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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오래 전 구매한 책. 구간은 값이 쌌던 시절로 기억한다. <저자는>
<책 읽고 느낀 바> 일본소설은 건조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일본스럽다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느낌도 있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이 책은 빼어난 수작이다 싶게 서정적이며 유려한 문체가 압권이다. 아울러 얇은 부피임에도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어선지 무게감이 상당하다. 딱 떨어지는 결말도 아니라 이건 뭐지 싶은 찝찝함도 남는다.
<돌의 내력> 마나세 쓰요시는 2차 대전 참전 당시 필리핀의 레이테 동굴에 있었다. 패잔병으로 혼자 있다가 나머지 잔당들의 합류로 함께 지냈다. 대위는 잘 벼려진 칼로 부상 입은 병사의 안락사를 가차없이 도왔다. 암흑 속에서 어떤 상병이 들려 준 돌의 내력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선 지껄이니 들렸을 뿐인데 처자식을 거느리고 살면서 또렷히 기억난다.
자네는 암석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고 있나? 암석은 마그마에서 생겨. 벌겋게 달아오른 마그마가 식어서 굳으면 바위가 되는 거야. 바위는 또 지표의 풍화작용에 의해 작게 부서지는데, 그것이 돌이야. 돌은 다시 모래가 되고, 모래는 또 흙이 되지. 돌과 모래와 흙은 다시 물에 쓸려내려가 호수나 바다에 퇴적하고, 그것이 굳어서 다시 바위가 되는 거야. 그리고 바위는 다시 부서져 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땅 속 깊은 곳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여러 가지 암석으로 다시 태어나서는 마그마에 녹아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광물의 모양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해. 소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대륙조차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다시 말해, 자네가 산책길에 무심코 주워든 돌멩이 하나는 대략 오십억 년 전, 훗날 태양계라고 불리게 된 곳에서 허공에 떠 있던 가스가 응고해 이 혹성이 생겨난 때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한 단면이자, 물질의 운동이 찰나의 형태로 담긴, 이른바 우주 역사의 응축물이라 할 수 있는 거야. p12~13
고서점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발빠른 대처로 많은 책을 가지고 이사를 했기에 전쟁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 마나세. 온순하고 조용한 타입인 그는 중매로 결혼을 하는데 냇물에 반짝이는 돌을 우연히 발견한 순간부터 돌에게 매료되기 시작한다. 동굴 안 상병의 말이 늘 떠오르면서 돌에 관하여 책을 보게 되고, 돌을 모으고, 찾으러 다니고, 나중에는 표본도 만든다. 서점 고객인 지리 선생을 알게 되면서 도움을 받고...몰두할 일이 그것뿐이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보니 이름까지 나지만 마나세는 묵묵할 뿐이다. 돌을 알아가는 시간은 온전한 몰입이 되지만 가끔씩 꾸는 악몽은 늘 그 동굴 속. 그 동굴 속의 대위는 칼을 벼리고 있고 상병이 나즈막히 말하는 돌의 내력...어떤 땐 더 상세하게 기억나는 그 동굴 안. 캄캄한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게 있어서 쳐다보니 구더기의 움직임이었다. 기아로 죽어가는 병사의 얼굴은 앙상한데 유난히 돌출된 안구에서 구더기의 움직임이 반짝임으로 보인다. 배고픔에 정신이 돌지 않으려 애써도 죽은 병사의 허벅지에 시선이 갔다는 사실에 진저리친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시간을 이용해 돌에 미친(?) 마나세. 아들 둘이 태어나고 큰 아들은 아버지의 돌 탐구와 돌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는 듯 빠져든다. 그런 아들이 표본을 만든다며 아버지와 함께 갔던 동굴에 다니러 갔다가 무참히 칼에 찔려 죽는다. 그 시간 먼 곳에 가 있던 마나세는 알콜중독이 된 아내에게 이혼 당한다. 큰 아들만큼 사랑도 주지 못한 작은 아들은 고모가 맡아 키웠는데 작은 아들마저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잃는다. 정도 주지 못한 아들이 죽기 전 찾아와 형이 살해당하던 날 자신도 같이 있었다고. 형이 동굴 안에서 아버지 음성이 들린다고 했는데 아버지 아니지 한다.
<세눈박이 메기> 사토루는 어린 시절 친할머니댁에서 지낸 추억이 많다. 아버지를 대신해 둘째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이 분들은 자식이 없다. 아버지가 암이 걸리고 나서 친가 가까운 곳에서 운명을 했고 화장되어 묘에 묻힌다. 아버지는 묘에 묻히길 원하지 않으셨다. 이 말을 목사인 셋째 삼촌에게 뒤늦게 말하게 된다. 선산이라 말할 수 있는 묘지에서 사토루는 연대로 인한 구속을 깨닫는다. 내가 죽어도 내 자손이 돌봐주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편안한 안식이라는 구속.
실질적 가장였던 큰아버지가 아버지 죽음으로 인해 첫째가 되다보니 양자 문제가 대두된다. 사토루는 자신이 그 대상에 오를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대안이자 차선책으로 셋째 삼촌이 결혼하여 대를 잇는 방법으로 선자리가 들어온다. 아버지가 한때는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사토루는 놀라고 셋째삼촌이 목회활동을 함에 있어서 토속신앙을 믿는 사람들과의 괴리감에서 자유롭지 못함도 건너서 알게 된다.
일본은 섬나라고 중국은 육지라서 지명과 이름만 바꾸면 우리네와 같다고 봐도 무방한 게 중국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선입견인데 이 책은 그런 걸 여지없이 깬다. 우리나라 정서와 잘맞네 라고 생각된 건 일본의 문화잔재가 남아선가 라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나 서정적이고 심오하고 아름다운 묘사라니. 첫만남인 저자인데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름다운 수작이라는 수식어가 그냥이 아니다. 가족 묘지를 바라보는 구속이란 말이 신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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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역사가 개인에게 주는 폐해를 진중하게 말하는 소설.
'돌의 내력'은 두 중편을 싣고 있는데, 뒤의 것(세눈박이 메기)은 긴장감이 전혀 없어서 그렇게 좋은 소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세계를 아우르는 아래의 독백만큼은 인상깊었다.
'......와타루 삼촌은 어떤 징조, 혹은 징후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재촉하고 최종적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삼촌이 낚아올리는 물고기가 꼭 그와 같은 계기를 만들어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건간에 그의 주변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변화가 생기기를 바랐다. 사건 그 자체는 초월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본편으로 돌아가, '돌의 내력'은 위의 내포작가의 의지를 잘 형상화했다.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어느 일본 청년의 일생이라고 요약해도 무방할 듯 싶다. 전쟁의 상처이자 또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로서의 상징이 '주인공이 수집하고 조탁하는 돌'이며, 그 상징물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최소규모의 집단이며 동시에 비밀과 개인사를 안고 있는 '가족'이라는 사회의 특징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사회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니는 일종의 상징으로 작용한 듯싶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고뇌와 가족의 붕괴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과정이 매끄러웠고, 그래서 더 가슴이 아렸다.
'수천만 년에 걸친 물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지층의 불가사의한 연계. 아무도 없는 산 속에 혼자 들어섰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광물의 숨결. 오감으로 느껴본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우주의 질서. 그 놀라움을, 감동을, 전율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흘러넘칠 듯한 한 여름의 태양빛을, 지금 이 곳에서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원통함과 슬픔에 콧속이 뜨거워지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역사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자아 발현의 욕망을 지닌 인간 사이의 충돌. 이것이 모든 충돌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성과 개별성이 충돌하는 지점, 그 곳에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태어나는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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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텁하고 묵직한 느낌.. 이 책을 처음 받았을때 책의 표지가 전해준 느낌이다. 돌의 내력을 내리 읽고 나서도 답답하고 묵직한 이 무거운 감정은 역시 풀리지 않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나세의 아들 히로아키가 내내 사랑스러웠다. 아버지가 주운 돌을 아들에게 건네 알아맞추는 놀이에서, 가슴에 모은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은 정말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마 그 모습은 나와 내 자식의 먼 미래의 모습을 비추어 봤을지도 모르는 기대감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오붓한 정이 오래가기를 읽으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전 우주의 역사가 새겨진 강가의 돌멩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주는 중압감은 어쩌면 전쟁의 비극과 잔인함, 아픔이 맞물려 시작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 지구과학 시간에 돌멩이 하나하나를 놓고 달달 외워야만 했던 암담한 시절을 빼면 발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 이렇듯 심오한 철학을 느껴본적이 있었나 싶다.
짧은 단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줄거리로 하여금 읽는 이가 깊이 몰두하게끔 하는 마력을 느끼게 하는데, 아쉬운 점은 결론에서 급격한 클라이막스를 타고 '둥둥' 긴장감에 흥분한 가슴을 졸일새도 없이 끝나버리는 허무한 카타르시스다. 상등병이 웃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마나세에게 전하면서 하는 말이 떠오른다. - 아까 어린애들이 주고 간거야. 동굴에 아이 둘이 와서 나한테 주고 갔어.. 어눌한 과거의 악몽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한 구석에서 자신이 아이를 죽였다는 자책감으로 억눌린 회색 돌멩이가 태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결정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물질의 운동이 찰나의 형태로 담겨진 우주역사의 응축물이라 할수 있는 돌멩이를 찰나의 순간을 소비하는 인간이 수집하고 돌멩이를 통해 전쟁사후 인간의 아픔, 슬픔, 기쁨, 애한이 담겨있는 인생을 조명하고자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 보통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에필로그가 있어서 작가의 의도, 생각등을 알수 있는데 이 소설에는 누락되어 있어 작가와 소통할 수 없어 옮긴이의 후기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화려한 문체와 깊은 주제의식이 저자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는데 <돌의 내력>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도 접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며 읽었던 그 순간들이.. 몇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지금은 담담해졌지만, 모스경도계를 들고 열심히 관찰하는 사랑스런 마나세의 아들 히로야키가 간절하게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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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일본 소설들과 비교하여 무척 흥미롭다. 가볍게 일상을 훑어나가는 최근의 소설들에 비하여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소설은 인간을 인간이 되게끔 만드는 인간의 내력을 말해준다. 부러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철학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돌의 내력」.
「세눈박이 메기」.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돌의 내력」과 함께 실려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꽤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척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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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편소설임에도 순식간에 글로 빨아들이는 듯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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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돌의 내력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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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안정효'의 '하얀전쟁'을 생각되었다. 마나세와 한기주가 동일 인물로 겹쳐서 읽혀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 정당성을 주장하는 전쟁이란 참혹한 인간 놀음에 망가진 개,개인의 모습들. 가해자인 일본 역시 전쟁의 휴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정당화 된 단체의 잔혹한 살상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왜 죽이려는 거지? 전쟁은 사람이나 국가가 살기 위한것, 살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닌가? 결코 죽기 위해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 책의 함축된 귀절 같아 다시 한번 음미해 보게 된다. 일본 작품에서 읽혀지는 특유의 향취가 강하게 느껴지고 같은 주제이지만 하얀전쟁과는 다른 감성을 주고 있다. 개인의 내면에 쌓였던 그 절망감에도 일본인의 향취가 배어 있었다. 마나세가 자신의 상처를 보듬게 된 것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던 상등병은 웃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마나세에게 내밀었다. -아까 어린애들이 주고 간 거야. 동굴에 아이 둘이 와서 나한테 주고 갔어. ' "마나세는 손에 들고 있는 돌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변함없는 회색빛 돌.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얼룩을 닦자. 때마침 능선에 모습을 나타낸 태양빛을 받아 돌은 손안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결정으로 변해 갔다. " 비로소 마나세가 그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게되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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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마나세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으로, 지옥에나 비견될만한 상황 속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전후에는 또, 결혼하여 얻은 두 아들 모두 자신보다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와는 이혼하며 늘그막에 홀로 남아 취미인 지질학에만 몰두한다. 매우 무거워보이는 설정, 주제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어찌보면 화려하고, 어찌보면 감정을 절제한 담담한 어조 속에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돌과 돌에 집착하는 한 남자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말하고 있다. 글의 첫 부분과 마지막부분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 특히 [녹색처트]는 그 자체가 먼 옛날 살아있던 해양 플랑크톤이 석화된 것으로 마나세가 이야기하는 돌의 내력,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지구의 한 부분이며 그 결정으로서 마나세의 인생을 또한 말없이 담아 또다른 모습으로 변하며 순환하고 마침내는 새로운 결정으로 태어날 희망이며 아픔 그 자체이다. 길에서 발치에 채이는 많은 돌들은 그 자체가 지구 역사의 한 부분이며, 또한 수많은 우리 인류의 하나를 대변한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신선하며 아울러 중고등학교 지학시간에 보았던 암석의 편광 현미경 사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 부분은 나름 향수를 느끼게 한다. |