다. 물론 나폴레옹 제정 시기에 프랑스가 법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나름 발전한 바가 있다고도 합니다만 공화정의 싹을 밟은 건 확실합니다. 그러고 나서 나폴레옹이 유배되고 이래저래 다른 왕들이 다스리다가 결국 현재의 공화국에 이른 것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숙정 및 숙청한 과정은 필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상황을 보면, 귀족제를 폐지하고 성직자를 국가공무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정말 놀라 자빠질 일입니다. 도망친 귀족도 많았구요, 국외로. 제정을 공화정으로 만들기 위해 물론 결과적으로야 논쟁의 거리는 있을 것이지만 희생된 사람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혁명을 이끌던 계층은 "다 갈아엎어야 한다"고 마음 먹고 달려든거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18세기 프랑스에 빗대어 생각해 본다는게 무리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촛불혁명"의 가치를 계속 이어나갈 상황이 될 수 있을까요? 구한말 동학운동도 한 때는 "혁명"으로 승격시키려던 때도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지요. 광복 이후에 "반민특위"를 통해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른바 친일파의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4.19., 5.18. 을 통해 많은 시민이 목숨을 바쳤어도 그 당시의 고위공무원 등의 부역자들은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도층 행세를 하고 살았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는 하나 그 동력은 젊은 세대에 있어서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 - 소득의 불평등, 집 값의 말도 안되는 폭등, 인구 감소 - 으로 점점 그 관심과 동력을 잃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뒤집어 엎어볼 힘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처럼 나폴레옹 같은 사람이 나타나 제정과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갈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혁명을 이루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됩니다. 교수님의 바람처럼 우리가 프랑스혁명과는 달리 성공한 혁명으로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각자가 노력할 일이겠지요. 혁명의 동력이 점점 달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시는 마음으로 이 책 시리즈의 후반부를 집필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얼마나, 더, 무엇을 희생해야 우리나라도 뭔가 제대로 된 혁명을 완수해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끔 해주신 책 잘 읽어보았습니다. |
|
이번 2권에 하이라이트는 국민의회가 봉건제를 폐지하고, 혁명의 길잡이가 될 인권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과정을 통해 혁명 세력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봉건제 폐지를 둘러싸고 제3신분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계몽사상의 수혜를 제대로 받은 제3신분마저도 자신들의 이익을 둘러싸고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간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인권선언과 헌법 작성을 둘러싸고 국민의회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읽는 부분은 마치 100분 토론에서 유능한 패널들이 나와 치열한 토론을 펼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국민의회 안에서 헌법 작성과 인권선언문 작성을 두고 갈등이 심해질때마다 미라보 백작의 명연설을 듣는 부분이 재밌고 좋았습니다. 다른 한편 혁명 이후에도 크게 나아진 점이 없자 민중들이 주도가 되어 왕과 왕비를 파리로 끌고 오는 베르사유 대행진에서는 혁명에서 본격적인 민중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앞으로의 전개가 기댇됩니다. 파리로 들어가게된 부르봉 왕실은 어떻게 대응할지 3권도 기대가 됩니다. |
|
파리로 가는길 10월6일 새벽에 왕은 파리의 시위대에게 가족과 함께 파리로 가겟다고 약속함 오전 11시에 국회의장 무니에가 개회를 선언했다 그는 간밤에 일어난 일을 간단히 보고하고 나서 의원 두명을 뽑아 왕에게 보내 의중을 알아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블라콩후작과 스랑백작이 왕을 찾아갔고 의회는 왕의 파리 행차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논의했다. 미라보백작은 왕과 의회가 계속 엲락하도록 위원을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데뫼니에는 현 상황에서 국회가 회의하던 장소를 지키는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고 왕은 국회에 자문을 구하니 그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일이야말로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라 지적했다. 의원 레뇨의 발언 '우리는 애국심의 불을 보존하고, 또 국가 안보를 위해 프랑스의 자유를 회복해준 분과 협력해야 한다.' |
|
네케르 1732년 제네바출생 15~17세무렵 무일푼으로 파리로 가서 돈을 벌어 제네바의 부모를 봉양 인도화셍 투자 33세에 부자가 됨 살롱을 오픈하여 작가,계몽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유명세 귀족의 피가 조금도 섞이지 않아 진정한 성공의 상징이 됨 프랑스주제 제네바공화국의 대신역할(무보수)--이후 프랑스의 대신(자비사용) (딸의 증언 : 네케르가 거만해서 그런게 아니라 프랑스 재정상태가 나빠서 일자리를 줄이는 판에 보수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함) 네케르는 결국 20억리브르까지 지불하게된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참전하면서 특별세를 징수하지 않았고 대신 금리 10퍼센트로 국채를 모집해 빚을 5억5천만 리브르나 졌다. 미라보백작의 칭찬 '그는 세금을 걷지 않고 전쟁을 치렀다. 그는 신이다.'
|
|
루이16세 당신만 신성한가? 6월22일 평민대표들은 도동안 회의실으로 쓰던 죄드폼으로 모였다. 그러나 죄드폼은 잠겨 있었다. 지난 17일에는 소락청을 고치겠다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더니 이번에는 죄드폼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느 것은 무슨 이유?
왕의 작은 동생 아르투아 백작이 공을 친다고 회의실 출입을 막았던 것이다. 국회의 활동을 지지하고 주시하던 사람들은 아르투아 백작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살생부 명단에 그의 이름이 맨 앞에 오를만한 이유를 그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화가 난 대표들은 성프란치스코회 수도원으로 갔다가 종교인 대표들이 마련해준 생루이교회로 회의장소를 옮겼다.
|
|
국민의회 선포와 죄드폼의 맹세 5월6일 제3신분대표들은 회의실에서 아침부터 오후2시반까지 다른 두 신분대표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제3신분대표들은 전날 바랑탱이 한 말 '자유롭게 논의하라'를 세 신분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의논하라는 말로 해석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신분대표들은 각각 배정받은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처럼 3신분대표들은 베르사유궁에서 루이16세를 알현할 때부터 그날까지 닷새동안 앙시앵레짐의 신분제도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들이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면 영원히 현실을 인정하게 될것이다 그들은 이제부터 '평민의 대표'를 자칭하면서 특권층을 상대로 목청을 높였다. 만일 귀족이 평민에게 양보하거나 굴복하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었고 만일 평민이 양보하거나 굴복하면 전통을 그대로 지켜야했다. |
|
이 책을 보기전에는 파리에서만 혁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을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지방도 엄청 뜨겁네요. [지방도시의 봉기] 지방 도시민은 전국신분회가 국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평민이 큰 역할을 했으며 왕이 군대를 배치해 파리를 위협했는데도 파리 시민이 그 위협을 물리치고 왕의 추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파리를 따라서 지방이 따라했다고 주장 할 수는 없다. 지방이 파리보다 앞선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지방민은 동실성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려워서 귀족 종교인 평민을 구별할 필요가 있으며 도시와 농총의 실정이 달랐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귀족과 고위성직자들은 파리의 소식을 듣고 대부분 몸을 사렸으며 평민은 억누르고 살던 분노를 희망과 버무려 표출했다. 결국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혁명이 불길이 거세게,,,,,, |
|
1789년. 세계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다른 년도는 몰라도 아마 이 년도는 기억할거라 봅니다. 그런데 실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거라 봅니다. 세계사시간에 배운 프랑스대혁명과 주명철교수님 책을 통해 다시 알게된 프랑스대혁명은 많은 차이와 놀라운 사실들이 있네요. 미라보백작,라파예트,시에예스 ,당통,마라,자크 등,,, 로베스피에르 말고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프랑스대혁명 즉 삼부회소집전 4월에 미국은 아메리카합중국이라는 공화정이 탄생하는 순간 프랑스는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못할 대혁명이 시작되었다는점. 루이16세조차 4년뒤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을니,,,,, 사실 초반에 유혈혁명을 막을수도 있을법한 상황이였는데 너무나도 대처를 잘못한듯합니다.
1789년 주요 사건 순서 4.30 조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취임 5.01 전국신분회소집 6.17 국민의회구성--성직자 일부귀족 합류시작 6.19 회의장폐쇄--3신분 출입금지 6.20 죄드폼의 맹세(테니스코트의 선언) 6.23 특별전국신분회소집 6.26 루이16세 국민제헌의승인+군대동원령) 7.07 제헌위원회구성--제헌국민의회 헌법제정 7.11 네케르파면 7.14 바스티유감옥습격 8.04 봉건제 유상폐지 8.26 프랑스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10.5 베르사유행진 11월 교회토지몰수
|
|
전국신분회를 개최할 때만 하더라도, 루이16세는 이 모임이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 될 것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앙시엥레짐의 구체제들에서 벗어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전국신분회가 열린 1789년. 2권 에는 전국신분회의 개최와, 바스티유 정복, 그리고 유명한 인권선언이 발의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권선원 부분에서는 국민의 대표들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완성해간다. 그리고 더 이상 프랑스의 왕은 절대군주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들이 입법을 하면 왕은 이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의 권력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바렌 도주 이전까지는 왕의 존재 자체를 전복할 생각은 없었고, 입헌 군주제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한다. 혁명의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모두 알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계속해서 자충수를 두는 루이16세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당시 프랑스에 엄청난 부채와 그로 인한 시민들의 굶주림은 윗 선조 때부터 내려오던 것이었고 끊임 없는 전쟁과 국방비로 인한 지출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인권선언문은 작성되었고, 프랑스 시민들은 루이 16세를 튈르리 궁으로 끌고 오기 위해 행진에 나선다. 진정한 혁명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 왕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1년 전만 하더라도 왕이 법을 만들면 고등법원이 등기권과 상주권을 이용해 법을 시행 하는 데 저항했다. 그런데 이제 국민의 대표들이 법을 만들면 왕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저항하게 되었다. 왕이 입법부가 제출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앙시엥레짐의 뿌리를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진정한 혁명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왕이 계속 거부권을 행사해 새로운 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왕도 그 행위로써 자신이 이제는 절대군주가 아니라 입헌군주임을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파리의 팔레 루아얄에 모이는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마다 베르사유로 행진하는 계획을 세우고 국회와 왕을 압박했으니 비록 국민방위군의 힘으로 그 계획을 한 두 번은 무산시킬 수 있다 할지라도 왕의 권위와 운명이 점점 초라해지고 위험해지는 과정을 틀어막기란 불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