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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 - 로버트 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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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980년대와 30~40여년이 지난 현재를 비교해보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경제성장으로 인한 편의와 혜택이다. 지금은 아파트 거주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도시는 일반 주택이었다. 흔히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형태였다. 재래식 화장실 한 칸을 서너 가구, 십 수명이 써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의 경우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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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980년대와 30~40여년이 지난 현재를 비교해보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경제성장으로 인한 편의와 혜택이다. 지금은 아파트 거주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도시는 일반 주택이었다. 흔히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형태였다. 재래식 화장실 한 칸을 서너 가구, 십 수명이 써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의 경우 유년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았지만, 주위 친구들도 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고르게 못살고 덜 먹었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의 편리함은 비좁은 단칸방 주택에 살던 시절에 비하면 혁명에 가까울 정도다. 어렵게 사는 분들은 지금도 아직 쪽방촌에 살기도 하지만, 극빈층을 제외하면 굶어서 생존이 어려울 정도의 가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제와 편의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과거 근대이전 임금들보다 더 나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한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풍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반대급부들도 있다. 예전에는 한 반에 친구들의 가정 형편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빈부의 격차가 급속도로 커졌다. 산업화 시대에는 정년까지 한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게 당연했지만, 요즘 평생직장은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동네 사람들과 이웃의 정을 나누고 가족은 위아래로 몇 대가 모여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가족은 작아지고 멀어졌다.


21세기의 신경제가 주는 뭔가 좋은 면도 있다. 거리에 상관없이 가장 싼 물건을 신속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가 원하면 즉각 제품에 의견이 반영되기도 하고, 상품의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소비자 사이에 공유된다. 가격을 비교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사이트는 늘 호황이다. 소비자를 등한시 하거나 경쟁력 없는 상품을 파는 회사는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경제의 변화들이 우리에게 좋기만 한 걸까?


우리는 늘 소비자이면서 또 언제나 대부분 노동자이자 재화를 만들어내는 생산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신경제 하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쉽게 바꾸는 소비자의 존재는 그만큼 생산자의 경쟁을 촉발시킨다.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게 움직이고 한 번 시장에서 뒤처지면 생존하기 어렵다. 기업의 경쟁이 심화되면 그 안의 구성원들의 직업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거보다 우리는 더 돈을 좋아하게 됐다. 가족보다 물질을 우선하게 되고, 뭔가 선한 일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더 쫓게 된 듯하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고, 공명심보다는 안정적이고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대학이나 학과에 사람이 몰린다. 돈 잘 번다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의사가 직업 선호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지 오래다. 돈 앞에서는 친구도, 가족도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됐다. 10억을 주면 감옥 몇 년쯤은 갈 수 있다는 대학생이 반이 넘는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더 못나진 걸까? 과거보다 욕심이 많아진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하다고 쳐도 그게 발현하는데 30~40년의 기간은 너무도 짧다. 그러면 무엇이 바뀐 것일까?


바로 신경제에 수반되는 환경이 바뀌었다. 평균적인 직장인들의 퇴직 연령이 40대 중반이 되고 기업에서는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고 있다. 직장에서 이탈하고 나면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권을 보장하는 그 신경제하에서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더 위험한 환경에 놓여지게 된다. 구매자가 더 좋은 조건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하고, 필사적으로 경쟁해야 하며,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들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선택한 결과물이다.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센델이 얘기했듯, 우리가 미처 결정하지도 않은 사이에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들이 훼손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 자녀와의 더 많은 시간, 지역사회에의 봉사활동, 노동자간의 연대는 신경제 하에서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이 모든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우리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저자는 답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의해 내려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신경제로 인해 얻는 이득이 비용에 비해 그리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면,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미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동 노동의 금지, 최저임금의 보장, 노동시간의 제한은 사장과 경쟁의 논리만 본다면 빗장을 모두 풀어야 하지만,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했다.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서 스칸디나비아지역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특징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돈을 행복의 필수요소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낮을수록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우리가 못나거나 욕심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위험에 내몰린 불안한 마음이 돈에 더 집착하게 했다.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


[뱀발]

세계적인 진보 경제학자이자 클린턴대통령 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가 쓴 이 책은 2천년대 초반에 출판되었는데, 그전에 읽은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관점에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책의 앞부분 반 넘는 분량을 신경제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어, 책 자체는 몰입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후에 출판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가 훨씬 저자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책이라고 느꼈다

c****s 2018.06.28. 신고 공감 3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