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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쓸쓸하면 방에도 물이 든다. 갈 곳 잃은 색이 깃들어 어둠에 몸 비빈다. 약간의 관조도 허용하지 않는 봄의 한 귀퉁이, 게토가 된다.
야밤의 정식처럼 헛된 몸짓으로 칩거한다. 횡행하는 은어와 약어의 틈바구니로 목젖 밀어내며 숨을 쉰다. 사방연속무늬 벽지를 따라 눈물의 골이
파인다. 창밖 고양이 울음이 골을 따라 흘러내린다. 인간의 시간으로만 허용된 시간이 아닌 또 다른 시간이 흐르고, 녹이 슨다, 방에...
에둘러오는
이런 저녁이면 나는 애가 닳아서 애가 다
녹아서 가령,
밤고양이들 저이들끼리 모여서 뭔가 오늘 있었던 재밌는
얘기를 할 때
나는 애가 닳아서 마침 끼어들고 싶기도 한데
얘들은 당최 나를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해서
얘들아 너희들 얼마나 애가 닳았으면 여기까지 나온 거니 예서
다 쏟아붓는 거니 시원한 거니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웬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밤고양이들의 애가 가득 둥글게 담겨 있다
에둘러오는 저녁 무렵
몇 년이 걸려 여기까지 왔나요? 나이를 묻는 것인가요? 아니오, 나이 말고요. 아침의 질문자가 방문을 두드린다. 방으로 아침을
끌어들인다, 밤으로 아침을 끌어들이려 한다. 방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면허를 보여준다. 허락된 자에게만 허용된 손짓, 우아함의 보형물이 장착되어
있다. 지금이 아침인가요? 시간을 묻는 것인가요? 아니오, 시간 말고요. 뒤돌아서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햇살은 아직 시건장치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아침에 물 건너오는 고요한 음계 (音階) 코끝의 천리향처럼 가늠할 수 없고
이 살 떨림은 하나의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마음이 다른 마음 불러모아
묘한 비법과도 같이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호흡을 가만히 시작하는데
내 속엔 어떤 병에도 듣지 않는 약이 있어 겹겹이 쌓였던 가루약들 뒤섞여 이제는 속이 다 녹아버릴 것도 같은데
좋으니 몸아?
오후엔 횟감 장만하듯 배나 갈라 뒤집어 어디 날씨 좋은 해변에 나가 말려봐야겠다
깜짝 놀란 봉숭아가 씨주머니를 툭, 뒤집듯 가끔 뒤집어지는 몸이어서
눈으로 하여금 속을 보게 하였으면 장기로 하여금 환한 바깥을 보게 하였으면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갸우뚱한다. 명사가 부족한 글이나 문장 특히나 명사가 부족한 시를 얕잡아 보곤 하였다. 명사의 부족을 시의
근력의 부족으로 여기곤 하였다. 동사나 부사나 형용사에 비해 그 자체로 고유한 명사의 힘을 많이 믿었다. 시인의 시는 어떻게든 명사의 부족함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서 의아하다. 어쩌면 나도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허약한 근력, 명사가 부족하여 생긴 다공의 뼈로도 힘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벌거숭이 새
새 한 마리 유리창에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 나는 새의 알몸을 보았다
유리창에 찍힌 한 줌 먼지가 자꾸만 유리를 통과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나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거기에 손을 가져다댔다
만져지지 않는 새의 부리가 창밖에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벌거숭이 새를 보았다 새가 벗어놓은 한 벌 창공이 나를 감쌌다
다공의 뼈는 부러지기 쉬운 뼈이다. 육신을 발가벗긴다. 거죽과 뼈가 분리된다. 탈골의 아름다운 기억이 그림자로 남는다. 바람에
휩쓸리려는 그림자를 부여잡는다. 아귀에 들어간 힘이 만드는 고함에 놀라 새가 날아간다. 깃털 몇 개 뒤늦게 푸득거린다. 깃털이 만든 소음으로도
귀를 틀어막는다. 공포는 넌지시, 라는 속삭임 거슬린다. 기행을 일삼던 현실에게 선고되는 선고 유예의 목소리 들린다.
“비 맞으려고 마당에 나왔는데, 비가 이미 와 있다” - <마당 가득히>
중
꿈이 꿈을 꾼다. 방을 허물고 방으로 들어간다. 기어이 건져낸 구사일생의 매몰자의 눈에 다시 안대를 두른다. 안대로 폐쇄된
회로, 개방되지 않은 눈으로 꿈을 꾼다. 꿈 속 꿈에서 비를 본다. 봄비의 기척 없음을 확인한다. 누군가의 견갑골에 자국 남기던 손톱으로
허우적거린다. 우연히 거머쥔 지름을 알 수 없는 크기의 봄 할퀸다. 손톱으로는 파이지 않는 방벽에 가까스로 적는다. 봄이 이미 와 있나?
류경무 / 양이나 말처럼 / 문학동네 / 139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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