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는 히스클리프란 사내에 대해 굉장히 열중해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단 한명의 소녀, 그 단 하나의 존재에 대한 무서운 집착과 광기가 이 소설의 곳곳에 퍼져있다. 도대체 그가 자신의 일생을 두고 모든것을 파멸시켜가면서도 못 잊어하는 캐서린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인지...그녀의 무엇때문에 히스클리프는 그렇게도 절망과 고독속에 몸부림치는 것인지...그 때는 그것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0년이 지나고 다시 펼쳐든 폭풍의 언덕속에서 나는...말로 설명할 수 조차 없는, 그들이 서로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들임을 느낀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똑같아."
"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서, 눈에 보이는 기쁨의 원천은 아니지만 꼭 있어야 하는 거야.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ㅡ 내가 내 자신에게 반드시 기쁨이 아닌 것처럼 ㅡ 내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
이 소설속의 화자는 워더링 하이츠의 가정부로, 그녀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른 순간까지를 모두 지켜보게 되는 사람이다. 가정부인 넬리가 새로 세들어온 집주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펼쳐놓음으로써 이 소설은 진행된다. 이 소설속의 인물들의 내면이나 주변 상황들에 대한 표현은 정말 생생하고 자세하며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마치 내가 워더링 하이츠 주변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폭풍의 언덕을 완성한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보고 싶지만, 에밀리 브론테가 우리에게 남긴것은 폭풍의 언덕 단 한권이다.
" 에드거를 잃을 경우 캐서린이 크게 상심할지 아닐지를 정직하게 말해줘. 나는 캐서린이 크게 상심할까봐 두려워서 일을 못 벌이는 것뿐이야. 바로 여기에 우리 두 사람의 차이가 있는 거지. ...... 그러나 캐서린의 관심이 끝나는 순간, 난 그의 심장을 찢어발겨서 그 피를 들이마시고 말겠지. 하지만 그 때까지는 그의 머리칼 한 오라기도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조금씩 말라죽는 편이 낫겠지! 이런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넬리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거야. "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보는내내 눈을 뗄수가 없게 만드는 힘을 이 소설은 가지고 있다. 주변인들을 무참히 파멸시키는 히스클리프는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악인이겠지만,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가여운 사람이기도 하다. 야수같은 한 인간의 일생을 지배해버린 사랑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을 폭풍의 언덕 안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불행이 뒤덮고 있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 그래도 그 마지막의 이야기는 나름 보는이의 마음을 놓이게 한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히스클리프의 인생에서 오직 캐서린만이 구원이 될 수 있었는데...그 소중한 빛을 잃고 끝없이 냉혹해지고 잔인해지고 그리고 완전한 고독속에서 살아간 그의 모습을 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중학교 시절 명작을 독파해 본다고 여러 책을 읽어내려가던 시절 접해 보았던 책이었다 그 시절 방대한 양에 기가 눌려 도중에 읽다만 기억만이 어렴풋이 났다 고급스럽고 예쁜 양장본에 반했지만 엄청난 양의 두께에 그 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의 숨막힐듯한 전개로 흥미 100배 만발하여 줄줄줄 읽어 내려갔다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뒷 내용이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장작 네 시간이나 들여서 끝장을 넘기고야 말았다
전체적으로 록우드가 넬리라는 하녀를 통해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듣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사이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애증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스토커적인 지독한 사랑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정말 가엽다 하지만 이러한 일그러진 사랑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다 결국 엄청난 자기 파멸만을 초래할 뿐.
대부분의 고전들은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폭풍의 언덕만큼은, 고전이면서도 스토리나 문체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
![]() 한때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에게 매료되어 그녀의 출연작들을 섭렵하던 시절, 단지 그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봤던 영화가 바로 '폭풍의 언덕(1992)'이었다. 제대로 된 원작은 고사하고 전체 줄거리까지 완전히 묻어둔 채로 영화감상을 시작했는데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 안에 줄여놓다보니 생략과 상징이 난무하여 전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아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 외엔 영화 속 장면 하나 떠오르지 않지만, 너무나 음울한 느낌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내게 그 영화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물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그때의 음울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테스', '제인 에어' 등의 고전을 섭렵하는 와중에도 '폭풍의 언덕'에는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읽혀왔고 추천하는 고전이 아닌가. 고전도 즐기고 그때 영화로 인해 만들어진 편견도 없앨 겸 언제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완역판이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그래서 기회는 바로 지금이닷!했는데 책을 처음 받았들었을 땐 550 페이지의 압박에 순간 헉;했다. 그러나 이야기에 탄력이 붙자 그 두께도 이겨낼 수 있었다. ㅎㅎ (워낙 유명한 책이라 줄거리는 생략; ^ ^;)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의 등장으로 시작해 그의 퇴장으로 끝이 난다. 어느날 예고없이 나타난 히스클리프로 인해 두 집안을 휩쓰는 거대한 폭풍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그가 사라짐으로 인해 사나웠던 폭풍은 잠잠해지고 예전의 평화로움이 되살아난다. 그는 그렇게 왔다가 사라졌다.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갔는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은 채. 소설 속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과연 악마였을까. 아니면 단지 격정적인 열정이 복수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이어져버린 그저 불쌍한 한 인간이었을까. 과연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를 떠올리면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성격이 결코 맘에 들진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흐릿한 예전 기억만으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거의 대등한 비중의 주인공인줄 알고 있었는데 책의 중반 쯤 캐서린 언쇼가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직 절반이나 남았는데 벌써 죽으면 어쩌라고! -0- 그러나 곧 그녀의 분신 캐서린 린튼이 어머니의 바톤을 이어받아 히스클리프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솔직히 제멋대로 히스테리를 부리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죽음까지 이른 엄마 캐서린 언쇼보단 다소 거만하고 가끔 짜증날 정도로 인정이 넘치지만 명랑하고 눈 앞에 닥친 현실을 현명하게 이겨나갈 줄 아는 딸 캐서린 린튼이 훨씬 맘에 들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았는지? ^^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지독히 비정상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 폭군 술주정뱅이 힌들러, 정신착란증을 보이는 캐서린, 사랑과 복수에 집착하는 히스클리프, 이기적이고 비겁한 어린 린튼, 그런 짜증나는 린튼을 늘상 이해하는 어린 캐서린, 주위사람들에게 잠시도 저주를 멈추지 않는 하인 조셉 등 어찌 저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놨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도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이후 삶을 포기해버린 힌들러, 조건 때문에 린튼과 결혼하고 그런 그녀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치 못하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때론 오만하지만 사려깊은 어린 캐서린 등을 통해 에밀리 브론테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과 따뜻한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다가도 어느새 동정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동정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으니.. 비겁쟁이 어린 린튼과 저주쟁이 하인 조셉이었다.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0-)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어긋난 사랑으로 린튼 남매-애드거와 이사벨라는 물론 그들의 자식인 캐시와 린튼까지 불행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만약 그들이 사랑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행복여부는 둘째치고 최소한 린튼 남매와 그들의 부모님의 삶이 그토록 슬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린튼의 부모님은 캐서린의 열병에 옮아 죽는다). 그러나 삶이란 언제나 그런 최선의 방식으로만 이어지지 않는 법. 그래서 이렇게 슬프고 지독하며 광적인 사랑이 생기고 그것이 또다른 불행의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이리라. -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히스클리프에게 알릴 수가 없어.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잘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뜬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똑같아. (131쪽, 캐서린의 말 中) 서른의 나이로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폭풍의 언덕>은 고전의 감투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다중적인 인간의 내면과 삶과 사랑의 여러 모습을 담아내고 있어 책을 덮고 난 후에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고전은 여러번 읽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히스클리프다. 그를 생각하면 사랑인지 집착인지 구별조차 힘든 광기어린 그의 삶의 목표가 더욱 슬퍼진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살아 숨쉬는 내내 이런 욕구불만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히스클리프. 그는 과연 저쪽 세상에서는 그가 원하던 캐서린과의 사랑을 이루었을까.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놓고 그녀와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길! 그래서 사랑으로 상처받은 그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길!! + 혼잣말 +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원래 그 시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그렇게도 많이들 죽었을까? 왜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은 그리도 잘 죽는지.. 원래 모두 약골인 건지.. 캐서린의 열병이 옮아 죽고(애드거 린튼의 부모님), 심하게 성질 부리더니 얼마후 바로 병 걸려 죽고(캐서린 언쇼), 타지까지 가서도 젊은 나이에 죽고(이사벨라 린튼), 폐병으로 죽고(힌들리의 아내), 찬 날씨에 밖에 좀 있었다고 독감 걸려 죽고(애드거 린튼), 원래 약해빠져서 콜록거리다 죽고(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 혼자 알 수 없는 환희에 들떠서 갑자기 죽고(히스클리프).. 죽고 죽고 죽고... 이렇게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죽어버린다. 아무리 200년 전이라고 해도 두 집안의 사람들이 이렇게 줄줄이~ 줄초상 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 ^;; |
|
이 소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덮고 난 후 한동안 그냥 멍하니 있었다. 이제 차츰 고전문학의 매력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강렬한 작품을 읽고 나니 고전문학에 더 빠져든 것 같다. 책을 처음 보고 ‘고전이라서 조금 두껍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결코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용이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풍의 언덕>은 록우드가 영국 요크셔 지방에 있는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새로 세를 들면서 시작한다. 록우드는 스러시크로스 저택의 주인 히스클리프가 살고 있는 워더링 하이츠 저택을 방문한다. 히스클리프와 그의 며느리, 그리고 헤어튼 언쇼, 조셉, 가정부 질라가 살고 있는 그곳에 방문한 그는 조금은 이상한 그 가족에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스러시크로스 저택의 가정부가 그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을 알고 그들에 대해 물어본다. 가정부 넬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주인인 언쇼씨는 어느 날 리버풀에 갔다가 길 거리에 버려진 소년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이름을 히스클리프로 지어주고 자신의 자식들인 힌들리, 캐서린과 함께 지내게 한다. 하지만 언쇼씨가 죽고 나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친구가 되어준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삶이 쉽지 않듯 캐서린은 에드거 린튼과 결혼하고, 집을 떠나서 3년 만에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의 동생과 결혼한다. 캐서린을 철저히 사랑한 그는 광기 어린 집착으로 복수를 한다. 그리고 그는 힌들리의 집과 에드거의 가정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정신분열증과 출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캐서린, 그리고 알콜 중독으로 죽은 힌들러. 사랑하는 캐서린을 잊지 못하는 그는 그들의 후대에까지 비극을 뿌린다. 하지만 비극이 영원하지 않듯 히스클리프는 풀리지 않은 의문이 가득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마지막에 보았던 그 환영은 캐서린이었을까? 평생 그녀를 사랑하고 괴로워하며 보냈던 그를 보면서 이렇게 집착에 가까운 광기 어린 사랑과 복수가 사실 그를 더욱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게 아닌가 싶다. 비극적이고 섬뜩하지만 잔혹한 히스클리프에게 연민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폭풍처럼 위험하고 상처뿐인 사랑이었지만 아마 그는 그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문학 속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내게 준 히스클리프를 잊지 못 할 것 같다. |
|
고전을 잘 읽지 않는 추세의 독서 경향이지만, 그래도 고전을 찾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고전 작품 속에서 삶의 진리와 어쩌다 부딪힌 삶의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해결의 열쇠고리를, 이런 삶의 원시적 본능의 세계를 상징하는 < 폭풍의 언덕 > 같이 잘 알려진 고전을 읽음으로써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고아 태생의 히스클리프가 언쇼씨 가문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캐서린과의 운명적 사랑은 오빠 힌들리의 방해로 갈등으로 치닫고, 부모가 돌아간 후의 몰락한 집안에서 캐서린과의 사랑에 희망을 갖고 갖은 구박을 견디던 중에, 캐서린이 지주아들과 정략결혼을 하게 되자 떠났던 히스클리프가 성공을 하여 돌아와서 워더링 하이츠의 땅을 사들이고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캐서린의 죽음으로 무의미한 복수에 대한 허탈감과 캐서린에 대한 옛 사랑의 회한으로 방황의 기로에서 헤매게 되는 초라한 종말을 맞게 된다.
혼자 있다 보니,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단지 2미터 밖에 안 되는 포슬포슬한 흙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이렇게 혼잣말을 했지.
히스클리프라는 악마적인 정열의 화신을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열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 결국은, 집착적인 사랑은 복수를 낳고 복수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자연계와 초 자연계가 융합하는 영혼의 세계와 인간의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드는 강렬한 이야기를 액자식 이야기 구성으로 전개하여 수많은 명장면을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다.
시골 태생의 위대한 천재 여성 작가의 일생을 건 감명 깊은 작품이며, 독특한 내용으로 인간의 고뇌와 심리 갈등을 애증으로 그려내고, 규범과 관습에 맞선 숙명적인 사랑의 이야기에서 많은 감동을 얻게 되는 고전 명작 중의 하나로 추천되는 작품이다. |
|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그 작품이 시공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문제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먹고 싸고 늙고 죽는 이런 일련의 동물적인 본성을 제외하고 인간에게 있어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의 문제란 무엇일까요.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그건 '사랑'이겠지요.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변주되어 온 주제입니다. 지고지순한 사랑, 좌절된 사랑, 금기의 사랑, 짝사랑, 육욕으로써의 사랑... 에밀리 브론테도 여기에 한 가지 유형을 더했는데, 이름하여 '광기 어린 사랑'이 그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랑을 종종 보게 됩니다. 히스클리프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아마도 그는 사람들로부터 '스토커'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요. 그 자신으로도 어쩔 수 없는 집착, 운명의 노예가 되어 그(또는 그녀)를 향한 해바라기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삶.
이 책 표지에는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광기 어린 사랑'이라고 표현했군요. 글쎄요,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광기 어린'것이라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왠지 백 퍼센트까지는 인정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고전은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작품입니다. 평론가들의 평론 또한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는 자칫 이미 고정된 이미지(그러니까 남들의 평가)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광기 어린 사랑'에 이 작품을 끼워맞추게 될 우려가 있는 거죠. 문학작품은 독자마다 받아들이는 폭과 넓이가 다르고 그 호오도 다릅니다.
이런 차원에서 광기 어린 사랑 운운하는 건 적어도 저의 감상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놀란 건 '광기 어린 사랑'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건 예의 따위는 뒷전인 인물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제인에어> <프랑스중위의 여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이런 작품들이 <폭풍의 언덕>과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국작품입니다. 전자의 작품속 인물들은 완벽한 세계 안에서 온갖 예의범절과 세상 풍속에 자신의 삶을 맞춰가려 갖은 애를 씁니다. 설령 일탈을 겪게 되더라도 이 인물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당시의 답답한 의상만큼이나 그들의 삶은 무언가에 꽉 죄어있습니다.
그런데 '워더링 하이츠'의 사람들은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히스클리프는 말할 것도 없고 캐서린과 그녀의 오빠 힌들리, 조셉을 위시한 그 집안의 하인들, 언쇼가의 차세대 인물인 헤어튼과 린튼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음울하고 폭력적이고 자못 야생적이기까지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무질서하고 지저분하고 상스런 분위기가 이 집안의 지배적인 풍경입니다.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하는 깨우침을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밀리 브론테에게 감사드립니다. 소설은 한 시대의 자화상인데, 지금까지 나는 1800년을 배경으로하는 영국의 이미지를 귀족적이고 예의범절이 확고한 단단한 세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 한편엔 언쇼가의 사람들처럼 무질서하고 야성적인 인물들이 자신들의 열정과 운명에 휘둘리면서 또다른 드라마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통찰입니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삶이 있으니까요. 언쇼가의 사람들이 보여준 욕지꺼리와 폭력과 증오심에 한동안 골치가 지끈거렸지만, 어쨌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들의 얽키고설킨 사랑은 이들의 타고난 성품에 기인하는 것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었습니다. '광기 어린 사랑'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광기 어린 집착'이 이들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요... |
|
영국 요크셔 지방의 저택 주인 언쇼가 고아인 히스클리프를 데리고 온다. 그리고 그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사랑으로 히스클리프를 대했고 .. 그의 딸이었던 캐서린또한 히스클리프를 가엾게 여기고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고 ..... 하지만 어느날 캐서린은 다른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는다. 집의 몰락으로 캐서린은 어쩔수 없이그 청혼을 받아들여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히스클리프는 어느날 사라진다. 3년만에 성공해서 돌아온 그는 광기어린 복수를 하게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 .. 나 같아도 아니 어느 누구였더라도 그런 상황에 닥치면 화나고 행복하지 못하게 빌고 또 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또 어떻게 그런 복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마나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행복하기는 못 빌어줄망정 .. 행복을 해치지는 말았어야하는거 아닌가 .. 잊을만도했던 3년이 지난후에 찾아와서 복수를 한다는거 ..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캐서린은 배신을 한게 아니고 .. 집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에게 간게 아닌가 ? 마지막까지도 이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안타까웠고 매일 시험칠때마다 고전문학이라면 치를 떨었던나에게 이 책은 고전문학에 대해 조금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좋은기회가 되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 명작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쉽게 읽으려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고전 문학 작품이 어렵고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으며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험을 위해 출제되던 고전의 모습은 틀에 박힌, 딱딱한, 시험 문제로만 기억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현대에도 많은 이들이 고전 작품들을 칭송하며 또 길이길이 아름답게 기억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읽기에 들어가면 그 매력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에밀리 브론테의 걸작 <폭풍의 언덕>. 이 작품을 읽은 건 10여 년의 시간도 더 지난 일로, 지금은 대략적 줄거리와 히스클리프라는 주인공의 이름만 떠오를 뿐, 거의 잊혀진 작품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탄탄한 줄거리와 매력적인 인물들에게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소설 속의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공감했다거나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내 나이가 어렸기도 했고, 그들이(소설 속 인물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섰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읽은 <폭풍의 언덕>은 새로운 느낌을 안겨주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심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관찰, 깊은 통찰력으로 각 인물들의 성격을 만들어내고 묘사하고 있다. 그 인물들 간의 갈등은 나로 하여금(혹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함께 스토리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문체는 소설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발단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나 자매도 아닌 아이가 자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면, 아직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그것에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훼방을 놓으려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학대나 멸시를 당한 기억은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수 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던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이 바로 그 피해자다. 히스클리프의 인격은 사랑과 관심에 대한 감사보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학대의 기억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으로 형성된다.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은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는 한, 옆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 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소설 전반에서 불행의 씨앗을 뿌리는 히스클리프. 그에게 악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언쇼 집안의 힌들리였다. 힌들리의 여동생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결국 히스클리프와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린턴 집안의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캐서린이 또 한 번 히스클리프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가 종적을 감추고 모든 것이 종료되는 것 같았지만, 몇년 뒤 그가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서서히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긴 장편소설을 이루는 개개의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 그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연결은 결국 완전한 하나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만들어내고, 그들 스스로가 불행의 늪에 빠지도록 철저히 계산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들의 삶은 물론이고, 피폐해진 정신으로 인해 영혼마저 슬픔으로 점철되어버린다. 모두를 슬픔으로 몰고가는 폭풍은 히스클리프 자신으로, 복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복수를 감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최후의 순간에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놓아주고 포기할 수 있는 배려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히스클리프는 깨달았을까? 맹목적 집착은 결코 사랑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많은 나날들을 고통 속에 보내고 악착 같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상대는 물론 자신의 인생까지 자포자기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악마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며 이 소설 최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행동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소년, 그 소년에게 가해진 학대와 멸시.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의 결핍은 사람을 나쁜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어린 아이의 단순한 질투심에서 시작된 행동은 수많은 사람에 걸친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폭풍의 언덕>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충분히 현실에서도 가능할 만한 상황이다. 탄탄한 스토리, 인물의 섬세한 묘사, 긴밀한 상황 설정과 더불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현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잊혀져가던 아름다운 걸작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
|
사랑은 현실을 초월해 영원에 이르고.. 느껴졌다. |
|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광기 어린 사랑, 그리고 더 아픈 사랑이여!! 너무도 유명한 ,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고전!!
순수>사랑>그리움>파멸>분노>복수> 그 다음은....다시 사랑....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지고지순한 사랑... 널 진정 사랑하기에 널 보내 준다는 아름다운 영화 속의 대사는 히스클리프에겐 그야 말로 사치이고 거짓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히스클리프의 사랑. 그의 광기어린 분노와 복수심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욕심의 노예일 뿐이라고 말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에 눈을 부라리고 섬뜩한 분노로 욕설을 퍼부을 것만 같은 히스클리프 앞에서 목 안으로 삼키고 만다. 캐서린..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사랑 한 것일까.. 가지자니 초라하고, 놓아주자니 어느새 내 맘 속에 들어 와 있던 히스클리프를 배신한 죄로 고통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인... 바보 같은 사랑.. 비겁한 사랑이라고 또 다시 그들을 비난 하고 싶어진다.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 받을 길 없었던 두 사람은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들의 진정한 사랑은 이 담 생에 더욱 화려하게 빛이 나리란걸.. 한 남자의 무서운 분노와 복수심 앞에 비극은 시작 되고, 그 누구도 책임 질 수 없는 복수는 후대에까지 이어지지만 미움을 감싸는건 언제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불같은 사랑, 가을 밤에 휘몰아 치는 무서운 폭풍같은 사랑.. 모든것을 다 잃어도 내 사랑 만은 지키고 싶었던 사람.. 오늘밤 히스클리프와 캐스린의 영혼은 어느 차가운 골짜기에서 폭풍이 되어 다시 만난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