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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기』에스파냐 내전 속, 그럼에도 가장 찬란했던 그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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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는 것은 오래전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에서였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는 지금까지도 영원히 기억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속 내용은 파시스트와 공화당 정부와의 내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다리를 폭파해야하는 임무가 주어졌었던 내용이었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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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는 것은 오래전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에서였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는 지금까지도 영원히 기억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속 내용은 파시스트와 공화당 정부와의 내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다리를 폭파해야하는 임무가 주어졌었던 내용이었다. 오래전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목숨이 오고가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상대방을 사랑하겠구나, 라는 것들이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건 소설에서건 전쟁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어쩌면 불안하지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과거 우리의 역사를 보아도 전쟁 속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전쟁을 겪어왔고 오늘의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던가. 이처럼 내가 에스파냐 내전의 배경과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해도 리디 살베르의 소설 『울지 않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며, 지나고 보면 그때가 가장 따뜻한 여름날의 인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열다섯 살의 소녀 몬세는 하마터면 어느 집의 하녀가 될 뻔했다. 하지만 파시스트와 공화정 정부와의 내전으로 인해 하녀가 되지 않아도 되어 기뻤다. 몬세의 오빠 호세는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마을의 대지주인 돈 하이메의 아들인 디에고는 공산당의 편에 서서 서로의 적이 되어 싸웠다. 호세에게 다가가려 했던 디에고는 호세의 거부로 다가가지 못했고, 서로의 이념이 다른 그들은 이제 다른 이념을 향해 나아갔다. 몬세는 오빠 호세와 함께 도시로 떠났고 호세는 아나키스트 군대에 합류하고자 했다. 도시로 간 몬세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에 순수한 기쁨을 느꼈고 일흔의 나이가 지나서도 그 시절만 기억할 정도로 삶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몬세는 도시에서 잘생긴 한 남자를 알았고 그와 하룻밤을 보낸뒤 아이를 가지게 되어 다시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공산당원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지도자가 된 디에고를 남편감으로 마음에 두었고 아이의 아버지를 비밀에 부치고 결혼하게 된다.

 

  작가는 몬세의 딸을 내세워 칠십이 넘은 몬세의 이야기를 회고하며 에스파냐 내전과 그토록 삶의 희열에 휩싸였던 열다섯 살 시절의 몬세의 육성을 듣는다. 3년간의 내전을 몬세의 입으로 들려주고 한편으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 속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있었다. 『울지 않기』는 한편으로는 소설이었고, 한편으로는 에스파냐 내전의 아픈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 1936년의 여름만이 남아 있다. 삶과 사랑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던 여름, 자신이 온전히 존재한다고 느꼈던,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된것 같았던 그 여름, 파졸리니라며 온전한 젊음의 여름이라고 말했을 그 여름만이. 어쩌면 그녀는 그 여름의 그늘 아래에서 나머지 생을 살았는지 모른다. 짐작컨데 아마도 그녀의 회상으로 미화되었을 그 여름, 추정컨데 회한과 잘 싸우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내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그녀가 전설로 재창조한 그 여름. 눈부신 그 여름을 나는 이 글 속에 안전하게 담아두었다. 책이란 그러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285페이지)

  

  3년 간의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은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베르나노스의 인용 글에서처럼 전쟁의 참담함이 커진 상태였지만, 몬세는 모든 기억을 잃어도 열다섯 살의 그 여름을 평생 잊지 못한 것이다. 그 여름이 몬세에게는 가장 찬란한 여름이었음을. 아팠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을 다 지워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그 여름을 몬세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이념과 생각이 달라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비록 전쟁속에서라도. 그때의 기억들을 영원히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의 아름다웠다고 느껴졌던 기억때문에 삶을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6.01.14. 신고 공감 1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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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다른 기억의 삶과 투쟁. 『울지 않기』
"같은 시간 다른 기억의 삶과 투쟁. 『울지 않기』" 내용보기
내 어머니의 눈부신 여름,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두 눈을 후벼 파는 칼처럼 박힌 베르나노스의 참담한 해(年). 하나의 역사에 대한 두 개의 장면, 두 개의 경험, 두 개의 비전이 몇 달 전 나의 밤과 낮들에 들어왔고, 서서히 우러나고 있다. (285페이지)   하나의 시간이나 역사를 두고 저마다 다른 기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 '같은 시간 다른 기억'을 더 많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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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눈부신 여름,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두 눈을 후벼 파는 칼처럼 박힌 베르나노스의 참담한 해(年). 하나의 역사에 대한 두 개의 장면, 두 개의 경험, 두 개의 비전이 몇 달 전 나의 밤과 낮들에 들어왔고, 서서히 우러나고 있다. (285페이지)

 

하나의 시간이나 역사를 두고 저마다 다른 기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 '같은 시간 다른 기억'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읽는 동안 그 간극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 어느 순간에는 그 틈이 보이지 않게 겹쳐지기도 하는 감정이었지만, 역시 달랐다. 동시에 어떤 시선으로든 기억해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 어떤 사람에게 다르게 보였던 순간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찬란했던 생의 한순간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의 시간으로 남아있던 그 시간을 이렇게 만난다.

 

한 여자의 뜨거웠던 여름이자 한 작가의 고통스러운 시선이 같은 시간의 기억이라는 게 놀랍다. 리디 살베르의 소설 『울지 않기』는 그런 간극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면서 에스파냐의 한 시대를 채운 열기와 내전의 기록이다.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투쟁이며, 한 소녀가 성장해가는 시간이 담겼다. 작가는 그 시간을 자신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증언과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기록을 교차하면서 소설을 이끈다. 열다섯 살의 에스파냐 소녀 몬세와 그녀의 오빠 호세, 곧 그녀의 남편이 되는 디에고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무엇을,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하는 문제와 점점 같은 선상에서 흐르면서 다른 시간을 그린다.

 

1936년 에스파냐의 내전. 많은 상처와 혼란, 죽음을 남겼음에도, 그 시간을 직접 겪은 두 사람의 시선이 사뭇 대조적이기에 어느 부분을 읽느냐에 따라 다른 마음으로 흐름을 좇아간다. 1936년 여름의 기억만이 남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는 찬란한 태양을 보는 듯했고,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기록이 잠깐씩 언급될 때마다 암흑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적으로 혼란의 시기였지만 특히 이 시각의 에스파냐는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서 내전을 겪고 있었다. 그때 한 시골 소녀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삶의 빛나는 시간으로 기억하게 했는지 보여준다. 어느 가문의 하녀로 가야만 했던 그때, 때마침 일어난 에스파냐 내전으로 몬세는 하녀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전쟁은 3년이나 계속된다. 암흑의 시기였지만 한 여자의 삶으로 보면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던가 보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그때만 기억하는 여자의 시선이 아련하다. 망각이란 것은 그런 재주를 가졌다. 아픈 시간을 뒤로하고 기억하고 싶은 시간만 남겨놓을 수도 있는 행복을 부른다. 아무것도 몰랐던 한 소녀의 성장과 변화는 여성으로 자유로운 삶을 향해 간다. 모든 생을 통틀어 그녀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소중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면서 읽게 된다. 비극의 삶이 계속되고 있을지 몰라도, 그 비극을 뛰어넘는 삶으로 만들고자 했던 방식이 그녀의 기억을 주관했는지도... 잔혹했던 시간으로 기록된 역사 안에서 그녀에게는 아름다운 이야기만 남은 걸 보면 말이다.

 

내전의 일곱 달을 겪고 나서 베르나노스는 마요르카 섬에서 죽은 사망자 수를 헤아렸다. 이백십 일인 일곱 달 동안 삼천 명이 말살당했으니 하루에 열다섯 명이 처형된 셈이었다.

절망적인 냉소를 실어 계산을 해보니,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두 시간이면 가로지를 수 있는 섬에서 호기심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면 하루에 불온한 머리 열다섯 개가 터지는 걸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엄청난 수치였다. (239페이지)

 

그때마다 또 다른 시선의 베르나노스는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언급한다. 몬세의 오빠 호세와 몬세의 남편 디에고의 대립은 시대의 갈등이다. 투쟁의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상처 입었고 죽었다. 잔혹했던 장면들이 누군가의 시선에 포착된 그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목소리를 낸다. 양심의 목소리가 번지는 순간이다. 그 진심이 뛰쳐나오는 걸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피를 부르고 죽음을 만드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에게 그 고통마저 감수하게 하면서 나아가게 하는 이유는 인간으로의 삶을 바라서다. 공화정에 반대하는 군부가 가톨릭과 공모해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본 베르나노스가 겪은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는 글로써 그 충격적인 일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그의 저서를 통해 들려온다.

 

과거의 사건을 두 사람의 시선으로 대조적이게 그리면서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한 작가는 계속된 질문을 이어간다.

혁명은 죽어서 태어난 사산아였을까? 호세는 양수기 주변을 뱅뱅 돌고 있는 자신의 검은 노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레리다에서 그토록 꿈꿨던 삶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성숙해진다는 게 이런 걸까? 이런 실패가? (255페이지)

작은 시골 마을을 흔들어버린 내전과 무고한 사람들의 무너짐, 자유롭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세상을 꿈꾸던 이들의 도전과 성장은 예상하지 못했던 삶과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인지, 이게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혼란스러움이 계속되지만, 언젠가 그 끝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비록 패배라 할지라도, 그들이 비록 패배자로 남아있을지 몰라도, 이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소설에서 또 한 번 살아나 그들의 목소리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시간을 소환함으로써 뜨거웠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까지 다시 불러온다. 아직 패배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하면서.

 

내가 읽기에 그리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세계사의 한 부분을 따라가려다 보니 한 여자의 삶이 보였고, 동시에 언급되는 같은 시간의 다른 기억이 처음부터 공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공감이란 멀리 있지 않다. 그 커다란 역사 속에 개인의 역사가 공존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나 역시 이 나라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 개인의 삶으로 반추하다 보면 전혀 다른 기억의 시간을 소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던 이 소설의 큰 그림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음으로 다가온다. 그 세밀한 묘사를 따라가면서, 좀 더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듯한데, 그게 좀 아쉽다. 배경이 되는 시간이나 인물들의 삶으로 보면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아닐까 싶은데, 의외로 담백하고 고요하게 흘렀던, 쉽지 않았지만 읽는 중간에 놓고 싶지 않은 소설이기도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봤던, 자신의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다시 살게 하고 그게 무엇보다 행복했다는 작가의 말에 애틋함이 묻어나기에 말이다. 멀지 않은 시간에 재독하고 싶은 소설이다.

 

 

n******i 2016.01.10.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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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기》 하나의 역사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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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언제나 개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역사는 그저 승자의 기록, 혹은 개인이 통과 해야 했던 그 어떤 흐름일 뿐이었지만, 개인의 삶이 모여 이루는 것이 바로 역사 아닌가. 그러니 역사의 순간을 말할 때, 개인의 삶을 통과한다면 그것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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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언제나 개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역사는 그저 승자의 기록, 혹은 개인이 통과 해야 했던 그 어떤 흐름일 뿐이었지만, 개인의 삶이 모여 이루는 것이 바로 역사 아닌가. 그러니 역사의 순간을 말할 때, 개인의 삶을 통과한다면 그것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 역시 역사의 연속이니 말이다.

내 어머니의 눈부신 여름,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두 눈을 후벼 파는 칼처럼 박힌 베르나노스의 참담한 해. 하나의 역사에 대한 두 개의 장면, 두 개의 경험, 두 개의 비전이 몇 달 전 나의 밤과 낮들에 들어왔고, 서서히 우러나고 있다.

이 작품은 저자 리디 살베르의 자전적인 소설이자, 에스파냐 내전 한복판을 그린 역사 소설이기도 하다. 1936년의 여름의 기억만을 남긴 채 나머지 생을 모두 잊어버린 어머니의 실제 삶 위에 구축한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진짜처럼 들린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15살 소녀와 프랑스의 대 작가 베르나노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지는 에스파냐 내전은 2015년의 우리에게도 매우 실감나게 다가온다.

리디 살베르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를 읽고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1936년의 에스파냐 내전 때의 무자비한 학살과 잔혹 행위들을 직접 목도하고 격분해서 책을 통해 고발한 목소리는 이 소설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와 만나 그 효과가 배가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스러웠던 1936년의 같은 시간을 살았던 리디 살베르의 어머니, 당시 15살이었던 소녀 몬세에게는 그것이 에스파냐를 전복시킨 절대자유주의의 봉기가 아니라 만나자마자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상대를 만나게 된 마법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그렇게 1936년 여름, 그 치열했던 역사의 한 복판을 통과한 바르셀로나의 열다섯 소녀와 마요르카의 프랑스 작가의 목소리를 교차 진행시켜가면서 전 세계 양심의 투쟁으로 기록된 에스파냐 내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하나의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진실은 그것이 모두 사실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그 모든 기억에서 어머니는 앞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기억만, 상처처럼 생생한 기억만 간직할 것이다. 다른 모든 기억들은(나의 탄생을 비롯해 몇 가지만 제외하고) 지워졌다. 무거운 기억의 짐은 모두 지워졌다. 랑그도크의 어느 마을에서 끝없는 겨울을 살았던 일흔 해는 지워져 영원히 말이 없다. 내가 알아내기 어려운 어떤 이유들, 어쩌면 의학적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세월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이 가설이 나로선 가장 당혹스럽지만) 모른다.

어쩌면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개인이란 너무도 하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그들 모두의 삶이 역사를 같은 모습으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상황을 떠올려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지 않나.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기억을 취할 수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니 풍비박산 난 도시와 산산 조각난 황량한 거리들과 나라를 가득 메운 나쁜 소식들과 절망들을 다 잊어 버리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아름다운 기억 하나만 가지고 있게 된 몬세의 삶이 억지스럽다거나,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원래 기억이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 버리고, 좋은 기억은 오래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나쁜 기억이 나에게 실재했던 경험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까맣게 잊어 버리게 되는 순간도 올테고 말이다. 무려 일곱 달의 내전 동안 삼천 명이 말살을 당했던 그 끔찍한 기억들을, 그 시간을 통과했던 모두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개인은 항상 현재 역사의 흐름에 속해있지만, 결국에는 그것과 별개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리디 살베르가 주목한 완전히 다른 두 삶은, 에스파냐 내전을 현재의 우리에게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한 시절을 제외하고 칠십 년 세월을 모두 잊은 아흔의 노모를 죽음에서 얼마간 유예시켜 그 시절의 그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들어 준다. 망각 없이는 기억도 없으니, 망각을 찬양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바램 대로 이 작품은 우리가 잊어 버린 역사의 한 순간으로 데려가는 더 없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r*******n 2016.05.2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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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제각기 존엄한 자신으로 살아남은 작고 여린 존재들의 초상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제각기 존엄한 자신으로 살아남은 작고 여린 존재들의 초상" 내용보기
2014년 공쿠르 상 수상작 『울지 않기』. 에스파냐 내전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파 부모를 둔 에스파냐계 프랑스 작가인 리디 살베르의 이 소설은 열다섯 살 에스파냐 소녀 몬세와 프랑스의 대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목소리를 교차시켜 에스파냐 내전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소설의 주 화자이자 저자의 어머니이기도 한 몬세는 전위적인 만큼이나 짧게 타오르다 사그라진 혁명의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제각기 존엄한 자신으로 살아남은 작고 여린 존재들의 초상" 내용보기

2014년 공쿠르 상 수상작 『울지 않기』. 에스파냐 내전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파 부모를 둔 에스파냐계 프랑스 작가인 리디 살베르의 이 소설은 열다섯 살 에스파냐 소녀 몬세와 프랑스의 대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목소리를 교차시켜 에스파냐 내전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의 주 화자이자 저자의 어머니이기도 한 몬세는 전위적인 만큼이나 짧게 타오르다 사그라진 혁명의 시간 속에서 삶의 환희와 영원한 사랑을 발견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인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목격한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비극이다. 저자는 이 둘의 목소리를 하나로 엮어 에스파냐 내전이라는 사건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1936년 여름의 기억을 버팀목 삼아 한 생을 건너온 어머니를 위해, 우파는 물론 에스파냐 공산당과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은폐되어 잊힌 절대자유주의를 위해 투쟁한 호세를 위해, 그리고 안전한 진영을 결연히 떠나 고독한 자유인으로 살기를 택한 맑은 눈을 한 사자, 베르나노스를 위해 망각의 세월을 건너 이들을 호명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과거의 사건을 두 사람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그려내며 에스파냐 내전이 거의 백년 후인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는다.

 

1936년 여름 바르셀로나. 열다섯 소녀 몬세, 삶의 환희를 발견하다
1936년 여름 마요르카. 작가 베르나노스, 광신에 사로잡힌 학살을 210일간 목격하다
에스파냐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 열다섯 소녀 몬세는 마을의 세도가 부르고스 집안의 하녀 면접을 본다. 부르고스 집안의 하녀가 되면 숙식이 해결되고 혼인 지참금도 마련할 수 있다. 조상 대대로 대지주의 억압 아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락한 삶이다. 그러나 몬세에게 그것은 굴욕이다. 그리고 때마침 전쟁이 일어나 소녀는 어느 집의 하녀로도 가지 않게 된다. 그 전쟁이란, 1936년부터 장장 3년 동안이나 계속될, 2차 대전의 전초전이자 에스파냐를 초토화시킨 에스파냐 내전이다.


같은 시기, 반공화정 우익 단체 ‘악시옹 프랑세즈’에서 활동하고 왕정주의자를 자처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작가인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에스파냐에서 공화정에 반대하는 군부가 가톨릭교회와 공모해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고뇌에 빠져든다. 그것은 에스파냐 극우정당인 팔랑헤당의 푸른 제복을 입고 전쟁에 뛰어든 아들을 지지했던 그로서는 세계관이 뒤흔들릴 만한 충격이다. 범죄를 묵인하다 못해 숙청 군인들의 죄를 사해주는 가톨릭교회라니! 그는 빠르게 자신이 속했던 진영과 결별하고 용기를 낸다. 프랑스의 도미니크회 수사들이 발행하는 가톨릭 잡지에 사태를 고발하는 글을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열다섯 나이로 에스파냐 내전을 겪은 소녀 몬세의 이야기와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풀어놓는 것은 몬세의 딸이자 소설의 저자인 리디 살베르이다. 살베르는 이 소설을 통해 1936년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이후 칠십 년 세월은 모두 잊은 아흔의 노모를 약속된 죽음에서 얼마간이라도 떼어놓고 싶다. 그리고 소녀 몬세를 1936년 여름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게 하고 싶다. 작가는 베르나노스의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를 틈틈이 읽으며 에스파냐 내전을 통해 삶의 환희를 발견한 몬세의 이야기와 베르나노스의 경악에 찬 증언을 오간다. 그리고 베르나노스가 기록한 과거의 사건들이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던지는지 곱씹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8 2016.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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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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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세상이 변할 것만 같던 시기를 지녔다. 새로운 질서에 강렬히 반응하는 사람들로 인해 희망의 역사를 새로이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기 말이다. 스페인에 있어선 1936년이 그런 시기였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이 시기는 희망보단 암울에 가까워 보인다. 유럽 대륙은 두 번째 세계 대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해가 쉽지 않으나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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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세상이 변할 것만 같던 시기를 지녔다. 새로운 질서에 강렬히 반응하는 사람들로 인해 희망의 역사를 새로이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기 말이다. 스페인에 있어선 1936년이 그런 시기였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이 시기는 희망보단 암울에 가까워 보인다. 유럽 대륙은 두 번째 세계 대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해가 쉽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히틀러를 위시한 나시즘에 지지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6년의 스페인을 희망에 보다 가까운 시기로 칭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가능성이 이 시기에 태동했기 때문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봉건국가의 청산이 늦은 편이었다. 후발주자의 특성이라고 하면 앞선 국가들을 무조건 추종하는 성향이 짙다는 점일 텐데 스페인은 달랐다.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특성이 잔존하는 가운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이 서서히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와 함께 신생 정당의 등장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아수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 시기에 긴밀하게 얽힌 경험을 했고, 작품을 통해 이를 쏟아냈다. 대표적인 작가를 꼽자면 조지 오웰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다. 그들에 비한다면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의 저자 리디 살베르는 상당히 낯선 인물이다.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이야기 <달빛 알의 대 공동묘지>를 썼다는 조르주 베르나노스도 마찬가지다. 드물게도 이번 독서를 통해 난 한 권의 책으로부터 두 명의 작가가 쓴 두 개의 이야기를 만났다. 리디 살베르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글을 통해 스페인 내전의 끔찍함을 접한 셈이다. 여러 인물의 혼재된 시선 속에서 나는 나름의 시선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처음엔 모든 게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건 명확해졌다. 등장인물들이 기만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인간성’임이 말이다.

한 집안의 하녀가 될 운명이었더 몬세는 ‘때마침 일어난 전쟁’ 덕분에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생에 있어 가장 화려하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시기를 보내기까지 한다.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프랑스 인과의 만남에 대해 그녀는 ‘영원한 사랑’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감돌고 있던 전운은 실재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질서에 기꺼이 순응했는데 모두가 같은 노선을 택한 게 아니었다. 자원입대를 결심할 정도로 두둑한 신념으로 무장했던 호세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인생 전부를 바치려 들었던 것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리라는 판단을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한 채 그는 갈등했다. 비슷한 시기에 디에고는 다른 길을 걷는다. 어찌 보면 약삭빠른 행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덕분에 디에고는 마을에서 중대한 인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두 인물은 당연히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품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두 인물 사이의 감정을 이후 닥칠 끔찍한 역사에 비한다면 미약한 것일 수 있음을 암시하려는 듯 행동한다. 이념에 충실한 나머지 인간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살육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묘사에 비한다면 호세와 디에고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둘은 갈등을 겪는 가운데서도 미세한 부분의 조율을 거쳐 하나의 신질서를 나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편과 네 편, 아군과 적군의 구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확고하지 않은 법이니까.

격정적인 한 때를 보낸 인물은 이제 죽음을 바라보는 연령대에 이르렀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으며 내전에 관련된 대다수의 인물이 세상을 떠난 후여서 그런지 문체는 그다지 격정적이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오빠의 상실이라는 경험조차도 저자가 내세운 목소리 속에서는 은은하게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 같이 타올랐던 사랑만큼은 여전히 격정적인 듯했다. 이는 마치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미 끝난 사랑을 끝내지 아니 한 그 마음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미 불꽃은 꺼졌을지 몰라도 불꽃이 내뿜었던 뜨거움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에.

제목이 ‘울지 않기’인데, 격동의 시간을 제 인생의 배경으로 끌어안아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과연 울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더구나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주 작은 차이에도 배타성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한 번 즈음 울고플 것 같다. 유행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70년대 유행했던 나팔바지가 2000년대에 다시 한 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과 내면이 폭력성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필히 울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q*****2 2016.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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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스페인, 박제화될 수도 있는 역사의 한 토막에 생명력이라는 옷을 덧입히는...
"1936년 스페인, 박제화될 수도 있는 역사의 한 토막에 생명력이라는 옷을 덧입히는..." 내용보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인자들에게 매수된 에스파냐 주교단은 살인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펼치는 공포 정치를 축성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온 카톨릭 유럽이 입을 닫았다. 이 파렴치한 위선 앞에서 베르나노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도 똑같은 혐오감을 느낀다.” (p.75)   소설 《울지 않기》의 저자인 리
"1936년 스페인, 박제화될 수도 있는 역사의 한 토막에 생명력이라는 옷을 덧입히는..." 내용보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인자들에게 매수된 에스파냐 주교단은 살인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펼치는 공포 정치를 축성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온 카톨릭 유럽이 입을 닫았다. 이 파렴치한 위선 앞에서 베르나노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도 똑같은 혐오감을 느낀다.” (p.75)


  소설 《울지 않기》의 저자인 리디 살베르는 책 앞부분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이 소설이 1938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책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카톨릭 신자이면서 왕정주의자였던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목격한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파의 만행 그리고 이러한 만행에 대한 카톨릭 사제들의 방관을 고발한 책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를 2012년 읽었던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있잖니, 날더러 1936년 여름과 네 언니의 출생부터 오늘까지 살아온 칠십 년 중에 고르라고 하면 후자를 고를 것 같지가 않구나... 그녀들은 사랑을 꿈꾸었다. 사랑을 갈구하고, 가슴 떨리는 희망을 품고 탄성을 지르며 사랑이 오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이 안착할 상대만 없었을 뿐.” (p.128~129)


  그래서 소설에서는 베르나노스의 책 속의 내용, 그러니까 프랑코 파의 만행과 사제들의 방관을 향한 베르나노스의 팔마에서의 목격담이 직접적으로 거론되고는 한다. 동시에 소설은 1936년 스페인에서 내전의 상황을 몸소 겪은 몬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설에서는 소설의 화자이며 1936년 스페인에서 머물고 있었던 몬세, 그리고 같은 시기 같은 땅에 머물고 있었던 베르나노스가 동시에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소설과 실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인다.


  “...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이건 사는 게 아니야... 팔마에 있는 베르나노스에게도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상상하고 짐작한다.” (p.215)


  소설 속 몬세는 대도시에서 아나키즘의 세례를 받고 온 오빠 호세에게 영향을 받은 열다섯 살의 젊은 처녀이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근대와 현대가 뒤섞여 있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무정부주가 뒤섞여 있는 1936년의 스페인은 이제 막 피어나는 꽃 다운 나이라고 할 수 있는 몬세를 고스란히 닮아 있기도 하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젊음이 곧바로 세계사의 한 단락 안에서 키워드가 되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 호세는 볼셰비키들이 수립하고 디에고가 혐오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인 괴물 같은 질서보다 태동 중인 것의 혼돈과 취약함이 더 좋다고 수없이 주장했다. 그는 공유 농지에 대한 생각을 여전히 옹호했고, 여전히 두루티 민병대를 향한 신뢰를 부르짖었고, 스탈린에 격렬히 반대했다... 다른 한편 디에고는 질서를, 제도를, 정규군의 지원을, 유보 없는 소련의 가담을 몸소 구현했다...” (pp.179~180)


  그 와중에 몬세는 호세를 따라갔던 대도시에서 공화파에 참전하였던 프랑스 젊은이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렇게 임신을 한 상태에서 디에고와 결혼을 하게 된다. 프랑코 파에 반대하는 것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호세는 절대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디에고는 공산주의자이니 이 두 사람은 하나의 울타리에 들어서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러니까 오빠와 남편 사이에서 몬세는 정신적으로는 오빠를 따르면서도 디에고의 집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식탁엔 당시 에스파냐의 거의 모든 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국민군과 친분을 맺고 있다고 의심받는 그 집 주인 돈 하이메,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프랑코와 팔랑헤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그의 누이 도냐 푸라, 소지주들의 사회주의 조합에 소속된 신부의 아버지, 얼마 전에 공산주의 사상으로 전향한 신랑, 그리고 끝없는 시적 욕망 때문에 어떤 노래나 어떤 얼굴에 반하듯 오빠의 절대자유주의 사상에 반한 몬세.” (pp.196~197)


  스페인 내전의 복잡한 상황은 그렇게 몬세를 중심으로 한 가족 내부의 식탁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모와 반목하는 양자인 디에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모와 반목하는 몬세와 호세, 이와 함께 자신들끼리도 공유하지 못하는 디에고와 몬세와 호세는 당시의 복잡한 스페인 상황, 그러니까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아나르코생디칼리즘, 파시즘과 같은 사상 그리고 팔랑헤당, 급진공화당, 자유공화우파, 카탈루냐 연맹, 공화좌파, 카탈루냐 공화좌파, 에스파냐 사회주의노동자당, 에스파냐 공산당, 카탈루냐 통합사회당,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 절대자유주의 운동,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합,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등으로 나뉜 사회 세력들을 넌지시 은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내 어머니는 학교 운동장으로 난 창가에 놓인 커다란 초록색 안락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찬란했던 그녀의 여름을 이야기하느라 지쳤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기쁨에 그녀는 지쳤다... 그 모든 기억에서 어머니는 앞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기억만, 상처처럼 생생한 기억만 간직할 것이다. 다른 모든 기억들은(나의 탄생을 비롯해 몇 가지만 제외하고) 지워졌다. 무거운 기억의 짐은 모두 지워졌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 1936년의 여름만이 남아 있다. 삶과 사랑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던 여름, 자신이 온전히 존재한다고 느꼈던,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된 것 같았던 그 여름... 눈부신 그 여름을 나는 이 글 속에 안전하게 담아두었다. 책이란 그러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내 어머니의 눈부신 여름,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두 눈을 후벼파는 칼처럼 박힌 베르나노스의 참담한 해年. 하나의 역사에 대한 두 개의 장면, 두 개의 경험, 두 개의 비전이 몇 달 전 나의 밤과 낮들에 들어왔고, 서서히 우러나고 있다.” (pp.284~285)


  소설은 역사 속의 개인이었던 베르나노스, 개인들의 집합으로서의 역사인 스페인 내전을, 몬세라는 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해내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소설은, 실제하는 책의 저자와 소설 속의 인물을 병치시키고, 후일담의 대상이 되는 과거와 그 후일담을 기록하는 현재를 중첩시킴으로써 그 현장성을 극대화시킨다.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1936년의 스페인, 그곳에서의 시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몬세를 통하여 박제화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역사의 한 순간에 생명력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리디 살베르 Lydie Salvayre / 백선희 역 / 울지 않기 (Pas Pleurer) / 293쪽 / 뮤진트리 / 2015 (2014)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1.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