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 책이 주까지 합쳐서 690쪽. 거의 700쪽에
육박하는 박력을 지닌 책이다. 그렇게까지 다음 쪽이 기다려지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갖고있는 책은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고싶다. 거기에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내 사전적인 지식의 부족 탓도 있고, 서술 자체도 약간 나열식으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까지, 내가 이 책을 '재미있지는 않게' 읽어야 할 이유는 제법 다분하였다. 거기다가 저 두께를 보라지. 하지만 책이란 모름지기 끝까지 읽은 후에 판단해야 하는 법일 것이었다.
20세기는 이 책의 원제대로 '흥미로운 시대'였다. 어찌나 흥미로운 시대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20세기는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하기에는 1세기라는 시간의 길이는 제법 가혹한 편이다. 그런 시대 속에서 살아갔던 역사가의 자서전이다. 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에서 내가 느꼈던 희열이라면 '지금은 당연하다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것을 '실제 삶'으로 느꼈던 인물의 회상을 듣는다는 점이 상당히 주효하였다. 혹은 지금의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이 한때는 세계의 존폐를 둘러싼 대사건이었던 때에 대한 회상인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그리하여 23번째 장이자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 이르르자 이 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금은 명확해졌다. 역시 하나의 작품이란 '하나'의 작품이다. 하나의 유기적이고 통합된 개체로서의 작품. 에필로그에서 에릭 홉스봄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20세기를 9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
그렇다. 그가 이 책에서 서술한 개인적 미시사에서 역사서에 실릴 거시사까지 모두가 20세기라는 100년 안팎의 세월동안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그렇게 지루하게도 읽어냈던 내용들은 얼마나 '가변적'이었던가 말이다. 역사는 변한다. 작금의 절망이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얼마나 '소설속에서나 나오는 수사' 로 인식되는가?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는 시대가 아니겠는가. 2008년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은.
이 가변성이 '자신의 삶'이었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래서 조금 희망을 준다. '내 삶' 또한 가변성으로 가득찬 '역사'의 한 장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그 가변성 속에서 희망을 읽을 것인지 절망을 읽을 것인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이런 것이라면 얼마나 공평한가, 역사라는 것은?
꽤 괜찮은 책이었다.
그런데 불만이 몇 있다. 아무리 외국어 문장 작법 문화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번역의 '원본의 맛'을 살린 번역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호흡이 긴 문장'을 직역해버린 문장들이 '너무너무' 많다. 진짜 읽다보면 열이 다 받을 정도로 많다. 거기다가, 이 책이 전문 역자의 번역 솜씨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증거를 몇 찾아냈다. 본서에서는 '정치 관람자'라고 되어있던 장이 주에서는 '정치 관전자'라고 번역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법 결정적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인명의 표기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모리스 돕'과 '모리스 도브'같은 경우. 아마 몇 더 있었을거다. 기억이 지금은 나지 않지만. 또 오자가 간간히 발견되는데 으이구. 민음사가 좋은 책을 많이 낸다고 생각했던건 내 착각인가? 책 상태가 이모양 이꼴이면 조금 불쾌해진다.
거기에 덧붙여서. 단점은 아닌데 국내 출시본 커버의 에릭 홉스봄의 그윽한 눈길은 묘하게 무서운 데가 있는것같다. |
|
2012년에 타계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 이 책을 그냥 이렇게 말하면 뭔가 허전하다. 단순히 간략히 말한 것에 대한 허전함이 아니라 에릭 홉스봄이라는
역사가를 그냥 ‘역사가’라 부르면 안될 것 같아서다. 그렇다. 그는
평생 공산주의자로 살았다. 대학에 입학하고서 입당한 후(물론
그 전부터 그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여겼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공산당을 탈당하지도 않았다. 소련의 헝가리, 체코
침공 때도(이 때는 그는 분노했고), 소련을 위시한 현실
공산국가의 붕괴(이전부터 그는 소련을 믿지 않았다. 물론
소련의 존재가 공산주의 운동에서 지니는 가치는 인정했지만) 속에서도 그는 공산주의의 신념을 그대로 지녔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처럼 공산당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 역사가라는 타이틀로서 그의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을까? 그 신념에 따른 역사 해석만으로 그의 삶과 그의 저서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그렇지 않다. 그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대해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교조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비판해야만
하는 것을 비판했고, 현실 공산주의의 패배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쓴 책이 바로 이 『미완의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봄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공산주의 이념 내지는 활동을 전혀
부담없이 쓰고 있다. 이것은 우리와는 다른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홉스봄이
이념을 죽을 때까지 지켰다는 데 대한 자부심은 그 자신에 대한 평가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을지언정 커다란 위협이나 곤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그가 활동한 무대가 서방 세계라는 점에서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상황이다. 그런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사회에서 살아갔다는 것이 부러울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그건 그의 이념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결코 행복했다거나 평탄했다고 할 수 없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을 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어 이러저런 활동을 하고, 역사가가 되어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여행을 한 얘기, 그리고 역사가로서 활동가로서 역사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온 바를 적은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홉스봄도 몇 번 얘기하지만, 정치가도
아니며, 모험가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학자가 쓰는 자서전은
특별한 얘기가 들어갈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홉스봄이 살았던 세기가 그러한 세기가 아니며, 그 한 가운데서 공산주의자로서, 저명한 역사가로서, 또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을 학자로서 그의 얘기는 적어도 내게는 무척 흥미롭다.
그의 삶 자체도 흥미롭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번쩍번쩍 눈이 뜨이게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역사는 우리 식의 종교 전쟁에서 비롯되는 격정, 감정, 이념, 공포에서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태어난 흙과 서식지를 떠나지 못하는 식물이 아니다. 하나의 서식지나 환경은 아무리 고유하더라도 우리의 주제를 남김 없이 규명하지 못한다. (중략) 시대착오나 지방색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667쪽)
보편주의에 발을 두고 세계인으로 살아간, 아니 그럴 수 있었던, 혹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에릭 홉스봄이기에
할 수 있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옮긴이가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의 상황을 애써 변호하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이 어떤 오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을 걱정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은 우리에게도 적절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극우주의에 분개하고,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 흥분하지만 그게 그것을 넘어서 우리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휘말려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참고로 최근 한국사가 수능 필수로 지정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그 방침에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한국사만 필수이고, 세계사는 필수가 되어서는 안되는지고민해 봤는지 궁금하다. 또는 수능
필수가 되면 역사 의식이 투철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처음엔 “미완의
시대”란 책 제목을 보면서 에릭 홉스봄이라는 역사가가 자신이 살아간 세기, 20세기를 어찌 보았는지에 대한 상상을 했다. 두 번에 걸친 가공할 공포의 세계대전을 겪은 세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첨예한 대립을 겪은 세기, 물질적 부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을 처절하게 겪은
세기, 에릭 홉스봄이라는 역사가가 이 20세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세기를 ‘미완의 세기’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으면서는
갸우뚱거려졌다. 원제가 『Interesting Times』라는 걸 알아서일까? 에릭 홉스봄이 자신이 겪은 세기에 그다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즐겁고 편안하게 살았다. (중략) 정말로 나는 재미있게 살았다. 영웅적인 행동이나 시련은 없었고 (마음으로는 느꼈을지 모르지만) 위험도 공포도 없는 전문직 종사자의 삶이었다. (중략)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개인적 행복을 내게 안겨준 삶이었다.”
(507쪽) 이런 대목을 읽고서는 더더욱 이 책 제목이 왜 『미완의 시대』여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나는 이 책의 우리말 제목 『미완의 시대』가
이해가 됐다.
“세계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는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671쪽)
바로 미완의 시대. 시대를 채우는 것은 그 시대에 살아가면서 싸워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2014. 9) |
|
이 책은 1917년에 태어나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람의 자서전이다. 저자가 책의 어느 곳에서 술회하고 있듯이 한국사회에서도 저자의 의지에는 상관없이 한동안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 책을 읽는 독자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라도 있다. 나는 1987년 한국에 가서야 비로서 내 책 다섯 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p. 501) 책을 읽었던 그렇지 않든 저자의 저서인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는 나에게도 읽어야 할 꽤나 귀중한 독서리스트였다. 이 책을 사게 되면서 책꽂이를 꼼꼼하게 훑어보니 그의 책은 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무게감이 덜하지는 않지만...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이 책은 저자의 삶을 변명하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니다. 20세기를 이해할 마음이 없거들랑 스스로를 변호하는 자기변호론자의 자서전을 읽든가 아니면 정반대로 잘못은 뉘우치는 죄인의 자서전을 읽”으면 된다 나같은 경우는 저자가 직시하는 시각, “지식인의 자서전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행동에 대한 기록도 담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한낱 변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에 동의한다. 한 사람을 이해할려고 하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 또한 저자가 부탁했듯이 저자의 삶이라기 보다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역사적 이해이지 동의나 승인, 연민이 아니”었다. 책의 부피에 중압감은 느껴, 그리고 읽는 과정에서는 모르는 현대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조금은 피로한 독서였지만, 정말 멋진 소설 한편보다도 더 멋진 독서였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접은 부분이 가장 많은 책이었다. 언제고 잘 정리해서 두고 두고 읽어볼 구절들이 너무나 많다. |
|
에릭 홉스봄의 저서는 (이젠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혁명-자본-제국-극단의 시대 시리즈부터 주저로 분류되지 않는 다양한 책들도 번역되었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전부는 아닐지라도 꽤 많이 구해왔고 읽어왔다. 물론, 읽었다고 전부 다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만큼 저자는 맑스-마르크스주의자 역사가로서만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지나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이 있는) 학자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본인도 인정했지만 역사학자가 다루는 분야보다 학자 자신의 삶이 흥미로운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고(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마르크 블로크 정도만 가능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정리한 이 책 또한 그렇게까지 흥미롭진 않았다. 적어도 그가 다뤘던 여러 시대-사건들에 비해서는 관심이 덜 간다.
그래도 아주 읽기가 힘들 정도는 아니다. 전체 내용의 중반까지는 격변의 시대에 온갖 부침과 유랑의 삶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고, 후반부에는 역사학자로서 겪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있던 부분들을 다루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앞선 내용보다 뒤쪽에 몰려진 내용들에 더 관심이 가게 되고 흥미롭게 읽혀진다.
탁월한 역사학자답게 자신의 삶도 1-2차 대전과 그리고 그 이후의 냉전과 지금 현재와 관련지어 다루면서 그가 자신의 삶을 살펴보듯 내 자신의 삶도 잠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재주를 보이고 있다. 노년의 역사가지만 여전히 빼어난 시선과 안목 그리고 전망을 내놓는 경우도 있어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 부족하다고만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이 세상을 지켜보질 못하게 된 홉스봄이지만 그가 바라본 방식과 관심들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못 읽은, 혹은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 그의 저서들을 다시금 찾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를 알 수 있어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어 그의 관심을 시선을 알게 되어 고마웠고,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