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허구] 이상한 날, 안아주고픈 등짝, 알고도 꿈결
비난보다 무관심을 못 견디는 시대, 전 국민이 토닥토닥에 목마른 나라에 <월요허구>는 괴상한 콘셉트와 마케팅을 고집한다. “잠이 오지 않는 조용한 밤이 찾아온다면, 외롭게 읽으세요. 그래서 당신의 밤과 낮이 조금이나마 이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움과 비정상을 강요하다니. 한술 더 떠 이 책이 나왔던 지난 12월 중순에 밀던 카피는 이것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닮은 외로움의 맛”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더니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신에게 존재가 가려졌고 그 때문에 ‘크리스마스’란 단어에 무척 예민하며 ‘크리스마스’마다 애정 결핍 발작을 일으키는 크리스마스성 선천적 애정 결핍 환자였다. 그래서 죄 없는 이 책을 작년엔 꼴도 보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이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겠다는 누군가에게 신경질을 있는 대로 냈다. 그렇게 존재만으로 불편하고 불쾌했던 책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결제하고 품에 안고 있었다. 외로움도 외로운 크리스마스도 질색이지만 몽상이 좋았고, 이야기가 좋았고, 그림이 좋았다.
한 남자 시인의 글에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여자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을 그린 책을 보고 이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런 남자 냄새 물씬 나는 책에 이성의 그림은 감성을 반감시킨다고, 소년 감성 뻐렁치는 상남성동무 둘이서 우주적 궁상의 끝을 달려주셨다면 손발을 못 펴며 참 좋아했을 것이라고. <월요허구>가 기다렸던 딱 그런 책이었다. 이불의 앞날이 걱정되는 한없는 새벽 감성, 본능과 천승, 뻘생각……. 수많은 사람들이 문단의 위기와 소설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고민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점점 늘어난다.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고, 소설이 아직 미래가 있는 장르라면 어떤 소설이 팔리고 먹힐지 골몰하며 수없는 실험소설이 나왔다. <월요허구> 역시 분량이나 형식이나 전통적인 소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초단편을 넘어 소설로는 볼 수 있을까 싶은 글들이 상당수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글을 ‘이야기’라고 표현하였고, 또 누군가는 ‘글더미’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무려 68편의 단편소설에 삽화까지 있기에 책은 묵직하였지만 대부분 매우 짧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서도 400쪽이 좀 넘는 정도였다. 물론 「너」 같은 일반적인 단편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손꼽을 정도였고, 대부분 분량도 형식도 자유분방한 실험적인 소설들이었다. 작가 김종완의 데뷔 자체가 문단에 의미를 던졌다. 전통적인 주요 공모전을 통한 등단이 아니라, 개인 페이스북에 내킬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올렸던 글들이 많은 페친을 확보하였고, 한 출판사(상상+모색/헤르츠나인은 이 출판사의 한 브랜드) 사장의 눈에 띄어 출간된 것이란 점에서 시와 그림에세이를 넘어 SNS소설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성과물이었다. 그래서 읽는 게 재밌으면서도 평가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수록 단편소설의 수가 매우 많고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책을 다 읽고 책에서 멀리 떨어져 보면 하나처럼 보이는 구석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와 무순으로 나열된 「그녀」 1~4, 에필로그를 차례대로 이어 읽어보는 것도 꽤나 재밌다. 독자가 그런 기분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월요허구>가 전체적으로 ‘정서’ 소구에 강하게 치우친 글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을 짓다 스스로 흡족해 배시시 웃었을만한 미문들도 종종 등장하지만, 서사와 사회성보다 문장미학에 더 매진하는 한국문단의 주된 경향과는 맥이 달랐다. 영상 연출로 치면 큰 의미는 없지만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넣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일광욕하며 노곤노곤 낮잠에 빠진 고양이 따위를 클로즈업한 장면을 계속 잡고, 심지어는 그 자체가 전부이기도 한 것.
이는 저자의 취향과 문학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월요허구>의 태생적 속성-‘좋아요’로 소비되는 페이스북 게시물-때문인 것도 커서 여러모로 책장을 뒤적이고 즐기기가 좋았다. 수록 작품 수가 많다보니 언뜻 언뜻 보이는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 혹은 즐겨 쓰는 소재를 엿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대상을 맛보고 먹는 것(「침」, 「아랫입술이 없는 남자」, 「새끼손가락이 짧은 남자」 등). <월요허구> 전반에 흐르는 또 다른 공통적 속성은 몽상소설이라는 자칭에 충실한 꿈의 전개를 꼭 닮은 비약의 남발과 그에 대한 아무렇지 않은 수용이다. 예를 들어 헤어진 여자친구의 아이가 당연하게 집에 머문다거나, 옆집여자의 잃어버린 고양이가 부지불식간의 자신의 이불 안에 있지만 의문을 품지 않는다.(「이렇게 남겨져도」) 꿨던 수많은 꿈들이 꿈속에서는 전개가 말이 되고 재밌었는데 깨고 곱씹어보면 비논리도 그런 비논리가 없어 허탈한 것처럼. 그런 이야기가 투성이다. <월요허구>는 몽상 혹은 꿈을 그대로 그림과 글로 옮겨 놓은 듯한 책이다.
읽기 전에도 이상해 보였고 읽는 내내 이상했던 <월요허구>는 읽고 나서도 한참을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였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몽롱하고 말랑하였다. 알고도 즐기는 꿈결이었다. 후반부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니 왜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했는지 알 수 있었고, 책 전체에 감도는 외로움은 내게도 익숙한 만민이 느끼는 익숙한 허기였다. 그래서일까, 외로움을 담뿍 담은 이 책을 읽고나니 심장을 오그리던 외로움이 말끔히 사라졌다. <월요허구>지만 누군가에겐 이 책이 읽기 좋은 날이 월요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당신의 어느 하루가, 어느 밤이 이상하고 고장 날 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미안하지만 독자로서 욕심이 나서 <월요허구>를 실컷 재밌게 읽고는 높이 평하기는 싫었다. 한편 두편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작가의 저력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아직 빼들지 않은 칼이 뭘지 무척 궁금해졌다. 망가져 늘어진 월요일이 끝나갈 즈음 책에 애틋한 등짝 하나가 어른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