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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좀 한심하네요. 소크라테스라는 단어를 그 무엇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결국은 모르는 것이고,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넌 모르고 있다'고 가르쳐주는 자신이야 말로 그나마 현명하다고 했던 이가 소크라테스입니다.
뉘앙스가 좀 수상하죠?
'사람들에게 무지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이' 정도로만 정의해도 될 것을, 그러한 '무지한 사람들에 비해 그나마 현명하다고 생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멜레토스와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변론한 내용을 담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거북한 느낌이 듭니다. 그 거북함의 정체는 바로 소크라테스의 '오만함'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다룬 겨우 세 작품 - 이 책에 포함된 《에우뒤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 만 보고서 소크라테스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지한 처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텍스트 자체로만 보았을 때, 소크라테스의 지적 오만함은 결국 스스로를 사형이라는 중형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듯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나를 사형에 처한다면, 신이 여러분께 드린 선물에 대하여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하면 나와 같은 사람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약간 쑥스럽습니다만, 나는 신으로부터 이 나라에 살도록 보내어진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500명의 재판관들이 더 자극을 받은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변명' 이후 내려진 판결은 유죄 280표, 무죄 220표로 유죄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변명' 이후 내려진 형량에 대한 판결에서는 360대 140으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유죄 판결을 내린 숫자보다 더 많은 수입니다.
그 후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변명'을 합니다. 그 세 편을 묶어 놓은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리의 추구라는 면에서 그는 여전히 범인이 감히 따라가기 힘든 성인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힘이 미치는 한, 지혜를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권고하며 누구에게나 내 생각을 전달하겠습니다."
"나를 놓아 주든지 죽이든지 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몇 번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관들에게만 '재판관'이라는 칭호를 의식적으로 쓰는 그에게는, 위의 인용문구와는 달리 결코 아테네 시민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디를 읽어봐도 그의 눈에 '아테네 시민'(=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사람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무지몽매할 뿐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무죄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재판관', 유죄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아테네 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어쩌면, 최근 박홍규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노예제를 지지하고 대중을 경멸하고, 민주정을 '중우정치衆愚政治' 또는 '빈민정치' 정도로 생각하고 '철인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상으로 생각한 그에게 그리스 민주주의가 내린 정당한 판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스파르타 예찬론자였으며 그의 제자와 지지자들은 대체로 지배그룹이거나 엘리트, 권력자였다는 점, 민주정을 무너뜨리고 30인 독재 시절의 수령인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반면, 그를 민중 법정에 세운 이는 30인 정권에 맞서 싸워 민주정을 회복시킨 아뉘토스였다는 점 등이 소크라테스를 극한까지 몰고 간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심지어 《에우튀프론》과 《크리톤》에서 보여지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문답법 역시 자신의 속내는 밝히지 않고 상대방 말꼬리만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검찰이나 경찰식 수사 또는 변호사식 증인심문’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소크라테스를 사형까지 몰고 간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치명적 오점이었습니다. 어떤 사회보다도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판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악법도 법"이라는 출처 불명의 말로 소크라테스를 미화했던 과거 정권의 속 검은 의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소크라테스를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탈출하기를 권하는 친구 크리톤을 이렇게 설득합니다.
"자네도 싸움터에서나 법정에서나 그 밖의 어느 곳에서나 나라와 조국이 명령하는 것을 준행하지 않으면 안 되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 정당성에 대하여 조국을 설득시켜야 하는 걸세. 부모에 대하여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국의 명령에 대해서도 불복하여서는 안 되네."
이것이, 비록 소크라테스의 본 뜻은 아니었겠지만, 개인 위에 국가가 있고 법이 있음을 강조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과거 정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입니다.
뚜렷한 소신을 가진 철학자로서, 아니면 아테네 민주정을 반대한 반민주주의자로서의 소크라테스로 바라보건, 어떻게 보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덧씌워진 포장지는 일단 벗겨내고 볼 일입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같은 이가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 수많은 문헌을 연구하며 논문을 쓸 일도 아닙니다. 다만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하자는 뜻입니다. 논리에서는 이겼지만 판결에서는 졌던 소크라테스의 양면을 의도적으로 함께 보려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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