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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민음사)』는 모래 벽 속에 갇힌 남자 이야기다. 남자는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p.15)’하기 위해 모래 사구로 휴가를 떠났다. 새로운 종을 발견해서 자기 이름이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길이길이 전해지는 게 소원이다. 그는 목적지인 바다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걸었다.
위험을 예감하게 하는 것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p.14)
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조그만 부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곤충채집에 열중하던 중 마주친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 갈만한 데가 있냐고 물었다. ‘노인이 그를 안내한 곳은, 부락 가장 바깥쪽 사구의 능선에 접해 있는 구멍 가운데 하나였다.(p.27)’ 남자는 자발적으로 모래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등잔불을 들고 마중 나온 여자의 몸에서 ‘미처 감추지 못한 기쁨(p.28)’이 느껴졌다. 남자가 들어간 구멍에는 여자 혼자 살고 있었다.
사방이 모래벽으로 둘러싸인 판잣집에서 여자와 단둘이 있게 된 남자는 여자가 매일 밤 날이 샐 때까지 모래를 퍼낸다는 얘길 듣고선 ‘어디 이래서야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잖소!(p.43)’라며 못마땅해 한다. 남자는 여자 곁에 가서 모래 치우는 일을 잠시 돕다가 부삽을 내던져버린다. 여자의 어리석음으로 지게 된 책임을 자신이 나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모래와 곤충에 이끌려 이런 곳을 찾아 온 것도, 결국은 그런 책임의 성가심과 무의미함으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기 위함(p.44-45)’이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 술책에 걸려든 것이다. 함정에 갇히고 만 것이다.(p.53) 한 사람의 인간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배짱이 마음에 안 들어. (…)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없으니까 말이야.(p.68)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래 벽 안에서 사는 여자와 모래 벽 속에 갇힌 남자, 두 사람이 전부다. 처음에는 모래 벽 속에 갇힌 남자 입장에 감정이입 되었다. 모래구덩이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몰랐으니 납치와 다를 게 없다. 황당하다가도 억울하고, 무섭다가도 애가 탄다. 모래구덩이 밖에 두고 온 일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상상하면 두려워서 미칠 지경에 이를 게 뻔하다. 그래서 남자의 탈출 시도는 당연하게 보였다.
모래의 여자는 남자와 상반되는 인물이다. 여자는 사방이 모래벽으로 둘러싸인 구덩이 속에서의 삶에 만족한다. 그녀는 모래 퍼내는 일을 하면서 마을로부터 대가를 받는데 라디오를 장만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모래의 여자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채 시스템에 적응한 인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삶을 대하는 두 사람의 자세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래구덩이 밖에 두고 온 남자의 삶이 여자의 삶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래 치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데 이는 남자가 책임과 의무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 했던 삶과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삶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벽’ 때문에 갑갑해 보이지만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모래구덩이 안과 밖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남자는 모래구덩이 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 맞닥뜨린다. 그가 모래구덩이에서 빠져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행동을 짐작할 뿐이다.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p.9)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p.11)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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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책을 멀리하다가, 작정하고 돈을 주고 구입해서 읽은 책인데 마음에 든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탈출한 일상이 감금으로 이어지고 약간의 저항을 하다가 다시 그 일상에 젖어들 수 밖에없는 패턴이 안타깝기도 하고 살짝 섬뜩하기도 하다. 결이 약간 다르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미셀 윌리암스가 나왔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도 잠깐 떠올랐다.그러지 않길 바라지만...어렵게 탈출한 일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겹치는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사실, 책을 다 읽은지는 며칠이 지났고, 리뷰를 한 번 썼었는데... 그 다음날 읽어보고 다시 지웠다. 나는 요즘 뭔가 주절 주절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것이 싫다. 사람이 기어나오지 못할 정도의 ‘사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보았는데...그건 세트였는지, 정확히 파악이 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구’의 이미지가 중요하지 물리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명확히 알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준페이가 실종처리 되면서 소설은 끝나는데... 사실, 여기서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물론 감금이 부러운 것은 아니였고) 신경숙의 허접한 소설 ‘바이올렛’은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의 광화문 사거리 묘사도 인상적이였으나, 주인공이 강간(?)을 당한 후 사라져 버리는 자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준페이의 실종 처리와 바이올렌 주인공의 사라지기는...뭐 해석이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신문 공고만 나지 않았을뿐이지, 우리 인생에서 조용히 있다가 사라진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사라진 인간일테고. 얇은 책인데, 생각할 여지도 많고...한없이 진절머리 나는 모래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였으며, 마지막 주인공의 선택 역시 화끈(?)하였다. 간만에 읽은 마음에 드는 글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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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어느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학교 교사인 ‘니키 준페이’
암시 또한,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모래의 이동과 반대되는 ‘정착’이 생존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남기며, 결말에 ‘공백의 왕복표’를 손에 쥐고 모래구멍에서의 도주를 유예하는 이유를 암시하고 있다.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P.20)
남자, 덫에 걸리다 모래구멍에서 나가고자 회유와 타협안을 제시해보기도 하고, 모래를 파내어 탈출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모래에 맞서면 맞설수록 모래는 더욱더 자신을 가두고 숨을 조여 올 뿐이다.
48일만의 탈출과 실패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하여 <희망>을 놓다.
드디어 손에 쥔 왕복표.
모래 이 모래구멍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의 욕망일 것이다. 모래구멍 속에 있는 우리는 오늘도 집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모래를 파헤치고, 라디오라도 구입하기라도 하면 행복해 한다.
새끼줄 사다리
희망
물 공백인 왕복표
희망을 놓치 않기 위해 <희망>을 놓은 남자는, 모래구멍 속에서 상처투성이 뿐인 편도표를 손에 쥐고도 <희망>안에 생명인 물을 담고, 유동적인 모래 속 생활에서 세상과의 또하나 소통 통로인 라디오를 사고,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한다.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자신이 정하면 되는, 공백으로 되어 있는 ticket. 이야기 첫 부분에서 7년이 흘러 사망판정을 받았다고 서술한 것으로, 남자는 결국 자신이 염원하여 손에 쥔 왕복표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의 의미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유수장치에 제일 부러움을 보낼 부락민들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만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언젠가 우리의 두손에도 삶의 편도가 아닌 왕복표가 쥐어 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염원해 본다.
책 내용과 별개로, 가끔씩 1979년 ‘one way ticket’을 부른 Eruption의 프리셔스 윌슨의 예전의 날씬하고 발랄한 모습과, 유럽의 디스코파티 행사에 초대되어 나오는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된 윌슨의 모습을 보며 세월의 허망함에 씁쓸하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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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한 남자가 있다. 취미 생활은 곤충채집이 유일한 재미없는 남자다. 그가 휴가계획이랍시고 야심차게 세운 계획은 모래로 가득한 환경에 적응해 변모한 종의 곤충을 잡는 것이다. 그러다 한 모래 구덩이에 빠지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모래 절벽이 무너져 집이 파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 삽질을 하게 된다. 탈출하고 싶지만 마을 사람들의 감시와 통제에 의해 벗어 날 수 없다.
작가의 훌륭한 묘사로 인해 텁텁한 모래가 계속 느껴지는 듯 했다. 유동적인 모래 속에 갇힌 남자의 변화 하는 심리단계의 뛰어난 서술은 비현실적 설정임에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해 준다.
모래는 유동적인 존재로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 갇혀버린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래와의 사투, 자신의 탈출을 막기 위한 외부인의 간섭등으로 인한 주인공의 부서질 듯한 실존의 위태로움은 현대인의 초상화와 같다. 숨막히게 반복되는 외부적 억압에 의해 자아가 붕괴되어 가는 현대인. 허나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 모래와의 끊임없는 사투와 순응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주인공처럼..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작가의 뛰어난 역량으로 발휘되는 묘사와 완성도 높은 구성은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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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모래 구덩이 안에서의 삶과 도시에서의 삶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서 곤충 채집을 하던 주인공은 휴가를 내어 사구 지역에 도착한다. 생물의 존속을 불허하는 불모성을 지녔으면서도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모래의 절대적인 성질은 그에게 일종의 선망의 대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구 마을에 갇혀 모래 구덩이 속에서 지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그는 육신을 무자비하게 덮쳐 오는 모래알 하나하나에 불편함을 넘어선 좌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잿빛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도착한 모래사막이 세상에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 낙원일 것이라 믿었지만, 그곳은 또 다른 원초적 노동력의 우리에 불과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절망과 자조, 그리고 모래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작품 속에서 시간이 더 흐른 뒤, 몇 번의 탈출 시도가 실패한 끝에 그가 처한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며 겪게 되는 또 한 번의 심경의 변화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는데, 바로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끝내 사구를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모래의 여자’의 존재가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영원히 낫지 않을 서로의 상처를 혀가 마모되도록 핥아주는 일을 반복하더라도, 그는 마침내 모래 구덩이 안에서 또 한 명의 처절한 동반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점차 모래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며 이전과는 다른 모양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는 매일 강제되는 노동도, 낙후된 환경과 마을 사람들의 저속한 놀림도 모두 도시에서의 삶과 같이 잿빛의 무색무취한 배경이 되고, 자신과 함께 모래알을 삼켜내는 ‘모래의 여자’와 함께 결국 도시에서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뒤 내 머릿속에는 나 또한 사막이나 다름없는 회색 도시에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같은 곳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모래 구덩이에 깊이 빠져버리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내 일상을 소중히 여기려면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열심히 날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유리창에 콧잔등을 비비고 있을 뿐이었던 왕큰집파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문득 혀끝에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듯한 까끌한 촉감이 오래도록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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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모래땅으로 곤충 채집을 하러 갔다가 해안가 모래 언덕의 기이한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갇히게 되고, 집이 모래에 파묻히지 않도록 매일 삽질을 한다는 <모래의 여자>는 그 스토리가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롭죠. 이같은 설정은 아베 코보가 사막과 비슷한 만주에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소설의 앞부분 내용이고, 뒷부분으로 가면 남자는 수차례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결국 구멍에서 빠져나오는데까지는 성공하지만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남자를 마을 사람들이 구해주면서 그는 다시 구멍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말에 이르러서 남자는 우연히 모래 속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유수 장치를 발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급하게 병원에 가면서 남긴 사다리를 통해 도망칠 기회도 얻게되죠. 하지만 그는 결국 도망치지 않았고, 소설 맨 처음에서 언급한대로 실종처리가 되고맙니다. 모래 구덩이 속에서 매일 밤 모래를 퍼날라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당연하듯 받아들이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 '시시포스의 형벌' 신화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매일 직장에 출근해 같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의 삶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200페이지 정도 분량의 소설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리뷰였습니다 :) |
| 아베 코보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고전에 속하는 책인데 간만에 몰입되어 읽은 거 같다. 사람들은 반복된 일상을 살면서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외부 세상을 동경하는데 그래서 대부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주인공 남자의 동료의 별명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그대로 우리는 결국 바깥세상을 동경하지만 바깥으로 나왔을 땐 결국 그곳이 다시 안쪽의 세상이다. 매일매일 모래에 파묻히는 집에서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삶..우리 현대인의 다람쥐 쳇바퀴같은 삶을 말하는 건가? 척박한 환경에서 묵묵히 살아내며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거울을 가지기를 희망하는 순종적인(?)여자, 아무튼 읽고나서는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베 코보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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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6일 새벽에 끝마쳤던 책. 사막의 불모성은 건조함이 아니라 유동성에서 기인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래에서 수소의 냄새가 난다눈 그런 막연한 표현도 좋았고. 드러난 서사만을 쫓아가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나에겐 일종의 인생 거점같은 책이다. 150자를 강요하는게 참 불편하다 아직도 안 끝났나? 번역도 충분히 잘 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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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는 몇년전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가 최근에 다시 생각이나 결국 구매까지 하게 된 책이다. 사실 난 영화까지 찾아봤다. 내용은 곤충채집을 하러간 남자가 모래사막에 갇히게 되는 내용이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의외로 이 책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남자가 모래 사막에 갇힌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납치이기 때문이다. 그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위한 남자의 눈물겨운 사투가 황량한 모래와 함께 내용을 이룬다. 그리고 결국에는 희망이라는 덫을 만들어 물이라는 진짜 희망을 만난다.
그럼에도 남자는 끝까지 모래사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암시는 맨 뒷장에 남자한테 실종선고를 내리는 짤막한 문구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자가 모래사막을 떠나지 못한건 사막의 삶에 안주한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안에서 또다른 희망을 발견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책이 더 실감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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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이 무형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모래쪽에서 생각하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확실한 것은 오로지 모든 형태를 부정하는 모래의 유동뿐이다.' '이곳은 이미 모래에 침식되어 일상적인 약속 따위는 전혀 통용되지않는 특별한 세계인지도 모른다.' '모래는 인간을 가두고 압살한다' '결핍에 대한 불안, 갈증에 대한 공포' '1/8mm의 유동.....상태가 그대로 존재인 세계....이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죽음의 영토에 속하는 것이다.' '불현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읽는 내내 모래 속에 있는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희귀한 곤충을 채집하러간 니키 준페이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고만다. 끊임없는 탈출 시도에도 쉽게 탈출하지 못한다. 그렇게 7년 여가 지나고 실종상태의 니키 준페이는 결국 생사불명의 상태로 남는다. 하지만 그는 모래구덩이 안에서 끈질기게 살아있다. 곤충들이 모래사막속에서도 살아가기위해 끊임없이 보호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그도 그렇다. 자신 스스로가 희귀한 곤충이 되어 스스로를 채집하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잃는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모래구덩이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태도차이도 주제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작용한다. 기이한 플롯이다. 모래 구덩이에 갇힌 현재에 틈틈히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 일화가 삽입되며, 끊임없는 의식의 흐름으로 서술된다. 후반부 탈출 장면에서는 문장길이가 짧아지면서 호흡이 빨라진다. 덩달아 긴박한 분위기 조성되는 절정의 순간이다. 묘사가 정말 실감난다. 미지의 존재,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은 실로 크다. 그 미지의 존재의 횡포 앞에서 겪는 인간의 곤경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 '다른 세계를 꿈꾸느라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절대적 모순을 사는 존재'에 관한 작품. 와어려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